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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미래 

청와대 주변에 희망 바람 불까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신승민 인턴기자
서울 광화문 네거리 북쪽 대대적 구조개편 돌입 기대감 ‘꿈틀’… 강북 재생으로 갈지, 난개발·투기로 이어질지는 정책역량에 달려

▎지난 4월 10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광화문광장을 찾아가, 광화문대통령 시대를 약속했다. / 사진제공·사진·뉴시스
“청와대가 이 공원을 민간인에게 넘겼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 공원을 지켜주세요.”

19대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초. 경복궁 영추문(서문)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동네공원 어귀에 내걸린 플래카드에 담긴 호소문이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소재 426㎡ 크기의 작은 마을공원인 이른바 ‘통의동 마을마당’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공원 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 공원은 1996년 이래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동네 아이들 놀이터, 행인들의 휴식과 식사 공간으로 애용돼왔다. 그런데 이 부지의 소유권을 청와대경호실이 지난해 12월 민간업체에 매각하면서 사달이 났다. 청와대는 공원을 내주는 대신 이 업체 소유의 종로구 삼청동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양쪽이 각기 가진 토지를 맞바꾸는 거래를 한 것이다.

마을마당이 민간 소유로 넘어간 이상 구조물이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시민들은 ‘공원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공원 살리기 운동에 나서는 등 조직적 반발에 나섰다.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대선 국면에서는 문재인·홍준표 후보 등 주요 대선주자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건축사 황두진씨는 “주민들의 소중한 자치공간이자 생활공간인 통의동 마을마당을 청와대경호실은 사전 상의도 없이 민간에 넘겨버렸다”면서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 처사에 당혹감을 넘어 정신적 내상(內傷)을 입은 상태”라고 호소했다.

경호실은 경호실대로 입장이 확고하다. 먼저 ‘통의동 마을마당’이 공원 역할을 해온 건 사실이지만 부지 자체는 공원이 아니라 엄연히 국가 소유의 대지라고 했다. ‘통의동 마을마당’을 내주고 확보한 삼청동 건물은 청와대 경호·경비 목적상 반드시 필요한 시설로, 충분한 사전 검토를 거쳐 맞교환했다는 것이다. 그 시점도 대선 일정이 확정되기 전에, 다시 말해서 청와대 이전이 공론화되기 전이었다. 결론적으로 청와대 경호 강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동네공원을 둘러싼 주민과 경호실의 힘겨루기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설 후보지로 거론되는 정부서울청사와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하지만 시민들의 반발을 무작정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누누이 강조한 데다, 궁극적으로 집무실과 관저를 청와대 밖으로 가져간다는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호의 밑그림이 확 바뀔 수 있는 시점에 주민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경호시설 보강을 강행할 명분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통의동 마을마당’은 현재 민간 소유로 등기를 마쳐 임의로 거래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청와대경호실의 고민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경호실은 정부 차원에서 시민편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청와대 활용방안을 검토 중인 만큼 큰 틀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건 가능하리라는 반응이다. 경호실 관계자는 “청와대가 시민에게 개방되면 공원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통의동 마을마당 관련 주민들이 논의 과정에 참여해 역할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서울시가 이 부지를 매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작은 마을공원의 존폐를 둘러싼 주민과 경호실 간 알력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향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관심이다. 문 대통령의 소통의 첫 단추가 마을공원의 존폐에서 꿰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마을마당’에 내걸린 공원 살리기 운동 플래카드. / 사진제공·박성현
“365일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33쪽에 나오는 이 대목에 주민들의 시선은 집중된다. 이 공약의 첫머리에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정부청사 이전’, ‘청와대·북악산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이 자리한다. 집무실이 이전되면 경호시설 보강이 불필요해지고 마을공원의 해법도 모색되리라는 기대감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인 4월 24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공약기획위원회’,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 출범을 약속했다. 당시 “지금 북악산과 청와대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되돌려드리게 될 것”이라며 “청와대는 경복궁·광화문·서촌·북촌·종묘, 이렇게 이어지는 역사문화거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나아가 “지금 광화문광장의 재구성도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했다.

“도로 한복판에 거대한 중앙분리대처럼 되어 있는 광화문광장을 우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위치를 재조정하고 육조거리도 부분적으로 복원하겠다. (중략)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생태자연공원이 조성될 것이다. 북악에서 경복궁-광화문-종묘-용산-한강까지 이어지는, 역사·문화·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벨트가 조성된다.”

청와대집무실 이전이 경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공약 발표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대선 기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영훈 전 경호관을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소개했다. 대선 다음 날인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주 전 경호관을 대통령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이 자리에서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목표로 경호실을 개혁할 적임자”라고 그를 평가했다. 이어진 티타임 석상에서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경호 좀 약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가 전했다. 그러자 주 실장은 다음 날인 11일 페이스북에 “대통령경호실은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목표로 거듭나겠다”면서 “조직의 변화와 새로운 경호제도, 경호문화 정착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포부를 남겼다.

4대문 안 역사·문화도시로 변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이 아닌 비서동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일상 업무를 처리한다. / 사진제공·신승민
경호에 정통한 인물이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 부위원장을 맡은 것은 “대통령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 테러나 공격에 취약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와도 접목된다. 문 대통령의 신임과 경호의 전문성을 겸비한 이로 하여금 집무실 이전 공약을 뒷받침토록 한 조치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주 경호실장은 최근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광화문 대통령시대 기획 등은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집무실 이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는 지금까지 밝힌 그대로”라고 말했다.

청와대집무실 이전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번번히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가시적 변화가 올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식에서도 “권위적인 대통령문화를 청산하겠다”면서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대통령시대를 열겠다”고 탈(脫)청와대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집무실 혹은 관저가 청와대를 떠나면 어디로 가며, 빈 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딱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저런 관전평만 나돌 뿐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발표한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공약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문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이기도 하다. 그는 “청와대는 조선왕조를 폄하하고자 일제가 서울 공간구조의 상징적 축에 해당하는 자리에 억지로 세운 건축물”이라며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청와대집무실과 관저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승 대표는 청와대 이전 부지와 관련 “여러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다”면서 “청와대를 박물관이나 문화공간으로 내주고 대체 기능을 가진 공공 청사나 문화기관으로 이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운을 띄웠다. 나아가 용산의 미군기지 이전 부지나 국방부 청사도 청와대가 옮겨갈 후보지로 꼽기도 했다. 청와대 주변에 사무실을 둔 황두진 소장은 “세종로 1번지의 청와대집무실이나 관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해도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세련된 경호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어쨌거나 광화문대통령시대를 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는 정권 출범 초입에서부터 가시적 조치를 통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일상 업무를 청와대 본관 집무실이 아닌 비서동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본다. 청와대 참모들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의미다.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집무실이 마련되는 2019년까지 주로 이곳에서 일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은 공식적 업무와 큰 행사는 (기존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에서 하지만 일상적 업무는 비서동 집무실에서 보기로 했다”고 브리핑했다.

사람 중심의 ‘걷기 좋은 서울’을 표방한 서울시는 광화문 대통령시대가 서울 도심의 면모를 획기적으로 바꿔주리라 내다본다. 4월 10일 서울시청을 방문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서울시의 도심구조 개편 방침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대선을 전후로 진보진영은 광화문광장이 10차선 도로 가운데에 자리해 시민들의 접근이 어렵다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문 대통령도 시민 접근성 제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현재 10차로인 도로를 절반으로 줄이고 광화문광장과 정부서울청사 쪽 인도를 보행자 공간으로 연결하는 구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용민 서울시 도심정책팀장은 “광화문 재구조화와 관련한 중앙정부와의 본격적 협의는 구체적 재구조화 계획안이 마련되는 9월 이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서울시의 구상대로라면 서울의 4대문 내부가 역사·문화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게 된다. 서울 강북 도심 재배치와 구조 변경이 예고되는 것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자극제


▎5월 10일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건축 또는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이들에게 청와대 이전이나 광화문 재구성은 빅뉴스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넣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건축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청와대는 서촌과 북촌의 자연스러운 연결 흐름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따름이다. 청와대는 광화문에서 북악산으로 가는 길도 차단한다. 동서와 남북이 모두 청와대로 인해 심리적·물리적 단절감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북촌에서 서촌으로 가자면 청와대 앞길을 통하거나 경복궁을 가로질러야 한다. 아니면 동십자각으로 빠져나와 경복궁 앞 도로를 끼고 효자동 쪽으로 둘러가든가.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황두진 대표는 “지금도 청와대 앞길을 이용하고는 있지만 권위주의 시절의 군사정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청와대 앞길은 뭔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긴다”면서 “청와대가 문화공간, 공원화한다면 북촌과 서촌은 막힌 혈관이 열리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백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청와대 앞길은 원래 없던 길을 차량 접근용으로 만들었다”면서 “청와대 앞 도로를 올레길 같은 산책로로 만들어 북촌과 서촌을 이어주는 방안도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북악산이 청와대 경호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부암동·구기동·정릉·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교통망 확충도 기대된다고 말한다. 자하문터널 너머의 부암동·세검정 등이 주거지역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호를 위해 개발이 묶였던 지역이 매력적인 재활용 공간으로 새로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거시적 관점에서는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견해도 있다. 서울 은평뉴타운 총괄건축사로 일한 최명철(단 우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청와대가 이전하면 북악산 북사면, 인왕산 서북면까지 서울의 서북지역 개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청와대로 인해 자하문·정릉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개발이 다른 지역에 견줘 더딘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 대표는 “서울의 서북지역은 큰길로는 통일로가 고작인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안전이 고려된 측면도 있지만 권위적인 청와대의 존재와 대통령 경호도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청와대 이전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볼 때 서북지역과 동남지역의 비대칭 개발구조를 허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북촌과 서촌이 이어지고, 연세대 안산에서부터 인왕산·북악산·삼청동 계곡·창덕궁 후원·성북동·정릉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산세의 병풍구조가 원형을 회복한다는 게 최 대표의 바람이다. 그는 나아가 “지역개발의 핵심은 ‘좋은 길’을 닦는 데 있고, 청와대 이전이 그걸 촉진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서울 강남을 세계적 부자동네로 만든 건 정부가 공을 들인 ‘다니기 좋은 길들’ 때문이다. 사통팔달의 도로가 주요 인프라로 강남을 떠받친다. 동작대교~사당동~ 남태령길, 반포대교~예술의 전당~우면터널길, 한남대교~경부고속도로, 강남 양재~청계~판교길, 성수대교~구룡터널~내곡분당길, 용서고속도로, 청담대교~수서분당고속화도로 등 고속도로 수준의 길들이 강남과 전국을 직접 잇는다. 이런 강남에 견주면 서북지역은 개발을 아예 내려놓은 상황이다. 따라서 청와대 이전은 훨씬 풍요로운 강북을 여는 단초가 된다.”

백진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집무실, 관저 이전이 서촌의 정체성을 견지해 나가는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는 데 방점을 뒀다. 백 교수에 따르면 한옥마을로 유명한 북촌은 외부의 재력가 소유로 넘어가거나 상가로 조성돼 종래의 생활기반이 다소 퇴색된 지역에 해당한다. 반면 서촌은 여전히 서민에서 중산층, 부유층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이 거주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낙후된 도심 개발로 임대료가 올라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게 백 교수의 지론이다.

서촌이 인사동의 전철을 피하자면…


▎최근 사드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당국의 보복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서울 종로구 경복궁 전경.
청와대의 대통령 관련 시설이 빠져나간 자리가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난개발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무분별한 투기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나마 보안시설인 청와대가 있었기에 북촌·서촌 주변이 지금의 차분한 풍광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푸념이 나오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촌이 서울 인사동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기억하는 1990년대 후반까지의 인사동은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동네였으나 2008년 현지실사를 해보니 전통 업종이 10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자본과 상업시설에 밀려 인사동 특유의 문화를 간직한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는 것. 김 교수는 “전통문화에 기반한 업종은 자본 회전율이 낮아 경쟁에서 버텨내기 어렵다”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새 전기를 맞는 서촌과 북촌의 경우 개발행위 용도를 제한하는 등의 세심한 대안과 장치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했다고 보기 어려운 서촌은 국민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마을인 셈이다. 그래서 “대통령 집무실과 가까운 서촌이 지금의 생활기반형 특성과 다양성을 간직하는 것은 대통령이 살아있는 민심을 접하고 균형 잡힌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백진 교수의 시각이다. 이는 그가 서촌이 고도의 상업화 공간으로 치닫거나 고밀도의 고층건물로 채워지는 걸 경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백 교수는 서촌이 지금과 같은 저층 구조를 유지하면서 일상의 거주와 생활 및 문화 편의시설, 소규모 업무시설이 공존하는 삶의 질이 높은 장소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서촌은 인접한 광화문광장의 변신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백 교수는 새 정부 들어 서울시가 추진 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탄력이 붙으리라는 전제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조선왕조의 정궁(경복궁)을 중심에 둔 장방형 광화문광장이 새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정부서울청사 방면으로 확장해나가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이 경우 광장의 역사적 의미도 강화되고 공간적으로도 활력을 더하게 된다.”

그는 주변의 건물도 광장의 콘셉트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개조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광화문광장이 일상을 담아내는 열린 장소로서의 제 기능을 갖게 하자면 일부 주변건물은 성격을 재규정하고 가로변 1층과 외관도 바꾸자고 했다. 광장에 접한 건물들의 1층은 시민 소통과 친화력의 장소로 기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세종로에 접한 업무용 오피스들도 저층 부분엔 커피점이나 식당 등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을 적극 유치하고, 가능하면 발코니 등을 가진 소통형으로 리모델링해 광장을 향해 열린 빌딩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북촌-서촌 일대 활성화, 광화문광장 리모델링, 강북개발 등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관심도 고조된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수반되는 부작용들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이나 ‘광화문대통령 공약’의 성패가 좌우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신승민 인턴기자

[박스기사] 현장르포 | 청와대 주변 지역도 뜨나? - “여기는 호들갑 떠는 동네가 아니다”


▎청와대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 서촌과 북촌을 잇는 도로지만 시민들에겐 낯선 곳이다. / 사진제공·신승민
주민들 관심도 떨어지고 부동산 경기도 잠잠…대통령 집무실 이전해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남아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대통령시대’ 정책구상은 후보 시절부터 대표적으로 내건 공약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탈권위주의적 대통령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은 상식적 수준에 머문다는 느낌이다.

서촌(효자동·통의동·청운동)과 북촌(삼청동) 일대, 그리고 청와대와 총리공관 주변을 둘러보니 청와대 이전에 대한 소문은 파다했다.

청와대 주변동네에 사는 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했다. 월간중앙이 만난 중개업자와 상인들이 내놓은 전망은 대체로 ‘불투명·불확실’로 압축된다. 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청와대 개방’ 정책이 인접지역 부동산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고, 인근 주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주민들의 견해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집무실 이전정책 발표 전후로 달라진 게 없다. 적극적인 관심도,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 ‘다만 청와대 개방과 이어진 역사문화벨트 공약을 염두에 둔 외부 투자자들의 문의는 간헐적으로 온단다.


▎평일 오후 경복궁에서 북촌으로 가는 길. 청와대 집무실이 떠나면 북촌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본격적으로 이전이 추진되면 기대심리는 존재할 것’이라는 일부 긍정의 분위기다. 셋째, ‘그러나 부동산 경기의 흥행이나 대대적 투자·개발은 불가능하다. 전통 보존과 고도제한으로 대표되는 지구단위계획상의 각종 규제들이 견고하다. 더구나 역사문화벨트 조성은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이어져오던 종로구청의 도시계획과 접목되는 정책이다’라는 종합 평가가 뒤따랐다.

서촌 효자동 골목길의 물푸레공인중개사사무소 민복현 대표는 “집무실 이전 발표가 있고서 단 한 번 ‘땅값이 오르지 않을까요’하면서 찾아온 손님이 있긴 했다. 그분 말고는 전혀 문의가 없었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여기는 최고건물이 4층이다. 필지마다 한옥지대 같은 용도지정이 다 돼있다. 대통령집무실이 이전한다고 고도제한규제와 지구단위계획이 갑자기 풀려 부동산시장이 뛰겠는가? 빌라촌도 그렇고 아파트도 막 들어서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동네의 전통과 원형이 다 사라지고 대혼란만 자초할 것이다.”

이들 지역은 경복궁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문화재청장과 협의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하게 된다. 보존지역 범위는 문화재로부터 직선거리 500m 안. 이 지역에서 개발행위를 하자면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청와대가 떠난다고 해서 갑자기 빌딩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인근의 옥인공인중개사사무소 이화진 대표의 진단도 비슷했다. 이 대표는 “이 동네는 지역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 특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투자 목적으로 오는 곳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대문(四大門) 안쪽은 부동산 탄력도가 높은 지역이 아니고, 개발보다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라는 게 이 대표의 진단이다. 따라서 집무실 이전으로 개발 붐이 일거나 값이 오르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공약 발표 이후 거래량이 오히려 줄었다”고 귀띔했다.

‘역사문화벨트’ 조성에 대해선 색다른 시각도 적잖이 접할 수 있었다. J 중개소 사장은 “집무실 이전 발표 이후 외부에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물을 보려고 한두 명 정도 문의는 왔다”고 돌이켰다. S 중개소 사장 또한 “청와대 개방과 관련해 관광지로서 기대감은 있어 보인다. 인근 건물주들도 매물을 내놓기 전에 ‘조금 기다려보자’며 관망 중”이라고 전했다. 갑자기 규제가 풀리거나 집값이 확 오르진 않겠지만, 대통령이 공약했으니 문화관광지역으로 각광받으리라는 보편적 믿음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서촌 옥인길. 도로 정비와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카페·공방 등이 자리 잡았다.
통인시장 내의 한 요식업주 역시 “역사문화벨트 구상엔 관심이 많아질 듯하다”면서 “특히 상인들 중에는 새 투자계획을 세우는 눈치도 엿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제와 세제혜택 병행이 더 나아

북촌의 상황은 어떨까? 효자동과 대체로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핵심 내용은 역시 ‘특이사항 없다’는 것이었다.

삼청동 북촌마을 붙박이로 중개업에 종사하는 신영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영향이나 투자개발 동향도 전혀 없는 지역을 침소봉대한다”며 언론의 과장보도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곳 특유의 역사유적과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면 섣불리 규제를 풀거나 개발투기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가만히 있는 동네를 언론이 계속 자극하면 임대료만 올리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규제할 것은 하면서 그에 걸맞은 세제혜택을 주는 게 지역에 더 이롭다.”

북촌을 거슬러 서쪽 방 향으로 진입하다 보면 고풍스러운 삼청동길이 나온다.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총리공관으로 진입할 수 있는 오르막길과도 연결된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액세서리 판매점, 한복 대여점으로 가득한 한옥지대 골목이 이채롭다.

평일 오후인데도 유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물론 사드 보복의 영향으로 유커들의 방문이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게 인근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동남아권이나 중동지역 관광객은 증가 추세다. ‘집무실 이전, 청와대 개방’ 정책과 밀접한 영향권인 만큼, 지역 상인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고객들로 북적대는 삼청동의 한 편의점에 들러 의견을 들었다. 점주의 설명도 전문가들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이 동네 운영위원장도 거쳤지만, 큰 변동 조짐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여기는 땅값이나 전셋값이 오를 대로 올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관심을 갖는 건 일부 상인뿐이지, 부동산 전체 경기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청와대 개방과 역사문화벨트 추진 역시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매력적이겠지만 내국인에겐 그게 그것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집무실과 관저 이전 공약은 완전 이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 결국 청와대도 일부만 개방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겠는가.”

이런 진단은 어디까지나 현재적 상황에 대한 것이다. 집무실 이전 및 도심 재배치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는 시점에서는 개발에 대한 기대 심리가 술렁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도로변에 자리한 사진 전문점 끌라르테스튜디오 황보병조 대표는 “청와대 주변의 자영업자들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주말마다 벌어진 시위로 인해 영업 타격을 받은 곳도 적지 않다”면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으로 건축 규제도 풀리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정서가 지역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 앞길은 흥청대는 북촌과 달리 조용한 편이다. 한때는 피로한 장막 속의 궁성(宮城)이었다. 적막한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격적 개방으로 젊음이 흥청대는 축제의 거리가 될지, 아니면 다시 공분(公憤)의 촛불들로 물들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청와대를 끼고 돌아 내려오니 여전히 의연한 광화문이었다. 사진 찍기에 바쁜 외국인들이 해설사의 투박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맞은편 정부서울청사의 풍채가 고궁의 장대(將臺)보다 우람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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