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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김희범의 등산 에세이 '산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있으려나' 

등산처럼 숨이 차지만 재미 쏠쏠… 중독성 있는 산행기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산길 따라 인생 따라… 국내외 명산에서 찾은 인생철학
머리와 가슴이 함께 하는 산행… 향기로운 인간미 물씬


등산의 묘미로 ‘산에서 얻는 내적 자유’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의 어느 산 전문 기자는 “유교적 가족주의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개인의 욕망을 억압한 채 희생해야 했던 노년 세대들이 뒤늦게 등산에 입문하는 경우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했다. 결국 등산은 산과의 상호작용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정신적 행위라는 것이다. 등산은 철학인 셈이다.

저자 김희범도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다 명예퇴직한 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한 김희범에게 인생의 후반전은 무수한 질문 덩어리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매주 산에 올랐다.

산골 출신으로 타고난 체력의 소유자인 그가 산을 쉽게 보다가 길을 잃어 고난에 처한 것도 여러 번, 그에게 산은 오를수록 오묘한 인생의 스승이 됐다. 어느 날부터는 산에서 깨달은 자기만의 생각과 등산하며 얻은 것들을 자기만의 색깔로 버무려 글로써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개똥철학을 담은 산행기를 꼬박꼬박 자신의 SNS에 올렸다. 정제되지 않은 글이었지만 ‘인생, 뭐 있냐’며 속 시원하게 일갈하는 그의 글은 그의 SNS 친구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다.

그의 글 속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 동창, 지인, 멀게는 산행 중 만난 이름 모를 길동무까지… 그들과 만난 김희범의 생각은 한 뼘 뇌를 뛰쳐나와 산 속을 한바탕 휘돈 것도 모자라 세계와 지구, 미지의 우주 저편까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리고 하산할 때쯤엔 신통하게도 그 생각들을 갈무리해 인생의 답을 나름대로 정리해낸다. 실제로 그는 지난 6년간 중국 차마고도부터 설악산과 속리산 등 수백 군데의 국내외 명산을 두루 섭렵했고, 100여 편의 SNS 산행기를 남겼다. 바꿔 말하면 인생의 답을 약 100여 가지 깨우친 것이다.

도대체 그 산에 무엇이 있기에

책 [산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있으려나] 속엔 그의 시각으로 해석한 산 이야기와 그의 벌거벗은 생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개똥철학으로 범벅이 된 그의 글은 그래서 더 술술 읽힌다. ‘수위가 지나쳐서 논란이 벌어질 정도의 표현은 편집 과정에서 깎이고 순해져’ 책에 실리기도 했다. 자체 검열 전 원본이 궁금해진다면 월간중앙(https://jmagazine.joins.com/monthly)에서 ‘김희범’ 또는 ‘등산미학’을 검색해보시라. 정제된 글과는 또 다른 날것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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