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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원개발의 주역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 “감사원의 무심한 대처로 10억 달러 날렸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지미연 기자
2012년 공사 소유 캐나다 정유기업 매각 협상,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후 결렬… 유가가 바닥을 기는 요즘일수록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에 더 열심히 나서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새해 들어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해외 자원개발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겠다는 입장이다.



12월 10일 정치권은 해외 자원개발 비리 의혹에 대한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이 소식을 접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얼굴은 일순간 굳어지는 듯 했으나 금세 풀렸다. 나아가 “이 참에 진실도 밝힐 수 있어 차라리 잘됐다”고 홀가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 해외 자원개발의 한 주역이다. 2008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한국석유공사(KNOC) 사장을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2008년 2월~2013년 2월) 대부분을 석유공사를 이끈 장본인이다. 그래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강 전 사장은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리면 해외 자원개발의 특성을 설명하고, 우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석유공사 사장으로서 그는 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여러 건 성사시켰다.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2009년 10월)를 시작으로 카자흐스탄 숨베(2009년 12월), 영국 다나(2010년 10월)를 인수하는가 하면, 미국 이글 포드 셰일가스 사업(2011년)과 중동 아부다비 대형 유전 사업(2012년)에도 지분 참여하는 등 전방위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이 기간 동안 정부 출자금 4조원을 포함해 15조원이 넘는 돈이 석유공사의 해외 자원개발로 흘러 들어갔다.

이중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석유공사는 당시 하베스트와 석유정제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을 한데 묶어 40억7000만 캐나다 달러에 사들였다. NARL의 가격만 9억3천만 캐나다 달러. 하지만 최근 석유공사는 자회사 NARL을 8600만 캐나다 달러에 팔았다. 가액으로 따지면 8억4천만 캐나다 달러가 넘는 손해를 본 셈이다. 또 NARL은 석유공사에 인수된 후 5년간 당기순손실만 1조4천억원을 웃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1월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를 대표적인 부실투자로 지목했다. 나아가 하베스트사를 인수하는 데 조언을 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이른바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자문사 선정 과정이 의혹투성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공기업 사장이라는 사람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정권 실세들이 물고 온 정보에 의존해 국민세금을 마구잡이로 집행하는 등 무능한 데다 충성스럽기까지 했다”며 야유를 퍼부었다.

“해외 자원개발 의혹 해소하겠다”


▎캐나다 정유기업(NARL)의 부실은 예기치 않은 국제 원유가격 급변에 따른 채산성 악화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하는 강영원 전 사장.
강 전 사장은 예기치 않게 업무상 배임 혐의, 형법상 직무유기죄로 고발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정의당은 지난 11월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물자원공사와 가스공사, 석유공사 전·현직 사장을 앞서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강 전 사장도 당연히 포함됐다. 고발인들은 “이들이 예상되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유지할 목적으로 손실에 대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인지하고도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면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사유를 밝혔다.

강 전사장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보인다. 검찰 고발에다 정치권 국정조사까지 그를 옥죈다. 2012년 석유공사 사장 퇴임 후 언론 노출을 극력 꺼렸던 그가 <월간중앙>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런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로 풀이된다. 그는 하베스트와 NARL 인수가 적정한 절차에 따라 추진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부적절한 거래나 의혹을 살 행위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2012년 감사에 나섰던 감사원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10억 달러에 달하는 국부 유출을 막을 수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인터뷰는 12월 5일, 12일 2회에 걸쳐 서울 중구 퇴계로 대우재단빌딩 8층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결국 2015년에 국정조사가 실시된다.

“지금까지 진행돼온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마치 국민의 동의 없이 임의로 추진된 것인 양 오해를 사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도 그런 기조에 입각해 진행돼왔다. 차제에 열심히 대응해 해외 자원개발이 얼마나 중요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알리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겠다.”

하베스트 인수 건이 쟁점으로 다뤄질 것 같은데.

“하베스트는 감사원이 주장하듯이 구매해서는 안 되는 부실한 회사가 결코 아니다. 당시 석유공사 입장에서는 우량기업을 낮은 가격에 인수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얻어내겠다.”

사장 재임기간 동안 유독 인수·합병이 많았지 않았는가?

“당시 석유공사는 ‘GREAT KNOC 3020’이라고 해서 국제적 수준의 대형화를 추구했다. 일일 원유 생산량 30만 배럴, 매장량 20억 배럴을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사장에 취임하고서 외부에 용역을 줬는데 M&A를 통한 대형화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몸집을 키우는 방식은?

“기업의 성장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차곡차곡 내부의 개발 역량을 키워나가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 있고,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을 통한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이 있다. 기존 업체들을 추월하자면 비유기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논란을 빚는 정유회사 NARL은 왜 인수했나?

“하베스트가 시장에 매물로 나온 시점은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 7월경이다. 양질의 기업을 염가에 매입하는 최적의 기회였다. 90여 일의 검토 끝에 2009년 10월 14일 공사 이사회가 하베스트 상류(upstreem·원유 탐사와 생산) 부문 자산 매입안을 가결하는 등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상류 부문만 사겠다, 하류(downstream·정유) 부문은 안 사겠다’고 잘라 말하니까 저쪽에서 그렇게 하자고 나왔다. 하지만 같은 날 캐나다 하베스트 이사회가 자산 매각안을 부결하면서 계약이 깨지고 말았다. 당시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캐나다 자금 시장이 호전되는 통에 하베스트 내부에서 매각 자체를 보류하는 기류가 확산된 탓이다.”

“억지스럽지만 필요한 협상이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나도 하베스트 파트너에게 길길이 화를 내고 불만을 표했다. 심지어 ‘당신네 얼굴에 먹칠하도록 업계에 소문을 내겠다’고도 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하베스트 하류(downstream·정유) 부문인 NARL도 함께 사주면 협상에 적극 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1주일 안에 협상을 타결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우리는 하류부분 동시 인수를 서둘러 추진했다.”

황당하고 이상한 협상에 응했다는 말인데.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상·하류 동시 인수는 당시로서는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다. 하베스트 인수로 대한민국의 자주개발률이 높아질 것이 명백히 예견됐다. 대규모의 매장량과 성장잠재력을 가진 하베스트가 석유공사의 대형화를 실현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하류 부문의 정제시설을 확보해 그간 단절되었던 개발 부문과 비축 부문을 연결하고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원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진행과정을 들여다보면 다소 억지스런 협상 제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하베스트의 경제성 평가를 주관한 메릴린치는 하베스트 상류 부문에 대해 현장실사와 자료조사를 통해 완벽한 평가를 마친 상태였다. 기업 전반에 대한 숙지가 됐다는 말이다. 비록 주어진 시간이 짧았지만 절차는 모두 지켰다. 엔론회계부정 이후 상장사가 공시하는 재무제표나 자료는 신뢰가 담보됐다. 기업 전체에 대한 기초조사가 완료된 이상, 하류 부문의 경제성 평가에 주어진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기업인수를 고려해서는 안 될 정도로’ 결코 불가능한 기간이 아니었다.”

앞서 ‘처음부터 하류 부문은 안 사겠다고 잘라 말했다’고 하지 않았나? 수익성이 있는 상류 부문 인사가 깨졌으면 공사는 후속 제안을 거부하고 ‘딴 데를 알아보겠다’고 하는 게 순리였던 것 같다.

“우리가 M&A하는 과정이 쉬운 게 아니다. 하베스트가 우리와 협상할 때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하베스트는 2010년 4월이 22억 달러 대출금 상환일이었다. 우리와 딜(deal)이 안 되면 빨리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런 조건을 내건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그들의 사정이고, 우리는 상류만 받아들이는 입장 아니었나? 공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상황으로 보인다.

“나는 석유공사를 이끌면서 항상 배수의 진을 생각했다. 그래서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여쭤봤던 것이다. 사실 하류 부문 매입은 내게 부담이었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직원들도 석유공사 발전에 하베스트가 꼭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냥 접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협상을 빨리 타결 짓고 다른 (M&A)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GREAT KNOC 3020’ 목표 달성 시점이 2012년이었다. 우리도 갈 길이 바빴다. 물론 하베스트 상류 부분은 공사에 꼭 필요했다. 공사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캐나다 캘거리(하베스트 본사 소재지)와 같은 국제 석유시장에 참여하는 통로로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자산이었다.”

그때 지식경제부의 반응은?

“지경부 의견은 ‘NARL을 포함해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분위기였다.”

지경부 실무자의 분위기였나? 아니면 누구를 이야기하는 건가?

“지경부 전체의 의견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가급적 석유공사가 소화할 수 있다면 해봐라’ 이런 뉘앙스였다. 경제성만 나온다면 너네(석유공사)가 하류 부문을 안 해봤지만 좀 해라는 식의…. 당시에 분석할 때는 경제성도 나왔고 해서 우리가 안 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석유공사 사장으로서 해외 자원개발, 자원외교라는 국가시책이랄까 국가적 흐름에 역류하기 어려워 응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는 민간회사(대우인터내셔널)에 오래 있었다. 최고경영자의 정책목표가 나오면 거기에 따라서 경영전략을 세우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에 석유공사의 대형화가 들어 있었고, 그게 ‘GREAT KNOC 3020’으로 발전했다. 2012년 목표 달성을 감안하면 바쁜 건 사실이었다. 이걸 못하게 되면 과제를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그만 둔다는 자세로 임했다. 그 당시 평가에서 합리적인데 포기하는 건 내 자신에게도 논리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감사원 “석유공사가 비효율 투자 유발”

‘언제든지 물러설 수 있다’는 자세로 임했다면, 최경환 장관을 만났을 때 ‘이쯤에서 접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

“물론 우리가 2~3개월 연구도 하고, 많은 인력도 투입했으니까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딜을 그만두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석유공사 범위를 벗어나는 거니까 하지마’라고 말했다면 나도 그만두었을 것이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가 여론의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는 때는 2012년 4월 감사원의 석유공사 감사결과가 발표 되면서부터다. 감사원은 ‘해외 자원개발 및 도입 실태’ 감사결과보고서에서 “수익성보다 공기업 대형화를 위주로 하베스트 인수 등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을 최소한의 검토도 없이 졸속으로 경제성을 평가했다”며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하류 부문 자산가치를 부실하게 과다 평가하고 ▷자산가치 평가액보다 높게 인수 금액을 결정했으며 ▷이사회 승인에 필요한 사항을 부실하게 보고했다고 적시했다.

이듬해인 2013년 5월에도 감사원은 ‘공기업 재무 및 사업 구조 관리 실태’ 감사결과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를 짚었다.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물량 확대 위주의 목표를 설정해 비효율적인 투자를 유발했다”고 질타했다. 특히 감사원은 “자주개발률을 높이기 위해 경제적 타당성이 없어도 생산광구를 매입하는 비효율적인 투자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 예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 9%이던 원유-가스 자주개발률 목표를 2012년 18%, 2016년 28%, 2019년 30%까지 달성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탐사와 개발에 성공해 생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된다. 자주개발률을 설정하는 순간 이를 높이기 위해 당장 생산이 가능한 투자에 집중하게 되므로 장기적 관점에서의 탐사·개발사업 투자는 등한시하게 된다고 감사원은 진단했다. 감사원은 또 “자주개발률 목표 달성에 맞춰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서“그 결과 석유공사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익성 없는 해외 자원개발 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하거나 생산량 확보에만 치중했다”고 분석했다.

그 예가 NARL 인수다. 당초 탐사·개발·생산 부문만 인수하는 쪽으로 하베스트 에너지 측과 합의했으나 경영난을 겪던 하류(정유) 부문까지 일괄 인수하는 한편, 매매 가액도 3조1500억원에서 4조4900억원으로 높여달라는 무리한 요구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NARL 공장에 대한 실사가 4일이란 짧은 기간에 이뤄진 게 문제 아니었나?

“당시 하베스트측이 유가 상승에 편승해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1주일 이내에 NARL 인수 여부를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석유공사는 인수를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실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인수계약 체결 후에는 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8명의 전문인력을 투입해 확인실사를 별도로 벌였다. 심각한 문제가 발견될 경우 계약을 취소하는 옵션이 석유공사에 주어졌다. 확인실사 결과 NARL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대금을 지불하고 공장을 인수했다.”

영업실적을 놓고서도 견해가 엇갈렸다.

“NARL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영업실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객관적 지표가 바로 영업활동 현금흐름(EBITDA)이다. EBITDA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등을 제하기 전의 이익을 말한다. 당장 현금 지출이 없는 비용인 감가상각비를 비용에서 제외함으로써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능력을 보여준다. 기업의 객관적 가치를 추단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 중 하나다. NARL의 EBITDA는 2008년 9천만 캐나다 달러에서 2009년 1억1200만 캐나다 달러로 2200만 달러 증가했다.”

“사장 물러나면 일단락되는 줄로 알았어”

하베스트의 자산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했다는 지적은 어떻게 된 건가? 예컨대 73.9%인 설비이용을 하베스트는 91.8%로 제출했다는데.

“하베스트는 2009년 초반에 공정개선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가 인수하면 이 프로그램에 따라 설비이용률이 올라간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가동률을 산정한 것이다. 2007~2009년 3년 평균 설비이용률 73.9%와 차이가 나는 이유다.”

하베스트는 법인세, 배당소득세 비용을 반영하지 않고 경제성을 평가해서 결과적으로 3천억원을 과다 평가했다는 지적이다.

“하베스트는 퇴직연금자들 같은 투자자가 많이 들어와 있어 배당 압박이 굉장히 컸다. 회사에 수익이 없어도 상당히 많은 금액을 배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또 회사에 부채가 많아 이자상환 압박도 심했다. 재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회사였다. 우리가 지분을 100% 인수하면 달라진다. 우리는 원유 생산량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지 배당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수금액 40조원 중 22조원은 부채이므로 당장 상환이 가능했다. 배당과 이자 압박이 사라지게 되므로 재투자가 가능해진다. 설비이용률이 높아지는 건 자명한 이치다.”

그렇다면 2012년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 내용에 대해 왜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나?

“곡절이 많았다. 나 역시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고 재심을 청구하고픈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캐나다에 근무하던 실무자가 불려 들어왔는데 감사원 감사가 길어지면서 체념했는지 문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더라. 나도 그쯤에서 사장직을 물러나면 그걸로 일단락된다고 여겼다. 그때 이의 제기를 제대로 안 해서 지금 고생하는 것 같다.”

영업실적이 양호하다던 NARL이 어쩌다 그 지경이 됐나?

“NARL은 중동에서 수입한 원유를 정유 제품으로 가공해 북미 시장에 팔았다. 당시만 해도 중동 원유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경질유(WTI)보다 저렴했기에 차익이 남았다. 2011년 부터 북미대륙에서 셰일가스가 인기를 끌고, WTI 가격도 떨어지면서 NARL의 기본적 수익모델이 붕괴된 것이다. 매년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NARL의 영업손실은 2011년 1억4100만 캐나다 달러, 2012년 1억4400만 캐나다 달러, 2013년 2억3200만 캐나다 달러로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들어 공기업에 대한 부채 감축 압박이 거세졌고, 그 결과 석유공사는 1조원에 매입한 회사를 1천억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론적이지만 2009년 하베스트와 NARL 매입 당시 자산평가를 실시한 메릴린치가 하베스트의 이익을 우선시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사람(김백준 전 비서관의 아들) 몰라”


▎2009년 페루의 해상 광구 현장을 둘러보는 강영원 전 사장. 그는 이후 적극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에 나선다
투자자문사 선정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석유공사는 해외 투자자문사를 선정하기 위해 2009년 3월 제안서를 제출한 10개 업체를 대상으로 3회에 걸쳐 평가를 진행했다. 당시 메릴린치는 1차 평가에서는 총 10개 참가업체 중 계량평가에서 공동 5위에 그쳤다. 선정위원들의 주관이 작용하는 비계량평가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아 1위로 올라섰다. 2차 평가에서도 4개 업체 중 계량평가는 3위였으나 비계량평가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아 2위로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자문사로 선정됐다.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 김모 씨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백준 총무비서관의 아들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2014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석유공사가 캐나다 하베스트 자회사를 인수하면서 거의 2조원의 손실을 냈다”면서 “이는 일종의 게이트로 발전하는 조짐”이라고 질타했다.

당시 실력자의 아들이 메릴린치 서울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뭔가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지사장을 알고 있었나?

“전혀 모르겠다. 안모 씨라고 메릴린치 한국지사 대표라는 사람이 왔다갔다한 기억밖에 없다. 우리는 메릴린치 뉴욕 본사와 계약했을 뿐, 그 사람(김백준 전 비서관의 아들)은 몰랐다.”

주관이 작용하는 비계량평가에서 메릴린치가 높은 점수를 받은게 우연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그 당시에 나 혼자만 한 게 아니다. M&A 추진위원이라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관여했고 그 점수를 합계해서 선정한 걸로 안다. 당시 계량평가 비중이 20% 정도였고, 비계량평가가 80%였다. 계량평가라는 건 인력 평가를 말한다. 계량평가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고려했다. 우리들이 하려는 정책에 대한 이해도나 사업의 적극성 등등 말이다. 그때 제일 중요했던 게 투자 자문사의 자문 역량과 자금 동원력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건 감사원이 2012년 4월 하베스트와 NARL의 자산 부실화 관련 감사결과를 발표할 즈음 석유공사는 중국의 석유기업과 NARL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 기업은 NARL에 대한 실사를 거쳐 미화 8억~12억 달러에 인수할 의향을 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원 발표 직후 중국 쪽에서 NARL 인수포기 의사를 통보 해왔다고 강 전 사장은 밝혔다.

NARL을 인수하려던 기업은 어떤 회사인가?

“중국의 석유 에너지 기업이다. 구체적인 정보는 계약 당시의 비밀 유지 약정에 따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달라.”

미화 8억~12억 달러면 적정가액인가?

“석유공사가 NARL을 인수한 가액이 9억3천만 캐나다 달러였다. 엇비슷한 평가라고 하겠다. 석유공사의 NARL 인수 당시 메릴린치가 평가한 NARL의 자산가치인 10억~12억 캐나다 달러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사원 발표가 중국 기업의 인수포기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건가?

“하베스트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는 2012년 4월에 있었고, 중국 기업은 두 달 뒤인 그해 6월 NARL 인수포기 의사를 통보해 왔다.”

만약 감사원 발표가 없었거나 완급이 조절됐다면 매각이 성사됐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중국 기업이 NARL을 아주 절실히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NARL 인수 이후 하류 부문에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는 방침을 세웠다. 하류 부문은 그저 현상유지 선에서 관리하고자 했다. 반대로 중국 기업이 NARL을 인수했다면 엄청난 투자를 일으켰을 것이다.”

중국과의 매각협상 진행 사실을 감사원에 사전에 귀띔해주지 않았나?

“왜 안 했겠나? 협상 사실을 감사원 측에 설명해줬다. 기업가치평가(valuation)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을 빼고 감사결과를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마 2012년 내가 NARL을 팔았다면 이렇게 손해를 보진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부채감축 요구에 쫓겨 자산 파는 건 잘못”


▎한국석유공사가 탐사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석유 발견에 성공한 베트남 15-1광구. 2003년부터 원유 생산이 시작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석유공사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는데, 사실과 다른가?

“감사원과 피감기관의 관계상 감사원의 사전 조율이 없는 상태에서 석유공사가 일방적으로 감사결과 비공개를 요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하고 김성훈 전 부사장이 감사원 조사과정에서 감사결과 발표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조사관이 알았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은 NARL의 8억~10억 달러 상당의 자산가치는 석유공사가 중국 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측은 실사(due diligence)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고 했을 뿐 8억~1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월간중앙>에 밝혔다.

“당시 NARL 회계 관련 자료는 모두 공시된 상태로 8억~10억 달러의 자산가치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수치다. 중국 측은 2012년 3월 NARL 현지를 방문해 실사작업을 벌인 바 있다.”

정부의 공기업 부채감축 방침에 따라 각종 자산매각이 본격화한다. 공격적인 해외 자원개발과 해외 자산을 인수해본 당사자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부채를 감축하라는 정부 요구에 쫓겨서 자산을 파는 것은 잘못이다. 매각의 룰을 만들더라도 여유를 주고서 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실적주의로 흐른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해외 자원개발을 놓고 정치권이 논란에 빠져든다.

“우리는 해외 에너지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거쳐야 할 절차는 다 밟았다. 유가가 바닥을 기는 요즘일수록 해외 자원개발에 더 열심히 나서야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돌아간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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