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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유시민-심재철 누가 거짓말하나 

柳 “배신자 프레임이 그리 억울했나?”
沈 “이해찬이 동료들 신군부에 넘겨”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한때 운동권 한솥밥… 지금은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보수당 중진으로 갈려
군사정권 시절 폭압에 못 이긴 진술, 진위공방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도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0년 전 사건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인다. / 사진:연합뉴스
"하루에 진술서 100장을 쓴 적이 있다.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진술했다.”

4월 20일 유시민(60)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KBS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어떻게 작가로서의 재능을 찾게 됐느냐’로 시작된 이야기가 1980년 학생운동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온 얘기다.

당시 유 이사장은 계엄법 위반 혐의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고문과 협박을 당하며 장문의 진술서를 작성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를 잘 써서 비밀조직에 속한 동지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당시 유 이사장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심재철(61) 자유한국당 의원이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유 이사장이 진실을 왜곡하는 예능의 재능을 발휘했다”고 비판했다. 호적상 1958년생인 심 의원은 서울대 영어교육과 77학번, 1959년생인 유 이사장은 경제학과 78학번이다.

이후 심 의원과 유 이사장은 보도자료와 페이스북 글, 유튜브 방송, 일부 언론과의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전면전에 가까운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근 40년 전 이야기에 심 의원은 왜 발끈했을까. 당시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시민 때문에 피해 입어” vs “진술서는 다 창작”

지금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유 이사장과 심 의원은 39년 전에는 ‘민주화 동지’였다. 두 사람은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잘 알려진 민주화 운동 시기를 함께했었다.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던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경제학과에 다녔던 유 이사장은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다. 유 이사장이 대학 시절 공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학에 참여했는데, 이를 이끌어 준 사람이 선배인 심 의원이었다고 한다. 이해찬(67)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심 의원은 “동지들을 지켰다”는 유 이사장의 39년 전 이야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히려 유 이사장의 진술서가 근거가 돼 동지들이 지명수배됐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여러 차례 내고 유 이사장의 주장을 공격했다.

심 의원은 4월 22일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심 의원은 이 보도자료를 통해 “유시민 이사장의 당시 피체(被逮) 상황이 신군부에 상세 좌표를 찍어줄 만큼 절박했었는지 궁금하다”며 “80년 동료들에게 겨눠진 칼이 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수사국장도 감동시킨 문장력을 발견한 계기였다’고 공영방송 전파를 통해 자랑했다”고 비판했다.

또 “(80년) 6월 11일자 유시민 진술서에 언급된 77명 중 미체포자 18명이 6월 17일 지명수배됐고, 이 중 체포된 복학생 가운데 일부는 이해찬에 대한 공소사실의 중요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검찰과 경찰에게는 상세 지도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본 의원을 기소할 때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됐다”면서 자신도 유 이사장의 진술서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5월 6일에는 ‘국민께 진술서를 공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유 이사장의 진술서 원본 사진을 파일로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전지적 관점에서 관찰자적 시각으로 학우들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며 “그의 진술서에 내 이름은 모두 78번 언급됐다”고 했다. PDF 파일 형식으로 공개된 진술서는 ‘치안본부’ 양식의 서류에 자필로 작성됐다. 심 의원은 13쪽, 유 이사장은 90쪽 분량이다.

심 의원은 “당시 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기소 당사자였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13쪽을 썼지만, 다른 동료들은 2~5쪽 분량만 적어냈다”며 “최소한으로 진술하자는 불문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유 이사장은 혼자서만 90쪽을 적어냈다”며 “경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5월 7일에도 보도자료를 내고 “유시민씨는 (진술서를 통해) 드러난 학생 지도부뿐 아니라 복학생 9명의 행적을 상세히 기술했다”며 “유시민의 거듭된 거짓 해명이 유감”이라고 했다.

유시민 진술서 내용 봤더니


▎심재철 의원이 공개한 유시민 이사장 진술서의 일부. / 사진:심재철 의원실
유 이사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유 이사장은 자신의 진술서는 창작이었고, 자신의 진술서로 비밀조직은 보호됐다며 심 의원 주장을 되받아쳤다.

유 이사장은 5월 1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진술서 작성 뒤)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저희 비밀조직(서울대 농촌법학회) 구성원은 단 1명도 그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5월 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진술서는 앞부분부터 다 거짓말”이라며 “내가 1980년 3월 심재철 의원을 처음 만난 대목부터 완전히 창작이었다”고 말했다.

또 심 의원이 자신의 이름이 유 이사장 진술서에 기재됐고 이 때문에 기소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시위를 할 때마다 신문에 났던 심 의원이 나 때문에 기소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오히려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학생활동위원장이었던 이홍동, 그리고 나는 총학생회 간부 3역으로 진술서에 자주 나올수록 좋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를 쓴 것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학생을 사주해서 시위를 일으키고 그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잡으려 했다는 게 당시 조작의 방향이었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배후 없이 대규모 시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80년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피의자로 합동수사본부 조사를 받을 때 김 전 대통령과 학내 비밀조직을 지키기 위해 잘 알려진 학생회 간부의 명단을 내세워야 했다는 것이다.

이해찬 대표를 ‘민청협(민주청년협의회)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해찬 선배가 몇천 명이 보는 데서 내 멱살을 잡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진술하지 않기는 어려웠다”며 “다만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들었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유 이사장은 자신의 진술서 일부가 공개된 뒤인 5월 1일 팟캐스트 [알릴레오]를 통해 ‘밀고(密告)’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는 게 유 이사장 발언의 요지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추가 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①작성 시점 =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심 의원이 공개한 것은 자필 진술서”라며 “제가 추측하기에는 1980년 7월 중순 이후에 쓴 거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심 의원이 잡혀온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재차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개된 유 이사장 진술서엔 ‘1980.6.12 자술인 柳時敏(유시민)’이라는 자필이 남아 있다.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6.30’으로 적혀 있다. 즉 “심 의원 진술에 맞춰 썼다”는 유 이사장의 해명은 시간 상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②진술의 범위 = 유 이사장은 “학생 운동가 수칙에 따라 진술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첫째, 학내 비밀조직과 서클을 감추고 모든 일은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한다. 둘째,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특히 김대중 총재와는 절대 얽히지 말 것” 등이다.

하지만 공개된 유 이사장의 진술서에는 당시 운동권 내 여러 단체명과 모임명은 물론, 학생 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적혀 있다.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의 진술로 인해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 학우 가운데 당시 미체포 상태였던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됐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폭로와 반격


▎심재철 의원이 공개한 심재철 의원 진술서의 일부. / 사진:심재철 의원실
또 유 이사장 진술서에는 “‘민청협’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란 표현도 나온다. 민청협은 신군부에 반대하던 학생운동 단체이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다.

③밀고는 누가 = 유 이사장은 “(당시) 비밀조직의 전모가 거의 몽땅 다 들어가 있었는데, 거기에 ‘유시민 경제78 농촌법학회’가 딱 나와 있었다”며 “그래서 봤더니 우리 친구들 진술서였다”고 말했다. 농촌법학회 동료들이 자신을 밀고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심 의원은 “유 이사장 진술서에는 농촌법학회 핵심 인물들이 2명 포함돼 있다”고 했다. 즉 유 이사장이 먼저 농촌법학회 동료들을 누설했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심재철 의원은 5월 14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동료와 선후배 101명을 표로 만들어 (신군부에) 진술했다”며 관련 문건들을 공개했다. 심 의원은 이 문건이 이 대표가 작성한 자필 문건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심 의원은 5월 8일 “이 대표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처럼 ‘서울의 봄’ 학생운동 관련자 101명의 행적을 자백했다”고 언급했다.


▎심재철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해찬 리스트’의 일부. / 사진:심재철 의원실
심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대표가 진술서에서 ‘제가 본건(本件)을 위해 접촉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작성했다’면서 민청협 회원, 복학생, 재학생 등을 구분해 학생운동과 관련된 선후배 동료들의 전과, 직책, 주요 활동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A4용지 7쪽짜리 101명의 명단을 표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그림에 상당한 자료를 제공한 셈”이라고 했다.

그는 또 “유 이사장의 90쪽 서울대 학생운동권 상세 지도와 같은 진술서와 함께 이 대표의 277쪽 자필 진술서는 신군부의 학생시위를 통한 내란음모 조작에 일조했다”고 단언했다. “이 대표가 합수부에 제출한 101명 리스트에는 유 이사장이 지켰다고 해명한 서울대 비밀조직원 2명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명단 중 7명은 나중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피고인이 됐고 4명은 검찰 측 증인과 참고인이 돼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했다.”

심 의원은 이 대표가 101명의 민주화운동 인사 명단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진술서도 작성했다며 관련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심 의원은 “이 대표는 3차 진술서에서 5·17 내란 모의의 시발점인 애천모임에 대해 상세히 진술했다”며 “합수부의 의도대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 완성되는 데 일조하게 됐다”고 했다.

심 의원이 공개한 진술서에는 “본인 등은 4·19처럼 정부 공공기관을 장악해 정부가 전복되면 결국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날 모임도 그런 의도를 갖고 회의가 진행된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씨가 서울대 사회학과로 전화해 광화문 초원다방에서 만나러 가던 중 우연히 강○호를 만나 김홍일씨에게 강○호를 소개하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심 의원은 “이 대표의 진술은 공판 진술과 함께 모두 유죄로 판결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출범 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 재조명되자 이 대표는 언론을 통해 저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서 ”이 대표가 저보다 뒤늦게 잡혀 제 진술에 꿰맞춰져 혹독하게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이 대표가 저보다 6일 앞서 체포됐으며, 공판은 하루 먼저 받았다”면서 “이 대표의 허위주장은 상당한 전파력을 가졌고, 이후 저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 덧씌우기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또 “유시민 리스트에 나온 사람과 이해찬 리스트에 등장한 101명 중 20여 명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판결문 증거의 요지에 판시됐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증인조서 작성으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학생시위를 사실로 완성시킨 모 대학 S총학생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같은 편이면 검찰에 유리한 진술을 했어도 문제가 안 되지만, 다른 진영이라면 허위사실로 희생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버텼다는 얘기는 다 거짓말”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29일 국가균형발전 선언 15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유시민 이사장은 심 의원이 39년 전 ‘김대중 내란음모조작 사건’ 수사 당시 진술 범위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데 대해 “안쓰럽다”고 평가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5월 13일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누구도 그 당시 관련자들이 대놓고 그것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는데 왜 자꾸 본인이 꺼내나”라며 “그때 일이 이 사람에게 굉장히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게 트라우마가 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어 “심재철 의원의 발언을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저는 ‘본인이 주관적으로 매우 억울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심재철 의원이 지금 하는 행동이 해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서울역 집회를 자진해산한 것을 오로지 심재철 책임인 양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또 한국당에 가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신자 프레임이 있었다”면서 “자신이 한 잘못 이상의 비난을 누군가 한다고 생각하면 본인으로서는 억울하다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내 사그라질 듯하다 재점화되곤 하는 양측의 진실공방을 지켜보는 ‘옛 동지’들은 대체로 씁쓸한 입맛을 다신다. 특히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수사기관에 연행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나잇살 먹고 부질없는 짓들 한다”고 비판한다.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운동권 출신 한 정당 관계자의 말이다.

“군사정권 시절 수사관들이 연행자들의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너만 손해다’, ‘너만 안 불었다’는 식으로 서로 불신하게 만든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거다. 나중에는 수사관이 볼펜만 툭 굴려도 알아서 진술서를 쓰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오랜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인사도 “고문과 회유가 반복되면 누구도 버티지 못한다”며 “남들은 몰라도 ‘나는 버텼다’는 얘기는 다 거짓말일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인사의 뼈있는 지적은 계속됐다. “나 역시 군사정권의 독재에 맞서 목숨을 내놓고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 시절 그 일들을 지금도 가슴속에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39년 전 일을 끄집어내서 TV 예능프로그램 소재로 쓰는 게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생운동 경력 덕분에 훗날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왜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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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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