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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군가의 ‘슈퍼맨’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싱글 대디’ 심리상담 전문가가 쓴 아빠들의 마음 치유서
좋은 아빠 되는 건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으로 충분해


아빠 반성문

조영진 지음 세이코리아 1만8800원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 아빠는 우주와 같아요.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죠.” 이따금 이 말을 떠올리며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로서 온전히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곤 한다. 아이가 놀아달라며 다가오면 피곤하다거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고 인상을 찡그렸던 게 떠오르면 이내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과연 내가 좋은 아빠일까, 혹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의 해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아빠 반성문’)을 보자마자 첫 장을 펼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미 수없이 마음속으로 반성문을 써내려갔던 차에 ‘다른 아빠들도 마찬가지일까’라는 동질감으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희석하고 싶었을 게다. 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팁을 얻고 싶은 기대도 섞여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는 구절에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 모든 아빠들이 느꼈을 당황과 기쁨, 부담감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명쾌하게 대변한다. 아빠의 역할에 대한 혼란은 특히 이 시대 젊은 아빠들이 겪는 숙명과도 같다. ‘남자는 일을 하고,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전근대적 공식이 통용됐던 게 불과 수십 년 전이다. 그런 생활양식 속에서 자란 젊은 아빠들에게 남녀 구분 없는 맞벌이와 공동육아의 낯섦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커질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도 커질 수밖에.

'아빠의 반성문'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준다. 단순한 몇 마디 문장에는 아빠들의 자존감을 회복해주는 신통한 힘이 있다. ‘엄마와 할머니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짐짓 큰소리를 치면 아이는 자신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풀어주는 아빠의 능력에 어느덧 울음을 그치고 놀던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반드시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242쪽) 이처럼 아이가 아빠에게 바라는 슈퍼맨의 역할은 큰 힘이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닌, 그야말로 ‘별것 아닌 일’이다. 생각해보면 아빠들은 언제든 슈퍼맨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믿음 아닌가.

‘아빠의 무관심’으론 좋은 아이를 만들 수 없다

대학에서 심리상담을 가르치고, 실제 상담사로도 활동하는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한보듬아빠(싱글대디)로서의 삶의 경험에 관한 연구’란다. 아빠의 역할에 천착해온 저자의 집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저자가 경험한 수많은 상담 사례를 읽다 보면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가 왜 그토록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강조했는지 수긍하게 된다.

저자가 쓴 반성문은 네 살짜리 아이를 당차게 ‘교육시키려던’ ‘어른 바보’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를 위해서’라고 합리화했던 지난 일들이 뇌리를 스친다. 아이를 잘 키우는 세 가지 조건 중 으뜸은 ‘아빠의 무관심’이라며 육아 불참을 합리화했던 건 또 어찌나 민망한 일인지. 어느새 마음속에 써내려간 반성문이 한 두루마리쯤 될 법하다.

제목은 ‘아빠 반성문’이지만, 책은 아빠들을 자책감으로 유도하지 않는다. 문장들이 이끄는 곳에는 위안과 용기가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단한 아빠가 되는 거 별 게 아니네.’ 당장 오늘 저녁 퇴근 후가 기다려진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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