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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에게 야당의 길을 묻다 - “ 새정연이 사는 길? 실사구시로 민생 끌어안아야” 

■ “원내 130석이면 야당도 나라 운영에 절반의 책임이 있는 것” ■ 민생이 파탄지경인데 국민의 마음 못 얻으면 당권도 소용없다 ■ 여의도 떠나 시장통에서 국민과 뒹굴다 보니 정치가 달리 보이더라 ■ 말로만 환골탈태 안 돼! 정치하는 태도·자세·언어 다 바꿔야 ■ 진정성과 팀플레이로 차곡차곡 국민의 마음 얻는 것이 야당의 정도 ■ “대구에서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그래도 삼세판은 도전해야지!” 

나권일 포브스 편집장 사진 지미연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중진들이 치열한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존재감 없는 제1야당의 전당대회는 ‘그들만의 리그’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당 체질을 바꿀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김부겸(56)전 의원이 링에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작심하고 당과 동료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성찰을 촉구하는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을미년 새해, 그의 애정 어린 고언을 들어보자.

▎야당 의원들의 환골탈태를 주문한 김부겸 전 의원. 그는 정치하는 태도와 자세, 언어까지 다 바꿀 것을 요구했다
탁자에 올려놓은 그의 휴대폰이 5분이 멀다 하고 부르르 떨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향배를 결정할 전당대회 룰 세팅이 예정돼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2월 15일이었다. 그는 비노(非盧) 진영이 기대를 걸고 있는 전당대회의 유력한 흥행카드였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걸려온 전화들을 받지 않았다. 이미 불출마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1시간을 예정하고 시작한 대화가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늦은 점심을 들기 위해 칼국수집으로 들어간 그는 그릇을 다 비운 후 주인에게 “장사는 좀 되느냐?”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의 관심사는 당권이 아니라 ‘민생’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제1야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한다는데 국민들이 통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당이 진짜 국민들 눈 밖에 났어요. 큰일입니다. 제가 일본 총선(12월 14일) 한 달 전쯤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한일의원 연맹 쪽 일본 사람들을 만났더니 일본 민주당의 중진 의원들이 그러더라고요. ‘민주당 스스로가 국민들한테 불신을 받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제가 ‘가장 큰 원인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민주당이 집권해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을 제대로 수습하고 정직하게 국민한테 알리고, 누군가 책임지고 결정을 내리고 그랬어야 하는데 우왕좌왕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집권하기가 어렵다’ 그러더라고요. 누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일본 민주당 스스로 그렇게 진단을 내리고 있었어요.

원전 사고는 집단의 어마어마한 위기잖아요. 정권의 존재이유는 공동체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국민을 어떻게든 보호하고 살길을 찾아내는 것인데 일본 민주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겁니다. 그게 리더십이에요. 일본 민주당의 그 고백이 남의 말로 안 들리더라고요. 지금 저보고 자꾸 전당대회 나와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당권이 중요한 게 아니죠. 민생이 파탄지경인데.”(실제 인터뷰 이틀 뒤인 12월 17일 그는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에 있다가 밖에 나가서 보면 더 잘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대구에서 여의도 정치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우리 당이 자기 지지층의 절박함을 잊어버렸어요. 현재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서 지지한다기보다는 ‘정말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하는 절박함 속에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지지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민생 현장에 있지 않으니 그분들의 그 절박한 마음을 몰라요.

제가 대구 내려가서 느낀 게 그겁니다. 지역감정 어쩌고가 아니라 우리 당이 진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구나 하고요. 정치가 뭡니까? 대의제잖아요.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죠. 제가 여의도정치를 떠나 시장통에서 주민들과 소주 마시면서 뒹굴어봐서 아는데요, 지금 밑바닥에서 나오는 말은 더 험합니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요, 투표 마지막날에 차마 야당을 못 찍어요. 왜냐? 지금보다 더 (경제) 상황이 나빠질까 봐서요. 정말 야당을 아끼는 사람들은 나라경제가, 자기 삶이 더 악화될까 봐 할 수 없이 힘 센 사람들한테 표를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 누구도 아닌 야당이 만든 겁니다.

이데올로기가 투표를 좌우하는 게 아니에요. 삶의 절박성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그동안은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아꼈거든요. 특히 우리 당에 대한 혹독한 비판 같은 것은 많이 인내했는데 그냥 두고만 봤더니 제가 요즘 너무 마음이 답답한 거예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답답하던가요?

“제일 큰 것은 진정성의 문제죠. 야당 의원은 원래 진정성으로 승부하니까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보면 야당 의원이 무슨 발언을 하거나 정책을 내거나 정부 비판을 할 때 ‘이건 확실한 근거가 있고, 끝까지 간다’고 하는 믿음을 국민에게 못 주고 있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벌써 그 속을 알아보고 ‘저러다 말지~’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요즘 들어 김대중 총재 때의 얘기를 많이 하는데, 예전에 야당할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김 전 의원은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 출신으로 1991년 당시 DJ가 평민당 간판을 내리고 재야출신들과 ‘꼬마 민주당’ 과 통합을 거쳐 민주당을 출범시킬 때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래서 그런지 김대중 총재라는 말이 입에 배어 있다)

김대중 총재 이분은 양쪽을 다 배타적인 개념으로 안 보는 거예요. 필요할 땐 인원 동원이라도 해서 장외투쟁하며 싸웁니다. 그러나 회군할 때는 명분에 얽매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짓은 안 해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딱 정리해서 얻을 것은 얻고 포기할 것은 포기한 뒤에 국회에 다시 등원한다고요. 투쟁할 때와 대화할 때를 알아요. 그러면 국민들도 자연히 야당에 믿음이 가는 거죠.

목숨 걸고 정치하라


▎김부겸 전 의원은 ‘야당은 진정성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우리 국민들이 여당에 분노가 치밀 때는 야당이 계속 싸워주길 원하잖아요. 그런데 치열하게 여당과 싸우면서도 한쪽에서는 관련된 정책이나 법안을 준비해서 상대방이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들이대서 여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면 국민들이 또 얼마나 좋아합니까? 야당 지지하는 국민들은 야당에 그런 정치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축구 경기를 응원할때도 왜 그렇잖아요. 상대팀한테 약팀이지만 어떤 때는 역전승도 하는 것이고, 중간에 공을 가로채서 집어넣기도 하고, 그 맛에 보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야당이 그런 진정성이 부족해요. 정치! 그거 목숨 걸고 하는 거예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중요합니다. 특히 야당은 진정성으로 무장하고 한 번 결정한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렇게 모든 것을 걸고 해야 합니다. 요즘 야당 의원들이 ‘조금 가볍다, 싸가지없다’ 국민들이 이렇게 보잖아요. 한번 국민의 눈 밖에 나면 무섭습니다. 그게 정치예요.”

또 하나 답답했던 것은요?

“우리 사회가 너무 강자 중심으로 쏠려가는 것 같아서 많이 답답합니다. 솔직히 예전과 달리 각 분야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당에 점점 눈길을 안 주잖아요. 경제계, 산업계, 학계, 법조계 등등 비중 있는 인사들이 야당에 발을 담가줘야 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몇 번의 선거를 치르다 보면 여당과 야당 간에 인적 파워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게 될 것 같아요. 지금 보면 정부의 경제 수장이 헛발질을 해도 촌철살인의 멘트 하나 제대로 날릴 사람이 야당에 없습니다. 국민들은 벌써 다 알거든요. 정부가 경기부양이니 어쩌고 하면서 은행에서 주택융자를 풀어도 자칫 하다간 빚더미에 앉고 직격탄 맞는다는 걸 다 아는데,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전문가가 없어요.

‘대한항공 사건’에 왜 국민들이 분노하겠어요?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직원을 자기 하인 부리듯 한다는 거잖아요. 드라마 <미생>이 왜 인기가 있어요? 비정규직 가차 없이 밟아버리고 하는 이런 상처들이 공감대를 일으키는 거잖아요. 우리 야당이 그런 상처를 위로해서 국민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의 친구고 이웃이다’라는 믿음을 왜 못 주느냐 이겁니다. 그나마 그런 가능성이라도 하나 보인 게 갑(甲)보다 을(乙)을 위해 일하겠다고 만든 ‘을지로위원회’였지만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세상이 자꾸 경쟁이 격화돼서 효율성 위주로 변해가니까 시대의 흐름상 야당이 여당에 뒤처질 수는 있죠. 그러면 야당이 집단의 지성, 집단의 행동을 통해서라도 적절하게 시대변화에 대응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당은 팀플레이를 하기보다는 마냥 계파에 휘둘려요. 그나마 정파(政派)라면 정치적 노선이라도 있어서 괜찮은데 계파(係派) 이것은 한마디로 패거리거든요. 그런 것이 국민들 눈에는 다 보이니 이게 얼마나 우스워요. 무슨 동네에서 골목다툼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 박영선 비대위원장 사퇴 파동 때도 제가 우리 당의 잘못된 풍토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만 그건 아니죠! 지도부가 좀 부족한 게 있더라도 같이 힘을 모아가면서 극복해야 하는데, 자신들 생각과 다르다 싶으면 마구 흔들어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 어떻게 됐어요.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10년동안 당 대표가 28번이나 바뀌었잖아요. 임기 5개월, 6개월 하는 지도부로 당을 어떻게 바꾸고 정치의 내용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지금 당권 주자들끼리 싸우고 있는 전당대회 룰 같은 것도 좀 창피스럽지 않습니까? 경기 때마다 룰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되는 얘긴지…. 떠나 있어보면 압니다. 아, 이래서 야당이 안 되는구나 하고. 우리 당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합니다.”

선명성보다 실질을 봐야


▎당권 주자로 나선 박지원·문재인·정세균 의원(왼쪽부터 차례로). 김부겸 전 의원은 이들에게 한 달에 한두 번은 현장에 나가서 자기 지역에서 제일 어려운 현장을 찾아서 하루를 같이 보낼 것을 권유했다
기자가 김부겸 전 의원과 만나던 그 시각,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 회의가 열리고 있던 여의도 국회의 당 대표 회의실에는 당원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오후에 있을 전당대회 룰 확정을 앞두고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규칙을 바꾸라며 고성을 질러댔다고 한다. 현행 규칙대로 대의원과 권리당원 위주로 투표권이 주어지면 친노(親盧)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같은 친노-비노계 간 신경전으로 결국 이날 오후에 결정하기로 했던 전당대회 룰 확정은 며칠 뒤로 미뤄졌다. 전당대회 트로이카로 꼽히는 문재인·박지원·정세균 진영은 하루 종일 ‘당권’의 유불리를 따지는 셈을 하느라 분주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의 말처럼 계파정치에 매몰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민낯이다.

그래도 소장파 의원들은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며 선명성을 주장하잖아요?

“자꾸 야당의 선명성 어쩌고 하는데 지금 실질을 봐야죠. 민생을 살릴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여야가 산업정책이나 노사 문제라든가 합의 못한 문제들이 있는데 성장이냐 분배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싸울 때가 아닙니다. 성장도 필요하고, 분배도 필요해요. 말로만 기업을 비판하지 말고 성장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실질적으로 이러저러한 내용이 되도록 하면 안 되겠느냐?’ 하고 설득도 하고, 기업들이 신규 투자처를 못 찾아서 투자 못한다고 버티면 ‘그중 일부분 이라도 내수(內需)가 살아갈 수 있도록 투자할 수 없겠느냐?’ 이렇게 설득을 해야죠.

우리 의원들이 입으로는 IT를 살리자, 벤처를 지원하자며 실컷 이야기해놓고 정작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금융 시스템, 생태계 문제를 알아봐준다든지 정부지원이 효율적으로 되고 있는지 도울 방법을 찾고 토론해야 실천 가능한 ‘실질’이 되는 거예요. 실제로 성과를 내면 되는 것이지 이름을 창조경제로 부르든 미래경제로 부르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런 부분에서 야당의원들의 생각이 바뀌고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저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너무 비아냥거릴 것만은 아니라고 봐요. 김대중 정부 때 벤처산업 육성했는데, 거품 논란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IT 강국도 되고 많은 일자리가 나왔잖아요.”

혹시 그런 실용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등소평(덩샤오핑)에 대한 책을 조금 읽었어요. 모택동(마오쩌둥) 시절에 엄청난 희생자가 있었잖아요? 그 문제 하나 만으로도 중국 자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었는데 그때 등소평이 이렇게 정리하죠. ‘공(功)이 일곱이고 과(過)는 셋이다’. 그렇게 역사를 정리해버리니까 과거 청산 국면에서 개혁·개방이라는 가치로 국민들을 돌려세웠잖아요. 그렇지 않고 모택동이 좋은 놈이다, 나쁜 놈이다 이렇게 날을 새워가며 싸우기만했다면 지금의 중국이 되지 못했겠죠.”

투쟁과 정책대안 투트랙으로


▎지난 2년 동안 지역구도와 싸운 김부겸 전 의원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는 그 힘으로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런 실사구시가 우리 정치에도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새정치민주연합 의석이 130석이면 진짜 많은 거예요. 그에 걸맞게 야당도 책임정치 해야죠. 정부가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 자세히 들어보고 나서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합니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다면 그분이 최종 결정권자잖아요. 대통령과 대화하고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게 야당으로서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도대체 모든 싸움에서 다 이기는 야당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야당이 제대로 일하려면 야당 내에 두 개의 축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단호하게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투쟁을 끌고 갈 팀, 그리고 끊임없이 현장을 찾고 전문가를 찾아서 정책적 대안을 내는 팀 이렇게 꾸려져야죠. 최근에 우리 당 홍종학 의원이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를 공짜로 준다는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그 정책의 핵심은 신혼부부한테 최소한 10년간은 싼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좋은 취지거든요. 저는 그 문제도 국가가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주제라고 봐요. 너무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지만 말고 신혼부부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아이도 낳고 저축도 하고 내수도 진작되고 그럴 거 아니에요? 집장만 하는 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고, 1년 2년 지나면 전셋값 올려줘야 하는데 쓸 돈이 어디 있겠어요?

이번에 3~5세 보육비 문제로 갈등이 있었는데, 이게 지방 교부금으로 지급한다고 되어 있거든요. 지방자치단체가 돈 없다고 아우성치면 국가가 교부금을 더 올려주면 되잖아요. 왜냐? 박 대통령의 공약이니까요. 국가재정 문제도 한번 봅시다.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더 낼 여력은 부자들 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자만 세금을 내라고 할 게 아니에요. 어려운 사람도 적게라도 내야 합니다.”

그게 국민개세주의(國民個稅主義)죠. 그런데 야당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안 나와요

“그러니 국민들이 야당을 안 믿는 거죠. 대한민국이 활기차게 움직이려면 정치·경제·사회·교육·복지 등 모든 분야가 퍼즐 맞추듯 다 짜임새 있게 돌아가야 하잖아요. 모든 부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니까요. 그런 문제를 논의할 책임을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라는 정치권에 준 거 아닙니까. 그러니 단순히 관료들한테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노동문제도 그렇습니다. 야당이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정규직의 반발을 막을 대책도 고민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경우 기업들에는 또 어떤 카드를 줘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해야죠. 다른 선진국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이번에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합의문을 만들고 공무원들 윽박지르지 않고 논의의 장을 만든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생을 파탄시킨 정부를 비판만 할 것이냐 아니면 민생 파탄을 막기 위해 같이 힘을 모을 것이냐 그 선택이겠군요?

“여당 의원에게 같이 힘을 모으자고 얘기하는 것을 우리 당 의원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다음 선거에서 안 떨어져요.(웃음) 그리고 정부도 실용적으로 가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박 대통령이 풀어줘야죠. 우리 국민들 정서에서는 진보정권이 6·25전쟁 경험한 국민들에게 ‘북한 정권을 용서해라’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보수정권이 해줘야 해요. 예를 들면 대북 풍선 띄우기 이런 것들은 남북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정부가 해결해줘야죠.”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실사구시 하는 야당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제가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참 감명 깊게 읽었어요. 정치지도자들의 세계관이 좁을 때 엄청난 피와 눈물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임진왜란 때는 의병이 많아서 이겼는데, 병자호란 때는 왜 의병이 없었을까요? 임진왜란 때는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이 의병에게 면천법을 시행토록 했어요. 의병에 참여하면 천민의 신분을 해방시켜줬거든요. 그러니까 천민들이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합니다. 당연히 이기는 경우가 많겠죠. 그런데 임진왜란 끝나고 나라가 조금 안정이 되니까 양반 지배층들이 본전 생각이 나잖아요. 그래서 그 면천법을 없애버렸어요. 그러니 겨우 청나라 기병 200명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그 굴욕을 당한 겁니다. 저는 지금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계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진정성과 팀워크로 위기 돌파해야


▎영호남 지역구도에 도전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김부겸 전 의원과 이정현 의원.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제가 20년 넘게 정치를 했는데, 정치란 공공의 영역에 대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고 토론해보고 실천해보고 또 반성하고 그겁니다. 지금 우리가 노사 문제, 지속 가능한 복지 문제 등 주제별로 토론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당내 각 계파도 이런 것을 주제로 해서 토론을 하면 국민들이 야당에 지금처럼 무관심하지는 않겠죠. 그런 내용으로 계속하다 보면 신문 4개 면 중에 3개 면은 청와대 파동이 어쩌니 그런 기사를 쓰겠지만 1개 면은 야당이 현장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더라 이렇게 쓰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겁니다. 그게 야당의 정도예요. 그것을 위해 팀워크가 필요하다는 거죠. 야당이 강해지려면 진정성을 회복하고 팀워크를 통해서 돌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정부에 비판할 것은 하더라도 협조할 것은 하자 이 말씀이군요?

“그렇죠. 우리가 그동안 실수한 것이 있으면 반성하고, 우리가 부족한 것은 정부 여당한테서 협조를 받겠다고 하면 됩니다. ‘정부여당은 힘센 사람 편이다.’ 그런 말은 국민들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 야당의원 입에서 ‘저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센 놈들 편입니다’라고 떠들어봐야 소용 없다는 겁니다. 우리 당이 의석 130석의 정치력에 걸맞은 정책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면 왜 좋은 인재들이 충원이 안 되겠어요? 우리가 계보 정치에서 벗어나면 왜 좋은 정치인을 발굴할 기회가 없겠어요? ‘우선 다른 사람이 실력 있는 것보다는 내 식구 먼저 챙기겠다’ 이런 식이라면 지금 야당이 비판하는 박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이랑 뭐가 달라요. 그 3인방만 나쁘고 내 패거리는 괜찮은 거예요? 국민들이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가 당대표가 되건 자기 식구 몇 명 더 국회의원 만들려고 하는 그런 수준이라면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되든 새 지도부가 한 달에 한두 번은 자기 지역에서 제일 어려운 현장을 찾아가서 거기서 그분들과 하루를 같이 보냈으면 해요. 제발 어설프게 봉사하는 폼 잡지 말고요. 야당이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정치하는 태도와 자세, 언어가 다 바뀌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어려워요.”

정치인 김부겸은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실천가다. 야당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군포에서 3선 중진의 기득권을 던지고 자신의 출신지인 TK의 본산 대구로 하방(下方)한 그는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해 40.3%를 득표하고도 낙선했다. 2010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후보 때도 그는 야당의 불모지에서 40.42%를 득표했다. 그는 낙선했지만 여야를 떠나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정치인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그의 큰 자산이 됐다.

하로동선 정신 회복하겠다

호남에 이정현이 있다면, 영남에는 김부겸이 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얻은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갔더니 대구 분들이 야당이란 존재를 낯설어 해요. 두 번 도전했더니 그게 조금 없어졌어요. 이질적인 대상으로 보다가 이제는 선택의 대상으로는 보더라고요. 제 경험에서 보자면 지역주의가 가져온 근본적인 폐해는 경쟁이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러면 유권자인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공급자인 정당이 주인이 돼버려요. 구조가 이러니 의원들이 정치를 통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해법을 내놓을 이유가 없죠. 공급자 시장에서 탈락만 안 하면 되니까요. 지역주의가 경쟁 없는 정치를 만들고 그래서 정치가 국민과 관계없는 정치놀음이 돼버려요. 광주와 대구가 투표율이 낮은 게 그 때문입니다. 악순환이죠. 국민들이 절망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 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다’ 이것 아닙니까?! 지역주의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구시민들한테 호소했어요. ‘바로 당신들 손으로 이 엉터리 같은 정치구조를 깰 수 있다’고요. 호남분들은 이정현 의원 당선을 통해 그런 면을 보여주셨잖아요. 이제는 한번 제 물음에 대구가 답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거대 정당 체제,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기득권 정당 체제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야 그 두터운 벽이 깨지기 시작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라도 이렇게 몸부림을 쳐보는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3선 의원의 자리를 던지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20년 전인 1995년에 김대중 총재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민주당을 나갔을 때 안 따라갔던 사람들이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만들었잖아요. 김원기·노무현·제정구·유인태·원혜영·김정길 의원 등등 다 쟁쟁하고 고집이 있었지요. 그때 우리가 버텨보겠다고 음식점을 개업했는데 그 음식점 이름이 하로동선(夏爐冬扇)입니다. 여름 난로와 겨울 부채. 잘 보관하면 다 쓸모가 있듯이 서로를 배척하지 말고 화합하자는 거죠. ‘남진, 나훈아를 국민들이 전라도, 경상도 출신이라고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정치는 지역으로 갈라서느냐?’ 우리가 그걸 주장했어요. 그때 막내였던 제가 이제 그때 못한 숙제를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아요. 지난 2년 동안 지역구도와 싸우면서 많은 분이 격려해주시더라고요. ‘돌멩이는 던졌고 파문이 일고 있다’고.”

2년 뒤에 대구에서 뭔가 큰 일이 일어날 듯 합니다.(웃음)

“제가 정치를 20년 넘게 했는데 앞으로는 조금 유(柔)하면서도 독심(毒心)을 내세워야 할 때는 강하게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왕에 대구에 터를 잡았으니 대구에서 성과를 내야죠. 제가 요즘 주민들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말해요. ‘안 도망갑니다. 도망가기에는 표를 너무 많이 주셨어요.’(웃음) 다음 총선 때 도전하면 제가 삼세판이 되는 거죠. 그것이 제 정치인생 20년의 중간 결과물이자 제 나름대로는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될 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2016년의 결과로 2017년에 도전하겠다는 뉘앙스로 들린 것은 기자의 착각이었을까.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정치에 도전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그는 한국 정치의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단기필마의 무림고수로 중원을 평정하는 대신 야인으로 돌아간 그의 진정 어린 고언을 귀담아듣고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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