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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뉴욕에서 만난 부활의 신 디오니소스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디오니소스 코드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보장하는 최적의, 최선(最善)의 신… 인간이 가진 원초적 불안과 근심을 덜어주는 무해백익(無害百益)의 전령

▎뉴욕 메트로 폴리탄뮤지엄 그리스 전시관의 주제는 디오니소스를 중심으로 한 속(俗)의 극치라 볼 수 있다.
외국 뮤지엄 작품의 국내 전시회는 글로벌 시대가 낳은 긍정적 변화의 하나다. 최근 서울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유럽 유화전,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특별전, 아프가니스탄 황금문화 전시회는 대표적인 본보기다. 문화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만이 문화대국의 조건이 아니다.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이 한층 더 중요하다. 모든 국제 전시회가 뜨거운 성원과 관심 속에서 치러진다는 점에서 한국 전체가 문화·문명의 길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게 보여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훨씬 더 발전되고 성숙될 것이다.

시간·공간·금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은 글로벌 시대의 가장 큰 매력에 해당된다.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머물면서 지도를 들고 찾아갈 필요없이,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는 점에서 외국 특별전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아주 귀중한 예술작품이라면 ‘가능하면’ 서울이 아닌, 현지에서 직접 경험하길 권한다. 시간·공간·금전적 제약을 감수한 현장 감상법이다. 강남에서의 루브르 특별전을 보기 전에, 돈·시간·노력이 필요한 루브르 현지 관람을 먼저 권한다. 파리 현지 경험에 의거해 다시 강남 루브르 특별전에 들르는 것이 작품을 120% 이해할 수 있는 자세다. 루브르를 1순위로 한 관람 순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듯하다. 갑을 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유혹도 있을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루브르 현지 경험을 앞세우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각을 통한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닌, 걸작을 둘러싼 공간·시간적 나아가 후각·청각적 환경이 작품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전체와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예술작품이다. 작품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과 무관하게, 단순히 그림 하나만 달랑 들고 와서 벽에 걸어둔 것이 서울 특별전의 실체다. 아무리 루브르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한다 해도 ‘이발소 그림 속의 알프스’에 불과하다. 글을 통해 필자가 수차례 강조해온 ‘오감, 나아가 육감을 통한 이해’와 무관한 공간이다. 안 가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현지 관람을 우선시할 듯하다.

역사상 최고 수준의 조각이 만들어진 시기의 특별전


▎니사에서 발견된 디오니소스 두상. 디오니소스의 외모는 젊음과 활기로 넘친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터져 나오는 나무바닥에서의 작은 비명, 전시회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유화 속의 기름 냄새, 천정을 뚫고 벽을 타면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햇살, 벽에 걸린 유화와 통로에 늘어선 조각 그리고 전시회 벽의 색상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조화로서의 종합예술…. 그 같은 오리지널 전시회 내의 공기는 남다르다.

오감, 육감에 기초한 예술론이 왜 중요하고 절실한지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을 찾아가보자. 무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하: 메트)의 1층 왼쪽, 고대 그리스 상설 전시관이다. 메트가 자랑하는, 희귀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대리석 청동 조각상들이 늘어선 공간이다. 뉴욕에서 아주 드물지만, 메트 주변은 무료 노상주차가 가능하다. 빈 공간을 찾아 돌아다니기보다 한 곳에서 10~20분 기다리면 자리가 난다. 메트 특별전시회가 열리면 차를 노상에 주차한 뒤 들른다. 당시 터키의 페르가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페르가몬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기원전 4세기 전의 작품들로,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조각이 만들어졌던 시기의 특별전이다. 1층 그리스 메인 전시관은 페르가몬 특별전을 관람한 뒤 들렀다. 지금까지 수없이 찾은, 눈에 익숙한 전시관이다. 그러나 왠지, 그날 그리스 메인 전시관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와 닿았다. 페르가몬 특별전에서 얻은 예술적 환희 덕분이겠지만, 그동안 안 보이던 부분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심하게 넘겼던 특별한 코드(Code), 즉 암호가 메인 전시관에 ‘버젓이’ 드러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코드의 핵심은 디오니소스(Dyonisus)다. 고대 그리스 당시 와인의 신으로, 로마에서는 바쿠스로 통한다. 디오니소스 코드는 메트의 고대 그리스 메인 전시관의 주인공이 디오니소스 본인이란 사실로 압축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야말로 메트의 얼굴격인 그리스 메인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라는 점이다. 그리스 메인 전시관에는 100여 점의 고대 조각이 늘어서 있다. 하나하나가 세계적 유물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그 많은 걸작 가운데 디오니소스가 중심이다. 그게 무슨 큰 의미를 갖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디오니소스 주변에는 항상 여성들이 따라다니면서 광적인 춤을 춘다.
필자가 경험한 세계 전역의 고대 그리스 전시관을 조망해 보면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곳이 디오니소스를 앞세운 메트 전시관이다. 디오니소스는 올림푸스의 12신 가운데 가장 천시받는, 이른바 2류급 신에 속한다. 고대 그리스 지역에 따라서는 올림푸스의 12신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2신 가운데 주연은 단연 제우스다.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에 대한 숭배도 남다르다.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당시 인간들이 ‘진심으로’ 숭배하던 넘버원 우상이다. 인간의 피를 가진 반신반인(半神半人)이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무섭기에 할 수 없이 존경하는 신이다. 배경이야 어떻게 됐든, 전 세계 고대 그리스 전시관 주인공의 99%는 제우스나 헤라클레스 둘 중 하나다. 제우스나 헤라클레스를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조각들이 배치돼 있다.

뉴욕 메트는 다르다. 디오니소스를 중심으로 한다. ‘디오니소스 코드’의 발견은 필자 나름대로의 총체적 발굴과정에 따른 결론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인 전시관의 조각상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특이한 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대칭 구도 하의 헤라클레스 조각상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는 즉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형 조각상이다. 청년기와 장년기 헤라클레스 대리석 입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른쪽의 청년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왼손에 걸치고, 오른손에는 봉(棒)을 들고 있다. 반대편에 선, 수염을 기른 장년기의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고 있다.


▎중세 기독교 문화권에서 악의 화신으로 그려진 디오니소스.
사실 필자는 왼쪽의 장년 헤라클레스가, 로마황제 코모두스(Commodus)의 변장한 모습이라 확신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듯,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아들로, 자식을 통한 황제 승계의 첫 출발점이 된 인물이 코모두스다. 황제로서의 정통성이 약하기에 평소에 헤라클레스 흉내를 내면서,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석상을 많이 남긴 황제다. 젊은 헤라클레스에 대응되는 석상이 필요한 탓일 듯하지만, 메트는 수염을 기른 장년의 인물상을 헤라클레스라 단언한다.

청·장년 헤라클레스의 호위를 받는 디오니소스


▎사냥·부활·처녀의 신 아르테미스는 메트로폴리탄 그리스 전시관의 입구를 지키는 여신이다.
디오니소스 석상은 두 헤라클레스를 훑어보다가 생긴 의문 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부산물이다. 좌우 대칭, 청·장년 헤라클레스의 호위를 받을 정도의 중요한 석상은 과연 무엇일까? 중간 부분에 들어선 디오니소스가 눈에 들어왔다.

메인 전시관의 구도는 가운데 붉은색 대리석의 작은 분수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가는 즉시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Artemis)를 만날 수 있다. 활을 든 모습으로 충복인 사슴과 함께 서 있다. 사냥에 나설 수 있도록 항상 짧은 치마를 입는 여신이 아르테미스다. 디오니소스는 입구 쪽 아르테미스의 반대편에 선, 전시관 끝에 선 주인공이다. 붉은 대리석 분수 때문이겠지만, 전시관 양쪽은 서로 대칭되는 구도의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두 명의 헤라클레스는 디오니소스 석상에 가장 가까이 세워진 대칭 입상들이다. 헤라클레스 바로 밑에 또 다른 특별한 석상들이 열을 지어, 좌우 대칭점으로 전시돼 있다. 먼저 좌상 상태의 아프로디테(Aphrodite)다. 로마에서 비너스로 불리는, 미의 신이다. 왼쪽에는 팔과 목이 사라진, 풍만한 몸매의 아프로디테가 들어서 있다. 오른쪽에는 가슴을 드러낸 채 머리를 45도 기울여 아래를 응시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춘향전의 방자역에 해당되는 조각도 좌우에 세워져 있다. 왼쪽의 어린이 사티로스(Satyros)와, 오른쪽의 늙은 목양신(牧羊神) 팬(Pan)이다. 사실 사티로스와 팬은 서로 비슷한 캐릭터로 연결돼 있다. 정욕과 성 나아가 풍요를 상징한다. 악기 팬플루트(Pan flute)의 어원이 된 팬은, 하반신은 양(羊), 상반신은 인간의 몸을 가진 반인반수(半人半獸)에 해당된다. 다리 사이 성기가 항상 돌출된, 성욕을 참지 못하는 신이다.

사티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 격인 에로스(큐피트)와 비슷한, 다소 귀엽고도 통통한 어린 요정이다. 그러나 장차 팬처럼 성욕의 대명사로 자라날 음흉한 캐릭터다. 아이 얼굴이라고 하지만, 얼굴기름이 흐르는 듯한 정욕의 화신으로 와 닿는다.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이란 의미의 영어 ‘Satyriasis’는 어린 요정 사티로스를 어원으로 한 단어다.

디오니소스 입상은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 팬으로 이어지는 3단 신하들의 좌우 배열을 기반으로 한 중심에 서 있다. 메트 그리스 전시관의 하이라이트임을 강조하듯, 디오니소스 석상을 받쳐주는 받침대의 높이도 다른 조각상에 비해 월등히 높다. 따라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서 아래를 내려본다. 사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는 듯, 왼손을 치켜든 황제와 같은 자세로 메트 그리스 전시관을 ‘호령’하고 있다.

현존 20여 편의 그리스 희비극의 출발점, 와인


▎헨리 마티스의 작품인 <댄스(Dance)>. 20세기 부활한 디오니소스와 무녀들로 해석될 수 있다.
왜 디오니소스를 주인공으로 했을까? 필자가 디오니소스 코드를 발견한 뒤 가진 첫 번째 의문이다. 제우스나 헤라클레스를 앞세우는 다른 뮤지엄과 달리, 왜 메트는 디오니소스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궁금증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뉴욕이 답이기 때문이다. 뉴욕이야말로 디오니소스를 중심에 세울 수 있는,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도시라는 점이 답이다.

디오니소스는 와인의 신인 동시에, 의식에서의 춤의 신, 연극의 신이기도 하다. 매년 4년마다 올림푸스산에서 열린 고대 그리스 연극제는 제우스나 아폴로가 아닌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제전이다. 그리스 전역에서 몰려든 극작가들의 작품을 밤낮을 세워가며 시연한 뒤, 최종 승자를 뽑는 식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20여 편의 그리스 희비극의 출발점은 바로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의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를 즐겁게 하기 위한 성찬식(聖餐式)으로서의 연극이다. 와인의 신을 기리는 의식을 통해 와인을 즐기는 문화를 성스럽게 해석한 곳이 바로 바로 고대 그리스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알코올이 아닌, 디오니소스를 즐겁게 만들고 기리는 수단이자 목적으로서의 와인이다.

올림푸스 12신은 물론, 고대 그리스 신의 대부분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 무서운 존재로 묘사된다. 인간을 위하는 배려심이 강한 신이 아니라, 심심하거나 화가 나면 인간들을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으로 몰아넣는다. 전쟁·기아·가뭄·홍수는 고대 그리스 신들이 가볍게 행하는 ‘장난’이나 ‘놀이’에 불과했다. 그리스 신의 총수격인 제우스조차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범하는 성범죄자에 불과했다.

디오니소스는 어떨까? 놀랍게도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 무해백익(無害百益)의 대명사다. 그리스 신 전부를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유일하게’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신에 해당될 듯하다. 오히려 기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와인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가 바로 디오니소스다. 와인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미덕은 걱정과 불안에 대한 망각이다. 와인은 심신을 풀어주는 신경안정제에 해당된다. 와인을 마시는 순간 불안, 근심이 사라진다.

‘속(俗)의 절정’ 뉴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


▎아프로디테 (비너스)를 따르는 3명의 여성 요정들.
고대 그리스 당시, 젊은 시기의 죽음은 신이 내린 축복으로 해석됐다. 신이 너무 사랑하기에 옆에 두기 위해 데려갔다는 설도 있지만,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인간이 늙는 동안 겪어야 할 걱정·불안·근심에서 일찌감치 해방시켜줬다는 의미에서의 축복된 죽음이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던 때가 기원전 그리스의 역사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한 라틴 속담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의미다. 원래 뜻은 조금 더 길다. ‘지금 이 순간을 확실히 잡아라. 곧 닥칠 내일에 대한 신뢰 따위는 잊어버려라’라는 것이 원래 의미다. 기아·전염병·전쟁으로 점철될 미래 인생에 대한 불안이자 반발로서의 경구(警句)가 카르페 디엠이다. 디오니소스는 카르페 디엠을 보장하는 최적의, 최선(最善)의 신으로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메트의 수석 큐레이터는 아마도 그 같은 배경을 가진 신이야말로 뉴욕을 지키는 그리스 전시관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자본 자체를 창조해내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21세기 들어 세계의 문화의 빅브라더로 군림하기 시작한 ‘속(俗)의 절정’ 뉴욕이야말로 디오니소스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두의 꿈이자 희망인 뉴욕이야말로 근심, 불안과 무관한 디오니소스의 이미지 바로 그 자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뉴욕의 간판 뮤지엄의 고대 그리스 전시관의 주인공이 디오니소스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디오니소스의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뉴욕을 애니메이션 영화 <베트맨>에 등장하는, 죄악의 도시(Sin City)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비슷하다. 뉴욕은 전 세계 모든 것이 모여있는 세속의 하이라이트다. 카오스가 가진 갖가지 추한 모습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뉴욕 다운타운의 대명사 월스트리트 앞 광장에 가보라. 마약에 취한 홈리스들이 줄을 지어 구걸하고 있다. 한국인도 섞인 기독교 복음자들은 소돔성을 불태울 신의 재림에 목을 매고 있다.


▎터키 니사의 고대 원형극장. 로마 시대 3단으로 증축된 극장으로 최대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미드타운은 어떨까?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다루는 국제연합 본부가 들어선 곳이지만 현실은 너무도 척박하다. 눈앞의 식사와 더불어 무사한 하룻밤이 보장된 사람은 지구촌 인구의 30% 대에 불과하다. 업타운의 할렘으로 가보자. 심야에 뉴욕 북부 할렘 거리로 걸어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다. 자본을 찍어내고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들어선 멜팅포트의 도시지만, 뉴욕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디오니소스를 뉴욕의 간판이라고 한다면, 죄악의 도시에 걸맞은 결론이라 박수를 칠지 모르겠다.

디오니소스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미 출생 전부터 시작된 업보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는 아버지 제우스, 어머니 세멜레(Semele) 사이에서 태어난다. 세멜레는 인간이자 고대 그리스 왕국의 공주다. 디오니소스는 올림푸스 12신에 드는 불사신이기는 하지만, 근본은 반신반인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고 디오니소스를 없애려 한다. 헤라가 꾸민 계략은 제우스를 다그치면서 창피를 주는 것이다. 뱃속의 아이가 제우스의 자식이란 사실을 모든 신에게 알리라고 세멜레를 세뇌시킨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는 와인수출을 통해 돈을 번 나라이기도 하다.
제우스는 숨기고 싶은 얘기를 올림푸스산에 가서 떠들라는 세멜레의 요구에 분노한다. 승낙은 하지만, 화를 참지 못해 제우스 몸 전체가 엄청난 불덩어리로 변한다. 옆에 있던 인간 세멜레는 불에 타 죽고 만다. 이성을 차린 제우스는 세멜레 뱃속에 있던 디오니소스를 꺼내 전령사격인 헤르메스(Hermes)에게 맡긴다. 니사(Nysa)로 알려진 곳으로 피신한 헤르메스는 막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현지 여인들에게 맡긴다.

디오니소스는 성장과 더불어 와인을 만들고 즐기는 신으로 변해간다. 와인에 취한 상태에서 춤을 추는 종교의식의 신으로도 나선다. 니사에서 유모 역할을 하던 여인들은 디오니소스의 신자인 동시에, 의식을 주관하는 무녀(舞女)와 무녀(巫女)로 나선다.

디오니소스에 관한 기록을 보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여성들이 반드시 따라 다닌다. 이들은 메이나드(Maenad)라 불리는 여성들로 반드시 디오니소스 앞뒤에 따라 붙는다. 뉴욕 메트 전시관의 디오니소스 입상 왼쪽에 붙어있는 여인이다. 보통 4~5명이 함께 등장한다. 여우가죽옷을 입고, 뱀이나 담쟁이 덩굴로 장식된다. 자식을 가진 여성들이지만, 디오니소스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선 무녀들이다. 이들은 디오니소스에 어긋나는 인간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죽일 때는, 살과 뼈 모두를 분리해 청소하듯 깨끗이 없앤다. 바위와 나무를 감동케 한 음악가 오르페우스를 뼈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처단한 것도 이들이다. 오르페우스가 악기 연주를 거부한 데 대한 앙갚음으로 잔인하게 살육한 것이다.

천년을 이어온 ‘술=성=타락’이란 도식


▎와인용 대형 토기의 거래는 인류가 시작한 국제 무역의 시발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메이나드의 공격은 디오니소스와 전혀 무관하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을 죽이거나 고통에 빠지도록 명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와인과 의식의 춤 나아가 연극을 통한 ‘카르페 디엠’만이 디오니소스를 둘러싼 캐릭터의 전부다.

일신종교 기독교가 디오니소스를 터부시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알코올의 힘을 빌어 환희와 성에 탐닉하는 인간들을 죄악시하는 과정에서 디오니소스가 아예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다. 술 자체를 죄악시하면서 금지시킨 이슬람권에서의 디오니소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 제공한 긍정적인 면보다 성, 욕구, 의식의 춤, 집을 나온 여성과 같은 부분들이 강조되면서 어느 틈엔가 사악한 신의 대명사로 둔갑한다. ‘술=성=타락’이란 논리는 4세기 기독교 국교화 이후 15세기 르네상스 때까지 계속된다. 뉴욕 메트의 디오니소스 입상에서 보듯, 그리스 당시 그려진 디오니소스의 이미지는 아폴로에 준하는 미남으로 표현된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악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터키 니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
뉴욕 메트에서 디오니소스 코드를 발견하기 4개월 전, 필자는 우연이라 보기 어려운 특별한 여정(旅程)을 경험했다. 터키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고대도시 니사다. 터키 이즈밀(Izmir)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더강(江)의 니사(Nysa on the Maeander)로 불리는 곳이다. 니사는 지중해와 에게해를 따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도시명 중 하나다. 그리스·이집트·인도·이탈리아 나아가 북부 아프리카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다. 니사라는 도시 이름의 인기는 바로 디오니소스에 대한 인간들의 자세와 직결돼 있다. 어머니 없이 자란 디오니소스를 보듬어준 전설 속의 도시가 니사이기 때문이다. 터키의 니사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난 곳이다. 자동차로 달리는데 막 싹이 돋기 시작한 포도밭이 눈에 들어왔다. 터키에서 와인을 찾는 것은 서울에서 에티오피아 음식을 찾기보다 더 힘들다. 이슬람 문화권의 터키는 술과 무관한 나라다. 그런데도 끝없는 포도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포도밭을 재배할까?

나중에 알았지만, 니사는 터키 제1 와인 생산지다. 니사의 와인은 대체로 강한 맛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계통으로, 국내가 아닌 외국 수출용이 대부분이다. 터키에서도 마실 수는 있지만, 큰 도시에 가야만 구입할 수 있다.

예수는 왜 와인을 자신의 피라고 했을까?


▎베니스 산 조지아 (St.Georgia)교회 본당에 들어선 틴토레토의 작품 <최후의 만찬>.
디오니소스와의 인연도 모른 채 니사에 있는 고대 유적지에 들렀다. 기원전 5세기에 무려 5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도시다. 가을이 되면 디오니소스 찬미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니사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야외극장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 이어, 로마와 비잔틴 문명이 들어서면서 디오니소스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니사에서 디오니소스에 관련된 흔적은 유적지 근처 민가의 포도나무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큰 넝쿨의 포도나무들이 예외 없이 집안에 들어서 있다. 가을이 되면 포도주가 아닌, 포도 그 자체를 즐긴다고 한다. 포도주는 금했지만, 포도는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원초적 불안과 근심을 잠시만이라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신 디오니소스. 그는 인간만이 아닌, 신의 아들 예수의 삶과 죽음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기독교 내에 숨겨진 ‘코드’로도 작용했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 당시 와인이 자신의 피라고 말했다. 갈증을 해결하는 물, 음식과 세상을 부드럽고 윤택하게 만드는 올리브 오일, 나아가 예수의 눈물이나 땀을 스스로의 예수의 피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왜 유독 와인을 자신의 피라고 말했을까? 붉은 와인의 색깔이 피에 어울리기 때문이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디오니소스와 연결해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예수가 나눈 최후의 만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와인이다.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 신 가운데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한 존재다. 제우스가 세멜레의 자궁 속에서 디오니소스를 꺼낼 당시의 얘기다. 심장만 움직인 채 죽은 상태에 있던 것이 디오니소스다. 제우스가 자신의 무릎에 두면서 보호를 하는 동안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니사로 보내졌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 속의 스토리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죽음을 극복하고 태어난, 부활의 신으로도 통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신은 절대 죽지 않는다.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한 뒤 다시 부활한 신이 디오니소스다. 그의 특이한 행적은 최후의 만찬 이후 보여준 예수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수 생전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와인이 자신의 피라고 말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디오니소스에 대해 알고 있다면 부활로서의 와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가 부활했듯이, 예수 스스로도 죽음을 이기고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것이란 암시가 와인을 통한 은유법 속에 내재돼 있다.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 유일하게 죽음을 겪고 부활한 디오니소스, 만찬 속의 와인, 예수의 피, 예수의 부활로 이어지는 방정식이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또 다른 코드다.

악의 상징 포도밭이 이슬람에서 살아남게 된 힘

‘술=성=타락’이란 중세의 철칙도 수도원 내에서는 예외적으로 처리된 이유도 바로 <최후의 만찬> 속의 예수의 피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예수가 “올리브 오일이 나의 피”라 말했다면 이후 와인 자체가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21세기 이슬람권에서 볼 수 있듯이, 포도밭은 악의 상징으로 불태워지고 와인제조법은 악의 연금술로 통했을 것이다.

뉴욕 메트 그리스 전시관은 선악·성속(聖俗)·카오스·코스모스의 양면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독이 그러하듯 사용하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다. 약으로서의 독을 믿는 사람들, 꿈과 희망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해방지대로서의 뉴욕. 그 한가운데 문화공간에 디오니소스가 우뚝 서있다. 디오니소스의 와인을 믿는다면, 누구라도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되고 새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디오니소스는 바로 뉴욕이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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