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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한국판 FBI’ 만들어질까 

중대범죄는 ‘공수처’가 전담 경찰은 ‘독립 수사청’ 신설 가능성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경찰 조직개편 담은 출처 불명의 보고서 내용 SNS에 나돌아… 검찰은 수사지휘권 박탈된다는 일부 언론 보도, 수사권 조정 앞두고 검경 특수수사 경쟁 나서

▎검찰 개혁의 한 축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경찰의 수사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인다. 지난 3월 16일 충남 아산 경찰대 대강당에서 경찰대학생·간부후보생의 합동임용식이 열렸다.
6월 27일 오후, 한 통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급속히 유포되며 경찰 안팎이 크게 술렁였다. ‘경찰 개혁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 메시지는 경찰 조직을 통째로 뒤흔들 만한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가수사본부장 외부 선출, 차관급 3년 단임’ ‘본청 특수 수사과·지능범죄수사대 해체, 서울경찰청 수사부서로 재편’ ‘서울청 2차장 신설, 국가수사본부장 지휘하에 서울청 인지 및 기획수사 부서 관리’ ‘일선서 지능범죄수사팀 폐지, 공공경제팀으로 통합’.

상당히 구체적이고 민감한 내용을 담은 조직개편 방안이었다. 메시지 말미에는 ‘위 내용으로 내일 중 BH(청와대) 보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다. 경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가 SNS를 통해 유포됐다. 메시지를 받은 경찰들은 동료와 이를 공유하면서, 일부는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당시 이 메시지를 받아봤다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A총경은 “최초 출처가 어딘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청 소속 B경정 역시 “평소 친분 있던 모 언론사 시경캡(서울청을 출입하는 사회부 사건팀장)에게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평상시 같았으면 전혀 믿지 않았겠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논의되고 있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일부에선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했다. 이날 경찰청에도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메시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과 함께 수사 시스템에 획기적 변화가 예상됐다.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자 경찰청은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경찰청은 “해당 메시지는 경찰청이 작성한 것이 아니다. 일부 검토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확정된 안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경찰청은 또 “특히 ‘내일 중 BH 보고 예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짜 뉴스’라는 것이었다. 7월 3일 이철성 청장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조직개편과 관련해 “국가수사본부 별도조직 설치는 여러 방안 중 하나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며 “검찰과 협의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관련 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어느 방향으로 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며 다만 향후 경찰의 수사 조직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얼마 전 SNS에 돌았던 내용 역시 경찰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실제로 경찰은 외부 전문가들의 견해, 경찰 내부 의견, 해외 주요 국가들의 수사 시스템 사례 등을 토대로 여러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지휘권 박탈 놓고 오보 논란


경찰 조직개편 내용을 담은 이날의 ‘SNS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일선 경찰에서는 “시간의 문제일 뿐 어떤 식으로든 수사 시스템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서울청의 한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아니냐”며 “이에 맞춰 경찰 수사조직도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수사조직 개편은 인사 문제와 연결돼 있어 각 지방청, 일선 경찰서 등 물밑에서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언론도 최근 경찰 내부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판 FBI’가 만들어진다거나 ‘독립성이 보장된 수사청’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SNS에 언급된 여러 방안 중 일부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돌출 이슈가 터져 나왔다. 7월 14일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청와대 검찰 수사지휘권 박탈 첫 액션’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게재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의 내용을 둘러싼 박 후보자 측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에 이견이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자 측은 애초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유지한다’는 취지로 서면답변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수사 지휘권 유지’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이 신문 보도의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박 후보자 측이 국회에 제출한 최종 서면답변서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검찰 수사지휘권 내용이 빠졌다는 것이다.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지시, ‘우병우 라인’ 검사장급 인사 전보조치라는 사전 정지작업에 이어 검찰의 힘을 빼는 청와대의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액션이 시작된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며 즉각 부인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박 후보자 측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문의했지만, 민정수석실은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을 지시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입장은 수사지휘권의 범위와 방식을 조정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최종안과 동일하며, 수사권 조정은 국회에서 논의한 후 결정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청와대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출입기자들과 만나 “‘박탈’이란 표현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뺏는다는 강한 표현인데 청와대의 입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맞다”며 “수사(지휘)권 박탈을 지시한 적은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장관 후보자가 서면답변서를 쓸 때 청와대와 논의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정과제와 관련해 장관 후보자가 (청와대와)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 관련 보도를 오보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박해 이 문제는 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안을 놓고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 P의원은 “<조선일보> 보도가 상당히 자극적이고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이지만 100% 오보라기보다는 일부 조율을 거쳤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P의원의 얘기다.

“민정수석비서관실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정책 과제 관련 서면답변 내용을 스크린할 수밖에 없다. 검찰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국정 철학, 소신과 어긋나는 부분이 노출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후보자 측 역시 서면답변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특정 민감한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뜻을 명확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측에 내용 조율 차원에서 문의하는 절차를 거칠 수 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 유지’가 실제로 서면답변서에 포함돼 있었을 개연성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법무부 인사청문회 준비팀 인사들은 검찰 입장을 조금이라도 대변하는 쪽 아니냐. 그들의 생각이 답변서에 녹아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경찰 수사시스템 핵심은 독립성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확보함으로써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약간의 진전을 이뤄냈다. 2011년 7월 11일 경찰 수사권 확대를 앞두고 전국 경찰서의 수사·형사과장 워크숍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렸다.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 문제는 청와대나 법무부 장관 등 정부의 의지만 갖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후 몇 차례 개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검사의 사법경찰관 수사 지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 196조(사법경찰관리) 1항을 보면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나와 있다. 또 3항에는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그나마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한 것이 그동안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이 얻은 작은 소득이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검사의 지휘하에 있고, 경찰은 이를 따라야 한다. 연간 200만 건에 가까운 사건 처리건수 중 경찰은 대략 98%가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 검찰의 사건 처리건수는 2%가 채 안 된다. 하지만 검찰은 언제든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경찰 수사에 간섭할 수 있다.

사실 강·절도, 폭력을 비롯해 일반적인 유형의 고소·고발 사건에서 검경 간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진 예는 별로 없다. 대부분은 소위 ‘중대범죄’와 관련된 사안에서 양측의 갈등이 노출되곤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중대범죄는 검찰도 경찰도 아닌 제3의 기관이 맡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회수하고 기소와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난 대선 당시 대선후보 대부분이 동의해 이미 공감대가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부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며, 검찰의 수사권 부분은 경찰이 준비해야 할 부분과 연계돼 있어 점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구체적 로드맵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과 경찰 안팎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우리나라의 수사시스템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우선 법관과 검사를 비롯한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사정기관장, 정무직 고위공무원 등의 부패 범죄(중대범죄)는 공수처가 맡게 된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현직 대통령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경찰은 기존처럼 강력사건, 사이버범죄, 일반적인 경제사범과 각종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유지하고 수사권도 갖되 경찰 수사가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조적 수사권을 행사하는 형식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기소권이 분리되더라도 검찰의 수사권과 수사협조요청권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수사가 불충분한 경우 (검찰이) 수사보완을 요청하든지, 아니면 검사가 일부 수사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영장청구 과정에서 수사보완을 명하는 식”의 방법을 제시했다.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자 당시 사법개혁위원회에 간여한 김 교수는 2011년 문재인 대통령과 검찰 개혁을 주제로 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함께 쓰는 등 평소 문 대통령과 검찰 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있어 큰 공감대를 갖고 있어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린다.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수사 대상에 따라 검경 외에 관련된 국가기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사에 나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령 재벌의 갑질과 같이 민간 분야에서 발생하고 경쟁의 공정성을 깨는 부패 행위는 경찰이 아닌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법권을 부여받은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를 금감원, 국세청, 식약처 등 국가 각 기관이 활용하면 가능하다. 이들 기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범죄를 수사하고 그 결과를 검찰에 넘기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내용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정치권, 학계, 경찰 일각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거나 제시되고 있는 부분이다.

경찰의 수사시스템도 지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이른바 ‘한국형 FBI’ 조직을 만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국형 FBI’의 특징은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조직이 아닌 ‘수사의 독립성’에 방점이 찍힌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찰청장과 각 지방청장 등 조직 내 최고위층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수사 조직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국가범죄수사청’도 검토 대상


▎미국의 FBI는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미 전 국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미 상원 청문회에 나와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2013년 10월 28일 워싱턴DC FBI 본부에서 열린 국장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제임스 코미 국장(가운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왼쪽).
독립된 수사 조직을 어느 단위에서 꾸릴 것인가에 따라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우선 경찰청에 산하에 독립 수사 조직을 둘 경우다. 이 방안은 영국의 NCA(National Crime Agency, 국가범죄수사청)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다. NCA는 내무부 산하에 있는 영국의 최대 규모 수사 조직이다. 조직범죄, 마약·불법무기, 인신매매, 사이버범죄, 일부 경제범죄 등이 수사 대상이다. NCA의 수장은 내무부 장관이 지방경찰청장 중 1명을 수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조직이 만들어질 경우 조직의 수장은 영국의 NCA와 다르게 갈 가능성이 있다. 즉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해 외부개방형 채용 방식을 통해 수장을 뽑을 수 있다. 수사경찰에 대한 인사권도 경찰청장이 아닌 독립수사청(혹은 수사본부) 수장에게 부여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참고로 영국은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와 유사한 개념의 수사 조직을 갖고 있다. SFO(중대범죄수사청)가 그것이다. SFO는 법무총재 산하의 독립 외청으로 주요 범죄의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한다. 심각하고 복잡한 사기, 뇌물, 부정부패 사건이 수사 대상이다. 다만 SFO는 체포나 구속, 압수수색과 같은 수사 행위의 법적 권한을 지닌 경찰관을 파견받아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모델은 수사 조직이 각 지방청 단위로 꾸려지는 것이다. 경찰청 내에 아예 수사 조직을 두지 않는 방안이다. 다만 각 지방청에서도 지방청장이나 지방청 소속 경찰서의 서장은 수사부서를 직접 지휘하거나 수사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수사 조직은 지방청 단위에 두지만 그 지휘는 경찰청의 국가수사본부(가칭)의 장이 맡는다. 첫째 안과 마찬가지로 수사본부장은 개방직, 임기제로 경찰청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영국식 수사 시스템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과거 우리와 반대로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했다. 1985년 검찰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수사와 기소가 분리됐다. 자치경찰제 국가인 영국은 앞서 언급한 NCA·SFO 외에 런던경찰청을 포함해 전국에 43개 광역자치지방청이 있다. 또 각 지방청 산하에 1400여 개의 자치경찰서가 있다. 영국 수사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는 특사경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 공무원을 관할하는 국방부 경찰국, 철도와 지하철 치안을 담당하는 교통 경찰국, 원자력시설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에너지 경찰국 등이 그것이다. 앞서 김인회 교수가 제시한 전문화된 기관이 각 분야를 담당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철저하게 외부의 입김에서 독립된 수사권을 보장받는 미국의 FBI의 특징과 중대 범죄를 제외한 범죄를 담당하는 영국의 국가범죄수사청의 모습을 우리 실정에 맞게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다만 여권 내에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되더라도 경찰이 굳이 중대범죄까지 다룰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따라서 공수처가 설치되면 경찰의 독립 수사청이 맡는 대상범죄에서 중대범죄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 내 일부에서도 “핵심은 검찰에서 수사권을 떼내는 것이지 회수한 수사권을 경찰이 모두 행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후에는 검찰도 경찰도 민감한 수사에 손대지 않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사례를 통해 얻어진 교훈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두 사건의 내막은 검찰과 경찰이 하나의 사건을 놓고 얼마나 심하게 대립했는지, 또 양측의 갈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장 줄다리기 하는 중에 혐의자는 증거 인멸?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양측은 수차례 갈등을 겪었다. 2011년 6월 20일 김황식 총리가 수사권 조정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수사개시권을 갖고,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유지하게 됐다. 왼쪽부터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이 장관은 브리핑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2013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한국 최대의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을 수사했다. 당시 경찰청 범죄정보과는 자유총연맹(이하 자총)에 매년 들어오는 수십억 원대의 기부금 등 공금이 제대로 회계 처리되지 않고 별도 개인 계좌로 입금된 뒤 현금으로 인출된다는 비리 첩보를 입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특수수사과는 내사 자료를 바탕으로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자총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은 의혹에 대한 구체적 진술도 들었다. 경찰은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자총 내부 관계자들의 진술을 뒷받침할 내부 회계장부, 컴퓨터에 저장된 각종 자료 입수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별다른 이유 없이 영장을 반려했다. 내용을 보완해 재차 영장을 신청해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자총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임의제출 받아 수사하라는 지휘를 내렸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의 얘기다.

“자유총연맹은 매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포함해 여러 곳으로부터 상당히 큰 액수의 기부금을 받아왔다. 2010년만 해도 전경련은 자총에 7억2000여 만원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가 불분명했다. 당시 회계장부에는 기부금 수입이 3억원이 채 안 되는 액수만 잡혀 있었다. 일부 뭉칫돈이 직원 개인명의 계좌로 입금됐다가 수차례에 걸쳐 빠져나간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 밖에도 다른 기부금 역시 제대로 회계에 잡히지 않고 처리된 정황이 있었다. 자총 측은 ‘기부금을 해외지부 설립, 종교 직능 단체 지원 비용 등으로 썼다’고 해명했지만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사실과 달랐다. 압수수색을 통해 물증만 확보하면 수사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는데 검찰이 번번이 영장을 돌려보내더라.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자료를 임의제출 받았지만 자총 측이 수사에 대비해 준비해 놓은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영장을 반려한 검찰의 수사 지휘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압수수색은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기본적 수사 절차인데 수사 대상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수사하라는 건 더 이상 수사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검경 간에 압수수색 연장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자총 측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총 경리과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3대의 하드디스크가 교체된 것이었다. 자총 측은 “경찰 수사와는 상관없으며 성능 문제가 있어 교체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수사에 협조하던 자총 직원들도 검경 간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챈 탓인지 진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자총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압수수색이 지연되고 경찰 수사가 난관에 부딪히자 경찰 출석을 앞두고 있는 내부 직원들에게 자총 수뇌부가 허위진술을 하라는 식의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검찰이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돌려보냈다는 얘기도 내부에 파다하게 퍼졌다. 자총 개혁을 바라는 내부 인사들은 당시 검찰의 이런 수사 지휘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총 고위층에서 검찰에 로비를 한 것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이 증거로 반드시 확보했어야 할 경리과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교체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수사는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경찰은 전경련 등이 낸 기부금 의혹은 끝내 물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국고보조금 1억3000여 만원을 전용·횡령한 혐의로 자총 관계자 3명을 불구속기소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검찰로 송치했다. 당시 수사권도 없는 행안부가 자총을 상대로 특별감사를 진행해 밝혀낸 비위 사실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수사 결과였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 사건 내막을 잘 알고 있는 검사 출신 A변호사는 당시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검찰은 경찰이 자유총연맹을 수사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한 것으로 안다. 당시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연맹의 수장인데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가 연루된 사안을 경찰 수준에서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총 측에서 검찰에 어떤 부탁을 은밀히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통상적인 관행으로 볼 때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한 것은 경찰 수사가 부족해서라기보다 경찰 ‘길들이기 차원’ 내지는 ‘기 꺾기’로 보였다. 아마 이 사건을 처음부터 검찰이 직접 다뤘다면 검사는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을 것이다.”

검사 친형 겨냥하다 ‘수사방해’ 불만 나와


▎1999년 6월 25일 김석기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판에 붙였다. 이 문제로 김 서장은 문책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경찰 조직의 수사권 강화 차원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본청에 만들어놓은 범죄정보과, 특수수사과 등에서 하는 수사에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어 경찰을 견제하려는 검찰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 전 청장은 재임 시 유난히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며 검찰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의 이런 행태를 놓고 ‘수사지휘’가 아니라 ‘수사방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경찰의 수사가 검찰을 직간접으로 겨냥하는 수사로 확대될 때는 검찰의 ‘수사지휘’가 더 강하게 들어온다. 2012년 서울청 광역수사대가 서울 관내 C세무서장 비위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들어갔다. C세무서장이 한 육류 가공업체 대표 D 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골프 등 향응 접대를 받은 의혹이 포착됐다. C세무서장이 D씨의 수백억 원대 탈세를 도운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고 20차례에 걸쳐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수사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됐다. C세무서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현직 검사의 친형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C세무서장이 D씨를 스폰서로 활용해 평소 검사들에게도 골프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은 C씨가 검사들과 함께 자주 라운딩한 장소로 수도권의 한 골프장을 지목하고 골프장 압수수색을 계획했다. 수사 명목상으로는 C씨가 업자로부터 접대를 받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지만, 업자가 제공한 돈으로 골프를 친 검사들의 비위 사실을 캐내려는 경찰의 의도도 있었다. 당시에도 검경 간 수사권 조정 문제로 긴장이 감돌던 때였다. 경찰 입장에서는 골프장 압수수색을 통해 검사까지 연루된 범죄 혐의가 증거로서 확보되면 금상첨화였고,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부적절한 비위 정보만 확인해도 소기의 성과라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경찰의 계획은 이내 브레이크가 걸렸다.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무려 7~8차례나 기각된 것이다. 검찰은 “혐의자의 실명으로 예약된 골프 라운딩 건만 골프장 측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확인해 보면 되는데 특정 기간의 예약, 결재 자료 전체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것은 과도한 수사”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경찰은 “C씨가 자신의 실명으로 예약하지 않고 대부분 명의를 빌려 라운딩을 했기 때문에 의심이 가는 기간의 관련 자료를 확보해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검찰 측에선 경찰의 이러한 수사가 현직 검사의 친형인 C씨와 친분이 있는 검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의심하며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놓고 검경 간 신경전이 계속되는 사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C씨는 2012년 8월 경찰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돌연 홍콩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인터폴에 C씨 수배와 체포를 의뢰했다. C씨는 이후 캄보디아와 태국 등지에서 체류하다 도피 8개월 만인 2013년 4월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경찰은 C씨가 중대범죄 혐의가 있으며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통상 수사 도중 수사기관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해외로 출국해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은 범죄 혐의자가 체포돼 국내로 송환되면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영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수사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C씨는 경찰 수사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벌었고, 검찰이 뒤늦게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지만 이번에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C씨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마무리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C씨와 육류업자 사이의 돈 거래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단순 채무관계로 보인다며 C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의 얘기다.

검경 눈치 보다 알맹이 없는 개혁안 우려도


▎2003년 1월 16일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로 검경 간에 갈등이 표출되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임채정 대통령직인수위원장(가운데)이 당시 이팔호 경찰청장(왼쪽), 김학재 대검차장(오른쪽)과 자리를 함께했다.
“C씨의 대포폰 통화내역, CCTV 등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증거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C씨는 현직 검사들과 수십 차례 대포폰으로 통화한 것이 확인됐다. C씨는 단순히 안부 전화였다고 둘러댔지만 평상시 통화가 뜸하다가 경찰 수사에 맞춰 긴 통화가 수십 차례 집중된 것이다. 경찰 수사에 대비해 자문을 받은 정황으로 보였다. 모 검사 소개로 변호사를 소개받은 문자도 확인됐다. 수사팀이 접대골프를 받은 것으로 특정한 날짜에 실제 해당 골프장으로 향하는 모 검사의 차량이 찍힌 CCTV 영상도 확보했다. C씨에게 구속 영장이나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돼 수사가 더 진행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두고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경찰이 불순한 수사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했다. 검찰을 망신 주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없는 부분까지 무리하게 수사를 확대해 나갔다는 것이다.

공수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이 원활히 진행되면 이 같은 불완전한 수사, 검경 간 볼썽사나운 갈등은 상당 부분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지난 두 달 동안 검찰 개혁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온 국정기획자문위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까? 여권과 검경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공수처 연내 설립 추진, 장기적 과제로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큰 원칙과 방향만 재확인했을 뿐 아직까지는 알맹이 있는 구체안이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기대와 달리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국정기획자문위가 검찰과 경찰 측 양쪽이 제시하는 안을 검토했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를 보였을 때 자칫 터져 나올 수 있는 반발을 너무 우려해 어정쩡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의 얘기다.

“검경 양측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수사권 조정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양쪽 모두를 일정 부분 만족시키며 연착륙하는 식으로 가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방안이 존재할까 싶다. 일각에서는 초기에 검찰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더라도 철저하게 수사와 기소 분리 원칙에 충실한 쪽으로 정책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경찰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난감한 상황이 오래간 측면이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의지만 있다고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는 여권 내 강경파에서는 국정기획자문위의 이런 스탠스를 못마땅해한다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검경 양측이 무언의 시위라도 벌이듯 최근 수사 경쟁이 벌어지는 듯한 흥미로운 양상도 보이고 있다. 검찰은 갑질을 테마로 한 기업범죄, 정부가 강조하는 국방개혁의 한 축인 방산 비리 등의 수사에 뛰어든 상태다. 더구나 특수 통인 윤석열 중앙지검장 취임 후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이 국정농단 보완 수사를 여전히 끌어가고 있다. 지난 보수정권 핵심 인사들의 비리 혐의에 대한 다방면의 첩보수집과 내사도 진행 중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경찰 역시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기업 총수비리 의혹을 쫓고 있다. 경찰은 또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횡령 혐의를 재수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경찰이 뒤집은 것이다. 검경의 물밑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 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의 최종안은 어떤 시나리오로 나타나게 될까. 공수처와 한국형 FBI는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국민의 눈은 국회와 청와대에 쏠려 있다.

-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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