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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배터리 안전 핵심 기술 공개한 현대차·기아 

15년 노하우 ‘BMS’ 앞세워 전기차 공포증 진화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주행·충전 중 상시 진단… 주차 시에도 이상 징후 모니터링
3단계 다중 안전 시스템… 과충전에 의한 전기차 화재 제로


▎현대차·기아는 8월부터 시행한 전기차 안심 점검 서비스를 무상 보증 기간과 관계없이 매년 진행하기로 했다. 정비사가 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점검하고 있다. / 사진:현대자동차
8월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 뒤 이른바 ‘전기차 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조사에 배터리 주요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등의 전기차 화재 안전 관리 종합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정부 대책에 발맞춰 유관 부처 등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는 한편 고객 서비스, 연구·개발(R&D) 부문에서 각각 자체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인 BMS 기술을 공개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소비자들이 최근 전기차에 대해 과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배터리 이상 징후 시 즉각 차주에게 통보

BMS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attery Management System)’의 약자다. 배터리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두뇌이자, 자동차가 배터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제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높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를 총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15년 이상의 자체 개발 노하우를 축적해 고도화한 BMS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 과정에서 BMS 제어 기술 기반을 쌓았다. 이후 여러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면서 진화한 BMS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기아 BMS의 핵심은 배터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정밀 ‘배터리 시스템 모니터링’이다. 배터리의 이상 징후를 신속하게 탐지하는 동시에 위험도를 판정해 차량 안전 제어 기능을 수행한다. 필요 시 고객에게 통지함으로써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미리 방지해 주는 기술이다. 현대차·기아 BMS가 진단한 이상 징후 데이터는 즉시 원격지원센터로 전송된다. 이어 고객에게 입고 점검과 긴급 출동 안내 문자메시지를 자동 발송한다.

현대차·기아 BMS는 특히 주행·충전 중 상시 진단은 물론 시동이 꺼진 주차 중에도 정기적으로 깨어나 배터리 셀의 이상 징후를 모니터링한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주요 원인은 셀 자체의 불량 또는 충격에 의한 셀 단락이다. 현대차·기아 BMS가 모니터링하는 항목은 전압 편차, 절연저항, 전류·전압 변화, 온도, 과전압·저전압 등이다. 최근 출시하는 차량은 이에 더해 몇 주 전의 잠재적 불량까지 검출할 수 있다. 순간 단락, 미세 단락 등을 감지하는 기능을 추가해 한 차원 높은 안전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게 현대차·기아의 설명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최근 개발한 순간·미세n 단락을 감지하는 기술이 배터리 화재 사전 감지에 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신규 판매 차량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 기존 판매된 전기차에도 연말까지 업데이트 툴 개발을 완료해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배터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고객은 물론 소방 등 관계기관에 즉시 자동 통보되는 시스템 개발에도 나섰다. 첨단 진단 기술과 클라우드 서버 기반의 원격 정밀 진단(물리 모델, 머신 러닝 모델 활용)을 통합한 ‘온보드-클라우드 통합 안전관리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화재와 관련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서 꼽는 전기차 화재 원인 중 하나인 과충전이 대표적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현대차·기아 전기차 가운데 과충전에 의한 화재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는 다른 가전제품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100%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 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됐다. 다시 말해 충전량 100%를 기준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고 관리한다는 의미다. 배터리 충전량이 화재 규모나 지속성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배터리 내부의 물리적 단락이나 쇼트 발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아니라는 뜻이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돌 등에 의해 내부에서 물리적 단락이 발생할 경우 양·음극 간 높은 전류가 흘러 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화학 물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산소나 가연성 부산물 등으로 인해 발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전량과 무관하게 단락 위치나 면적, 사용되는 내부 물질 종류에 따라 실제 발열과 화재 상황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적은 충전량이라고 하더라도 단락으로 인한 화학 물질의 반응 정도가 클 경우 화재 발생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일각의 주장처럼 배터리 충전량을 제한하는 것은 전기차 화재를 막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제조 결함이 없도록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하는 것은 물론 사전 오류를 진단해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윤원섭 선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배터리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배터리를 100% 충전하면 위험하다는 인식”이라면서 “배터리 셀 제조사는 과충전을 막는 독자적 기술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도 자체 제어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데다 현대차그룹은 E-GMP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진보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화재가 내연차보다 위험? 사실 아냐”


▎전기차 배터리 화재 주요 요인과 현대차·기아의 3단계 과충전 방지 기술. / 사진:현대차·기아
현대차·기아 BMS는 특히 충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전 상태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충전 제어기의 긴밀한 협조 제어를 통해 과충전을 원천 차단하는 만큼, 과충전에 의한 문제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과충전 방지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충분한 다중 안전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감지 자체에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총 3단계의 과충전 방지 기술을 중복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1단계로, BMS와 충전 제어기가 최적의 충전 전류를 제어한다. 이를 통해 고전압 배터리가 충전량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충전될 수 있도록 상시 관리한다. 2단계에서는 BMS가 배터리의 충전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정상 범위에서 벗어날 경우 즉시 충전 종료를 명령하는 시스템이 작동된다. 만에 하나 차량 제어기와 배터리 제어기가 모두 고장 난 상황에서는 3단계 시스템이 가동된다. 이 단계에서는 물리적 안전회로가 작동해 전류 통로인 스위치를 강제로 차단한다.

현대차·기아 BMS는 모니터링이나 과충전 방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터리 내부의 셀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배터리의 내구성과 성능을 최적으로 유지하는 ‘셀 밸런싱(Cell Balancing)’ 기술도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팩 안의 많은 셀 중 하나만 성능이 저하돼도 배터리 전체 성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배터리 셀 개별 관리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수명을 연장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현대차·기아 BMS는 만약 배터리 셀들의 전압에 편차가 생길 경우 이를 미리 인지해 셀 사이의 전압 편차를 줄이기 위한 셀 밸런싱 제어를 수행한다. 아울러 현재 배터리의 온도와 상태를 종합해 배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 출력을 수시로 연산해 제어한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의 열 폭주를 동반해 온도가 섭씨 1000도 이상으로 치솟기 때문에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위험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배터리 1㎾h의 열량은 3.6메가줄(MJ)로, 가솔린 1ℓ의 열량 32.4MJ 대비 크게 낮다. 같은 용량이라면 열량이 높은 연료를 싣고 있는 내연기관차의 화재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차량 외부 온도도 더 높이 오르는 편이라는 설명이다.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지난해 7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실시한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소방서 통보 시스템 구축 등 정부와 협력”

현대차·기아는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고객 서비스와 R&D 부문에서 자체 대응 방안을 추가로 마련하기도 했다. 우선 8월부터 시행한 전기차 안심 점검 서비스를 무상 보증 기간과 관계없이 매년 진행하기로 했다. 안심 점검 서비스는 전기차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전기차 핵심 부품을 무상 점검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9월 초까지 4만여 대의 전기차가 점검을 완료했다.

현대차·기아는 화재 위험도를 크게 낮춘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오는 12월 현대차·기아 의왕연구소에 완공되는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에서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배터리 시스템의 오류 진단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화염 노출 지연·방지 기술 개발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도 드라이브를 건다. 배터리 시스템에 대한 검증 시험도 보다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제조상 편차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배터리 이상 징후를 사전에 진단하기 위한 BMS 기술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해 발생한 셀 발화가 주변의 다른 셀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이머전시 벤트, 내화재, 열 전이 방지 구조 설계 등의 기술도 더욱 발전시킬 예정이다. 또한 배터리 시스템에 대한 충돌·압축·화염 등의 검증을 보다 강화하고, 외부 환경에 대한 안전 설계를 강건화하기 위한 R&D도 가속화해 빠르게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소방 기술에 대한 연구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 발생 시 빠른 감지와 효과적 진압을 위해 소방연구원, 자동차공학회, 대학 등과 손잡고 소방 신기술을 공동개발 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부터 총 56억원을 투입했고, 3년간 순차적으로 결과물을 내놓을 계획이다. 우선 올해 안에 CCTV 영상 기반의 차량 화재 감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후 배터리 화재 특성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화재 지연·진압 기술, 소방대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 시스템 개발 등 화재 현장 적용 기술을 순차적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전기차 화재 종합 안전 대책과 연계한 시범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전기차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근 소방서가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정부는 배터리 셀 이상 징후 발생 시 자동차 업체에서 관련 정보를 즉시 전달받아 소방 인력이 신속히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는 소방 출동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BMS의 사전 진단 코드를 세분화해 소방서에 즉시 통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구축했다. 소방청과 협력해 자동차 소유주가 정보 제공에 동의한 차량을 대상으로 진행하게 될 시범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정부가 추진하는 배터리 사전인증제도와 같은 시범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제도 정착에 기여하고, 배터리 이력관리제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서도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고객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운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기술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전기차 대중화에 앞장서는 한편, 높은 상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가 경제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410호 (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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