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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한 개 4000원…‘K-바가지’ 오명 쓴 명동 노점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백화점 음식값 웃도는 명동 물가에 소비자 눈살
현금, 계좌이체로 결제 유도…체계적 관리 필요


▎코로나 19 이후 활기를 찾은 명동 거리. 수많은 인파가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연합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23일 저녁, 명동 거리엔 수많은 인파가 모여 거리를 가득 메웠다. 짧은 반바지에 탱크톱만 입은 서양 관광객은 부지런히 명동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쓰개)을 쓴 동남아 관광객은 일행과 함께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의 설명을 경청하며 일일이 화장품을 발라보고 있었다. 인종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여든 세계인들을 보니 명동을 우리나라 대표 ‘쇼핑 명소’로 꼽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쇼핑 외에 명동의 명소가 또 있다. 오후 4시부터 개시되는 명동 거리 노점이다. 분식, 한식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근 명동 거리 노점이 ‘K-바가지’로 불리고 있다. 떡볶이, 군만두, 붕어빵 등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 백화점 내 식당가만큼 비싸서다. 기자가 둘러본 명동 노점의 물가는 악명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뉴욕을 떠올리게 했다. 랍스터 꼬리 구이는 2만원, 어묵꼬치 한 개에 2000원, 군만두 3개에 5000원으로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비용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비쌌다. 필리핀에서 온 관광객 멜로니 씨는 “아까 화장품 가게에서 집에서 쓸 기초 화장품으로 5만원어치를 샀다. 그런데 노점 음식 3개 정도를 사니 벌써 4만원을 썼다”며 “화장품은 적어도 3개월은 쓸 수 있는데 저녁 한 끼도 안 되는 간식들이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기자가 직접 사 먹은 아이스크림 붕어빵은 주먹만 한 크기에 개당 6000원이었다. 다 먹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알고 왔지만 직접 사보니 더 비싸…다시 한국와도 여긴 안 온다”


▎명동 어느 한 노점에서 어묵 한 개를 2000원에 팔고 있다. 다른 곳에서 판매되는 어묵이 개당 보통 1000~1500원 사이다. 이상우 인턴기자
캐나다 관광객 스미스 씨는 랍스터 꼬리 구이를 단 2분 만에 다 먹었다. 그는 “(음식 가격이) 2만원인데 고작 네 조각이다. 맛도 그냥 새우 맛과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불평했다. 랍스터 꼬리 구이를 든 손엔 1만원 지폐 4장이 들려 있었는데 단 30분 만에 노점 음식을 사는 데 6만원을 쓰고 남은 돈이라고 한다. 스미스 씨는 “한국 물가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 정도다”며 혀를 내둘렀다. 캐나다는 2023년 기준 빅맥 지수(맥도날드 빅맥 버거 가격을 기준으로 각 국가의 물가 수준을 비교하는 구매력 평가지수) 5위에 해당하는 고물가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다.

개발도상국 출신 관광객들은 명동 거리 물가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자국의 화폐가치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원화보다 낮아서 더 큰 경제적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관광객 카투르 씨는 “SNS를 통해 명동 물가를 어느 정도 알고 왔지만 막상 직접 체감하니 더 비싸 전체 여행 예산에도 부담되는 수준이다”며 “한국에 다시 관광을 올 의향은 있지만 명동 거리엔 다시 오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열 서정대 항공관광학과 교수는 명동 거리의 높은 물가 수준을 두고 ‘K-바가지’가 맞는다고 했다. 또한 소비자가 납득하지 못하는 관광지의 높은 물가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관광 이미지 자체가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관광객들은 여행하러 온 나라에 대한 인상을 평가할 때 주로 그 나라의 서비스와 문화 인프라를 보고 평가하는데 서비스 평가의 주된 요소가 서비스 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가격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냉정하게 말하면 명동 노점의 음식 퀄리티는 현재 책정된 가격을 주고 사 먹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이러한 바가지 행태가 지속하면 명동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쌓여 결과적으로 관광객들이 기피하는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年 83만원 도로점용료만 내면 돼…세금, 위생 사각지대 지적도


▎붕어빵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음식이다. 해당 음식 역시 6000원으로 소비자들은 간식 수준을 넘어선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우 인턴기자
K-바가지 논란에 명동 거리 노점상은 억울하다고 했다. 명동 거리에서 15년 넘게 장사를 해온 최무홍(가명) 씨는 “코로나 19 이후 식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음식값 인상은 어쩔 수 없다”며 “많은 이들이 우리가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노점 장사하는 거로 아는데 우리는 구청에서 정식으로 허가받고 운영하고 있다. 매년 구청에 운영비도 낸다”고 말했다.

최씨의 말대로 명동 거리에서 영업 중인 노점은 중구청에서 허가받은 ‘거리 가게’다. 2021년 기준, 총 362개의 노점이 등록돼 ‘도로점용료’를 내고 정당하게 가게를 운영 중이다. 중구청은 도로점용료로 노점당 연간 평균 82만5000원을 징수하고 있다. 월평균 약 6만9000원이다. 이종열 교수는 “한 달 7만원도 안 되는 운영비 때문에 백화점 음식과 가격이 비슷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음식 판매에 대한 세금도 거의 안 내고 있어 K-바가지 논란을 피해 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노점은 현행 세법상 ‘법 집행 불가 대상’이라 실질적으로 과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동 노점 대다수는 결제 수단으로 현금 계산과 계좌 이체만을 받고 있었다. 베트남 관광객 하이후이 씨는 “국제 신용카드로 결제- 하려 했는데 카드는 아예 안 받는다고 해 인근 ATM에서 현금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중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가끔 음식 가격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긴 한다”며 “(구청 입장에선) ‘거리 가게 운영 규정’에 따라 노점상을 관리하기 때문에 판매 가격에 대해 조정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부를 비롯한 전국 대다수 지자체가 노점을 상대로 강력한 행정 조치하지 못하게 된 데는 노점 정책 방향에서 기인한다. 신규 유입은 차단하고 기존의 노점은 유지함으로써 노점상의 자연 소멸을 유도하는 설정이다. 명동 거리 가게 등록 조건 역시 해당 구역에서 영업한 기간이 10년 넘어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기존 노점의 자연 소멸을 기다리려면 최소 수십 년은 걸려 그사이 노점에 대한 세금과 위생 관련 사각지대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구청 식품위생과 주무관 A 씨는 “영업 신고가 돼 있으면 시정 명령이나 과태료 부과 등 제재를 할 수 있지만 명동 노점은 도로 점용 허가만 됐지 영업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행정 조처를 내릴 수가 없다”며 “위생 문제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고발해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열 교수는 미국 뉴욕시의 노점 정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뉴욕시는 거리 음식점 영업 허가를 내주는 영업 허가 총량제를 통해 노점의 위생, 세금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도 제도 개선을 통해 노점의 바가지 문제 등을 해결하고 노점이 우리나라 하나의 고유 관광지로서 재정비돼야 한다”고 했다.

-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shineto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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