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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5월 25일 ‘복수 회견문’ 미스터리 전말 

이용수 할머니, 회견 전날 서울에서 박원순 만났다 

박원순 시장과 만나 한·일 학생이 함께하는 교육관 등 언급
서울서 수양딸과 회견문 다시 써… 3월부터 민주당 인사들 수시 전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5월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호텔 인터불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25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호텔 인터불고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열렸다. 윤미향 당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의정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불과 일주일을 남겨뒀던 만큼, 할머니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2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렸다. 회견장 뒤편으로는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을 비롯, 미래통합당 고위 관계자들도 자리 잡아 이날 회견에 쏠린 세인의 비상한 관심을 반영했다.

당초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은 이 할머니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익명의 취재원 A씨가 이날 발표 예정인 회견문을 보내왔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서혁수 대표가 5월 22~23일 이틀에 걸쳐 이 할머니의 구술을 글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겸하고 있었다.

기자가 입수한 회견문은 5월 19일 이 할머니 숙소를 기습 방문했던 윤 당선인의 행태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첫 장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윤 당선인이) 용서를 빌러 왔는데 뭐를 용서해달란 말도 없으면 이건 나를 놀리는 것밖에 아니”라며 불쾌한 기색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

오후 2시 30분경 이 할머니가 휠체어에 탄 채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할머니는 본격적인 발언에 앞서 종이로 출력해 가져온 회견문을 들어 보였다. 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기자들이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보여준 회견문은 기자가 미리 입수한 회견문과 달랐다. 윤 당선인에 관한 내용은 없고,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던 이 할머니의 개인사가 첫 장을 채웠다. 이날 회견을 서울에서 지켜본 이 할머니의 수양딸 곽모 씨는 회견 직후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나와 함께 만든 버전을 인쇄해 가져갔다”고 말했다. “5월 25일 아침 어머니가 서울에서 내려갈 때만 해도 서 대표하고 쓴 회견문을 읽겠다고 했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 할머니는 또 다른 회견문을 작성하기 위해 수양딸 곽씨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취재원 A씨는 “할머니가 5월 24일 저녁 수행인 박모 씨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고 밝혀 곽씨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 할머니는 왜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대구 숙소에서 서울까지 300㎞에 가까운 장거리 이동에 나선 걸까? 또 5월 23일 서 대표와 이미 회견문을 작성한 상태에서 왜 서울의 수양딸 곽씨와 새로 회견문을 만든 걸까? 5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빚어진 ‘복수 회견문’ 사태는 이 할머니를 둘러싼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로 여겨졌다.

“위안부 교육·연구기관, 서울시와 논의”


▎이용수 할머니가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에 앞서 미리 준비해온 회견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시간여에 걸친 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이 회견문 공유를 요청하자, 서 대표는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회견문 버전이 여러 가지가 있다”며 “이 할머니로부터 회견문을 받아 시민모임 홈페이지에 올리겠다”고 해명했다. 서 대표의 해명에 기자들은 “회견문이 여러 개인 게 말이 되느냐”며 한동안 항의를 이어갔다.

이후 공개된 ‘수양딸 버전’ 회견문은 미리 입수했던 ‘서혁수 버전’과 사뭇 결이 달랐다. 서혁수 버전에서 이 할머니는 윤미향, 수요집회,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등을 차례로 비판하는 데 지면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러나 수양딸 버전에서 이 할머니는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곤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는 정도로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 서혁수 버전과 달리, 비판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셈이다.

곽씨가 이 할머니와 함께 작성한 회견문은 일곱 가지 새로운 활동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중에 나온 구체적인 기구·기관은 두 가지다.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당했던 역사를 배우고 인류의 나아갈 길을 고민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가 그것이다. 나머지는 ‘피해자들의 조속한 명예 회복’,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 등 새로운 위안부 운동이 갖춰야 할 운동 방식과 목표를 제안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내용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기자가 수양딸 곽씨와 5월 21일 오전 동대구역 인근에서 만났을 때, 곽씨는 한 장의 문서를 보여줬다. 서울시를 상대로 ‘대안 모색을 위해 만났으면 좋겠다’는 취지가 쓰인 제안서였다. 5월 7일 1차 기자회견 이후 곽씨와 함께 이 할머니 곁을 지켰던 종교계 인사 B씨의 명의로 작성됐다.

곽씨는 5월 중순경 박 시장 측 인사들과 만나 ‘새로운 운동 방식’과 관련,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곽씨는 ▷위안부 문제만을 다루는 대학원 과정(혹은 대학원대학) ▷시민단체의 기부금·보조금 운용에 있어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심사 기구 등 두 가지를 핵심적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두 가지 모두 ‘수양딸 버전’ 회견문에 등장하는 항목들이다. 이에 관해 곽씨는 “박 시장 측 인사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곽씨와 B씨의 구상은 얼마 가지 못해 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5월 19일 저녁 윤미향 당선인이 이 할머니의 호텔 방을 예고 없이 방문한 일이 다음 날 세간에 알려진 뒤부터, 박 시장 측에서 제안에 관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6월 16일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대학 등)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제가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

곽씨는 “그 사람들 다시는 안 볼 것”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5월 19일 만남을 주선했던 것으로 알려진 시민모임 관계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또 이 할머니에 대해서도 “더 이상 내 말은 안 듣겠다는데”라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5월 중순경부터 윤 당선인이 이 할머니를 ‘기습 방문’한 5월 19일까지의 과정을 복기하면, 사정은 한층 복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미향 사진 촬영 불발 배경


▎6월 6일 대구 중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11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서 대표와 2차 회견문을 작성할 당시 “안 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서 대표 역시 “그렇게 하자, 안 해도 아무 문제 없다”며 회견 취소를 권유했다.

이 할머니의 측근들 사이에선 건강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필·배후 의혹’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첫 기자회견 이후 6일 만인 5월 13일, 이 할머니 명의의 입장문을 낼 당시에도 일각에서 “이 할머니가 직접 쓴 것이 맞느냐”는 반응이 한 차례 나온 바 있었다.

이 할머니가 주변 만류에도 2차 회견을 강행한 데는 5월 19일 윤 당선인의 ‘기습 방문’이 결정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윤 당선인의 방문을 전해 들은 A씨는 “할머니가 (윤미향 당선인이 사퇴해야 한다는) 뜻을 거두시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날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과 10분여 만나는 동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지근거리에서 이 할머니를 도와온 또 다른 조력자 박모 씨는 5월 20일 월간중앙과 만나 전날 벌어진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박씨는 5월 25일 회견에서 이 할머니의 휠체어를 몰며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설명을 근거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5월 19일 저녁이 할머니가 머무르는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윤 당선인 일행이 찾아왔다. 윤 당선인 보좌관으로 보이는 남성, 그리고 위안부 연구를 오랜 기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학계 인사 김모 교수가 윤 당선인과 동행했다.

같은 시각 박씨는 시민모임의 전직 관계자 2명을 자택으로 데려다주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터였다. 그사이 대구 지역 여당 쪽 인사의 가족이자 시민단체 대표인 강모 씨가 이 할머니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강 대표는 ‘대구여성의전화’ 임원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박씨에게 빨리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윤 당선인이 이미 방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급히 차를 돌린 박씨가 호텔 방 앞에 도착하자, 윤 당선인의 보좌관으로 보이는 남성과 김 교수가 막아섰다. 박씨는 “내가 이 할머니를 계속 모셔왔다. 비켜서라”고 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 할머니의 떨리는 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에게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내려오라’고만했다”고도 말했다.

이 할머니는 2차 회견 다음 날인 5월 2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만간 기자회견을 할 때 오너라’ 하고 나갔는데, 여러 사람이 밖에 있었다. 윤미향이 한 번만 안아달라고 그러기에 ‘오냐 이게 마지막인데 안아주지’ 하고 안았다. 그런데 안았을 적에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거기 아들(조력자 박씨)이 들어와서 못 찍게 했다.”

박씨에 따르면, 이때 이 할머니와 윤 당선인의 포옹 장면을 촬영하려 했던 인물은 이 할머니를 호텔 방까지 수행했던 강 대표였다. 강 대표가 이 할머니 옆에 있을 때 윤 당선인이 찾아온 것도 공교롭다. 윤 당선인의 이미지를 개선할 목적으로 지역 여성계 등이 계획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만남을 주선한 것은 서 대표가 운영하는 시민모임이라고 언론에 알려졌다. 박씨가 부득이 이 할머니 곁을 잠시 비웠던 것은 이 단체의 전직 관계자들을 자택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시민모임의 서 대표가 직접 이날 만남을 주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각에선 “윤 당선인을 적극 지지해온 최봉태 변호사가 실제 역할을 맡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변호사는 1997년 시민모임을 창립한 주역이다. 이 할머니는 5월 13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최 변호사를 겨냥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등 격한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윤미향 당선인이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에 지명된 이후) 어느 날 아침 최봉태가 전화를 해와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시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600㎞ 장거리 오간 이 할머니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할머니는 지난 6월 6일 대구 중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 행사에서 최 변호사와 재회했다. 이 자리에서 이 할머니는 “우리를 (시민모임 창립 이후) 26년이나 팔아먹은 저 악독한 최봉태 변호사는 악인”이라며 “어디 여기에 와서 술잔을 부어, 건방지게”라며 격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양딸 곽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의 제안(서울시와의 협력)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실망한 채 5월 19일 전에 할머니 곁을 떠난다. 이런 배경에서 5월 21일 곽씨가 “이제 할머니를 안 만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적어도 나흘 앞둔 2차 기자회견 때까진 곽씨가 관여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2차 기자회견 하루 전날인 5월 24일 저녁, A씨로부터 의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할머니가 앞서의 조력자 박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다음 날 큰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92세 고령의 몸을 이끌고 300㎞에 가까운 거리를 달려왔을 때는 중요한 계기가 있을 거란 짐작이 가능했다. A씨는 잠시 끊어졌던 박 시장 측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진 것 아니겠냐는 주장을 내놨다. 곽씨를 포함한 이 할머니 일행이 5월 24일 밤과 이튿날 아침, 두 차례에 걸쳐 박 시장 측 관계자들과 만난 것으로 파악된다는 말이다. 또 두 번의 만남 가운데 한 번은 박 시장이 직접 참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합의 내용을 어림짐작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곽씨가 5월 중순 박 시장 측과 논의하던 ‘위안부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교육·연구기관’ 등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회견문을 다시 작성하려고 했다면, 이 할머니가 직접 서울로 올라온 배경이 다소간 설명된다.

이런 추측이 사실일 경우, 5월 7일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이번 갈등이 생산적인 결론을 내는 데 적잖은 보탬이 될 수 있다. 이 할머니는 5월 13일 입장문에 이어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도 “30년간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점을 누차 ‘새로운 위안부 운동 방식’의 원칙으로 밝혀온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8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을 이어왔던 만큼, 관련 기관을 새로 만들어도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 인사 전화에 “윤미향이 시켰겠지”


▎지난해 8월 14일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및 서울 기림비 제막식에 진선미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과 이용수 할머니,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이 참석해 있다. / 사진:뉴시스
취재 결과, 박원순 시장은 2차 기자회견 하루 전날인 5월 24일 이 할머니와 직접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께서 먼저 만나자고 말씀하셨다”고 박 시장은 6월 16일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자회견 전날인 5월 24일에 이용수 할머니와 만났다고 하더라.

“할머니와 잘 아는 사이다. 할머니께서 힘들어하시던 중 만나자고 요청하셔서 만났다. 저는 말씀을 한번 쭉 들어드렸다.”

2차 기자회견 전날 보긴 한 건가?

“할머니가 한번 만나자고 하셔서. (5월 24일에?) 예, 만난 적은 있다.”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가 그걸 논의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또 그런 걸 풀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한국과 일본 학생이 함께할 수 있는 교육관 정도…. 그 외에는 들은 게 없다. 그날 만남에 다른 큰 의미는 없었다. ‘NGO(비정부기구)의 투명성은 필요하지만 운동의 정당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원론적 수준의 얘기만 했다.” 정리하면 5월 24일 만남에서 곽씨가 구상하는 정도의 구체적인 논의는 오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편, 이 할머니는 윤미향 및 정의연과의 갈등이 증폭될 즈음 민주당 유력 인사들로부터 번갈아가며 연락이 왔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당초 연기되기는 했지만 3월 말 첫 기자회견을 준비했었다. 5월 13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이 할머니는 “(3월 말 무렵) 박원순한테 전화 오고, ○○○(의원, 전 여성가족부 장관)한테도 전화 오고, ○○○(의원)에게도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이에 ‘윤미향(당시 비례대표 지명자)을 잘 봐달라는 취지였는지’를 묻자, 이 할머니는 “윤미향이 시켰겠지”라며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기자회견을 한 뒤부터는 연락 드린 적 없다”고 선을 그으며 “옆에 있던 최봉태 변호사와 한 번 통화한 적은 있는데, 이 할머니와 직접 통화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시 시계를 앞당겨 5월 25일 오후 5시경 시민모임은 “오늘 기자회견 관련 공식 기자회견문은 없다”라고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알렸다. 이와 관련해 서 대표는 “할머니가 이날 공개된 회견문이 우리가 정리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화를 많이 내셨다”며 “그러나 육성으로 밝힌 내용은 대부분 우리가 준비한 구술문과 일치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수양딸 곽씨는 “어머님이 화를 내셨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어머님을 대구로 모시고 간 분이 전날 작성한 회견문 파일을 보내달라고 해 전달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곽씨는 이어 “어머니의 뜻은 운동 방식을 바꿔보자는 것 아니냐”라며 “윤 의원을 공격하는 식으로만 가면 어머니가 의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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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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