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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멀티튜드의 반란’ 

남한 내부의 갈등과 대립 격화는 분단구조 이완의 파생물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 군사적 긴장에 억눌렸던 지역·개인·성(性) 등의 의제가 남북 관계 호전 물결 타고 분출
■ 위기가 모든 곳에 산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국가 단위의 통제 어려워져
■ 국력 축소된 일본, 2020년 도쿄올림픽과 일왕 연호 교체 앞두고 ‘자아 찾기’ 중


▎일본 구마모토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사회에 관한 분석에 능한 비판적 지식인으로 통한다.
지식인은 두 종류의 외국어로 번역된다. ‘인텔렉추얼(Intellectual)’과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가 그것이다. 영어 인텔렉추얼은 자본주의 친화적인 전문 지식인에 가까운 뉘앙스를 지니는데 비해, 러시아어 인텔리겐차는 삶과 앎의 일치를 지향하는 사회 비판적 지식인을 지칭한다.

강상중(69)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에 발을 디디되, 일본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독특한 포지셔닝 속에서 인텔리겐차의 삶을 관통했다.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재일한국인)는 ‘주변인’을 의미했다. 유리천장 같은 은근한 차별 속에서 그는 강상중이란 한국 이름을 썼다. 취직이 막히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탐구했다. 재일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고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고민하는 힘] [도쿄 산책자] 등의 저서를 통해 강 교수는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치유책을 세계인의 관점에서 제시해왔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격화될수록 근대국민국가 체제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설파한 강 교수는 “인류는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시대를 헤쳐 나오면서 화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반도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실험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북·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 정세에 획을 그을 이벤트가 열린 해다. 한국과 일본,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 또한 새롭게 조명받고 해석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월간중앙은 창간 51주년 기획으로 강 교수와의 대담을 마련했다. 한국과 일본이란 국경을 초월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그의 대안을 경청했다. [위험하지 않은 몰락]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등 지식인 강상중의 전문번역자인 노수경 번역가가 인터뷰 작업에 참여했다. 노 번역가는 도쿄에서 강 교수를 직접 만났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 안의 충돌이 본질”


▎강상중 교수는 우치다 다쓰루 교수와의 대담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을 2016년 펴냈다. 한국어판은 2018년 12월 출간됐다. / 사진:사계절출판사
2016년 출간된 강 교수와 우치다 다쓰루 교수의 대담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 한국어판이 2018년 12월 나왔다. 그 2년 사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시리아 공습을 감행했다. 유럽에선 영국의 브렉시트, 독일의 난민정책 변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등이 있었다.

“책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것은 ‘내전’이었다. 문화 간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들, 그러니까 민족·종교·성별 등에 의해 생기는 갈등에 관해 냉전 붕괴 후 ‘문명의 충돌’이라 규정했다. 문명 안에서 생기는 충돌에 관해선 눈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대립이 마치 문명과 문명 사이에만 생기는 것처럼 말하는 이 견해는 글로벌화에 관해 잘못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글로벌화의 진행에 따라 경계와 경계 사이가 아니라 경계 그 안에서, 차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다양한 분단선이 생겨나고 있다.”

문명 안의 ‘내전’이라는 표현이 생경하다.

“베네수엘라·시리아·아프가니스탄 그런 나라들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조차도 다들 내전에 가까운 힘든 상황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수백 년 전이었다면 아마도 내전으로 발전했음이 분명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이냐 개발도상국이냐를 떠나 표면적으로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적대적 의견이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는다.”

어찌해서 ‘내전’이 이토록 널리 퍼지게 된 것일까?

“글로벌화가 가져온 사회구조적 변화, 즉 격차나 빈곤 같은 현상은 우리 삶의 모든 곳에 변화를 가져왔다. 글로벌화의 위기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를 ‘옴니-크라이시스(omnicrisis)’라고 한다. 그러니까 위기(crisis)가 모든 곳에 편재돼 있다(omni)란 것이다.”

국가 단위나 문명 단위론 통합시키기 어려운 ‘편재된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이를 네그리와 하트는 ‘멀티튜드의 반란’이라고 했다. 멀티튜드란 예전의 계급이나 민족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인종·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이 다양한 곳에서 시스템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멀티튜드의 반란’이란 세계적 흐름에서 본다면, 한국 또한 비켜나 있다고 하기 힘들 것 같다.

“오늘날 여러 면에서 옴니-크라이시스 혹은 내전적인 상황이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다.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북한 또한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들끓고 있지 않나 싶다. 한국은 한국대로 지금까지 사회체제 안에서 상하관계에 따른 문제나 ‘남자는 이래야 한다’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마치 압력밥솥과도 같은 남북 간 긴장 관계로 인해 모든 문제는 그 안에서 억눌려 있었다. 사회나 지역·개인·성(性) 등의 다양한 차이들이 아무래도 ‘현재화(presence)’를 갖기 힘들었다. 이러한 차이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남북이 급속히 가까워지자 분단 태세가 점점 풀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에 급격한 경제적인 변화가 동반됐다. 그러자 마치 압력밥솥에서 김이 빠져 뚜껑이 헐거워진 것처럼, 그동안 억눌려있던 차이와 갈등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정부 들어 ‘갑질’, 젠더갈등 등 사회적 문제의식이 세분화되고 있는 듯하다.

“여론조사 결과 같은 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한국 사회에 다양한 대립이 현저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새롭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압력이 가해져 드러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남북관계의 긴장 완화에 따라 튀어나온 것이다. 압력을 가하고 있던 압력밥솥 자체가 더 이상 누르는 기능하지 못하게 되자 안에 있던 것들이 전부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에게 2020년 도쿄올림픽의 의미는?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악수를 나눴다. /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국경 안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EU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제 세계는 체제의 차이에 따른 문제보다도 다양한 상황에서 생기는 미세한 갈등들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과제다. 이런 문제는 국가 단위에선 거의 컨트롤이 안 되고 있다. EU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선도자다. 여러 실망과 비판에도, EU는 내재적 문제로 붕괴되리라 생각지 않는다. 브렉시트가 실제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북아시아에도 그런 차이와 갈등을 해결할 ‘동북아 공동의 집’ 같은 것이 가능할까?

“EU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달리 말하자면, ‘어느 정도 퇴보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국가 단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내전 상황을 좀 더 커다란 틀에서 바라보고 해결하자’는 움직임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무언가를 동북아시아에 당장 만들 순 없다. 하지만 동북아에도 국가는 초월하되 그렇다고 ‘글로벌화’는 아닌, 어떤 합리적인 하나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경을 넘어, 상호 간의 깊은 이해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가는 움직임이 동북아시아에 꼭 필요하다.”

왜 그런가?

“동북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군사력이 집중돼있다. 그렇기에 지역의 평화 문제나 국가·사회별 문제를 국경선을 넘어서 서로 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어떤 플랫폼 같은 것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를 정치적 언어로 표현하면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다. 동북아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부, 시민사회, 민간 NGO 들이 참여해 다양하고 다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플랫폼이다.”

동북아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자 중국 사람, 한국 사람, 일본 사람 간에도 공통된 가치관이 생겼다. 그렇기에 각 나라 간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됐다. 정부, 국가는 이러한 사회 변화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시대에 때마침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호전됐다. 한국 전쟁이 종결되고(종전선언을 의미), 냉전은 곧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북관계가 지역 균형을 크게 바꿀 가능성이 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할 무렵의 위기랄까, 그 위험이 오늘날 첨예한 한·일 관계의 배경이 되고 있다. ‘코리안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멀티(multi)한 관계를 이 지역에 만들어 가는 것에 의해 남북통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 지역에선 내셔널리즘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가 국가와 일체화하는 것은 그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남북의 화해, 한국전쟁의 종결, 평화 공존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란 플랫폼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단계가 아닐까 한다.”

한·일 관계가 계속 불편하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배외주의적인 경향이 일본의 일반 시민들에게 확산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먼저 설명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연호’에 관해서인데 한국의 젊은 분들은 연호가 뭔지 잘 모르실 터라 생각된다. 나이가 지긋한 일본 사람에게 ‘연호’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쇼와, 다이쇼, 헤이세이… 이런 것이 연호인데, ‘헤이세이(平成)’란 연호로 불리기 시작한지 30년이 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30년이기도 하다. 덴노(한국식 번역으로 일왕, 일본식 번역으로 천황)가 바뀌어서 연호가 바뀐다는 것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일이다. 헤이세이 30년이 끝나는 이 때는 일본사람들에게 ‘과연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연호가 바뀌는 시점에 때마침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그런데 일본의 50대에게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후 일본이 어떻게 변했다고 보이냐 하면 ‘국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느낀다. 지금부터 30년 전 일본이 점하고 있던 국력과 비교해 볼 때 압도적으로 축소됐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중국의 3분의 1 이하가 됐다. 한국과 비교해 봐도, 물론 인구 규모가 다르기에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1965년 한·일회담 때 100 대 1이었다면 약 반세기 이상 시간이 흐르자 국력이 인구비율로 볼 때 엇비슷해졌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대등해지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틀림없이 이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국민들도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불러온 이민과 난민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영국의 브렉시트, 독일의 난민 문제 등 더 이상 갈등이 국가 안에서 해소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시점에 올림픽 개최는 일본인들에게 각별하겠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포지션이 낮아졌다고 느끼는 일본 국민들에게 올림픽은 다시 한 번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는 일로 여겨진다. 심지어 이 시기에 연호까지 바뀌니까 좋은 때가 겹쳐진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과연 어떤 나라이며 일본 국민은 어떤 국민인지, 그런 정체성의 모색이 진행 중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국가의 커다란 이벤트로써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마음이 국민들 가운데 퍼지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 일본은 ‘자아 찾기’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아 찾기’의 방향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에 관해선 아직 잘 모르겠다.”

일본의 배외주의에 관해서 하나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민과 난민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최근에 더 심각해진 것 같은데.

“이민과 난민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민은 보호, 난민은 비보호랄까. (난민 문제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사회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률적으로 이민과 난민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글로벌화가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동은 이제 멈출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측에선 이에 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셈이다. 글로벌화의 부작용에 관해서도 너무나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IT나 정보혁명, 돈, 기술혁명 같은 것이 오히려 사람보다도 중시됐다. 돈이나 정보·기술·문화 등을 포함해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이 이동했을 때, 그러니까 국가를 둘러싼 경계선인 국경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넘어갈 때 생기는 정체성의 흔들림 같은 것을 너무 쉽게 여긴 것이다.”

EU만 해도 갈수록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EU의 경우, 어느 정도는 각 국가별로 난민 문제의 처방을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잘 안 됐다. 이는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다. 내가 사는 사회가 불안정해졌는데 거기에 난민까지 온다는 격이다. 당연히 공포와 불안이 고조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유럽에 한정시켜서 보자면 사실 여기엔 유대인 문제가 잠재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이슬람권의 이민이 증가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유대인 문제까지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반(反)무슬림’에서 ‘반(反)유대주의’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갈 것인가’ 라는 것이 지금 유럽이 직면한 문제다. 유럽은 지금 고전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에 관해 특별히 비관적으로 보진 않는다. 이대로 배외주의나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 같은 문제로 비화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상황으로 치닫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당분간은 어느 정도 삐걱거릴 것이다.”

‘통일한국’을 위한 테스트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들. 이민과 난민 문제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있다.

“미국과 중남미와의 관계에서 이 문제는 국경으로 둘러싸인 국가라는 것, 특히 국경이 무엇인가를 조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민 문제는 자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이 국경 밖으로 진출해서 현지의 저임금노동자들을 국경 안으로 불러들이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글로벌화는 저출산 문제로 인한 인구 상태의 변화, 즉 선진국의 인구 문제와 관련돼 있다. 한국도 이미 손에 꼽힐 정도의 저출산 국가가 되지 않았나? 이런 변화가 나타날 때, 자기 나라로 들어오는 이민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잘 준비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사실 다양성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 버리기 쉽다. 그러나 사회가 가령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가 강하면 이민을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이민에 대해 우리 사회 안의 솔직한 감정과 마주해야겠다.

“이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딜레마를 마주하는 것이다. 이민과의 공존이란 어쩌면 사회의 체질을 재는 리트머스라 할 것이다. 마치 국경으로 둘러싸인 안정된 배에 우리가 타고 있는데, 바깥에서 ‘배에 태워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배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진정한 역량을 가늠해보는 시험대라고 본다.”

난민은 더 난해한 문제일 것이다.

“난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왔을 때 배외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난민의 모습을 두고 ‘4·3사건으로 인해 일본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과거 모습과 같지 않은가’라면서 사람들을 설득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강한 배외주의와 동시에 난민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려고 노력하는 양쪽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 시민의 융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과제다.

“오늘날 국가의 국경 관리 능력을 볼 때, 안전지대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 문제, 난민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 문제들은 글로벌화의 부산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의 역량과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역량을 시험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난민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면 앞으로 ‘통일한국’ 또한 어렵지 않을까. 동독에서 왜 네오나치가 나왔을까. 바로 ‘마르크(서독 통화)’의 힘으로 동독 사람들을 2류 시민으로 흡수시켜 버렸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만약 한국과 북한이 ‘통합’된다면 분명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한국 사회는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헬 조선’을 견디는 청춘들에게…


▎한 지방대학에서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헌혈캠페인을 했다. ‘피를 바치니 피땀 흘려 일할 일터를 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지금까지 [고민하는 힘] [마음] 등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아파하는 저서들을 펴냈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처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말은?

“아시아에서는 IMF시대 이후 일방적인 글로벌화가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바로 김대중 정권 때였다. 그때 경제 파탄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가지 손을 썼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상당히 많이 변했다. 무서울 정도의 격차가 생겼다. 어느 정도의 명목성장이 있을 때는 격차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지만 그 사이에도 실제로 사회는 점점 어려워져 갔다.”

한국에선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의 민주화운동이나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 운동 같은 것들을 전혀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같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서 자기 삶의 코스가 정해짐을 사춘기 때 이미 알게 된다. 이에 관해선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가문이냐,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지역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간토(도쿄와 그 주변부)지방이 아니면 도쿄대에 들어가기 힘들다. 서울대학교도 그렇지 않을까?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상승이 어려워졌다. 젊은 나이에 출세 코스에 들어서지 못하면 계속해서 지체되고 만다.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정규직으로 올라가기 힘든데 한국도 그렇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인 과잉 경쟁 사회, 기업에 의한 독과점이 있는 이상,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점점 더 어려울 것이다.”

‘3포세대’, ‘4포세대’란 말처럼 한국 젊은이들은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고 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젊은이들은 10년 뒤의 세상 같은 것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겨우 1년 뒤에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기에도 급급하리라 본다. 그러나 한국은 향후 10년 안에 세계 최장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 100세 시대의 삶, 실제적인 문제로서 100년 동안의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인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결국엔 자기가 미래에 어떤 삶을 살지에 관해서 아무런 이미지도 가지지 못한 채론 안 된다는 것이다.”

- 노수경 번역가·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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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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