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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별기고] 고사성어로 보는 2021년 辛丑年 

배수지진(背水之陣) 돌아갈 수 없다면 뚫고 나가라 

위기를 기회삼아 더 나은 세상 만드는 데 지혜 모을 때
이전으로 회귀하려 할 게 아니라 코로나 이후 고민해야


▎2020년 새해 첫날 아침 서울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 열린 ‘아차산 해맞이 축제’에서 시민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광진구
새해를 맞을 때면 언제나 새로운 각오로 무언가를 다짐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면 올해도 또 예년과 같은 한 해가 지나갔다는 아쉬움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새해에는 이런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혼자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나서, 그해가 끝날 무렵에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는 일은 누구나 겪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젊었을 때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이처럼 새해를 앞두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 또 연말에 반성하는 일은 매해 되풀이되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새해를 맞아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올 한 해의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는 없다. 내 개인의 신년 각오는 마음속에 넣어두고, 이 글에서는 신축년을 맞아 생각한 이런저런 세상의 일을 사자성어와 연관을 지어 얘기해보기로 한다.

경자년에 이어 신축년에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코로나 19’라는 유행병일 것임은 분명하다. 한 사회의 모든 이슈를 다 집어삼키는 이 공포의 역병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때로 TV의 운동 경기를 보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수많은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보고, “이래도 되나” 하고 깜짝 놀라는 때가 있다. 그러다가 화면의 날짜를 보고는 “아! 2018년 경기로구나” 하고 혼자 머리를 끄덕이곤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옆 사람과의 거리를 2m 띄우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운동장에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향해 목청껏 격려의 소리를 내지르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의 경기다.

그런데 2020년에 치른 경기를 보면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와 선수에게 지시하는 코치, 그리고 심판 이외에는 운동장에 관중이 없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는 격렬한 격투기 경기는 흥분한 관중의 환호와 실망의 탄식이 또 하나 이 경기의 구성 요소인데, 이것이 빠진 채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치고받고 있다.

연예인들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텅 빈 객석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운동 경기나 무대의 공연만이 아니다. 지정된 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여야만 이뤄질 수 있었던 수많은 회의와 발표회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학교의 수업도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학술 발표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으며, 종교 행사도 온라인을 권장하고 있다. ‘비대면’이라는 용어가 급속히 자리 잡으면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이렇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경우도 많다.

배수지진(背水之陣): 물러날 길이 없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스포츠가 2020년 무관중 경기를 경험해야 했다. 같은 해 5월 5일 잠실구장에서 개막한 프로야구 두산 대 LG의 경기. / 사진:장진영 기자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는 이제 너무 많으므로 개인이 이 모든 정보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관계기관에서 제시하는 “마스크 잘 쓰고, 남과 거리 두고” 생활하는 것과 아울러 방송과 인터넷에서 단편적으로 얻는 지식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자신만의 예방 방안을 세우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코로나를 물리쳐야 하는 일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된 현 상황에서 전 세계의 수많은 제약회사와 연구소가 서로 합작으로 또는 독립적으로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전염병의 위기가 이들 제약회사와 연구소에는 기회인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중인 것 같다. 기존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니, 어느 한쪽의 위기는 다른 한쪽의 기회가 된다.

개인의 인생처럼 세상일도 한번 일어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고향’ ‘어머니’ ‘어린 시절’ 등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에서 그리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거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면,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생각만을 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을 등지고 치는 진을 배수진(背水陣) 또는 배수지진(背水之陣)이라고 한다. 적과 마주해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되니, 죽기를 각오하고 적과 싸울 수밖에 없다. 한(漢)나라 장군 한신(韓信)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이 고사는 사마천 [사기]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다.

이처럼 막다른 상황에서 살아날 길을 찾는 이야기는 동서양에 매우 많다. 적과 싸우기 위해 강을 건너면서 타고 온 배를 모두 불태운다는 제하분주(濟河焚舟)라는 고사도 비슷한 의미다. 영어에서 “burn one’s boats”나 “burn one’s bridges”도 돌아갈 배나 다리를 불태운다는 의미에서 ‘제하분주’와 같은 뜻이다.

돌아갈 수 없다면, 뚫고 나가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위기의 상황을 기회로 삼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미래학’이라는 단어가 있고, 또 ‘미래학자’라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미래학자는 미래를 발견하거나 알아내는 연구자는 아니다. 다만 이제까지의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해보는 일을 할 뿐이다.

미래학자의 예측이 맞지 않더라도 미래학자는 여기에 대해 특별히 책임지지 않고, 또 사람들도 이들에게 왜 예측이 맞지 않았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자 상담사와 의논해서 주식을 사는데,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상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리고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이 투자자의 손해를 떠안지는 않는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래를 점치는 얘기는 수없이 많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탁(神託)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을 통해 신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미래를 알고 싶어한 건 인간의 오래된 욕망


▎충남 논산 양지서당에서 수학 중인 어린이들이 훈장으로부터 붓글씨를 배우고 있다. /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일반적으로 한자의 기원은 갑골문자(甲骨文字)라고 본다.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갑골문자인데 약 3200년 전에 사용한 것도 남아 있다고 한다. 갑골문자로 쓴 글은 점을 친 내용이다. 전쟁·사냥·질병·날씨 등 여러 가지 궁금한 일에 대해 점을 치고, 그 결과를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기록하는 데 사용한 글자가 갑골문자다. 중국에서 만든 한자는 한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쓰는 동아시아의 공통문자였는데, 한자의 시작은 미래를 알아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삶이 시작된 이래 어느 정도 인지가 발달하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아직 미래를 알아내는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미래를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미래를 예측하는 수많은 방법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공자의 제자 계로(季路)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묻자, 스승은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 섬기는 일을 묻는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제자가 다시 죽음에 관해서 묻자, 스승은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논어]에 나온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던 공자도 점치는 책인 [주역]을 매우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책을 묶은 가죽으로 된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에서, 공자가 읽은 책이 바로 [주역]이다. 그런데 갑골문자로 점친 내용이 쌓이고 쌓여서 [주역]의 내용을 만들어내었으니, [주역]의 원형은 갑골문자로 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다. 미래를 점치는 책이 한자문화권의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공자는 [주역]을 읽고 점치는 것과 알 수 없는 귀신을 섬기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공자가 [주역]을 익혀서 점을 친 것을 현대의 일에 비유해본다면, 미래학자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근대적인 자연과학의 지식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진 것이 일기예보다. 물론 날씨에 관한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자연적 징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동풍이 불면 비가 온다”라든가 “저녁노을이 지면 날이 맑다”처럼, 우리의 선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날씨를 미리 알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해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었다는 적벽대전의 에피소드는 날씨와 관련된 이야기 가운데 꽤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제갈공명이 기도해서 동남풍이 분 것이 아니라 공명은 언제쯤 동남풍이 불 것인가를 알았으므로 기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명은 기후를 잘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날씨를 예측해서 적을 물리칠 계교를 꾸몄으니, 그는 일찍이 과학적인 일기예보를 군사작전에 적용한 인물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를 탐구해 미래를 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이었던 2020년 12월 3일 춘천 봉의고 정문에서 스승과 제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옛것을 탐구해 새로운 것을 알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의 앞부분이다. 온고지신은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에서 나온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것을 약간 수정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미래라는 것도 결국은 과거와 현재의 어떤 변형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정보를 잘 관리해서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과거의 자료를 모아서 잘 관리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아울러 갖추게 된다. 날씨에 관한 속담이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의 일기예보는 과학적 장비를 이용해 많은 날씨 정보를 모아서 날씨를 예보하는 것이다. 과학적 장비를 이용해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잘 분석해낼 수 있는 실력 있는 전문가가 많아진다면,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점점 높아진다.

공자의 온고지신과 꼭 같은 뜻은 아니지만, “과거 없이는 미래를 판단할 수 없다”는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말이 있다. 미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절박한 논리를 전개한 연설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배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지난날의 식민지 통치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이제 화해는 없다는 단호한 결의가 들어 있다.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 아득히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봐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고, 모든 교사는 자기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기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국가라면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교육비 투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텐트 안에서 맨바닥에 앉아 교과서도 없이 교사의 입만 바라보던 195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꿈같은 교육환경 속에서 현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60여 년 전 그 시절에 비해서 우리의 교육 내용은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외형의 발전에 비해 내실을 얼마나 이뤘나 하는 문제다.

교육과 관련한 논의를 보면 대부분 교육제도나 교육구조 같은 양적인 내용을 다루지 교육의 질에 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눈에 쏙 들어오게 숫자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뜻 보기에 정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교육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양적인 논의에 비해 교육의 질에 관한 논의는 객관적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얘기를 하더라도 주위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를 논의하면서 질을 얘기하지 않고 양만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교육의 핵심은 교사가 학생에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 바탕 위에서 인성이나 덕성 또는 창의성 같은 지식 이외의 역량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와 같이 한 명의 교사가 여러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구조에서는 인성이나 덕성이 아닌 지식의 전달이 특히 중요하다.

학생에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전달할 지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정책의 핵심은 초·중등교육은 교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돼야 하고, 고등교육은 연구자의 연구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마디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이 지식을 정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는 교사·교수·연구자가 필요한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키워야


▎2019년 12월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를 찾은 시민들이 일몰을 감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옛 얘기에 ‘엉터리 서당 훈장’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이 있다. 대부분이 정확한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그런 얘기의 하나를 보기로 한다. 촉(蜀)나라 제갈공명이 위(魏)나라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다 죽었다. 사마의는 공명이 죽은 것을 알고 공격했는데, 공명이 죽기 전에 세워 놓은 계략에 걸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중국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아버렸다(死諸葛走生仲達)”라는 속담을 낳았고, 이 내용은 [십팔사략]이나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들어가게 된다.

어떤 서당의 훈장이 [사략]의 이 대목을 “죽은 제갈공명이 뛰어가다가 사마중달을 낳았다”라고 해석하자, 한 학생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애를 낳느냐고 물었다. 훈장은 “그러니까 제갈공명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것은 이것이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이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은 비단 초·중등학교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중등학교 교육은 학부모나 학원 등에서 검증할 기회가 있으므로, 조금 잘못된 지식을 배우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이나 대학원은 사정이 다르다. 초·중등학교 교사를 배출하고 재교육하는 곳이 대학과 대학원이니, 대학에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입게 된다.

교육의 양적 성장이 이 정도 이뤄진 현 상황에서는 질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 교육에서 질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교육이 되리라고 본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순자(荀子)]에 나오는 구절을 조금 수정한 사자성어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말한다. 그런데 뛰어난 제자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선생 밑에서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고 있는 공교육의 비용과 부모가 허리띠를 졸라매서 만들어내는 사교육의 비용이 헛된 것이 되지 말아야 쪽(藍)에서 나온 푸른빛(靑)이 쪽빛보다 푸르다는 말처럼,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나올 수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신축년도 희망과 절망, 환희와 탄식,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또 한 해가 될 것이다. 지난 경자년의 잘못을 이번 신축년에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 다음 해 임인년(壬寅年)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 이윤석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yoonsu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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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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