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취재] 인천공항세관 ‘마약수사 외압’ 내막 

경찰 지휘부, 용산 인맥 만들려고 수사 찍어눌렀나?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인천공항세관 건드리자 승진 앞둔 지휘부, 마약 사건 ‘역대급 통제’
尹 정부 들어 관세청 입지 강화… 고광효 청장은 힘센 ‘기재부’ 출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세관 연루 마약 밀반입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찬수 총경이 백해룡 경정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20일, 전국의 전·현직 경찰들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주재로 열린 ‘마약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경정)의 입을 주목했다. 앞서 그가 조지호 신임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영등포경찰서의 인천공항세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지휘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실제 백 경정의 주장대로 경찰 지휘부가 수사를 방해한 흔적은 확인된다. 특히 해외 조직의 마약 국내 유입에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조력했을 가능성을 수사하고 이를 언론 브리핑에서 밝히려 하자, 어떻게든 인천공항세관의 존재가 공개되지 않도록 언론 브리핑 자체를 막으려 했다. 청문회에 나선 고위 간부들은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사코 부인했지만 잘 진행되던 수사가 돌연 난관에 부딪히고 계류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수사 일선 책임자인 백 경정은 지구대장으로 좌천됐고, 사건을 누른 김찬수 총경은 대통령실로 영전했다.

과연 수사 외압 의혹의 실체는 뭘까? 기자는 인천공항세관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고광효 관세청장이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을 통해 경찰 지휘부를 움직인 것에 주목했다. 통상적으로 관세청장은 경찰 중간간부에게도 무슨 입김을 넣을 위치는 못 된다. 관세청장은 보은 인사 성격이 강해 권력과 가까운 이들이 거쳐가는 자리라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서 관세청의 위세는 대단히 높아졌다. 그것은 고광효 관세청장이 대통령실의 최고 요직을 꿰찬 엘리트인 ‘기재부’ 출신이라는 배경, 그리고 수사 외압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경찰 고위 간부들이 승진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소위 권력과 가까운 인맥(백그라운드)을 업어야 하는 입장이었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청장도 칭찬했는데 힘센 관세청 건드리자 역적돼”

백 경정은 일반순경 공채로 1998년 경찰에 들어와 2017년 1월 경정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 승진 후보군에 들려면 경정 8년 차인 내년부터 가능하다. 그가 인천 논현경찰서 여청과장일 당시 함께 근무했다는 인천의 현직 경찰 A씨는 “조직 분위기에 크게 엇나간 적 없는 수사의 원칙주의자”라고 기억했다. 다른 전직 경찰 B씨는 “조용하고 특별히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청문회를 시청하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내부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거나 연줄을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유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편 그런 백 경정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2023년 8월 첩보로 시작된 말레이시아 조직의 국내 필로폰 밀반입 사건 수사에 그가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 정권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데다가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치안총감)도 마약 관련 우수사례에 대해 ‘팀 전체를 특진시키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걸었기에 백 경정 이하 마약수사전담팀(이하 전담팀)의 수사 동력으로 특진 가능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영등포경찰서 내부 상황을 잘 아는 C씨는 지난해 9월 초까지만 해도 전담팀의 사기가 굉장했다고 기억했다. 수사의 최총 책임자인 김찬수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총경)이 직접 수사를 챙기고 있었고, 2220억원 상당의 필로폰 74㎏(246만 명분)을 밀반입한 국제 조직원 십수 명을 검거한 역대급 성과도 냈다.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훌륭하다”며 칭찬한 만큼 내부에선 특진 티오(TO)가 배정될 거라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당연했다는 것이다.

전담팀이 앞서 검거한 말레이시아 조직원으로부터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마약 밀반입에 조력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내사에 착수한 뒤 상부에 스스럼없이 이를 보고한 것도 전담팀의 수사 의욕이 다소 과열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직후 이뤄진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치안정감)의 영등포경찰서 방문이 격려 차원에서일 거라 전담팀이 예상했던 이유다. 그런데 그는 마약 수사에 관심을 보이는 대신 자신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해서만 얘기하다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사달이 난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은 김광호 전 치안정감의 방문 직후 벌어졌다. 우선 김찬수 총경의 태도 변화다. 그는 “용산(대통령실을 지칭)에서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면서 지난해 9월 22일 예정된 언론 브리핑 연기를 지시했다. 10월 4일 전담팀이 인천공항세관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선 최형욱 당시 서울경찰청 폭력계장(경정)이 전화를 걸어와, ‘세관은 끊고 가자’고 회유했다. 이튿날인 10월 5일, 강상문 당시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총경)이 “지휘부에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로 사건을 이관 검토하라는 걸 내가 막고 있었다”고 흘리는가 하면, 오후에는 조병노 경무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마약 사건에 세관 직원이 연루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할 것이냐’는 취지로 캐물었다. 당시 조병노 경무관은 백 경정에게 전화하기 전 인천국제공항경찰단장 시절 친분을 맺은 김재일 당시 인천본부세관장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병노 경무관은 10월 14일 백 경정에게 또 한번 통화하는 과정에서 ‘고광효 관세청장이 인천본부세관장을 통해 세관 관련 내용을 언론 브리핑에서 제외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한편 인천공항세관 간부 등 4~5명이 10월 6일 아침 일찍 영등포경찰서를 찾아 백 경정에게 언론 브리핑에서 인천공항세관 부분을 빼 달라고 직접 부탁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백 경정이 “기자들이 마약 밀반입 과정을 물어보면, 세관 구역 통과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는 답변은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돌려보내자, 결국 이날 최형욱 경정이 직접 찾아와 “서울청 마약수사대로 사건 이첩 지시가 떨어졌다”고 통보하면서 전담팀은 해체 수순에 이르게 된다.

한편 지휘부는 상위 기관으로 사건을 넘기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면서도 언론 브리핑은 수사에서 손을 뗀 전담팀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백 경정에게 시그널을 준 것 같다. 순순히 따르면 부당한 대우는 없겠지만 저항하면 조직에서 밀어내겠다고…” C씨의 해석이다. 하지만 백 경정은 10월 10일 언론 브리핑을 강행해 인천공항세관의 연루 가능성을 밝히면서 지휘부의 분노를 산 것으로 전해진다.

항명도 외압도 모두 승진 때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으로 재직 당시 백해룡 경정이 진행한 한·중·말레이시아 마약 밀매 조직 검거 언론 브리핑. / 사진:연합뉴스
이에 지휘부는 사건을 전담팀에 돌려주는 대신 수사가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하도록 누르기(압력 행사) 시작한다. 특히 강상문 총경이 올해 2월 영등포경찰서장으로 오면서 수사 동력은 크게 떨어졌다. 지난 5월 열린 과장급 회의에선 ‘사건을 슬슬 종결하라’는 압박도 들어왔다. 윗선에서 원치 않는 수사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가 아는 상황. 인천공항세관을 정조준한 전담팀의 수사는 중단됐다.

결국 백 경정은 7월 중순, 경찰 및 관세청 고위간부 9명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고, 이는 내부에서 통제되던 수사외압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는 백 경정의 폭로를 곱게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보안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통제되는 경찰 조직의 특성상 내부고발자인 백 경정을 ‘배신자’로 보는 시선까지 있다. B씨는 “윗선에 의해 수사가 축소되고 확대되는 것은 일선 경찰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인천공항세관 수사가 백 경정 본인은 필요하다고 느꼈겠지만 윗선에선 범죄자의 진술 하나만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다”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백 경정의 폭로 의도를 의심하는 견해도 나왔다. 청문회를 통해 백 경정 자신에게 호의적인 야권 국회의원들과 인맥을 형성한 것이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총경 승진에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관측이다. 백 경정도 이러한 시선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다만 그는 주변에 “그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라며 의심을 일축했다고 한다.

한편 계급 승진의 의도를 따진다면 이 의혹에 관련된 지휘부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언론 브리핑은 막지 못했지만 사건을 누르고 있던 김찬수 총경은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했다. 한 인사는 “(김 총경이) 박근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갔을 만큼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다. 아마도 수사팀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내부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의 총괄 책임자였던 김봉식 서울경찰청 수사부장(경무관)은 서울경찰청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이뤄냈다. 1년 만에 경무관에서 치안정감으로 2계급이나 뛴 것이다. 국가수사본부 마약계장(경정)은 총경 승진 예정이다. 강상문 총경은 영등포서장으로 이동해 사건에 직접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고, 언론브리핑에 민감하게 대응한 최형욱 경정은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1대장으로 이동했다.

한편 조병노 경무관은 수원남부경찰서장으로 밀려났다. 당초 치안감으로 낙점을 받았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임성근 구명 의혹’의 핵심인 이종호 씨의 지인 최동식 경위가 수년간 조병노 경무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자신의 ‘세평’ 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관리한 배경으로 용산과의 커넥션이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수사외압 의혹에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거론되는 실책까지 범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총선 공천을 확신한 김광호 전 치안정감은 본인의 뜻과 달리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되며 자연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 지휘부가 이 사건에 왜 그토록 관심을 가졌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사건 축소를 원하는 고광효 관세청장의 부탁에 모두가 움직였을 거라는 가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천공항세관의 실태를 잘 아는 취재원은 이 정부 들어서 관세청의 입지가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관세청장 자리는 권력과 가까운 인사들이 차지한다. 그런데 고광효 관세청장 이력을 보면 대통령실의 요직을 차지한 기재부 출신이다. 김대기 초대 비서실장,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실제로 고광효 관세청장은 서울대 졸업 후 행정고시를 통해 입직한 엘리트 기재부 출신이다. 최종적으로 ‘기재부 빅3’로 꼽히는 세제실장까지 올랐다.

기재부 출신의 파워에 경찰도 고개 숙이나


▎조병노 경무관이 백해룡 경정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고광효 관세청장은 당초 언론 브리핑에서 인천공항세관 언급을 빼줄 것을 부탁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천공항세관 수사를 용산이 괘씸하게 본다는 김찬수 총경 발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면서도 기재부 출신 관료를 중용하는 추세가 이어질 만큼 그 파워가 막강하다는 것이다.

한 현직 경찰은 수사외압 의혹에 연루된 지휘부에서 고위간부(총경)들이 가장 활발히 움직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찰 최고위직(경무관 이상)으로 가는 과정은 문턱이 굉장히 높다. 그뿐인가,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다고 하지만 원론적인 얘기다. 연줄은 필수이고 고위직에서의 실력이란 정치력이다. 상부의 의중을 미리 파악하고 선 조치·후 보고를 성공적으로 해내지 않으면 승진 경쟁에서 자연히 도태된다.” 또 다른 경찰은 고광효 관세청장과의 관계 형성이 수사외압의 동기일 것으로 관측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경찰국이 행안부 소속으로 신설됐다. 승진을 심사하는 곳이 경찰국인 만큼 승진하려면 정부 고위 관계자와의 인맥은 있으면 당연히 좋고, 그게 용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10호 (2024.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