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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우크라이나 전쟁’ 푸틴과 바이든의 손익계산서 

러, 소련 부활 야심 노골화에, 미, 민주주의 국가 결집 노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종신 집권 꿈꾸는 푸틴,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명분으로 침공 강행
러, 예상 못한 장기전으로 계획 차질… 미, 금융과 수출 제재로 반격


▎2022년 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다. 푸틴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긴 테이블에서 회담이 진행됐다. / 사진: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제정 러시아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1672~1725)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인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당시 북유럽 강국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발트해를 장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등 국력을 과시했다. 표트르 대제는 또 부국강병이라는 기치를 앞세워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해군을 창설해 흑해, 카스피해 등 바다로의 출구를 확보했다. 표트르 대제는 시베리아와 극동으로도 진출해 청나라와 네르친스크조약을 체결해 현재의 국경을 정하는 등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했다.

표트르 대제는 이처럼 러시아가 19세기에 영국과 함께 세계 최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표트르를 ‘대제’라는 칭호로 부르는 것은 러시아를 제국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를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소련 붕괴와 나토의 동진 및 미국과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을 보면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소련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국영방송 로시야1의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러시아, 새로운 역사](2021년 12월 12일 방송)에서 “소련 붕괴로 40%의 영토를 잃었고, 러시아인 2500만 명이 하루아침에 독립한 옛 소련 공화국들에 남겨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독립한 옛 소련 공화국들을 러시아로 다시 편입시키거나 영향권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동진하면서 계속 확장하자 상당한 안보 위협을 느껴왔다.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 3국과 동유럽 국가들이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나토에 가입하자 러시아의 안보는 치명타를 맞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협은 주로 영토의 서쪽에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20세기 히틀러의 나치독일이 각각 침공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항상 국경 지역에 ‘완충 지대’를 구축해 영토적 안전보장을 도모해왔다. 소련이 냉전 시절 자국 국경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사실상 위성 국가로 만들어놓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소련에서 독립한 15개국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침공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푸틴 대통령은 침공 닷새 전인 2월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수립한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독립을 승인하겠다고 밝히면서 “우크라이나는 원래 소련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단순히 이웃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 역사와 문화, 정신세계의 분리될 수 없는 일부”라면서 “현대 우크라이나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레닌의 우크라이나’라고 불릴 만하다”고 강조했다.

푸틴 “분리될 수 없는 러시아의 일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볼 때 러시아와 같은 뿌리인 것은 맞는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원조인 키이우(러시아어로 키예프) 공국(公國)은 882년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최초의 나라다. 키이우 공국은 1240년 몽골족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키이우 공국 일부 귀족과 백성은 몽골의 지배를 피해 모스크바 인근으로 이주해 1283년 모스크바 공국을 세웠다. 모스크바 공국은 이후 제정 러시아를 거쳐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소련)이 됐다.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붕괴하고 러시아가 이를 승계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동안 폴란드 등의 지배를 받아오다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됐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때 잠시 독립하기는 했으나 1922년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의 일원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을 틈타 1991년 8월 24일 독립했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의 국민투표를 통한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인 조슈아 터커 미국 뉴욕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소련에서 독립한 15개 공화국이 주권 등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말 그대로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함께 유럽 진출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국가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과의 완충지대 격인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안보에 심각하게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앞마당인 우크라이나에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면 모스크바를 타격하는 데 불과 4~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공격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 시스템은 이미 나토와 통합돼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전략 요충지이다.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동과 서(러시아와 유럽), 남과 북(발트해와 흑해)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교차로에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과거부터 유라시아 패권전쟁의 주요 무대였다. 유럽인에게는 동방진출을 위한 길목이었고, 아시아 유목민에게는 유럽 침략의 통로였으며, 부동항이 없는 러시아엔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였다. 더욱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옛 소련권 국가들의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강화하는 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CSTO 회원국들은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다.

핵 카드까지 꺼내든 푸틴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주거지역의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처참히 부서졌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는 CSTO에 우크라이나를 가입시켜 나토에 대항할 수 있는 ‘제2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들려는 야심을 보여왔다. 우크라이나는 인구가 5200만 명으로 유럽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고, 국토 면적(60만3700㎢)이 한반도의 3배에 달한다. 러시아가 농업 대국이자 자원 부국인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만든다면 옛 소련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는 머리를 잃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서는 소련 부활을 위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인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름(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당시 러시아 국민은 푸틴 대통령의 이런 조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러시아 국민은 크름반도 합병은 ‘강력하고 위대한 러시아로의 복귀’라고 생각했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60%에서 80%로 급상승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2018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2020년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푸틴 대통령은 개헌으로 2024년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 이 경우 푸틴 대통령은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다. 2036년이면 그의 나이는 84세가 된다. 푸틴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려면 2024년 대선 전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특히 지난해 1월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진보당 대표가 체포되면서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크게 늘어났다. 또 러시아 국민 중 상당수는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따른 부정부패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니얼 트레이스먼 미국 UCLA 정치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이 22년 집권 기간 위험을 무릅썼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69%로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6%p나 올랐다.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신이 노렸던 목표를 충족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힘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강대국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은 2월 27일 핵 억지력 부대에 경계 강화를 지시하는 등 핵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전략로켓군,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 전략폭격기 비행단에 강화 전투 준비태세 명령을 내렸다. 3대 핵전력(Nuclear Triad)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편대가 비상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연설에서 “소련 해체 후 상당 부분 능력을 상실했다 해도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이며 “몇몇 최첨단 무기에서도 확실한 우위”라고 주장했다.

각국의 군사력을 평가하는 민간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세계 군사력 1위는 미국이고 2위는 러시아다. 특히 러시아는 현재 극초음속미사일 경쟁에서 미국에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조치는 핵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케이틀린 탈마지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를 방패로 내세워 재래식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를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식 신고립주의


▎2022년 3월 유엔 141개국은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우크라이나 철군을 결의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설령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막는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푸틴 대통령이 3월 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를 ‘중립국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점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가장 핵심적 명분이기 때문에 이 요구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비록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과 유럽 각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초강력 제재 조치를 장기간 지속할 경우, 러시아 경제가 무너질 것이 분명한 만큼 푸틴 대통령에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민은 경제 상황이 최악에 빠질 경우,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번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공적(公敵)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점은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될 것이다. 유엔총회는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전체 회원국 193개국 중 181개국이 표결에 참여해 141개국이 찬성하면서 77.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반대는 러시아·벨라루스·시리아·에리트레아·북한 등 5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인도·이란 등 35개국은 기권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이번 침공에서 상당한 오판을 했다. 러시아군이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으로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했을 때 국제사회에선 우크라이나가 며칠 못 버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속전속결로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군이 앞으로 소모적인 장기전을 벌인다면 그 자체로 푸틴 대통령이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오판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을 과소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결사 항전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둘째, 러시아군의 재래식 전력을 과대평가했다. 셋째, 서방의 결집력을 잘못 판단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자칫하면 손익계산서로 볼 때 이득이 없는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재편되는 유럽의 국제 질서


▎미국 등 서방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금융 시장이 혼돈에 빠지며 뱅크런도 본격화하고 있다. / 사진:타스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볼 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유럽의 안보와 평화를 보장해온 나토를 이끌고 있는 초강대국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해 독재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강력한 제재만을 경고하면서 이를 두려워한 러시아가 침공을 취소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만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파병은 없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불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의 외교·안보 노선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약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제외한 분쟁에 미군을 파병하지 않겠다’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한, 국제분쟁에 군사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바이든식 신고립주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발트 3국과 폴란드·루마니아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토의 동유럽 회원국들에 미국 병력을 증파하고 각종 무기를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손에 넘어갈 경우, 유럽의 안보가 위태롭게 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지도국으로서 미국의 위상도 상당히 훼손될 것이 분명한 만큼 러시아에 대한 초강력 제재 조치를 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일 취임 첫 국정 연설에서 “푸틴의 침공은 사전 계획된 것이자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몇 달 동안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의 연합체를 구축했으며, 이제 자유세계가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존칭조차 붙이지 않고 이름만으로 불렀고, ‘독재자’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주요 7개국(G7)과 함께 러시아의 7개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했다.

미국의 러시아 3중 규제

SWIFT는 210개국의 1만1000여 곳이나 되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안전하게 결제하기 위해 전산망을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체 국제 금융거래의 80%를 SWIFT에 의존하고 있다. SWIFT 결제 망에서 퇴출당하면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러시아 금융기관들은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460억 달러(55조원)규모의 외환이 거래된다. SWIFT 결제망 퇴출은 ‘금융 핵폭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장 강력한 제재 조치다.

미국 정부는 또 G7과 함께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을 동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미국 등 해외에 보관 중인 외환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마이클 번스탬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체 외환보유고는 6400억 달러(770조원)인데, 4000억 달러는 뉴욕·런던·베를린·파리·도쿄 등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상업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자국에 보관하고 있는 외환은 120억 달러이고, 나머지는 금 1390억 달러, 중국 국채 840억 달러 등이다. 국제 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SWIFT 결제망 퇴출보다 러시아에 더욱 타격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도 내렸다. 수출 금지 대상은 전자(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 센서·레이저, 항법·항공전자, 해양, 항공우주 등 7개 분야 57개 품목·기술이다. 미국 정부는 수출 금지 대상에 해외직 접제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FDPR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해 제3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자국산으로 간주하고, 제3국이 러시아로 수출할 때 자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 정부는 또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러시아 정부 지도부와 올리가르히(신흥재벌)까지 제재 대상에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최대 이득은 분열됐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독일은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노르트 스트림2’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가동 중단 등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발트 3국과 동유럽 국가들도 미국에 더욱 안보를 의존하고 있다.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온 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검토하고 있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조차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 조치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유럽의 국제질서도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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