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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입체분석] 개헌논의 속에 감춰진 권력의 언어 

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나누자?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19대 대선 1년여 앞두고 대권 잠룡들 앞다퉈 개헌논의에 ‘불’ 지펴… 박근혜 대통령 레임덕, 여야 이합집산, 장외후보 출현 등 변수 많아
개헌논의는 ‘87년 체제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헌법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5년 단임제를 선택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시달려야 했다. 여야와 정파적 이해를 떠나 개헌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잠룡(潛龍)들의 개헌논의 속에는 저마다의 이해타산이 담겨 있다.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은 한국 정치사에 큰 변곡점이 됐다. 노 대표가 1987년 6월 29일 당 중앙집행위회의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제 70년을 이제 바꿀 때가 됐다. 책임 있는 대선 후보라면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8월 21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다시 한번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현직 대통령, 차기 대선후보 또는 국회의장이 개헌 이슈를 제기했던 기억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야당 대표가, 그것도 퇴임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여야 대선후보에게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을 촉구했으니 말이다.

김 전 대표의 발언에는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김 전 대표의 발언 이후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현재 여야 지도부와 차기 대권주자들 중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다. 그는 이미 2014년 10월 중국 방문 때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도 검토해야 한다”며 개헌 당위론을 폈다.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안보 등 ‘외치(外治)’에 주력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치(內治)’를 관장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승자독식 혹은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게임에서 벗어남으로써 정치적 연대 혹은 협력의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되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폐해를 개선하자는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표의 개헌 이니셔티브(intiative)는 크게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권 내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개헌 논의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한 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할 그것(여유)을 못 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어렵게 정상화됐는데 개헌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다시 한 번 개헌 불가론에 쐐기를 박았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개헌 저지’ 드라이브로 한동안 여당 내에서 개헌에 대한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올해 8월 7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개헌은 또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2년 만에 정치적 지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하더라도 김무성 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치열한 차기 대권주자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여권으로서는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차기 주자로 쏠리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외 유력후보인 반기문을 중심으로 새판짜기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같은 친박의 다른 셈법


▎87년 9월 18일 국회의장실에서 이재형(가운데)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들이 6공화국 헌법안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민당 정재원, 민정당 이대순, 이 의장, 민주당 김현규, 국민당 양정규 원내총무.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권주자로 나선 이들은 앞다퉈 개헌에 대한 불씨를 지폈다. 범친박인 이주영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비박인 정병국 의원은 차기 정부에서 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 핵심인 이정현 대표는 “4년 중임제로 개헌이 필요하지만 시기는 국민이 원하는 때 해야 한다”고 했다. 개헌에는 찬성하면서도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유동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여당 내에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4년 중임 대통령제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 배경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친박그룹은 정치적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려는 데 반해 권력을 탈환하려는 비박그룹은 새로운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이들 계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정현 대표와 이주영 의원이 주장하는 권력 구조와 개헌시기는 전혀 다르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이 대표는 차기 정부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반기문’이라는 장외변수도 주목해야 한다. 기존 여야 정치세력과 거리를 두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경쟁에 합류하게 될 경우 정치적 연대 및 권력분점에 대한 합의는 필수불가결이다. 더욱이 반 총장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검증됐지만 정치와 내치에서는 경쟁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그를 위한 ‘맞춤형’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범친박 이주영 의원과 비박인 김무성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스스로 정치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독식이 어렵다면 권력분점에라도 참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을 통해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도 개헌에 대한 정치적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야권 분열 구도 속에서 개헌선(180석)을 확보함으로써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여권의 구상이 헝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야당 지도부와 야권 대선주자들이 도리어 개헌에 대한 주도권을 쥐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왔으며,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차기 정부에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내각제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안 전 대표는 권력구조 개편뿐만이 아닌 87년 체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안 지사는 법이나 제도의 개편이 아닌 운용의 변화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신보수대연합 vs 반패권 중도대연합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 20일 청와대를 예방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본관 현관에서부터 맞이하고 있다.
개헌과 함께 남경필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장은 행정수도 이전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에 안철수 전 대표와 김종인 전 대표 가세하면서 행정수도 이전론이 향후 대선 주요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의 표심이 승패를 갈랐던 점을 고려하면 행정수도 이전론 역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헌 파워 시프트(Power shift)의 중심축은 김무성 전 대표, 김종인 전 대표, 박지원 위원장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는 듯하다. 김무성 전 대표는 이원집정부제,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 박 위원장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여기에는 김무성 전 대표의 ‘신보수대연합’, 김종인 전 대표와 박 위원장의 ‘반패권 중도대연합’ 등의 정계개편론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무성 전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좌파에 정권을 내줄 수 없다”며 보수대연합론을 폈다. 보수 대연합과 중도확장 사이에서 고민하던 친박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계, 친이계 등을 한데 아우르는 보수대연합을 추구함으로써 정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지금은 친박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독자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 전 대표이지만 향후 친박과 전략적 제휴를 시도할 수 있다. 보수표 분산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신(新)보수대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맞서 ‘비박 중도연합’도 주목할 만하다.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내에서 소외된 비박 그리고 야권의 중도세력이 손을 잡는 그림이다. 이 전 의원은 “개헌 추진을 전제로 하는 정당을 만들 것”이라며 늘푸른 한국당(가칭)의 깃발을 걸었다. 정 전 의장은 10~11월 신당 창당을 구상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 입지가 크게 줄어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합류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김무성 전 대표, 이재오 전 의원, 정의화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은 4·13총선 이후 존재감이 줄어들었다는 동병(同病)을 앓고 있다”며 “판을 뒤집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는데 이들에게 개헌만 한 승부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야권의 셈법은 더욱 복잡하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에 목을 멜 수밖에 없다. 대중적 지지와 당내 기반이 약한 김 전 대표가 실권을 쥐기에 내각제만 한 카드는 없다. 박지원 위원장도 “지금이 개헌이 적기”라며 판을 까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호남의 연정 참여를 주창하는 박 위원장 역시 권력분점을 반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김종인·박지원·손학규의 반패권 중도대연합’의 출범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 전 대표와 박 위원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유력한 미래권력 중 하나인 손 전 고문이 합류해야 흡입력이 배가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이들 사이에는 친노·친문 패권주의 반대라는 ‘공약수’가 있다.

이진우 소장은 “반패권 중도대연합이 뜬다면 친노 패권주의에 맞서는 야권의 대통합신당 또는 강성 친노와 친박을 제외한 제(諸) 세력이 함께하는 단일대오가 형성될 수 있다”면서 “박찬종·정주영·이인제·정몽준·안철수 등 과거 제3후보(신당)가 대선에서 실패한 것은 거대 여야 틈바구니에서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박·친노를 제외한 제3세력의 경우 확장성이 되레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이 나서고 야권이 거들면 가능할 수도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6월 23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서도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다. 야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개헌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현재의 국회 권력지형도 속에서는 여야 어느 쪽도 단독으로는 개헌 드라이브를 밀고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정계개편 혹은 유력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합집산이 이뤄지지 않고는 박근혜 정부 아래서의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이 여전히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이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2017년 대선 이전 개헌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그 범위가 제약된다. 박 대통령 주도로 개헌 드라이브가 걸리고 여기에 일부 야권세력이 참여하는 방식과 야권(혹은 장외) 유력주자 주도로 개헌 드라이브가 걸리고 여기에 일부 여권세력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도 명분과 동력을 장담하기 어렵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의 개헌이 점차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가 개헌을 대표공약으로 내걸고 당선 후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박지원 위원장은 최근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주자들의 공약만으로는 개헌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만 현 정부 임기 내에 개헌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지적처럼 치열한 경선을 통해 여야 대선후보로 선출돼 절반의 ‘가능성’을 거머쥔 인물이 4년 중임제가 아닌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를 표방하며 스스로 기득권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리더십과 경험을 가졌다고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면서 한편으로는 대통령제가 아닌 권력분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내각제 개헌이 소신”이라며 내각제를 대표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국민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 임기 단축 여부다. 5년마다 치르는 대통령선거, 4년마다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의 주기가 맞지 않다 보니 5년간 3차례나 큰 선거를 치러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기에 재·보선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은 사실상 매년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산·조직 낭비와 국민적 피로는 극에 달해 있다. 당시 야당(한나라당)의 반대로 불발되기는 했지만 2007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들고 나왔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4년 중임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선거·국회의원총선거·지방선거를 동시 혹은 최소 두 번으로 나눠 치르기 위해서는 2018년 2월 취임하는 대통령의 임기를 2020년 4월로 무려 절반 이상 단축하거나 2020년 선출되는 21대 국회의 임기를 2022년 6월로 앞당겨야만 한다. 어느 쪽이 됐든 2년짜리 대통령과 2년짜리 국회의원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뼈를 깎는 자기희생과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만 같이 치르고 국회의원 선거를 별도로 실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2022년 6월로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당겨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고 국회의원 선거는 예정대로 2024년에 치르면 된다. 그러나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분리·실시하는 것은 사실상 명분이 약하다.

지금은 개헌의 군불 때기 국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오직 권력구조 개편에만 맞춰져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헌 국면에 들어가면 여야는 말할 것도 없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과 요구사항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중대선거구제, 유럽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 경제민주화, 정당 국고보조금,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복지정책, 남북관계 및 통일에 대한 방향성과 관계 재설정, 국회의원 면책특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부패방지, 검찰 개혁, 지방분권 강화, 지방재정 확충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한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기가 어려운 구조다.

반기문 중심, 가치 중심, 정계개편 중심 가운데 하나로?


▎이재오(왼쪽)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가 9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이 대표와 이원집정부제를 외치는 정 전 의장 사이에는 개헌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 같은 전망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 삽입을 개헌의 핵심 포인트로, 안희정 지사는 지방분권형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유럽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 도입을 외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권력구조가 있기는 하나 그보다 더 큰 비중을 경제민주화, 지방분권, 소수정당 보호 등 핵심정책 반영 쪽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전 대표 또한 권력구조 개편이 아닌 87년 체제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그 방향성과 고민이 맞닿아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여권 잠재적 대선주자들도 경제민주화, 지방분권, 선거구제 개편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개헌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은 더욱 진폭이 크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향후 개헌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크게 세 가지 흐름이 읽힌다.

첫째는 반기문을 영입하려는 세력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이다. 친박그룹은 반기문이 내각제 및 친박 총리 시대를 여는 불쏘시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비박그룹은 반기문과 합리적으로 권력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부제 혹은 4년 중임제 개헌을 원한다. 어느 쪽이 됐든 대통령과 총리 혹은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권력을 나누며 차기를 바라볼 수 있다.

둘째는 경제민주화, 지방분권, 주권재민 등 가치 중심의 개헌론이다. 다시 말해 87년 체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바꾸겠다는 기치로 여야의 다른 세력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력으로 모이는 방식이다. 안철수·김종인·유승민·남경필·안희정·박원순 등이 이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치인들이다.

셋째, 정계개편을 전제로 하는 개헌론이다. 다시 말해 DJP 연합과 같은 지역연대 혹은 정책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방편으로서의 권력구조 개편이다. 이 경우 이원집정부제보다는 내각제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게 된다. 연립정부 구성 및 내각 안배가 제도적으로 가능해지므로 연대가 가시화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어느 쪽의 흐름도 대세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 여야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이합집산, 패자의 승복 여부, 제4정당 및 장외후보 출현 등 앞으로 벌어질 몇 번의 정치드라마를 거치면서 개헌 논의는 또 다른 모멘텀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타임리서치의 박해성 대표는 “향후 전개될 대선 국면을 개헌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개헌논의가 2017년 대선에 새로운 역동성을 제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성사 여부와 별개로 개헌논의는 대선 정국에서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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