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여름의 끝자락 

 

이경림

▎여름의 끝자락, 전주.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그 문을 경계로
너는 밖이 되고 나는 안이 되었다

너는 법당 뒷문이 보여주는 배롱나무가 되고
만개한 분홍 꽃이 되고
나는 컴컴한 마루가 되었다

밖인 너는
죄죄죄 내리는 햇빛이 되었고
꽃향기 가득한 뜰이 되었고
나는 어둑한 법당 속
없는 독경소리가 되었다

그때 너는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새소리였고 나는
안이 숨겨놓은 캄캄한 문짝이었다

완자무늬 문살을 숨기며 안이 비어 가는 동안
꽃 속에 자꾸 알을 슬며 햇빛은 늙어 가고
나는 텅 빈 내가 서러워서 울었다

이경림 -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계간 [문학과 비평] 봄호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급! 고독] 등이 있음. 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가 2001년을 빛낸 다섯 권으로 선정. 2011년 지리상 문학상, 2016년 윤동주 서시문학상, 2018년 애지 문학상 수상. 2011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시절하나 온다, 잡아먹자]를 영어권 번역도서로 선정해 뉴욕 [HAWK PUBLISHING]에서 발간.

202309호 (2023.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