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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이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한 이유 

“카스트제도처럼 간호사·간호조무사 신분 나눠선 안돼”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을 학원·고졸로 제한한 것은 독소 조항”
“법안 제정과정에서부터 다른 보건의료 직역과 함께 논의해야”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80만 간호조무사를 대표해 지난 5월 간호법 제정안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다. / 사진:간호조무사협회
2023년 5월 대한민국 의료계는 간호법 제정안을 놓고 두 쪽이 났다. 쟁점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에 있었다.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제한하는 현 의료법이 1962년 제정된 만큼 시대착오적이라며, 이런 내용을 손질한 독자적인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의사들은 반발했다. 간호사의 권리 증대를 곧 의사의 권리를 나눠 갖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된 조항은 ‘지역사회 간호’라는 표현이었다. 지역사회에서의 요양·방문간호와 같은 돌봄 개념을 간호업무에 포함한다는 내용인데, 의사들은 이 규정이 간호사 단독 개원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호사들은 과대 해석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지역사회 문구를 놔두는 대신 간호사 단독 개원 금지 내용을 법안에 명시하자는 여당 제안은 완강히 거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의료계의 양대산맥인 의사와 간호사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의사를 제외한 의료 직역 12개 단체도 일제히 간호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간호인력을 아우르는 게 아닌, 오로지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만 집중한 ‘간호사 특혜법’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특히 의료현장에서 간호사와 밀접하게 공존할 수밖에 없는 간호조무사가 간호법 제정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회원 수는 약 80만 명이다. 사실 이번 투쟁에서 의사들의 반대 명분이 크지 않다는 평가는 일찍이 나왔다. 사실상 이번에 간호법이 폐기된 데는 간호조무사의 집단행동이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의료계는 숨을 고르고 있지만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 재추진 의사를 표명하고 내년 총선에서 여당 심판론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언제든지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월간중앙이 간호법 반대에 앞장선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을 찾은 이유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개선만 챙기는 특혜법”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이 폐기됐다. 소회가 어떤가?

“간호법이 폐기됐다고 해도 사실 저희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간호조무사들이 집단적으로 간호법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간호조무사가 간호법 당사자임에도 간호조무사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간호사에게만 특혜를 주는 법을 제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가?

“우선 간호법 제정안 제1조에 규정된 ‘지역사회’가 문제다. 저희는 대학병원과 병원급에서 간호사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간호법이 제정되면 장기요양기관에서도 간호사 지도감독을 받게 된다. 이 경우 장기요양기관에서는 간호사를 우선순위로 채용하게 되고, 인력 티오(T·O)가 남아야 간호조무사가 채용되는 구조로 바뀐다. 문제는 장기요양기관의 간호인력은 1~2명밖에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상 간호조무사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현재 지역사회에선 간호사의 3배가량 되는 간호조무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의 일자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이번 법안을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 학력제한 조항 아닌가?

“현재 간호조무사는 학원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특성화고인 간호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만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고졸 이상은 못한다. 물론 대한간호협회에서는 ‘나도 지금 간호조무사 시험 봐도 돼. 대학 나온 사람도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는데, 무슨 고졸 학력 제한이야’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에 간호조무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과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간호조무사의 출신 성분을 학원·고졸로 제한함으로써 간호대를 나온 간호사와 직종 간의 관계를 종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원래부터 간호조무사의 학력은 제한돼 있었던 건가?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은 애초에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에 규정돼 있었다. 2012년 이전에는 ‘특성화고 간호관련학과 졸업이상’으로 되어 있었고,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생에게도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그런데 신경림 전 간호협회 회장이 2015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있을 때 간호조무사 양성 교육기관을 ‘특성화고 간호관련과’와 ‘간호학원’으로 못 박은 의료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그해 국회에서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을 고졸로 제한한 지금의 의료법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2018년부터 가능하게 돼 있던 전문대 간호조무과 학생모집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학원가에서는 학력 제한 폐지에 부정적이던데?

“간호고등학교 교사들이 간호사 출신이다. 학원 강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간호사 입장에서 법안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양성 학원은 국고 보조로 운영된다. 만일 간호조무사 학과가 생긴다면 자연히 밀리게 되는 처지다. 대한간호협회에서는 전문적인 학과가 생기면 고졸과 대졸 사이에 신분이 달라진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간호사도 학사·석사·박사 출신이 따로 있다. 전문대 출신도 있고. 그렇다고 병원 급여는 달라지지 않는다.”

“학력 제한 통한 직업 간 종속관계 유지에 반대한 것”


▎간호법 시행에 반대하는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5월 11일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간호법·면허박탈법 폐기 전국 2차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한간호협회가 카스트제도처럼 직종 간 신분을 나누고 있다는 주장도 했는데….

“의료 현장에서 의사·간호사 관계가 그러하듯,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간호조무사 관계는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될 ‘넘사벽’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예를 들어, ‘PA(Physical Assistant·진료보조) 업무’를 놓고 의사와 간호사가 갈등할 때 의사들은 ‘그럴 거면 의대 나오면 되잖아’ 이런 식이다. 그런데 간호조무사인 우리가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면 간호사들은 우리에게 ‘간호대 입학하면 되잖아’ 이런 식이다. 우리가, 간호사가 되려고 시험 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를 요구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폐기된 간호법에는 간호조무사협회를 법정 단체로 인정하는 조항이 있었다. 간호조무사협회가 오래도록 염원하던 내용 같은데? (사단법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간호조무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인정받았지만 공식적으로는 법정 단체가 아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본다. 대한간호협회에서는 ‘원하는 것을 한 번에 다 이룰 수는 없다. 너희들이 그렇게 원하는 법정 단체 조항이 들어갔으니까 간호법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저희가 법정 단체가 되려는 이유는 딱 하나다. 간호조무사도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런 사정을 어렵게 하는,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법정단체가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한간호협회와의 소통은 어떤 편인가?

“제가 회장 된 지 1년 됐다. 그 사이 간호협회장이 한 번 바뀌었다. 저는 끊임없이 요구했다. 간호법 당사자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니까 만나서 대화하자. 대화라는 건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안 되는 것도 이해될 수 있으니까 얘기하자. 그런데 대화 요청도 몇 번이나 했고, 공문도 보내고 만나자는 얘기를 몇 번 더 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격이 맞지 않는다?

“모 방송사에서도 간호법이 이슈가 되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서로 토론하는 형식으로 다루고 싶다는 섭외 요청이 있었다. 저희는 흔쾌히 나가서 하겠다고 했는데, 간호협회 측에서 토론을 거절했다. 그래서 바로 당일에 방송이 취소됐다. 대한의사협회가 나오면 대한간호협회는 대화를 하는데, 저희와 결정되니까 안 나온 거다.”

“다른 직역과의 소통 통한 새 간호법 마련돼야”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하며 단식까지 했는데….

“제가 단식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면, 간호법이 단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국민께 이 법안의 부조리함을 알려야 하는데, 단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마침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고 해서 단식 현장 근처에 휘발유 통이 있었다. 저거라도 마시면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간절한 모습을 보여야 우리 목소리가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던 동료가 펄쩍 뛰고 말리더라. 저는 그만큼 간절했다.”

간호인력의 처우나 열악한 환경 개선은 의료계가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다. 어떤 식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보는가?

“간호사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방사선사 등 보건의료인 모두의 처우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간호법은 간호사를 제외한 다른 직역과 논의도 없었고, 오직 간호사만을 위한 처우 개선이 중요 쟁점으로 다뤄지면서 타 보건의료 직역과의 갈등이 심화됐다. 법안 제정 과정에서부터 간호사뿐 아니라 다른 보건의료 직역과 함께 논의하면서 처우 개선을 목표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간호사를 제외한 모든 직역이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호조무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어떤 점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간호조무사 절반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5인 미만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이다. 5인 미만 의료기관은 연차휴가도 없고, 시간외 근무에 대한 가산금도 없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계약서와 임금명세서를 교부하지 않거나 NET(실수령) 임금 계약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미교부는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으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임금명세서가 정상적으로 교부되면 NET 임금 계약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간호조무사 처우 개선을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간호등급제처럼 간호조무사 인력수가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의원급 간호조무사의 임금에 대한 건강보험을 통해 사회적 보상체계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간호조무사 정원 자체가 없다. 심지어 서울대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은 명찰에 ‘간호조무사’라고 표기하지도 못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간호조무사 정원을 법적으로 확보하고, ‘간호조무사’ 이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처럼 간호등급제 수가체계에 간호조무사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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