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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5라운드를 버틴 록키처럼 

오늘도 ‘그로기 상태’일 당신에게 보내는 숏폼 에세이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권희대 지음
책밥상
1만6800원


이 책은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안의 손길이다. 작가는 거리의 수많은 록키들에게 로프를 꼭 잡고 버티라고 조언한다. “언젠가는 15라운드를 끝내는 종이 울리고야 말테니. 설령 패배하더라도 힘든 시절을 꿈으로 버틴 사람에게는 꿈 이상의 무언가가 남아 있게 될 것”이라며 조용하게 응원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명 가수, 낯선 모텔 주인, 무뚝뚝한 식당 사장님, 제주도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후배, 이삿짐센터의 일꾼 등 이웃이자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화려하지도, 빛나지도 않지만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들은 간결하고 주제가 선명한 ‘숏폼’ 형식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매일 ‘그로기 상태’인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것들보다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작은 것들의 지속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작가 권희대는 서울대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월간지 기자, 여행서 기획자 등을 거쳐 현재는 복합문화공간 DDP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러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문자로 그림을 그리며 사진도 찍는다. 스스로 ‘마이너리그 1등 문장가’라고 하지만 연민이라는 감정을 우물에서 길어내어 독자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마음 씀씀이만큼은 간단치 않다.

마치 잘 만든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소도시를 걸으며 들었던 내 안의 생각들, 그 풍경 안에서 혼자 물끄러미 솟았던 감정들을 더도 덜도 없이 담담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작가가 미술을 전공한 덕분인지 독자는 글을 읽다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일상의 사건은 영상처럼 떠오르고, 여행지의 풍경에는 색깔이 더해진다. 직접 찍은 사진들도 이미지화에 한몫한다. 마치 잘 만든 단편영화 같다.

“그나저나 박수근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작가가 그렸다기보다는 어디 흙 속이나 돌 속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던 것들을 찾아낸 것 같다. 누군가 그 앞에서 “사랑이 제일 좋은 거야. 그게 안 되니까 그림 따위 그리고 있는 거지”라고 비아냥거린다 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굴 작업을 할 것 같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도 짙은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그게 사랑인지 우산인지 모르겠다만 그도 무언가를 적지 않게 잃으며 살았나 보다.“ (208쪽)

작가의 희망처럼 지금 좌절하고 있더라도 버틴다면 끝내 구원의 종은 울릴 것이다. 15라운드를 버틴 록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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