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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북한의 도발과 본격화하는 한반도 강대강 구도 

보수정권 2년 차부터 북한의 도발 준비 치밀해진다 

노무현 정부 말 10·4 공동선언 대가성 북측 요구에 MB정부 발목
대남 우위 전략 먹히지 않을 땐 핵무력 과시와 기습 도발 병행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 28일 핵무기연구소를 시찰하고 있다. 김 위원장 옆에 여러 개의 핵탄두와 발사체가 전시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진보정부에서 보수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 남북관계는 요동을 친다. 북한은 갑의 위치에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남북관계를 끌어오다가 대등한 관계로 재정립되는 상황을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2007년, 2012년 및 2022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가 승리했다. 갑을(甲乙) 관계가 갑갑(甲甲)의 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서울과 평양의 권부는 힘겨루기와 기싸움이 치열하다. 종속변수였던 대한민국이 독립변수로 바뀌면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좌경세력의 활동이 위축된다. 서울을 쥐고 흔들었던 평양 통일전선부는 회담을 간청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이던 상대가 급변함에 따라 당황하고 반발한다. 반발은 분노 단계를 거쳐 양측은 물 위와 물밑에서 날선 공방을 거치며 충돌단계에 들어선다.

필자는 2007년 12월 대선이 종료되자마자 당시 노무현 정부의 정보기관 대북 담당 책임자와 호텔 안가(安家)에서 만났다. 그해 여름부터 임기 말 무리한 정상회담은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라는 후보의 입장을 수차례 전했지만 막무가내였고, 청와대와 국정원은 기어코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임기 말 정상회담은 반드시 밀당이 있었고 대가성 지원을 논의했을 거라고 필자는 짐작했다. 북한의 대남 전략에서 무상(無償) 남북 정상회담은 절대 불가하다.

진보정권이 남긴 남북회담 과제, 북한 도발의 단초 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날이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처럼 핵과 미사일 무력을 과시해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남측을 상대로 무력 기습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북한이 전부터 반복해왔던 대미·대남 전술이다.
10·4 평양 정상회담에서 어디까지 이면 합의가 논의됐는지 파악하는 것은 새 정부에 중요한 과제였다. 평양 공동선언을 주도한 대북 책임자는 전임 ‘사장’이 약속한 사항은 후임 사장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었다. 대학 시절 민법 강의 시간에 들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suntser vanda)’는 구절이 떠올라 정상회담의 이면 합의가 부동산 매매 계약과 동일한 성격인지 헷갈렸다.

대선이 끝난 뒤 새 정부가 전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인계인수의 핵심은 일차로 옥수수와 쌀 등 식량 5만t을 정부 출범 전에 지원하는 것이고, 하반기에도 동일한 분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북측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묘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대북 책임자는 8개 항으로 이뤄진 공식 합의문에서 남과 북은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 어로 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합의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면담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대통령 당선인(이명박)에게 보고했다. 당연히 당선인은 지원에 부정적이었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라 정부 출범 전 관심사는 조각(組閣)과 인사였다. 지난 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우선이라 10·4 선언은 무관심 분야였다. 전임 정부의 약속어음을 지킬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 당면 과제인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화두였던 만큼 북한 문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신임 국정원장(김성호)은 전임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맡았고 대북 관리는 전략 부재 상태였다.

새 정부는 ‘비핵·개방 3000 구상’의 선언과 이행을 북한에 촉구했으나 북측은 대남 비난에 주력했다. 대북정책의 초점은 전임 정부들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대북정책 문제점을 바로잡는 데 있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원칙으로 구체적인 경제교류를 명기한 10·4 선언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든다며 사실상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했다. 비핵화는 6자 회담 합의 사항을 이행하도록 노력한다는 허망한 문장으로 기술해 북핵을 방치한 만큼, 보수정부는 절대 수용할 수 없었다.

10·4 선언은 남북관계에서 새 정부의 발목을 확실하게 잡았다. 평양 주석궁은 청와대가 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며 물 위는 물론 전통적인 물밑 대화조차 팽개쳤다. 갑을(甲乙) 관계가 뒤 바뀌었다고 판단한 평양 권부는 대화보다 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기습 도발을 준비했다. 새 정부 임기 첫해에는 남측 내부의 국방 태세를 관찰하더니 집권 2년 차인 2009년 들어서 기습의 징후가 미세하게나마 포착됐다. 전 정부 대북 담당자는 북한의 반발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묘한 첩보를 전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이 확보되지 않는 루머 수준의 첩보로 대응태세를 확립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북한 통전부는 기습 도발을 하되 주체를 알 수 없게 해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고도의 심리전까지 기획했다.

MB정부 3년차 ‘천안함 도발’ 2년간 치밀히 준비


▎2007년 10월 2일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북한의 대가 요구에 새 정부가 거절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DJ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10년 동안 진행된 화해·협력 정책은 국방부와 야전군의 대북 마인드를 완전히 이완시켜 놓았다. 10년 동안 교류 협력에 초점을 맞췄던 대북 정책으로 군부대 내에서조차 북한은 적이 아니라 화해 협력의 대상이라는 정훈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전국 각지에 일반 도로는 물론 부대 영내조차 ‘남북 화해 협력으로 평화를 달성하자’는 애매한 구호가 입간판으로 세워졌다. 군 수뇌부는 바뀌었으나 대대급 및 영관급 현지 부대장들은 10년 만의 대북정책 변화에 곧장 적응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대응 태세 전환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북한이 ‘민족’에서 ‘주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방어 및 공격 전투 훈련을 시행해야 하나, 위관급의 초급지휘관과 영관급 대대장들의 손발이 맞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임기 3년 차에 들어선 남측 정부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평양 통전부는 2010년 공격 디데이(D-Day)를 결정했다.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던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제2함대 소속 초계함 천안함을 향한 어뢰 기습 공격이 이뤄졌다.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됐다. 천안함은 1989년 건조된 1200t급 초계함으로 피격 당일 서해 북방한계선 근해에서 정상적인 해상경비와 어로 활동 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0·4 선언으로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겠다는 합의를 강조했던 책임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평화의 바다가 피바다가 됐다. 그해 11월에는 연평도에 대한 포격이 발생했다. 전자는 은밀하게, 후자는 공개적으로 공격을 감행해 남측을 혼란에 빠뜨렸다. 기습 공격으로 우리 장병 46명이 희생됐으나 북측 통전부의 전략대로 남측 내부의 갈등이 심해졌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인 명백한 도발인데도 공격 주체를 두고 벌어진 남남갈등은 북한의 심리전에 완전히 말려든 결과였다.

다국적 연합정보분석팀은 ‘천안함은 북한의 소형 잠수정으로부터 발사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의 결과로 침몰당했다’는 명확한 결론을 내렸으나 일부 언론과 선동가들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기습 공격이 이뤄지기 전까지 2년간의 소강상태는 다각도의 기습 도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으나, 적에 대한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는 유독 13년 전 봄날 밤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태와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들게 한다. 올 초 야당 대표는 10·4 선언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천안함 폭침의 단초가 됐던 평양 선언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니 유구무언이다. 총선이 있는 내년보다 역설적으로 올해가 대남 도발의 최적기다. 김정은으로서는 행동을 전개할 시점이다.

북한은 지난 2월 18일 김정은의 명령으로 ICBM ‘화성-15형’을 기습 발사하는 등 도발을 개시했다. 이런 도발은 대남과 대미 두 갈래로 전개된다. 대미(對美) 전략은 강 대 강 구도 속에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도발로 바이든 정부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북한 건군절에 등장한 고체연료 ICBM 등은 대미 압박 카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의회 연두교서 연설에서 ‘북한(North Korea)’이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여정은 “남조선 것들을 상대할 의향이 없다”고 했지만, 평양의 총구 방향은 너무나 먼 워싱턴이 아니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서울이다. 대남 도발은 바다와 육지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무인기로, 혹은 잠수함으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중심으로 한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거나 비무장지대(DMZ)를 노릴 수 있다. 도발은 남남갈등을 야기하는 복합적인 형태로도 진행될 것이다. 군의 선제적인 대응과 함께 민간도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3월 7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통합방위협의회는 하수상한 시절에 민·관·군·경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시의적절한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무력도발과 남남갈등 부추기는 복합 전술 재현될 수도


▎천안함 폭침 13주기를 맞아 3월 26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합동묘역에서 가족이 전사자를 추모하며 참배하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밤에 벌어진 천안함 폭침 사건은 MB정부 초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북한의 기습이었다.
북한 주석궁이 구상하는 군사도발의 로드맵은 치밀하다. 김정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무기 개발 속도에 맞춰 주기적인 도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평양은 서울처럼 여건과 환경에 따라 대통령의 지시를 탄력적으로 이행하는 체제가 아니다. 주석궁의 명령은 담당자의 생사를 좌우하는 악마의 계시록 수준이다.

북한은 지난 3월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3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훈련에서 “우리나라가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사실만 가지고서는 전쟁을 실제적으로 억제할 수가 없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실지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언제든 적이 두려워하게 신속 정확히 가동할 수 있는 핵공격 태세를 완비할 때라야 전쟁 억제의 중대한 전략적 사명을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훈련 첫날인 18일에는 “전술핵 무력에 대한 지휘 및 관리 통제운용체계의 믿음성을 다각적으로 재검열했다”고 통신은 밝혔다. 이틀째인 19일 오전에는 전술핵공격을 모의한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이 진행됐다.

한편 3월 27일에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전격 공개하며 다시금 핵무력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이날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한 자리에서 “핵무기 연구소와 원자력 부문에서 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데 대한 당중앙의 구상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방아쇠’라고 지칭한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를 완성하고 그 언제든, 그 어디에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돼야 영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핵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게 김정은 지시의 요지다.

후계구도에 관심 집중된 틈 노린 도발 조심해야

이후에도 북한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가 개발한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시찰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여럿 공개했다. 사진상 김정은 뒤쪽 패널에는 ‘화산-31 장착 핵탄두들’, ‘600㎜ 초대형 방사포 핵탄두’, ‘화성포-11ㅅ형 핵탄두’, ‘화성포-11ㄴ형 핵탄두’, ‘화살-2형 핵탄두’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상으로 화산-31 전술핵탄두는 10개 정도가 식별된다. 이는 화산-31을 600㎜ 초대형 방사포와 화살-1/2 순항미사일 등에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한 것이다. 핵어뢰 시험도 주기적으로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무기인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함이 이날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자 이에 맞설 수 있는 핵무기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김정은의 지시와 사진 공개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을 약화하려는 데 있다. 대남 핵 위협 수위를 점차 높이면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한·국내 신뢰를 낮추려는 계산이다. 북한이 연일 핵무기를 시험하고 전술핵탄두 사진까지 공개하는 것은 미국의 확장 억제 능력에 대한 한국의 신뢰를 흔들겠다는 목적이 숨어 있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한·미가 한층 더 결속력을 강화해 북한의 의도를 무력화하는 것뿐이다.

지난 2월 건군절 심야에 김정은 부인 리설주는 ICBM 모양의 펜던트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딸 주애는 열병식장 상석에 앉아 평양 선전선동부의 극장정치(cinema politics)를 여실히 보여줬다. 4대 세습 후계에 남측과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동안 북한의 한편에선 허를 찌르는 도발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북한의 기습 도발이 늘 이런 방식이었다는 건 숱한 전례가 남긴 교훈이다.

북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북 통신선 전화기를 꺼버린 채 4월 26일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찬물을 뿌릴 기회만 엿보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사용 억제를 비롯해 ‘한국형 핵 공유’ 등 다양한 도발 억지(deterrence) 대책을 내놔야 한다. 더 높은 수준의 강고한 동맹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북한의 오판을 막는 방책이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305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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