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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김정은 위임통치 논란 왜? 

권력 이양인가, 권한 분산인가 

국정원발 ‘김여정 위임통치설’에 평양 권력 급변 상황 여부 초긴장
9년 통치 피로 누적된 듯… 경제위기 극복하려 당·내각 책임 강화 포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파주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나란히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역시 박지원 신임 국정원장의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지난 8월 20일 국정원장의 국회 정보위 보고 내용은 다음 날 주요 조간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국무위원도 지면 확보에서 조간 헤드라인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조간신문의 머리말 기사를 챙겨 동교동으로 출근해 김대중 전 대통령(DJ) 의중과 여론의 향배를 가늠하던 시절, 언론의 속성과 생리를 리얼하게 체득한 신임 국정원장의 정무 감각은 일반 국무위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곡동 입성을 알리는 개업 신고를 밋밋하게 갈 수는 없다. 어떤 선정적인 워딩을 사용해야 조간신문들이 큰 제목을 뽑는지 꿰뚫지 않고는 던질 수 없는 승부수였다. 어느 언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위와 통치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뉘앙스를 내포한 국정원장의 국회보고, 그것도 문서보고를 일급 뉴스로 다루지 않겠는가?

필자와 친분이 있는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국정원에서 준비한 파워포인트 형식의 문서가 대충 30쪽가량인데, 그중 10쪽이 위임통치 부분이었다”며 “코로나19, 수해, 핵미사일 등 이런 것들에 비해 위임통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고 귀띔했다. 신문기사로 표현하면 보고의 ‘야마’(핵심)가 위임통치였다는 의미다. 보고서의 3분의 1이 위임통치 내용이었고, 총괄적으로 김여정 제1부부장, 경제 및 군사 분야의 김덕훈 신임 내각총리, 최부일 부장 등 실세들의 역할 등이 나열됐다.

박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첫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국정 운영의 권한 일부를 이양하는 등 위임통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이 아직 후계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 제1부부장이 2인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정원은 김여정 제1부 부장의 담화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암송하게 시킨 것은 거의 후계자급에 맞먹는다며 김여정의 2인자 역할을 입증하는 특이한 사례로 제시했다.

김정은의 위임통치는 9년간의 통치 스트레스 경감,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 분산 차원에서 단행됐다고 한다. 김여정은 대남·대미 전략을 담당하고 국정 전반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경제와 군사 분야도 전문 관료들에게 권한이 이양됐다고 한다. 김정은이 건강 문제가 없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후계자로 결정되지 않은 여동생에게 2인자 역할을 맡겼다는 다소 알쏭달쏭한 표현에다 ‘위임통치’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언론에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대북 동향 분석 내용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위임통치’라는 용어는 ‘무리한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정치인 출신 신임 국정원장 스타일 때문에 대북 동향 메시지에 신중해야 할 국정원이 ‘오버’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임통치’ 용어 쓴 박 국정원장의 속내는?


▎8월 20일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첫 업무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국정 운영의 권한 일부를 이양하는 등 위임통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 사진:오종택
임명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추진 대가에 대한 비밀 합의문이 존재하는가로 곤욕을 치른 박 원장은 내곡동 정보기관장으로서 화려한 데뷔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산전수전 및 공중전까지 경험하고 정보기관의 총체적인 책임을 진 박 원장이 ‘위임통치’라는 단어가 갖는 파급력을 간과했을 리 없다. 박 원장은 국정원의 평양 인사이드 스토리 보고가 실시간 확인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증권가 지라시의 ‘아니면 말고’ 식은 곤란하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국정원장의 보고와 관련해서 우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박 원장의 보고는 정보의 정치화 사례로서, 북한 내부 사태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지적이다. ‘위임통치’의 의미에 대해 여당은 물론이고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으로부터도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진위가 논란이 됐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8월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당·정·군을 공식적·실질적으로 장악한 상황에서 분야별 ‘역할분담’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시 같은 날 국방위에서 ‘김 부부장이 실질적으로 조직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가’라는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의 질의에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당·정·군에 대한 영도 유일 체제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고, 다만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역할이나 책임을 분산시켜서 (통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안보 관계 장관의 발언은 국정원장의 보고와 결이 다르다. 북한 통치 체제의 근간인 유일 영도체제의 정점에 있는 김정은의 권력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 북한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2월 1회, 4월 1회, 5월 1회, 6월 2회, 7월 2회, 8월 5회, 그리고 9월에는 3회에 걸쳐 태풍 대책 등 주요 공식 회의를 주재하는 등 권력 작동은 정상적이다. 김 위원장은 8월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경제 전략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당 7차 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나타난 편향과 결함들을 전면적으로, 입체적으로,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는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요컨대 김정은이 경제발전 전략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북한 통치체제의 특성상 매우 이례적이다. 김일성 주석 시절이던 1993년 제3차 7개년 전략의 실패를 인정한 이후 처음이다. 이는 김정은의 위임통치 주장과 맥락이 다르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최고 존엄’이 추진한 모든 정책은 무오류이며 과오는 없다. 경제계획은 절대 실패가 없으며 목표 기간에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면 완충기라는 연장 기간을 두어서 완수하면 된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지만 김정은의 셀프 결단 없이는 실패를 자인할 수 없으며 절대 권력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가능하지도 않다. 위임통치 표현과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김정은의 고해성사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최고지도자 유고 때와 같은 비상시에만 권력 위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임’이라는 단어는 너무 나간 표현이다.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위임통치를 보고한 시점은 오전 평양발 뉴스로 김 위원장이 참석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6차 전원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채 12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번 6차 전원회의에서는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 개최라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발표했고,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연설에서 “당 제8차 대회에서는 올해의 사업정형과 함께 총결기간 당 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 해의 사업방향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김정은의 절대권력 이상 징후 없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월 19일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으로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원장의 정보위 보고는 김정은의 전원회의 연설 등을 반영하지 못했다. 평양 권부 내부의 돌아가는 상황과 여의도 국회 정보위에 보고되는 국정원 보고가 시차와 편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 실무자들이 관련 내용을 원장에게 맞춤형으로 보고하면서 정보 왜곡(intelligence distortion)이 생겼다는 것이 전직 국정원 북한 담당자들의 진단이다.

정보 왜곡은 정보의 정치화로 연결된다. 1991년 미 상원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게이츠(Robert M. Gates)를 DCI(미국 정보공동체 의장)로 인준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정치화가 큰 쟁점이 됐다. 게이츠는 CIA 분석 부서를 관장하는 부국장 경력을 가졌는데, 분석관으로서 게이츠가 레이건 행정부의 반소련 정책을 지지하는 성향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상원 청문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현대국가정보학' 참고, 전웅 저, 2015) 하지만 정보현장에서 분석관의 보고서가 정보기관장이나 통치권자의 의향에서 비켜나기는 쉽지 않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동정은 7월 27일 전국노병대회 참석 이후 사라졌다. 위임통치의 주인공이 9월 10일 기준으로 달포 이상 두문불출이다. 그녀의 잠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차적으로 견제구가 들어온 것이다. 김여정에 대한 과도한 시선 집중을 조절하기 위한 김정은의 특별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과거 소련의 스탈린 시대나 중국 마오쩌둥 시대는 물론 현재 푸틴이나 시진핑 주석의 지도체제에서 2인자라는 단어는 사용조차 어렵다. 마침내 사회주의 권력에 2인자는 없다는 전통으로 제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리 여동생이지만 권력 전면에서 2인자 운운하는 평가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을 수 없듯이 평양 주석궁에서는 절대 불가다. 근신은 아니더라도 자숙하는 잠행은 불가피하다.

한편으로 그녀의 잠행은 실세 역할을 수행하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평양 권력에서는 막후 인물들이 핵심 역할을 한다. 평양 권부에서는 책임자보다 부부장들이 실제 일을 한다. 김 위원장은 9월 5일 태풍 마이삭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피해 대비 소홀의 명분으로 김성일 함경남도 도당위원장을 해임했다. 남한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도당위원장을 천재에 해당하는 피해를 내세워 해임하는 극약 처방은 절대 권력의 통치자만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애민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최정예수도당원사단을 보낼 것을 지시했다. 9월 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1만2000명의 복구 인력과 물자가 3일 만에 준비돼 수십 개의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함경도 피해 현장으로 출발하는 행사는 1960년대 중반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에 볼만한 광경이다. 문혁 당시 마오쩌둥의 지도력처럼 통치체제가 일사불란하고 김정은의 지시가 확고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신임 국정원장의 과욕이 부른 해프닝이었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초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남도 현장을 방문해 대비 소홀을 명분으로 김성일 함남 도당위원장을 해임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원장의 위임통치 보고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은 더욱 공세적이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인 김기현 의원은 8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습 독재인 북한 체제 특성상 위임통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뤄진 적도 없다”면서 “겨우 스트레스 때문에 권력을 위임했다는 박 국정원장의 ‘썰’을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 정보위는 국정원의 독점적 대북 정보 권한을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북한 황강댐 무단방류 하나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대북 정보력으로 북한 내 권력의 깊은 내막은 어찌 그리 속속들이 잘 안다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갑자기 위임통치 운운하며 마치 북에 권력 변동이나 유고 사태가 생긴 것처럼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호도해버린 것은 전적으로 박 원장이 아직도 정치의 때를 벗지 못하거나 언론의 관심에 집착하는 ‘관종병’ 때문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반응이다. 민주당 김병기 정보위 간사는 “위임통치는 적당한 용어는 아니었다”며 “김여정이 대미·대남 분야를 위임통치 하는 게 아니라 총괄하는 것일 뿐”이라고 논란을 진화시키는 차원에서 부연 설명했다.

다음은 신임 국정원장의 보고 저변에 깔린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긍정적인 지적이다. 특히 북한 내부의 상황이 위임통치 수준이라는 해석도 균형 있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국내는 물론 지구상에서 데일리 베이스로 기천 명의 담당관들이 평양과 주변을 지켜보는 곳은 국정원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권과 원장의 성향에 따라 다소간의 정보편향(intelligence bias)은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 분석관들의 노하우와 직업적 충성도는 무시할 수 없다.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과 어렵게 촬영한 위성사진 해석을 두고 수백 명이 달라붙어 전과 후를 비교하는 기관은 역시 내곡동뿐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수많은 정치적 굴곡이 있었지만 역시 평양 정보의 원조는 국정원이다.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강인덕 전 장관은 평양 출신으로 중정 북한국에서 잔뼈가 다져졌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앞두고 북한정보국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옛날 평양제일고보 동창들이 김일성 체제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파악해 이를 대북정책 추진에 참고했다. 지난 60년 동안 축적된 북한 정보 역량에 비하면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북한의 대남전담 기구인 통전부 역시 얼굴마담 격인 통일부보다 실제 물밑에서 대북 구도를 잡는 국정원을 의식하며 대남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신임 국정원장이 평양 권부에 대한 정밀 분석 없이 언론 보도용으로만 ‘위임통치’ 보고를 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한편으로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력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국정원장 보고의 의도와 상관없이 평양 내부의 상황을 다각도로 진단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정원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북한 권력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에게 중대한 건강 이상이 생긴 유고 상태나 수렴청정은 아니지만 ‘백두혈통’인 김 제1부부장이 국정을 중간에서 총괄하면서 명실상부한 문고리 권력이 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던 1인 지배의 북한 체제에서 이는 드문 변화로서 후계구도의 가시화와 연계하는 평가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9년간의 통치 스트레스라는 표현은 건강과 연계시킬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최대 위협은 ‘건강’


▎지난 4월 김정은 신변 이상설이 불거지면서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정은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도한 CNN 뉴스.
세상에 업무 스트레스 없는 직은 없다. 궤양성 대장염으로 지난 8월 말 7년 8개월간의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를 제 손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과 헌법 개정 등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퇴임하는 심경을 ‘단장(斷腸)의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간에 정치인이 건강 문제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일은 흔치 않다. 아베 총리는 퇴임 후지만 벌써 심복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총리직에 앉혀 포스트 아베 시대에 상왕 정치를 하려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사임은 하지만 정치인 은퇴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치인의 권력욕은 살아생전에 종식될 수 없다는 주장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하물며 75년째 3대 세습 통치를 이어가는 김정은 입장에서 건강 문제가 아니고서는 권한을 자발적으로 이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고모부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김정남 이복형 등 핏줄은 말할 것도 없고 면종복배라는 죄목으로 숙청당한 관료와 주민들의 도전을 감안할 때 한시도 권력의 틈을 보일 수는 없다. 권력의 균열은 도전으로 이어진다. 통치 스트레스는 건강 문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국정원도 김정은의 건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그는 4월 초 잠적해 5월 1일 순천인비료 공장 기공식에 담배를 물고 나타났다.

4주 동안 김정은의 잠행은 역시 건강 이외의 변수와 연결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위중한 상태라는 태영호, 지성호 등 탈북자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적은 너무 앞서간 정치적 희망사항이다. 다만 최소한 지도자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안정이 필요하다는 관측은 가능하다. 중국 정보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코마(coma, 혼수상태)라는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의 주장도 현재로서는 근거가 부족하다. 지난 2011년 김정일 사망 전까지 수년간 김정일의 가게무샤(대역)가 활동했다는 일본 와세다대학의 북한 전문가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의 주장은 과도한 확증편향의 사례로 가짜뉴스였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김정은의 건강은 관찰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수해대책 현장에서도 여전히 담배를 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 170㎝의 키에 몸무게 130㎏에 달하는 김정은의 신체 조건상 혈관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지난 4월 잠적 기간에 심장 스텐트(stent) 수술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서울의 웬만한 종합병원에서 스텐트 수술은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없으면 일주일 이내에 퇴원한다. 비만 상태의 환자는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스텐트 수술 후 당료와 고혈압 등의 후유증으로 입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의사들의 진단이다. 김정은이 아직은 36세이지만 주치의는 그에게 절대 안정과 휴식을 권고하였을 것이다.

김정은 일가의 심근경색증 가족력은 의학적으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묘향산 별장에서 심근경색으로 82세에 사망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2010년 8월 1차 스트로크(뇌졸중)로 쓰러졌고, 2011년 12월 69세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물론 김정은은 아직 혈기왕성하고 수해현장을 방문해 SUV에서 지시를 내리지만 10대에 시작된 오랜 흡연 이력과 비만은 의학적으로 요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김여정의 역할과 그가 신임받는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0일 트위터에 “김정은은 건강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사진:트위터 캡처
한편 후계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김여정의 역할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김여정은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며 조직지도부를 장악했다. 북한의 2만여 당·정·군 간부 인사를 스크린하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본부당 위원장을 맡아 당의 내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김여정의 보직과 역할은 김정일이 1974년 김영일, 김평일 등 이복동생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김일성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낙점되어 1980년 6차 노동당 대회에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승인되는 6년 기간의 행보와 유사하다. 당시 김정일도 조직지도부장을 맡아 ‘사람관리’에 들어갔다. 4월 건강 이상설이 나온 김 위원장에게 언제든지 다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여정이 유고에 대비하는 연습 기간이다.

유사시에 대비해 김 위원장과 남매간 역할 분담 통치의 경험을 축적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건강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 김정은은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위기와 코로나 확산 및 수해·태풍 피해 등 삼중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기친람식 통치보다 실무자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9년간 현지지도에서 실무자들의 군기를 잡는 미주알고주알 방식은 이제 실무자들이 담당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정은이 현장에 나타나면 관료들은 다른 지역의 예산과 자재를 동원해 공사를 완공하는 등 움직이는 척하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는 지역은 감감무소식이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고 강남을 누르면 다른 지역이 오르듯이, 북한에서도 풍선 효과(balloon effect)는 김정은 ‘깨알 지시’의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다만 김여정은 핏줄인 오너(owner)의 신임을 받는 관리자(CEO)로서 오너의 자제들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권력의 뒤편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김정은의 자녀는 10살 미만으로 아직 권좌를 이어받는 황태자 수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김정은 유고 시 김여정 이외에는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이을 핏줄이 없다. 친형인 김정철(38세)은 영국의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이나 보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철저한 감시상태에 있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다. 김정철은 조선시대 양녕대군의 운명과 유사하다. 남성 위주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무장한 사회주의 독재 체제에서 32세의 여성이 홀로서기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 그녀의 역할은 김정은의 신임으로 폭과 깊이가 간단치 않다. 지난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 전까지 3주간 쏟아진 김여정의 파상 공세 담화는 김정은의 절대적인 권한 이양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월 4일 위임통치 보도에 대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의 최초 공식입장이다. 단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추측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는 여전히 김 위원장이다”라고 했다. 김정은의 통치방식은 국정을 총괄적으로 챙기되 분야별 관리는 중간관리자를 통해 수행하겠다는 정책 추진방식의 변화로 분석된다.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경제정책의 전권을 맡겼다. 군인 출신 지도자가 경제 전문성을 갖춘 참모에게 힘을 실어줘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사례를 김정은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북한의 총체적인 난국 중에서 경제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대북제재로 인한 수출입 감소, 코로나로 인한 고립 및 수해 등 삼중고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북한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마이너스 8.4%로 전망했다. 경제는 박봉주 국무부 부위원장과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김덕훈 내각 총리가 담당한다. 현장 관리 권한을 부여하면서 책임도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8월 30일 자 북한 [노동신문] 1면에는 특이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1면 머리기사로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가 각각 황해남도의 태풍 피해 복구 상황을 현지 시찰했다는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두 사람이 태풍 피해 현장에서 현지 관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들도 함께 게재됐다. 지금까지 [노동신문] 1면은 북한의 지도자 중 김정은의 공개 활동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해외 순방외교를 소개하는 데에만 할애됐고, 내각 총리나 당 간부들의 공개 활동은 항상 2면이나 3~4면 등에 소개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북한 권력의 상징 ‘[노동신문] 1면’이 달라졌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는 여전히 김 위원장이다”라며 위임통치설을 일축했다.
다시 9월 1일 자 [노동신문] 1면 상단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리병철,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의 태풍피해복구사업 ‘지도’ 사진이 게재했다. [노동신문] 1면은 김정은만이 등장할 수 있는 특별무대다. 권력층이 1면에 등장하는 기사는 양날의 칼이고 당사자들 역시 본인들의 활동이 1면에 게재된 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언제든지 황천길에 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권한과 책임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동전 앞뒷면이다.

지난 1997년 고난의 행군 시절 서관희 농업상은 식량 생산량 부족의 희생양으로 평양시 외곽 공터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했다. 4년째 계속된 자연재해와 비료 등 농자재 부족이 원인이었지만 죄명은 남한 안기부에 예속된 첩자, 미국의 고용간첩이었다. 실무책임자들은 권력 숙청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에 취하기보다 성과 달성에 밤잠을 설칠 것이다. 한정된 예산에 코로나 및 수해 등으로 총체적 경제난국을 탈출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업무는 최종 결정 권한이 있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관장한다지만, 이런 위임통치는 과거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인 만큼 향후 김정은과 김여정의 행보에 관심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북한 권력 구도 변화에 대한 우리 정보당국의 공개적인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위임통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평양 통전부는 국정원과 문재인 정부 잔여 임기 16개월 동안 한 번은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만큼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경축 미사일 발사 여부에 고심 중일 것이다. 정중동 속 남북 정보당국 간의 물밑 샅바 싸움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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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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