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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산성기행 >> 금정산성 

‘왜적 방어’ 축성했다고 일제강점기엔 큰 수난 

성곽 길이만 40리, 내부 250만 평으로 국내 최대 금정산성은 임란 이후 왜적을 방어하려고 지었다. 덕분에 일제강점기에 시가지계획이라는 미명 아래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성곽을 모두 철거당했다.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수난만 당한 셈이다. 산성막걸리로 유명한 금정산성에 올랐다.
금정산성이 있는 부산은 한반도 동남쪽 끝이다.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대의 국제항구도시다. 개항한 지 130년이 조금 넘는다. 개항 당시 부산 전체 인구가 3300명 남짓했다니 그저 한가로운 갯마을이었다. 지금의 부산진 주변에 어부와 천민이 주로 살았고, 북쪽 동래지역에는 양반이 모여 살았다. 동래가 이 지역 중심지였다는 얘기다.



지금의 도시 중심지인 남포동·광복동·중앙동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대규모 매립공사를 하기 전까지 파도가 넘실거리던 바다였다. 일본인 덕분에 자그마한 어촌이 세계적 항만도시로 발달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식민정책의 연장선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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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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