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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실제적 위협으로 떠오르는 러시아의 핵 카드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더 위험한 수준 치달을 수도 

푸틴이 핵 버튼 눌러 방사능 퍼지면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맞대응
러시아의 ‘치킨게임’에 직면한 美 ‘타이거 팀’은 레드라인 설정 놓고 고심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키이우 외곽 지역에서 러시아 탱크를 포획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는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의 동진에 맞서 러시아의 실존이 걸린 싸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나머지 세계가 미래의 세계 질서를 걸고 벌이는 대리전이다. 러시아 지도부로선 실존이 걸린 전쟁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판돈을 걸었다. 러시아는 패배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고 승리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분명히 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이 경우 핵전쟁과 우크라이나 바깥에서의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의 성과로 우크라이나의 분할을 노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분할된다면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은 러시아에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정책위원회의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명예회장이 영국 시사주간지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과의 4월 2일 인터뷰에서 밝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이다. 카라가노프 회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책사’라는 말을 들어온 외교·안보 전문가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 학장인 그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 중심적인 세계 질서를 거부하고 러시아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바꾸겠다는 이른바 ‘푸틴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건설적 파괴(constructive destruction)’ 원칙을 정립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에 대해선 나토 등을 거론하면서 “아마 지금부터 3~4년 후엔 러시아 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크렘린궁은 싸워야 한다면 다른 누군가의 영토, 이웃과 형제국의 영토, 한때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곳에서 싸우자고 결정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와 나토 간 직접적 충돌 위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틀림없이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같은 핵 국가를 상대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카라가노프 회장의 인터뷰에서 주목할 점은 러시아의 핵전쟁 가능성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잇달아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2월 28일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 로켓군과 북해함대, 태평양함대 등이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폭격기를 운용하는 부대들이 푸틴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적을 타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군축문제연구소의 파벨 포드비그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핵 명령 통제 시스템을 활성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계속 압박하면 세계는 핵 재앙 급물살 탈 것”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인수인계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둘째) 대통령이 핵 가방을 넘겨받고 있다. / 사진:러시아 대통령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두 차례나 핵무기 카드를 강조했다. 러시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3월 23일 자신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미국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면서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면 세계는 핵 재앙의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3월 26일 러시아 관영 RIA 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나토와의 핵 충돌 위험은 분명히 항상 존재한다”면서 “러시아의 기반시설이 공격을 받으면 핵 억지력이 마비될 수 있는 만큼 이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지도부에서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메드베데프 부의장이 이처럼 극단적인 발언을 꺼낸 이유는 푸틴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경고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푸틴 정권이 무너지면 미국과 유럽을 조준한 핵무기가 가장 많은 러시아는 불안정한 지도부가 이끌게 될 것이고, 러시아가 붕괴하면 유라시아 대륙에는 괴짜나 광신도, 급진주의자가 이끄는 5∼6개의 핵무장 국가가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입’이라는 말을 들어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3월 28일 미국 공영 PBS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의 안보 개념은 러시아의 존립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해 그 위협을 제거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3월 22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어떤 조건에서 핵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을 때”라면서 “푸틴 대통령이 전술핵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

러시아의 핵 독트린을 보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2020년 6월 2일 서명한 ‘핵 억지력 분야 국가정책 원칙’이라는 문서에는 “핵 억지력 분야 국가정책은 방어적 성격을 띠며, 핵 억지력 행사를 위해 충분한 수준의 핵전력을 유지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문서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 상황을 언급했다. 그 내용을 보면 러시아나 그 동맹국들의 영토를 공격하려는 탄도미사일 발사에 관한 확실한 정보가 입수됐을 경우, 적이 러시아나 그 동맹국 영토에 핵무기나 다른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을 경우, 적이 러시아의 아주 중요한 국가 및 군사 시설에 대해 핵 보복 공격을 불가능하게 할 경우, 국가 존립 자체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이뤄졌을 경우 등이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군사 독트린 부속 문서로 채택해 비공개로 유지하던 핵 억지력 원칙을 공개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러시아가 이 문서를 공개한 의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미끼 탄에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까지 발사한 러시아


▎2022년 3월 폴란드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안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핵무기는 크게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로 구분된다. 국가 기반시설 등 광범위한 지역을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략 핵무기는 핵폭발 위력이 메가톤급(Mt·1Mt은 TNT 100만t의 폭발력)에 달하며 ICBM, SLBM, 장거리 폭격기 등에 탑재된다. 반면 전술 핵무기는 소형 핵무기를 말하며, 폭발 위력은 보통 수십㏏에서 수백㏏이다. 국지전 등에서 전술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야포나 단거리 미사일에 장착하거나, 전투기와 폭격기에 탑재하거나, 사람이 메고 다니다가 특정 지역에서 폭발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체결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뉴 스타트)에 따라 핵탄두 보유 수를 1550개로 제한하기로 했으며, 이를 운반하는 ICBM·SLBM·전략폭격기 등의 운반체를 700기 이하로 각각 줄이기로 했다. 양국은 지난해 9월 이 협정을 5년간 연장했다. 미국 과학자연맹(FAS)의 지난 2월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핵탄두는 모두 4477개이며, 이 가운데 실전 배치된 전략 핵탄두는 1588개다. 러시아는 전략 핵탄두 977개와 전술 핵탄두 1912개를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전략 핵탄두 1644개를 실전 배치한 것을 비롯해 핵탄두 3708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전략 핵탄두 1984개와 전술 핵탄두 130개를 저장고에 비축하고 있다.

또 미국은 독일을 비롯한 이탈리아·터키·벨기에·네덜란드 등 나토 5개 회원국의 6개 기지에 B-61 핵폭탄 등 전술 핵탄두 100개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 양국의 핵전력을 볼 때 러시아가 미국보다 전술핵을 월등하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전술 핵무기는 뉴 스타트에 적용되지 않으며 규제하는 국제적인 합의도 없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러시아는 그동안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소련 붕괴 이후 체첸이나 조지아를 침공할 때 재래식 전력으로 싸우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러시아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유사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전술 핵무기 사용 방안을 검토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1999년 당시 연방보안국(FSB) 국장 때 옐친 대통령과 만난 직후 “대통령이 비전략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 청사진을 승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전략 핵무기는 전술 핵무기를 말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3월 초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나토 회원국에 맞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상황에 맞춘 훈련 등을 실시해온 것을 볼 때 러시아가 인접국들을 강압하거나 위협하기 위해 비전략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악화시켜 추가적 악화를 막는(escalate to deescalate)’ 전략에 따라 전술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사시설을 이스칸데르 계열의 단거리 미사일로 공격해왔다. 특히 이스칸데르-M은 재래식 탄두뿐만 아니라 전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지대지미사일이다. 러시아군은 이스칸데르-M을 발사할 때 방어시스템 회피를 위해 비밀로 분류돼왔던 ‘미끼 탄’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군이 미끼 탄까지 장착했다는 것은 전술 핵탄두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군은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킨잘은 미그(Mig)-31 전투기에 실려 공중에서 발사된 뒤 극초음속(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해 목표 지점을 타격하는 순항미사일이다. 킨잘도 재래식과 전술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다. 킨잘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 극초음속 미사일이 인명 살상과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실제로 활용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상 최초다.

핵전쟁으로 비화하면 몇 시간 만에 9000만 명 사상


▎러시아군에게 학살된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민간인을 위한 장례식이 열렸다. / 사진:AP연합뉴스
미국이 1945년 일본에 두 차례 핵폭탄을 투하한 이래 어느 국가도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따라서 러시아가 가능성은 작지만 전술 핵무기 카드를 꺼내 든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느 곳을 목표로 사용할지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 중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분명해지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해 전세를 뒤집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 몬테레이 비확산연구소의 새러 비드굿 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위험의 정도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러시아가 전쟁 상황 악화를 통제하기 위해 핵무기에 의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만 푸틴이 정한 금지선(red line)이 어디까지인지, 생존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울리히 쿤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는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서방의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푸틴이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쿤 교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쿤 교수는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 러시아가 핵 공격을 경고하는 목적으로 북해 먼 곳에서 핵무기를 폭발시키는 시나리오를 공개한 적이 있다. 미국 과학자연맹(FAS) 방위태세 프로젝트의 애덤 마운트 국장도 “러시아의 재래식무기 시스템이 취약해 핵무기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핵무기는 약자의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현직 정보 책임자들은 러시아의 전술 핵 사용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스콧 베리어 미국국방정보국장(소장)은 최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전쟁으로 약해지는 경우, 핵 억지력에 의존해 서방에 경고하고 힘을 과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나토에 대해 비대칭적인 군사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장도 “러시아군이 냉전 종식 이후 혼란을 겪으면서 핵 사용의 문턱을 낮췄다”면서 “러시아군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존 하이튼 전 미국 전략군사령관은 “누구라도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은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면서 “1945년 이후 넘어선 일이 없는 금지선을 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이튼 전 사령관의 말처럼 양국이 냉전 시대의 상호확증파괴(MAD) 이론에 따라 본격적인 핵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프린스턴대는 러시아가 소형 전술 핵무기를 경고용으로 발사하고 나토도 소형 전술 핵무기로 대응하면서 핵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몇 시간 만에 90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미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핵 경계 태세를 명령한 다음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주도로 구성된 ‘타이거 팀(Tiger team)’을 가동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비한 비상계획 마련에 나섰다. 국방부, 국무부,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등 안보 부처 관리들과 합참 장교 및 핵 전문가들로 구성된 타이거 팀은 일주일에 3차례씩 만나 러시아가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타이거 팀은 금지선을 설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치명적인 화학물질이나 방사성물질이 주변 나토 회원국 상공에 퍼진다면 이를 나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나토의 안보조약 5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 대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잭 리드 상원의원은 “핵무기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주변 나토 회원국으로 유입되면 나토의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과 나토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선택지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나토 30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 특별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가 생화학 무기나 소형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토 정상들은 공동 성명에서 “우리는 화학, 생물학, 방사능, 핵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비와 준비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토 정상들은 또 러시아의 생화학과 핵무기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보호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토가 핵·화학 공격 방어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상전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푸틴 대통령의 생화학·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 사용은 전쟁의 본질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도 맞대응할 것

더욱 주목할 점은 바이든 대통령이 적국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sole purpose)’ 공약을 폐기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핵 공격 억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만 필요하다면 적대국의 핵 공격 반격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할 것”이라면서 핵무기를 단일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핵 독트린을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새로운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 명기를 검토해왔다.

하지만 나토의 유럽 회원국을 비롯해 일본, 한국,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은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핵 위협을 거론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공약에 우려를 표명하며 기존 NPR 변경을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3월 28일 의회에 제출한 새 NPR에서 기존의 핵 독트린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새 NPR의 내용을 보면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인 역할은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들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들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새 NPR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핵보유국의 핵 공격은 물론 대규모 재래식 무기 공격, 생화학 무기 사용, 사이버 공격 같은 ‘비핵(非核) 위협’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핵무기의 선제공격 등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기존의 핵 독트린을 유지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새 NPR에 따라 유럽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존 핵정책을 변경하지 않은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과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다, 중국과 북한 등이 극초음속 미사일과 다탄두 미사일로 미국의 MD 체계 무력화 의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새 NPR는 ‘미국도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경우 맞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더 위험한 수준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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