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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남북관계 전망 

트럼프, 김정은의 동상이몽 속, ‘운전자 문재인’ 소명은 경각에··· 

北,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 지원 기대 못 미치자 새판 짜기 나서
선거 앞둔 트럼프와 경제 위기 처한 김정은의 ‘직접 대화’ 가능성도


▎지난 6월 17일 조선중앙TV는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북한이 6월 전격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건립·보수에 170억원, 3년간 운영자금 168억원까지 포함하면 총 338억원이 들어갔다. 외벽이 완파되어 사용이 어려운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는 약 530억원의 남한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연락사무소는 토지만 북한의 소유일 뿐 건설비는 남측이 모두 부담했다. 폭파로 날아간 국민 세금은 최소 868억원에 달한다.

특수한 남북관계의 외교공관 역할을 하던 장소는 개관 2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건물과 함께 신뢰도 날아갔다. 남북 양측의 장관급 인사가 참석해 거창한 개관식을 하며 24시간 365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고 정부가 선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달이 났다. 처참한 잔해와 파편 속에서 망연자실할 틈도 없이 다음 단계의 도발이 무엇인지 전전긍긍하던 청와대는 일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순풍의 남북관계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전직 통일부 장관 등과의 오찬에서 그동안에 기울인 노력을 감안할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서울과 평양 간 합의는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고 무당이 작두 위에서 아슬아슬한 칼춤을 추는 것이 남북관계의 현주소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을 것이다.

최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2인자로 부상하고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원색적인 대북전단 비난을 시작으로 북한은 6월 9일 남북 통신선 차단과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대남전단 살포와 금강산·개성공업지구 군대 전개, 비무장지대 민경초소(GP) 진출 등을 잇달아 예고했다. 이런 조치를 단계별로 대내외 매체에 공개하면서 대남 비난 여론몰이도 동시에 펼쳤다. 김 부부장은 4대 군사행동 카드를 흔들며 대남 삐라와 확성기 시설 설치를 예고함과 동시에 지난 1994년 3월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구사한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꺼내 들었다.

공포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필자는 시민들이 물과 라면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CNN 서울발 보도에 전쟁 위기를 외국에서 실감했다. 결국 6월 들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격 방북, 대동강에서 김일성과 뱃놀이를 하며 협상으로 문제를 풀기로 약속하고 그해 가을 제네바합의(Geneva Agreement)를 도출했다. 사반세기가 지난 2020년 6월에 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극단적인 행태와 발언으로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 패턴은 정권의 속성상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반세기 만에 다시 등장한 ‘서울 불바다론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괴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9월 문을 연 평화의 산물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역시 북한은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후 김 위원장의 명의로 강공모드를 유보했다. 김여정의 거친 비난 담화 이후 20일 만에 일단 ‘치고 빠지는’ 롤러코스터 전략으로 사태를 관리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조변석개(朝變夕改) 전술이다. 남측을 압박할 군사행동은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며 김여정은 한발 뺐다. 그녀는 대남 압박과 공세를 주도한 배드캅(bad cop)의 충직한 역할을 1단계로 마무리하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슬그머니 공을 넘겼다.

김정은은 6월 23일 이례적으로 화상으로 개최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며 굿캅(good cop)의 유연한 행태를 보였다. 남매간에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김정은의 대범하고 통 큰 이미지를 관리하며 남측을 졸지에 을(乙)의 관계로 전환하는 현란한 변칙 전술이다. 북한은 재설치 사흘 만인 6월 24일 30개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대부분 철거했다. 우선 ‘폭파 리얼리티 쇼’라는 극단적 행동의 배경에 대한 추론은 뒤로 미루고 3주간 과속했던 북한이 공세를 멈춘 이유부터 분석해보자.

첫째,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 일단 숨고르기를 하겠다는 의도다. 폭파 동영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자평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최고조의 순간에 군사행동을 유보함으로써 남한은 물론 미국에 양보와 자제력을 발휘한 만큼 상대가 보상하게 만드는 외교 책략이다. 벌써 정부 여당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배상청구 요구는 온데간데없고 한국전쟁 종전선언, 한미워킹그룹 해체 등 평양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들이 공론화하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폭파가 북한 땅에서 일어난 만큼 도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예고와 달리 이쯤에서 폭파쇼의 1단계 막을 내리는 것이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판단했다. 동북아 국제정치의 이단아 김정은의 존재감을 대내외에 확실하게 과시했다는 측면에서도 평양으로서는 ‘이문이 남는 장사’로 평가할 것이다.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과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등 충격적인 폭파쇼는 북한의 연출 노하우가 축적되어 시청률이 보장된 흥행 대박 드라마였다. 현주건조물(現住建造物) 방화 및 폭파 소실 범죄의 전과가 화려한 평양은 비주얼이 확실한 영상물로 남측에 주는 충격이 작지 않아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건물 폭파에 사용한 TNT 폭약 500㎏의 비용 외에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양의 대남라인은 김정은으로부터 치하를 받았을 것이다. 종이가 모자라 [노동신문] 인쇄까지 어려움을 겪지만 1200만 장의 대남 삐라는 향후 유사시에 사용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다. 김여정의 담화 이후 4시간 만에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과 단속을 확실하게 약속한 만큼 평양지도부는 목표를 120% 달성한 셈이다. 평양이 지적하면 서울이 즉시 수용하게 만드는 종속관계를 구축한 것은 무형의 성과다.

둘째, 평양의 ‘닥치고 공격’ 일변도 전술은 향후 한·미 양국의 군사적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김정은은 전격적으로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남북 간 최악의 긴장 국면을 일단 피했다. 북한은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 등으로 북한은 비무장지대에서 각종 대북 위협요인을 제거했다. 하지만 강공 작전을 지속할 경우 남측의 대응은 합의 이전으로 회귀한다. 북한이 GP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중화기를 반입하며 초소를 재설치하는 등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지속할 경우 남측의 최소한 대응은 불가피하다.

TNT 500㎏으로 남북관계 전환 대성공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직후 전쟁 위협이 고조되면서 라면 사재기 소동이 벌어졌다.
북한이 재설치를 추진했던 대남확성기는 남측이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고도의 심리전 무기다. 10배 이상의 고출력과 풍부한 콘텐트로 무장한 남측의 대북확성기는 북측의 열악한 저출력 대남확성기를 압도한다. 대북확성기 철거는 북한이 판문점 선언으로 얻어낸 가장 큰 선물이었다. 심야에 적막을 깨는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에게 치명적인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시설 철거 등은 정상 간 합의를 정면으로 무효화시켜 남측의 맞대응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반도에 강력한 미군의 전략자산 배치 및 8월 한·미연합훈련 재개 등 한·미동맹에 의한 군사적 봉쇄 등이 후속 조치로 기다리고 있다.

셋째, 평양 내부의 주민 결속과 여론 결집의 계기를 만들어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를 무마할 여건이 조성된 만큼 공격보다는 수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요구한 2016년 이후 발효된 2270호 등 유엔안보리 5개 결의안은 북한의 수출과 외화벌이 수단을 원천 봉쇄했다. 김정은의 사금고는 시간이 갈수록 비워질 수밖에 없다. 반면 2020년 코로나 사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자를 차단했다. 중국산 경공업 제품과 원부자재 도입 감소는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각종 공장의 가동을 중단시키고 있다. 결국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전환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반역자, 배신자로 몰고 가는 탈북자와 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전국 각지에서 궐기대회를 통해 민심이반을 사전에 차단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참가자들의 각종 집회 사진이 연일 [노동신문]을 장식하는 것은 내부 민심 관리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미국과 중국에 김정은의 존재감을 적절한 시점에 각인시켜 무형의 실익을 챙겼다. 평양의 복안은 11월 3일 이후 트럼프가 재선되든지 혹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든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만약 워싱턴이 그런 평양의 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10월 중 함경남도 신포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선보일 것이다. 또한 베이징에도 더 이상 유엔 제재를 의식하지 말고 평양 지원에 나설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DJ 정부 수준의 지원 기대했다가 실망으로 바뀌어


▎김여정 주도로 남북 긴장 수위가 최고조에 오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하며 상황을 관리하는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이제는 김정은의 연락사무소 폭파쇼의 배경과 득실을 추론해보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평양, 판문점에서 냉면을 함께 먹고 2018년 9월 능라도 5·1 경기장에 운집한 15만 명의 평양 군중 앞에서 7분간 연설했다. 이후 양측 지도자 내외가 백두산 정상에 등정했지만 다정했던 추억은 폭파의 굉음과 함께했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김정은의 애창곡이라는 남한의 장덕, 장현 남매 가수가 부른 ‘뒤늦은 후회’의 가사(‘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를 우리가 음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극단적인 행동 이면에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높은 기대(high expectation)’가 있다.

경제학에는 ‘합리적 기대 가설(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이라는 이론이 있다. 1970년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시카고대학 교수가 주장한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당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정보로 미래를 예측한다. 김정은은 그동안의 발언으로 봐서 남한이 물심양면으로 북한을 지원할 것이며 규모는 과거 김대중 정부 수준은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대’를 했다. 평양은 그동안 청와대의 각종 행태와 담화를 지켜볼 때 유엔 안보리 제제를 위반하는 대규모 경제지원 등의 기대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거시경제학의 행동논리를 국가가 행동 주체가 되는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기대와 행동 예측이라는 변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건 국제관계건 합리적 기대의 당사자는 정보가 합리적인 만큼 기대가 충족될 것으로 확신한다. 만일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경우 자신보다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김정은의 폭파 의사결정은 상대방이 조성한 높은 기대와 이에 대한 실망이라는 두 가지 심리적 변수에 의해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거대 담론의 남북한 협력과 통합을 주장했다. 경의선과 동해남부선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협력은 단골 화두였다. 북한으로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큰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주민들의 고생을 이해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했다”는 문 대통령의 깜짝 연설은 평양으로 하여금 대북지원의 합리적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북한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부모가 6·25 전쟁 중 남쪽으로 간 만큼 평양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더 대담한 지원을 예상했다.

15만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 대통령의 연설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 교류협력을 의미했지만 김 위원장은 비핵화는 미국과 빅딜로 풀어야 할 과제로서 우선 남한이 물자지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2년여간 평양의 높은 합리적 기대는 궁극적으로 실망을 넘어 증오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 공세를 유보하고 2월 들어서도 강공모드를 참고 남측 정부여당의 구미에 맞게 4월 15일 총선 전 조신하게 처신한 평양에 대한 남측의 보답은 없었다. 거대 여당으로 승리의 축배를 드는 데만 주력했지 여당의 국내정치 승리에 일조한 북한에 대한 배려는 6월 들어서도 조짐이 없었다.

이제 평양의 무장들은 장검을 칼집에서 꺼내 협력의 상징물을 단칼에 베어 시퍼런 칼날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불가피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코로나 경제위기로 올해에만 -6%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판을 리셋(reset)하는 새로운 충격이 필요했다. 평양은 1년 9개월의 임기가 남은 문 대통령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거대 담론뿐인 만큼 충격요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던 문 대통령이 오판(misjudgement)을 한 것인지, 비핵화보다는 협력과 지원에만 관심이 있는 김 위원장의 오산(miscalculation)이 원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7월 들어 코로나를 뚫고 서울에 온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2박3일 일정은 그가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선호하는 ‘닭 한 마리’ 식사 이외에는 큰 뉴스거리 없이 끝났다. 혹시 그가 판문점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전격 회동하지 않을까 하는 청와대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비건의 미션은 협상보다는 상황관리가 핵심이었으며 북한 역시 선물 보따리가 없는 비건의 방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 권정근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은 비건 방한 직전과 당일에 미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일찌감치 소금을 뿌렸다.

미국 대선 앞둔 트럼프와 김정은의 동상이몽


▎2018년 5월 남측은 대북확성기를 철거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선물을 북한에 제공했다. 당시 육군 9사단 장병들이 파주 민간인통제구역에 설치돼 있던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북한은 트럼프라는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통해 언론 노출을 즐기고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용 소재로 삼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비건 역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볼턴 보좌관과 같이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이례적으로 날을 세우고 만남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그는 명실상부한 북·미 협상 대표지만 북한의 거부로 제대로 된 협상을 못 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편 그는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발언으로 서울·평양을 동시에 관리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최근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한국 내에서 한미워킹그룹 해체 등 일부 진보 정치인들의 반미 분위기를 감안해 다독거리는 발언으로 공을 남북 양측에게 넘겼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s)]의 출간과 작고한 트럼프의 형 프레드 주니어의 딸 메리(55)의 [너무 많고 결코 충분치 않다(Too Much and Never Enough)]라는 제목의 폭로성 회고록 출간으로 재선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트럼프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의향 언급으로 - 그의 표현대로 9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한반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북핵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그의 선거 전략에 전면 수정이 없도록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재선 도전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워싱턴과의 스몰딜 등 섣부른 합의를 하기보다 상황을 관망하며 차기 지도자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평양으로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트럼프와의 합의는 어차피 휴짓조각이 될 거라고 본다. 오히려 도발과 후퇴의 병진 전략으로 몸값을 높이는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마침내 7월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 명의 장문의 담화를 통해 올해 북·미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며 북한에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했다. 3차 정상회담을 언급한 트럼프의 방송 멘트에 대한 응수였다. 하지만 담화 말미에 뜬금없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가 담긴 DVD를 받고 싶다는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현혹했다.

특히 정상회담 조건으로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에서 ‘적대시 철회 대 협상 재개’로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보다 요구 수준을 높였다. 제재에 끄떡없는 만큼 무용지물인 제재의 해제는 기본이고 비핵화는 이후에 조건이 맞으면 하겠다는 입장으로 몸값을 높였다. 진퇴양난에 처한 트럼프의 약점을 파고들며 한여름에 도발을 예고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론했다. 이제 만약 회담이 성사되면 삼세번인 만큼 ‘사진 찍기’ 정상회담은 사양하며 오히려 트럼프가 확실하게 양보하면 협상장에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트럼프와 김정은은 상대의 후퇴를 요구하며 외줄 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공세가 중단됐다는 예단은 시기상조다. 북한이 일단 유보조치로 긴장 수위는 낮췄지만,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취소’한 것이 아닌 ‘보류’했다고 밝힌 만큼 다시 실행할 여지는 남아 있다. 북한은 6월 16일 폭파쇼로 남북관계의 선을 넘었다. 저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소탐대실로 실점도 적지 않다.

우선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협력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민간기업의 건물이 아닌 정부 예산이 투입된 연락사무소 건물을 완파한 만큼 공단 재개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180억원의 건물이 날아가는 판국에 다시 투자해서 기업을 운영할 간 큰 기업인이 있을까 의문이다. 남한과 국제사회의 투자자들은 북한 투자에 미련을 접었다. 평양이 상식과 논리보다 폭파와 약속 파기로 대남은 물론 대미 관계를 주도하려 한다면 한반도에 빙하기는 불가피하다.

향후 남북관계는 소강상태가 불가피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군부 실세 김영철이 향후 사태는 남측에 달려 있다는 엄포와 위협에 눌려 정부가 오직 ‘북한 바라보기’ 자세로 일관할 경우 북한의 갑질은 고착화할 것이다. 평양은 서울이 말귀를 못 알아들을까 봐 바위섬에 청와대 모형을 설치하고 훈련하는 것을 드러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보다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는 데 감격해 할 말을 못 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나쁜 행동’과 ‘착한 행동’ 구분해 상대해야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코로나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한 민심 동요에 봉착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나쁜 행동’과 ‘착한 행동’을 구분해 상대해야 한다. 앞으로 남측의 지도자는 남한이 북한에 ‘할 수 있는 것(can do)’과 ‘할 수 없는 것(can’t do)’을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K 방역에 따른 인도적 차원의 마스크와 평양종합병원 건설 관련 의료 물자 지원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과 철도·도로 연결 등은 유엔 제재와 상충하는 만큼 신중한 자세가 불가피하다. 또다시 남측 자산이 포함된 건물이 폭파당하지 않으려면 명확하게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전제조건이 달린 문제를 함부로 이야기하면 상대가 오해한다. 만약 남측 지도자의 거대 담론 연설에 감동해 언젠가는 북한이 개과천선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공산주의와 한국전쟁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6월 30일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화상 정상회담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과연 평양이 다시 촉진자, 운전자 역할을 서울에 기대할 것인가? 실현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선거 전쟁을 치르는 워싱턴 역시 이를 요청하는가?

서훈·박지원·이인영 드림팀이 받아 든 ‘문재인의 꿈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대북 관계를 이끌어갈 3인방.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터치스크린 한 번이면 국제정세 파악이 가능하다. 좌불안석의 워싱턴과 코로나 확산으로 두문불출하는 평양이 가을에 3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드라마 예고방송은 주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특히 혹시 선거에 도움에 될까 저울질하는 트럼프의 돌발적인 변덕 때문에 정상회담이 정말 실현될지도 모른다. 10월에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든 혹은 전격 정상회담이든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의 시나리오는 유령처럼 떠돌 것이다. 재선을 위해서는 지옥에라도 갈 심산인 트럼프인 만큼 볼턴 전 보좌관의 예측대로 ‘10월의 깜짝쇼’는 여전히 오페라의 유령처럼 횡횡할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신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정원장(후보), 이인영 통일부 장관(후보) 등 언필칭 최고의 민족주의자들이라고 자부하는 ‘드림팀’의 다양한 지략과 노회한 경험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북한의 구미를 기가 막히게 맞추는 대북통과 대북송금 사건의 주역 및 전대협 초대의장 등 북한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면면들이다.

문 대통령은 미워도 다시 한번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오해도 풀고 임기 중 불가역적인 합의를 이루고 싶을 것이다. 특히 부동산값 폭등으로 민심이 식어버린 임기 말 마지막 필살기는 역시 평양 정상회담 카드뿐이라는 판단이다. 대통령은 운전자론의 고단한 숙명을 감안해 지름길을 달려본 노련한 운전기사로 박지원 전 의원을 콕 찍어 임명했다. 과거 비판의 악연보다 현재 임중도원(任重道遠)의 난국에서 오솔길이라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신임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은 과거 회담에서 북한이 현금을 선호한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북한은 임기 말 정상회담 개최를 내세워 이들에게 접근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가를 수용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미 정권 초기 적폐 청산 작업에서 국정원 직원 200여 명이 검찰의 모진 조사를 받았다. 대북송금 당시 총대를 짊어진 충직한 참모는 이제 없다. 창의적 해법(?)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은 박지원 국정원장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통전부는 역설적으로 과거의 추억을 파고들 것이다.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이건 달러건 금전적인 대가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은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와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무엇보다 과도한 기대가 합리적 기대로 변질할 경우 책임은 또 서울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평화와 협력, 정상회담만 합창한다고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연락사무소 폭파의 시사점을 망각하면 평화는 하루아침에 폭파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는 것이 삼복더위가 몰려온 올여름의 서늘한 교훈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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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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