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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에서 다시 배우는 리더십(1) 

굽시니스트와 당차니스트의 극단적 떨림 

이남석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시대와 시대정신을 열 걸음 앞선 자이거나 시대를 초월한 자가 있다면 그는 영원한 연구 대상이다. 마키아벨리는 용기, 창조적 사고, 감수성의 측면에서 열 걸음 앞서간 자이다. 마키아벨리가 ‘역량 있는 리더’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담아 전하고자 썼던 『 군주론』을 이남석 박사가 ‘구조분석 독법’을 통해 재해석, 리더십을 주제로 연재한다.

▎『군주론』을 집필 중인 마키아벨리. 『군주론』에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의 창과 메디치의 현실의 칼이 맞부딪치며 불이 튕기는 떨림과 긴장이 전율의 동심원을 일으키고 있다. / 사진 : 평사리 제공
대입시험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종이 울리고, 시험지가 나눠진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은 땀으로 흥건해지고, 눈은 깜깜해진다. 극도의 긴장 상태이다.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바람과 못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활을 미는 손과 살을 당기는 손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되면 떨림이 발생한다. 전쟁을 앞둔 두 국가 간의 초긴장 상태가 발생한다. 긴장과 떨림은 대립된 두 힘이 완전히 대등할 때 나타난다. 『군주론』은 여느 책과 달리 아드레날린이 최고조로 분비되는 미묘한 떨림의 연속이다. 한 축은 헌정하는 마키아벨리이고, 다른 한 축은 헌정 받는 메디치이다. 착각하지 말자. 『군주론』은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이 아니다. 헌정 받는 단 하나의 독자인 군주, 즉 리더를 위해 쓴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정하는 자와 헌정 받는 자의 긴장의 연속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위도 낮고 비천한’ 일개 신하에 지나지 않았고 실직했다. 그는 군주의 지위에 오른 적도 없고 군주의 역할을 단 한 번도 해 본적 없다. 그런 그가 ‘군주들의 행위를 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쓴다. 타고나면서 군주의 혈통을 물려받았고, 직업이 군주인 자가 이 책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독자인 군주를 위해 쓴 책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구조분석 독법’을 통해 재해석한 『군주론-시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다』. 마키아벨리 지음, 이남석 옮김·평사리 출판.
이것만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역모 혐의를 받고 고문도 당했다. 역모자가 『군주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헌정한다면, 군주가 이 책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군주는 실눈을 뜨고 의혹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고, 저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할 만한 과잉 충성을 보여야 한다.

게다가 마키아벨리는 헌정 받는 단 한 명의 독자 메디치 군주에게 취직을 부탁해야 한다. 메디치는 글이 맘에 든다면 취직시켜 줄 수도 있지만 불쾌하거나 기분이 나쁘다면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진 자이다.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마키아벨리와 생사여탈권을 지닌 군주의 치열한 눈싸움!

마키아벨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군주에게 ‘군주란 무엇인가’, ‘군주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올바른 군주란 누구인가’를 입바른 소리를 해야 하고, 무한권력을 지닌 군주는 맘만 먹으면 그를 단칼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이론가가 ‘아는 척’ 하면, 실권자는 ‘네가 뭘 알아!’ 라며 면박을 줄 수 있다. 실권자는 ‘이론가인 네가 현실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거야’, ‘그 깊은 속사정을 알 리가 없지’라고 혀를 차면, 이론가는 ‘당면 과제에 급급하지 마라, 멀리 보고 핵심 놓치지 말라!’라고 잔소리를 할 수 있다.

책을 헌정하는 마키아벨리와 헌정 받는 단 한 명의 독자 메디치의 적막한 긴장과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고요한 전투! 『군주론』에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의 창과 메디치의 현실의 칼이 맞부딪치며 불이 튕기는 떨림과 긴장이 전율의 동심원을 일으키고 있다.

군주 메디치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과거 역모를 빌미삼아 다시 감옥에 처넣고 괴롭힐 것인가? 받아들이면 다시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빈곤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마키아벨리. 안락한 삶을 원한다면 그는 ‘굽시니스트’가 되어 낯간지러운 메디치어천가를 바쳐야 한다. 지옥과 같은 궁핍한 삶을 지속해야 한다면 그는 ‘당차니스트’가 되어 메디치가 부끄러워지도록 반메디치찬가를 써야 한다.

마키아벨리 심중의 이익과 이상의 극단적 갈등. 굽시니스트와 당차니스트의 극단적 떨림. 이익을 추구하면 이상을 잃고, 이상을 추구하면 이익을 잃는 마키아벨리.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상을 추구할 것인가? 비루하게 살더라도 취직을 구걸하며 살 것인가, 입바른 소리를 하며 군주가 가야할 정도의 길을 밝힐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양 극단을 피하고 ‘당차굽시니스트’가 되기로 맘먹는다. ‘할 말을 맘껏 다하되 에둘러 하자.’ 마키아벨리는 메디치와 그 가문에게 ‘날이 선’ 말로 『군주론』을 헌정한다. 내 책을 읽고 따르라! 그러면 성직자 사보나롤라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신민의 재산을 빼앗지 말고, 부녀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내뱉는 순간 하데스의 문턱이다. 그는 ‘입에 발린 말’을 한다. 그는 메디치 가문이 이런 우를 범해 나라를 빼앗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메디치 가문 옆의 나라 페라라 가문이 이런 짓을 하다 ‘폭망’했다고 말한다. 그는 ‘날이 선, 하지만 입에 발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양극단을 피하고 당차굽시니스트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내부의 극심한 떨림이다. 『군주론』은 이상적 군주 말하기와 취직용 에둘러 말하기의 끝없는 대립이다. 『군주론』에는 또 다른 긴장과 떨림들이 있다. 나라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둘러싼 부자, 귀족, 관료, 군인 대 무지렁이 백성과 평범한 시민의 대충돌,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뜨는 해 로마와 지는 해 카르타고의 대격돌, 유럽 패권을 둘러싼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투쟁 그리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소국가 스파르타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몸부림. 맞부딪치는 두 개, 또는 서너 개의 힘의 대립과 충돌.

시험이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나면 심장도 손도 떨리지 않고, 눈도 밝아진다. 어차피 달아날 수 없고 최선을 다해 보는 것만 남기 때문이다. 긴장의 해소는 한 쪽의 힘이 사라지면 없어진다. 살을 놓은 순간 떨림도 사라진다. 포성이 울리면 극도의 긴장이 사라지고, 이기느냐 지느냐만 남는다.

『군주론』도 긴장 해소법이 있다. 『군주론』은 헌정 받는 단 일인을 위해 집필된 책이다. 착각이다. 『군주론』은 대중을 위한 책이다. 『군주론』은 출판되었으므로,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군주론』을 읽는 모든 자는 군주이다. 책을 읽는 모든 군주는 『군주론』에 나타난 여러 긴장을 파악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면 극한의 미묘한 떨림은 사라지고, 『군주론』은 살아 숨 쉬는 인간학 교과서, 경영학 교과서로 등장한다.

이남석 -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사상사와 문화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다. 10여 년 넘게 매주 토요일 플라톤, 니체, 프로이트 등의 주요 저작을 읽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중이다. 최근 『군주론』을 번역·주해한 『군주론-시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다』를 집필했다.

201707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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