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그룹형지 본사가 역삼동에 있던 시절이다. 밀려드는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던 나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잠실구장으로 달려가 야구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퇴근 이후라 경기는 늘 막바지였지만 술도 못하고 노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던 워커홀릭에게 야구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워낙 열성팬이다 보니 단지 경기 관람에만 그치지 않았다. 시즌마다 디자인을 바꿔 출시하는 굿즈도 열심히 모았다. 그런데 굿즈 판매 현장에 길게 늘어선 줄과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여는 팬들의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스포츠 굿즈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불과 몇 년 만에 어엿한 주력 사업으로 성장하며, 그룹 전체에도 활기를 주고 있는 형지엘리트의 스포츠 상품화 사업은 그렇게 ‘팬심’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둔 ‘한 수’에서 비롯되었다.스포츠 상품화 사업은 개인적인 관심도 컸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사회 흐름상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라고 확신했다. 저출산에 고령화사회로 들어서고 노동 시간도 줄면서 스스로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 판단했다.이처럼 성장성이 높은 분야지만 진입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진짜 팬들을 상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잘 알고 진정으로 즐기지 않는다면 팬심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여기에서 이 분야를 정말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진가가 나타난다.나 역시 스포츠 광팬이지만 사업부 팀원들도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팬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마음이 움직일 만한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그들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야구팬, 축구팬들로서 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점은 협업하는 구단들도 바로 알아본다. 실제 우리 상품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잘 알려진 공자의 <논어> 문구 중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락지자(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者 不如 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해석하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잘 알고 좋아하는 데다, 즐기기까지 한다면,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한다면 그 시너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