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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한 세기 만에 고향 찾아온 ‘한민족 영물’ 

“백두산 호랑이와 셀카놀이 감개무량해요!” 

사진·글 박종근 월간중앙 기자
경북 봉화에 축구장 7배 크기의 생태계 만들어 스트레스 최소화할 시설 조성해…국립백두대간수목원, 희귀식물 정원 조성하고 ‘종자 저장고’ 설치해 관람객에 큰 인기

▎백두산 호랑이 ‘한청’이 풀밭 위에서 도약하고 있다.
낮잠에서 막 깨어난 호랑이가 굵은 목소리로 포효하자 관람객 사이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백두대간을 타고 웅장하게 퍼져나가는 듯한 포효 소리가 주변을 압도한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셔터 누르기를 잊은 모양새다. 5월 3일 경북 봉화군에 개장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하 ‘수목원’)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풍경이다.


▎백두대간 능선을 향해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좌) / 호기심 많은 ‘우리’가 야생화 군락 속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수목원 시설 가운데서도 단연 화제는 ‘호랑이 숲’이다. 백두산 호랑이 두만(수컷·17살)과 한청(암컷·13살), 우리(수컷·7살)가 이곳에 산다. 다른 동물원과 달리 축구장 7개 넓이인 4.8헥타르(㏊) 크기의 숲을 조성해 자연을 최대한 모사했다. ‘호랑이 트리오’를 보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개원 석 달 만에 누적 관람객 수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구경거리 ‘동물원’ 넘어 자연 닮은 ‘숲’ 조성


▎‘우리’가 불쑥 다가가자 놀란 ‘한청’이 앞발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풀밭에 배를 깔고 앉아 귀를 쫑긋 세운 채 주위를 살피는 ‘한청’은 13세지만 암컷이라 ‘우리’보다 덩치가 작다. 우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가자 한청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며 앞발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한다. 한청의 격한 반응에 되레 놀란 우리가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우고, 그 사이 발길을 돌린 한청은 연못가를 찾아 목을 축인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조성된 ‘호랑이 숲’을 찾은 관람객이 유리창 너머에 있는 호랑이를 지켜보고 있다.(좌) / 연못에서 목을 축이는 ‘한청’. 기온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는 호랑이에게도 고역이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호랑이가 눈앞에서 풀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에 관람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빴다. 김이현(52)씨는 “남한에서는 1921년을 마지막으로 백두산 호랑이가 멸종했다고 들었다”며 “백두대간과 백두산 호랑이를 배경으로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으니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호랑이들은 관람객과 눈이 마주치면 어슬렁어슬렁 관람객을 향해 다가오기도 했다. 최옥수(57·여)씨는 “키 높이를 훌쩍 넘는 철조망(7m)이 쳐져 있지만 그래도 오금이 저린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사육사는 ‘호랑이 차’를 몰고 다니며 호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풀밭 위에 배를 깔고 앉은 ‘한청’이 잔뜩 긴장한 채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 트램을 타고 호랑이 숲을 방문한 어르신이 호랑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세계 두 번째로 지어져


▎방한복을 입은 직원이 시드 볼트에 보관된 종자를 살펴보고 있다. 영하 20도의 낮은 온도 탓에 1인당 작업시간은 10분 이내로 제한돼 있다.
‘시드 볼트(Seed Vault)’도 이곳의 자랑거리다. 야생 산림 종자를 영구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린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지어진 볼트다. 기후변화와 각종 자연재해는 물론, 전쟁 등 재난 상황에도 문제없도록 지하 46m 지점에 4300여㎡ 크기로 조성됐다. 실내 온도는 영하 20℃로 유지된다. 현재 종자 4만6000여 점이 보관돼 있으며, 2030년까지는 전 세계 식물 종자 12만 점을 확보할 계획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면 터널 형으로 만들어진 시드볼트 입구가 있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가 없다.(좌) / 시드볼트에 저장되는 종자는 다양한 검사와 처리과정을 거친다. 종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X-ray) 사진을 살펴보는 직원들.
수목원에는 이 밖에도 야생화 언덕, 암석원, 만병초원 등 27가지 주제원(園)이 조성돼 있다. 관람객은 트램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하며 희귀식물 2037종을 살펴볼 수 있다. 트레킹 코스와 숲 해설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김용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은 “기후변화로 취약해지는 백두대간 지역의 산림 식물종에 대한 보존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며 “산림교육 및 문화·휴양공간으로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사진·글 박종근 월간중앙 기자 jokepark@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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