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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北 외교관의 남한행… 김정은 체제 엘리트들을 흔들다 

태영호 공사, 서울 안가(安家)에서 美 CIA 조사 받았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lee.youngjong@joongang.co.kr
김정은·김정철 등 로열패밀리 관련 정보사항이나 내밀한 분위기 탐문했을 법… 미국, 중국을 상대로 무모한 도박을 하는 김정은에 원로그룹 불만 분출
8월 초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 가족의 귀순 사건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정은 체제 후 북한 엘리트 계층의 불안과 동요 그리고 일정부분 분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김정은의 외화 관리 담당 장성급 인사의 잠적설, 대남공작 업무를 맡은 정찰총국 영관급 장교의 한국 망명설 등 북 엘리트 계층의 추가 탈북설이 연이어 전해진다.


▎태영호 공사(왼쪽)가 지난해 11월 런던에서 레닌의 공산정권 수립 98주년을 맞아 영국 공산당 당원에게 강연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주택가. 육중한 회색빛 철문 앞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스프린터 승합차 한 대가 멎었다. 검은 정장차림의 외국인 6~7명이 차례로 내리자 미리 기다리던 두 명의 남성이 이들을 맞았다. 오전 일찍 집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오후 4~5시께 떠났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며칠 간격을 두고 수차례 되풀이됐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대문 너머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철통보안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베일에 싸인 2층 양옥구조의 이 집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보유한 안가(安家) 중 하나다. 폐쇄회로(CCTV)는 물론 특수 방호시설이 갖춰져 있고, 유리창은 방탄기능을 하는 말 그대로 안전가옥이다.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위층 난간에도 높다랗게 차단막이 설치됐다. 서울 내곡동에 자리한 국정원 본부와 가깝고, 인적이 뜸한 특성 때문에 수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A급 시설로 꼽히는 곳이다. 과거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되던 황장엽(1997년 탈북·망명) 전 노동당 비서의 강남 논현동 안가는 2010년 사망 이후 언론에 노출됐다. 이후 통일부 소속으로 넘겨져 현재는 사실상 공개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의문이 방문객이 몇 차례 다녀간 국정원 안가는 강남 지역에 몇 개 남지 않은 주거형 시설이다. 내부에 일반 가정집과 같은 침실과 거실·욕실이 있고,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주방도 갖췄다. 경호원들도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구조가 만들어진 점도 특이하다. 바로 이 곳에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 일가족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우리 관계당국의 양해 아래 태 공사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 정보 소식통은 “태 공사의 탈북·망명과 한국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미 정보당국간 공조가 이뤄졌다”며 “미국 측 사전 요청에 따라 태 공사에 대한 면담 형식의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태영호 공사, 탈북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맨 앞)이 ‘대사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TV는 회의가 열린 시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지난해 7월, 이 장면을 보도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태영호 공사의 귀순을 계기로 재발방지를 위해 외교관과 가족에 대한 소환령을 내렸다.
여기에는 서울 미 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머물고 있는 CIA 서울 거점의 대북정보요원은 물론 일본과 미국 본토에서 파견된 대북 담당관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태영호 공사로부터 런던 주재 대사관을 무대로 한 북한의 외교 및 정보 활동상은 물론 유럽지역에서 전개하고 있는 북한의 공작활동에 대해서도 탐문한 것으로 소식통은 전했다.

대부분 우리 정보 관계자도 동석한 한·미 공동 심문 형태지만, 일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단독 조사도 진행됐다고 한다. 소식통은 “태영호 공사가 유창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상태라 미국 측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미 정보당국 요원들이 한국에 입국한 탈북 인사를 상대로 직접 심문절차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태영호 공사와 그가 갖고 온 정보에 대해 한국과 관련국 대북 정보기관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통일부는 태영호 공사 일가족의 한국 입국사실을 공식 발표한 지난 8월 17일 브리핑에서 “태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은 서열 2위에 해당하며,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태 공사가 뛰어난 영어 구사능력을 바탕으로 북한 체제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태 공사는 인터뷰나 강연 등을 통해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평가를 반박하거나,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북한 측 논리를 펼쳐왔다. 영국 관리나 현지 외교관은 외신기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는 점에서 다른 북한 인사들과 달랐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강연 영상에는 그가 “미국이 우리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면 미국도 우리에게 핵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북한 당국의 입장을 강조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유창한 영어로 진행하는 세련된 모습이 인상적이란 평이다. 그는 “내가 대사관에서 런던 도심을 차를 몰고 나갈 때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차료 등 다른 비용을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머리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내용도 나온다. 북한에선 모든 게 무상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2013년 런던에서 한 강연에선 “핵실험과 위성 발사 이후 우리에 대한 제재강도가 세졌다. 보통의 금전거래가 차단됐고 그들은 우리를 고립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무역도 차단됐다. 제재를 통해 우리나라의 발전을 막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정책과 노선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제재로는 우리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에서 엿볼 수 있듯 평양 당국은 태영호 공사를 매우 신뢰했고,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김정은 체제를 등지고 망명길에 올랐다는 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탈북·망명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미국행을 택한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정보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평가도 있다. 북한 외교부 내 대표적 중동통이던 장승길은 이집트 대사 부임 3년 만인 1997년 8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파리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이던 형 장승호도 동행했다. 당시 미국 CIA는 이집트 당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신병을 넘겨받았다. 또 장씨 일행을 설득해 미국행을 선택하도록 했다. 장 대사가 중동지역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판매는 물론 북한과 일부 친북 성향의 중동국가 간 무기개발과 거래 커넥션을 훤히 알고 있었다는 점을 탐냈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말이다.

평양 로열패밀리 정보와 내밀한 분위기 파악 기대


▎태영호 공사 부인 오혜선은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오백룡 노동당 군사부장의 친척이다. 김일성이 1947년 6월 오백룡과 함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백룡의 품에 안겨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중동지역을 무대로 확산되기 시작한 북한의 미사일과 무기 판매고리를 파악하려 정보력을 총가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승길의 망명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이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당시 미국은 ‘장승길 대사를 심문하고 싶다’는 한국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며 “그만큼 장 대사가 가진 정보가 민감하고 미국 측이 꼭 알고 싶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미국은 20년 가까이 장 대사 일행의 신변을 철저히 감춰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대범죄의 재판에 결정적 증언을 한 사람을 보복으로 부터 감싸주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신상정보나 신분증은 물론 집전화나 휴대폰의 정보도 모두 위장되거나 은폐해주기 때문에 추적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태영호 공사가 장승길 대사도 파악하지 못한 알토란 같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주목받는다. 대북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이 지난해 5월 공연 관람 차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 태 공사가 밀착 안내 역할을 했던 점에 주목한다. 김정은과 함께 스위스 베른국제학교에서 조기 유학한 김정철은 한때 후계 1순위로 꼽혔다. 그런데 호르몬계 이상 등 건강문제로 동생에게 밀렸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북한 권력 운용에 일정부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원산의 특각(별장)에서 세 남매가 주기적으로 모여 북한 권력의 핵심부와 관련한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모임을 갖고 있다는 첩보도 한·미 정보당국은 공유하고 있다.

그런 김정철의 런던 체류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태영호 공사가 입을 열면 김정은과 평양 로열패밀리 관련 정보사항이나 내밀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김정철 방문과 관련한 평양의 지시사항이나 김정은 관련 동향, 김정철의 언행이나 통화내용 등을 분석하면 의외의 흥미로운 대목이 포착될 수 있다는 기대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김정철의 방문과 관련해 김정은이 평양에서 직접 ‘잘 챙기라’는 지시를 내린다거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한다면 두 사람 사이가 결코 나쁘지 않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북 정보망이나 감시체제로는 도저히 알아내기 힘든 김정은 일가의 친분관계나 역할구도를 알 수 있다는 건 정보 관계자들에겐 큰 수확일 수 있다.

북한 외교현장에서 이처럼 핵심 역할을 하던 최고 엘리트가 탈북과 망명길을 택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일부는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을 공식 확인한 직후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지배계층의 내부 결속이 약화되고 있다”며 정부의 판단을 내비쳤다. 태 공사의 망명 동기에 대해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문제 등이라고 (태 공사가)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일부에서는 태 공사가 지난 5월 평양에서 열린 7차 노동당 대회 때 영국 기자의 방북취재 논란과 관련해 문책을 앞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태 공사는 영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대언론 창구 역할을 도맡아왔다. 서방 언론과의 접촉도 자유로워 외신을 다루고 대응하는 감이 빨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추천해 평양에 보낸 BBC의 루퍼트 윙필드 헤이스 기자는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리포트로 북한을 곤경에 빠트렸고, 결국 ‘부적절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방북취재를 중단당한 채 추방됐다. 이후 태영호에 대한 검열이 착수됐고 평양 소환이 결정되자 고심했다는 얘기다. 이밖에 런던 체류 탈북자들에 대한 감시나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외화벌이 등 실적이 저조해 문책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관측도 있다.

골프장서 영국 정보요원과 회동


▎1. 태영호 공사는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왼쪽)이 가수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수행했다. / 2. 주영국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오른쪽)의 탈북을 보도한 BBC 화면.
이에 대해 전직 국정원 최고위급 간부는 “지금까지 제기된 요인들은 태영호 공사가 가족까지 동반해 한국으로 와야 하는 결정적 요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간부에 따르면 해외 공관에 파견되는 외교관이나 정보기관 요원들의 경우 항상 체제 대결을 하는 적성국가 또는 제3국 인사의 망명사태에 대비토록 매뉴얼을 갖고 있다. 공관 문을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망명을 요청하거나 타진하는 경우를 정보 세계에선 ‘워크인(walk-in)’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에 앞서 은밀하게 만남을 통해 상황을 탐색하거나 상담 또는 조건을 협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태 공사의 경우 망명을 받아들여야 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저런 잘못으로 문책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목숨을 위태롭게 하거나 장기적인 구금, 또는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가 아니면 외교공관을 통한 망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해외공작을 담당해온 정보 관계자는 “CIA 교범에는 ‘두더지(mole)’라는 공작용어가 나온다. 뚜렷하게 망명을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되돌려보내 적 내부에서 암약하도록 하는 기법”이라고 말했다. 당장 써먹기보다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정보원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두 아들의 교육이나 장래를 위해 망명을 선택했다는 건 심정적으로는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냉혹한 정보 세계에서 이런 이유로 망명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망명 요청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그가 북한 대사관의 비중 있는 엘리트 외교관인데다 상당한 정보 가치가 있을 것이란 한·미 당국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태영호 망명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소식통은 “태 공사에 대한 심문이 이뤄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점차 탈북·망명 배경 등이 더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며 “뜻밖의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영호 공사 일가족이 어떤 경로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와 관련 영국 신문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8월 21일자 보도에서 태 공사가 영국과 미국의 협조 아래 독일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전했다. 그가 망명 두 달 전 영국 런던 북서부 왓퍼드(Watford)에 있는 골프장에서 영국의 정보요원과 처음 만났다는 점도 이 기사에 등장했다.

영·미 공군 극비 작전 펼치며 서울행


▎김정은의 탈북자 단속 지시에도 엘리트 층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다. 9월 10일, 김정은이 1월 18일 기계종합공장을 방문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영국 외무부는 2주 뒤 태 공사의 상황이 급박하다고 미 정보당국에 알렸다. 이어 워싱턴에서 몇몇 고위당국자가 태 공사를 망명시키기 위해 런던에 도착했다. 태 공사 부부와 두 아들은 지난 7월 영국·미국의 외교 당국과 정보기관 관계자 등 7명과 함께 영국의 옥스퍼드셔(Oxfordshire)에 위치한 브라이즈 노턴(Brize Norton) 공군 기지에서 영국 공군(RAF) BAe 146기를 타고 이륙했다. 이 비행기는 영국의 타이푼 전투기 두 대의 호위를 받아 독일 람슈타인(Ramstein)에 위치한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른 군용기로 바꿔 탄 일행은 서울로 향했다는 게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보도 줄거리다.

그런데 이 보도는 즉각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이런저런 소문으로도 기사를 쓰는 것으로 이름난 3류 매체”라며 “태 공사의 망명 과정을 다룬 기사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군용기의 호위를 받고 해외 공군기지를 경유한다는 등의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1997년 중국에서 망명했을 당시에도 민항기를 이용해 필리핀을 경유해 서울에 왔다”며 “태 공사 일행을 군용기가 호위했다는 건 있을 수 없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 씨가 공항으로 향하던 중 의류 브랜드인 막스앤스펜서(Marks and Spencers)에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는 점도 긴박한 당시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태영호 공사의 망명사태를 둘러싼 일부 언론의 오보사태는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제대로 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두 아들 외에 딸이 하나 있고, 평양에 남겨두고 왔다는 설이 기사화돼 혼선이 빚어졌다. 또 태 공사가 북한의 빨치산 세대인 태병렬 군 대장의 아들이란 미확인 보도가 나돌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1916년생인 태병렬의 나이 등만 고려했어도 보다 신중한 보도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미덥지 못한 대응이 언론들의 취재경쟁을 부추기고 오보를 양산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은 8월 16일자 <중앙일보> 단독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국은 “확인된 게 없다”며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론 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영국 등에서는 <중앙일보> 보도를 인용하며 현지에서 추가 취재를 벌이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 당국은 결국 하루 뒤인 17일 오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태영호 공사가 최근 부인, 자녀 등과 함께 입국했다”고 확인했다.

항일·빨치산 혈통들의 심상찮은 동요


▎8월17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 북한 체제의 이미지 홍보 업무를 주로 맡아온 태 공사가 2014년 한 모임에서 강연하고 있다. 북한은 20일 태 공사에 대해 “범죄 행위가 폭로되자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 자”라고 비난했다.
사실이 아닌 쪽에 무게를 두고 있던 우리 언론은 아연실색했고, 후속 취재과정에서 사실관계 확인보다는 과열된 모습만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정원은 8월 22일 열린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태 공사가 태형철의 아들이란 주장과 딸이 북한에 남아 있다는 소문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 북한 대사관에 있던 거액의 김정은 비자금을 갖고 한국에 왔다는 설도 허위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달러 부족으로 매우 어렵게 꾸려졌다는 보도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액의 비자금 이야기를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급박한 탈북·망명 상황에서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금을 챙겼다고 보는 건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태영호 공사 탈북·망명 사태는 평양 핵심부에도 충격파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권력기반의 핵심축이라 여겨온 엘리트들의 이탈이란 점에서 김정은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체제의 서방지역 대변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 한국행을 택했다는 건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이 북한에서 ‘항일투사’로 간주되는 오백룡 전 노동당 군사부장과 그의 아들인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보장 일가라는 점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최대 기득권층인 이른바 ‘빨치산 혈통’이 남한으로 귀순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다.

북한 당국이 사태수습을 위해 평양과 런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외무성 내에서도 대대적인 검열과 문책인사가 이어질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대한 강도 높은 검열과 문책 절차가 진행 중이란 우리 정보당국의 설명도 나왔다. 베를린 주재 공관에 머물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요원들이 런던에 파견돼 집중적인 감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북한대사관이 비교적 허술했기 때문에 태영호 공사의 탈북이 가능했다는 말도 있다. 소식통은 “런던의 경우 해외 주요 공관에 상주하는 보위영사(보위부 소속으로 외교관에 대한 감시나 첩보활동 담당)가 없었고, 베를린 등지에서 순회 근무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 틈을 타서 태 공사 일가가 영국 현지의 외교관이나 언론인을 비교적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외교 소식통은 “김계관 제1부상을 비롯한 외무성 라인이 줄줄이 궁지에 몰렸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공관 인력 파견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과 함께 태영호와 특별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이 문제가 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우리 정보당국은 태 공사 탈북 사태 이후 김정은의 특별 지시내용과 후속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한다. 런던발 사고는 다른 지역 북한 공관이나 무역기관에도 불똥을 튀겼다. 김정은이 격노해 공관원이나 주재원과 같이 체류하던 동반 가족의 즉각적인 평양 귀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 평양으로 소환돼 검열이나 사상검증을 받고 다시 파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6월 초부터 진행해왔던 해외 대사관과 대표부·무역상사·식당 등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 움직임이 더욱 고삐를 죄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핵 집착, 국제사회의 비판여론도 부담


▎김정은의 고모부로서 북한 엘리트층의 중요한 축이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2013년 12월 특별군사재판 법정에 끌려나왔다. 당시 장성택과 그의 측근 16명이 처형됐다. 북한은 이들의 명단을 중국, 유럽, 동남아 등 자국의 주요 해외공관에 보냈다. 공포정치를 통한 맹목적 충성을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분석됐다.
탈북사태 방지와 해외 근무자의 기강확립 같은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은 “도주나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발생 요인을 적극 제거하고 실적이 부진한 단위는 즉각 철수시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컴퓨터와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이용해 남조선 자료와 불순 출판 선전물을 몰래 보는 일을 막으라”는 말도 했다.

김정은 지시에 따라 노동당과 내각·보위성에서는 이를 이행하는 검열단을 조직해 해외 각지로 파견하고 있다. 중국에 가장 먼저 재정성 소속 검열단이 도착했다. 국가 자금을 담당하는 재정성 감찰 전문가들이 해외 공관과 사업체의 상납금과 공관 유지비 납부 실태, 파견 인력의 생활비와 집세 등을 꼼꼼히 들여다봤다고 한다. 이어 보위성 검열단이 들이닥쳐 해외 파견 인원의 거주상황은 물론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의 사용실태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중국 닝보의 북한 식당에서 발생한 종업원 13명 집단 탈북 및 한국행 사건의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태영호 탈북 사태가 불거졌다. 김정은이 해외 북한식당의 운영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하면서 해당부서에는 비상이 걸렸다. 김정은은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자신의 처지를 불안하게 여겨 동요하기 쉽다”며 조금이라도 문제 소지가 나타나면 예외 없이 즉각 철수시키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환이나 철수를 모면하기 위해 검열단에게 뒷돈을 주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미봉책으로 엘리트 세력의 동요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해외 생활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외부 세계에 눈뜬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김정은 체제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서방 국가나 한국행을 결행하려는 행렬이 늘어날 수 있다.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인권문제 등으로 도마에 오른 북한 정권을 옹호하고 대변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 권력을 떠받치는 엘리트 세력의 이탈사태는 북한 정권으로선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해외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 엘리트 그룹의 탈북이나 망명은 급증세를 보였다.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 사태는 김정일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후 탈북은 굶주림이나 처벌을 위한 일반 주민의 이탈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입국한 3만 명 가까운 탈북자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던 주민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5년차에 접어든 올해 들어 엘리트 계층의 탈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 통치에 실망감을 맛본 북한 권력의 핵심층이 먼저 짐을 싸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해외 근무 등으로 외부사정에 밝은 이 계층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또 영어에 능통하고 서구문물에 익숙해 서방 또는 한국행을 택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을 수 있다.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를 마구잡이로 공개처형하는 김정은의 즉흥적 리더십에 실망한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북한 체제의 핵심 부류마저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북한 권력의 중추를 형성해온 원로세력들은 어린 김정은의 집권에 대해 미덥지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추대됐다. 주민들 사이에서 ‘청년 대장’으로 불리던 김정은은 하루 아침에 대장 계급을 부여받으며 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첫 직책을 맡았다. 이듬해 12월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노동당 제1비서, 군 최고사령관 등 권좌를 거머쥐며 등극했다.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북한 체제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올 들어 핵과 미사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도 나온다. 좌충우돌식의 모험주의적 리더십이 결국 파국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등장한 것이다. 경륜이 짧은 김정은이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미국과 중국 등을 상대로 한 무모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원로그룹을 중심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을 시작으로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침으로써 평양 권력의 핵심부가 꽁꽁 얼어붙은 것도 문제였다. 북한 엘리트 계층 사이에서 이런 분위기는 확산일로에 접어들었다.

최근 김정은의 외교관 가족 소환이나 검열 지시도 불만을 사고 있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자 빡빡한 평양 생활의 숨통으로 여겨지던 외국 체류 기회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됐다는 점에서다. 특히 일부에서는 평양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김정은 일가에 대한 노골적 불만까지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 내에서는 이미 김정은과 그 친인척을 지칭해 “백두혈통도 어느 집안에 뒤지지 않는 탈북자 가족”이란 말이 나돈다고 한다.

공개처형 등 즉흥적 리더십 파국 맞나

사실 김정은의 이모인 고용숙(생모 고영희의 동생)은 남편과 함께 1998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현재 미 한인 타운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여자로 알려진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도 딸 부부와 함께 서방국가로 탈북, 망명했다. 탈북자 단속에 누구보다 열을 올리고 있는 김정은의 체면을 구기게 만들만한 상황이다.

문제는 동요하는 엘리트 세력을 부여잡을 뾰족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은 해외 체류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간부들뿐 아니라 평양의 특권층까지 뒤흔들고 있다. 고급 생필품이나 가전제품, 사치품 등의 유입이 차단되면서 불만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반 주민들을 변화와 민주화의 길로 인도하려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노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 등을 통해 북한 지도층과 일반 주민을 분리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접근 시각을 선보였다. 북한 인권법 발표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대북 압박도 힘을 받고 있다. 미국은 북한 주민이 외부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북정보 유입보고서’를 최근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정은이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국제사회는 게임의 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는 듯한 분위기다.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토대로 김정은이 워싱턴 선제 타격과 대남도발을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서 북한 지도체제의 변화까지 추진할 공감대 마련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런 형국에서 전방위적으로 가해질 대북 압박은 올가을 평양의 핵심층을 더욱 옥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탈북·망명이란 번민에 빠질 수 밖에 없고, 평양에선 숨막히는 공포정치를 맞닥뜨려야 하는 엘리트 층은 인내의 한계선에 다다른 모습이다. 자유세계를 향한 북한 외교관 태영호의 날갯 짓이 대형 태풍으로 번진다면 김정은 정권의 중심부를 뒤흔들 중대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다.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lee.youngjong@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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