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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자연인’ 박근혜는 자연인으로만 살 수 있을까 

결백 입증, 명예 회복 위해 정치 재개 가능성은 충분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는 일정 부분 정치적 영향력 미칠 수도
탄핵 관련 새로운 사실 드러나야 국민 여론 바뀌기 시작할 것


▎자연인으로 돌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재개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전국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겠지만, 그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4월 8일 오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최측근인 유영하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유영하TV 캡처
"못다 한 이러한 꿈들을 저의 고향이자 유영하 후보의 고향인 이곳 대구에서 유 후보가 저를 대신해 이뤄줄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4월 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의 지지를 부탁하며 한 말이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정가와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한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24일 대구 달성군 사저에 입주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입주할 당시 “제가 못 이룬 꿈들은 이제 또 다른 이들의 몫입니다. 좋은 인재들이 대구의 도약을 이루고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작은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이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이웃으로서 여러분의 성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을 후원회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는데, 이 대목에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가 시작됐다는 말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메시지 정치에 가장 능한 인물이다. 과거 칼 테러로 수술했을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대전은요?”라는 한마디에 대전의 판세가 뒤집혔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은 간결하고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사람이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은 진짜로 정치를 재개할까? 일단 명분상으로 볼 때 박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할 이유는 충분하다.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두 번째라고 할 수 있지만,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 건국 이후만을 놓고 보자면 첫 번째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다. 탄핵 이유는 국정농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분만으로는 부족, 상황적 요인도 뒷받침돼야


▎3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강정현 기자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은, 박 전 대통령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 한 푼 직접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불가피했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판단하게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사안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밝혀질 수도 있고, 이런 사안들에 의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불가피성이 부정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박 전 대통령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은 존재한다. 4월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한 윤석열 당선인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던 일들, 정책에 대해 계승도 하고 널리 홍보도 해서 박 전 대통령께서 제대로 알려지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했을 때, 박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할 명분은 역대 대통령 누구보다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명분이 있다고 해서 정치를 재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적 요인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의 사전적인 의미는 야당으로 권력이 이양됨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정권 교체는 15대 대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로 권력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사전적 의미의 정권 교체는 그 이후 17대와 19대 그리고 20대 대선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전적 의미’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권력을 가진 사람만 바뀌어도 정권 교체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6대 대선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비밀 대북송금 특검 의혹을 제기했고, 특검법안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2003년 1월 말 감사원은 “1760억원은 현대 측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됐고, 나머지 2240억원은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북 송금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명이 필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당초 민주당과 노무현 당선인 측은 해당 문제의 관련자들이 국회에 출석해 해명하는 정도로 해당 사안을 마무리하려고 계획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자민련 측이 특검을 계속 밀어붙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특검법안을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특검법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특검법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김대중(DJ)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과 그에 파생된 한반도 평화 기류로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상 정치적 영향력 발휘 쉽지 않아


▎4월 12일 오후 대구 달성 자택을 찾아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박근혜 전 대통령. 두 사람 뒤로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과 유영하 변호사가 보인다. / 사진:윤석열 당선인 대변인실
그럼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송금 특검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드러난다. 노무현 정권은 분명 김대중 정권의 ‘후계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DJ와 동교동계 인사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플라톤이 정치와 관련해 ‘Virtu(덕)’라는 추상적 개념을 제시한 이후 중세 그리고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개념은 당위론적 차원에 머물렀었다. 그러다가 마키아벨리가 등장한 이후부터 정치라는 ‘현실적 존재’는 비로소 당위론적 개념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철저한 ‘권력 현상’으로 바라본 것이다. 권력이란 “타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 이후부터 정치의 핵심 개념이 된 권력은 ‘집중되는 속성’을 가진다. 권력이 이런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부모 자식 사이에도 권력을 나눠 가질 수는 없다. 이는 북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 권력의 이동 속도는 매우 빠르다. 천천히, 서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사회의 권력의 총량은 무한하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권력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권력이 이런 속성들을 지니기 때문에, 이전 권력이 새로 등장한 권력에 저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권력을 잡은 측이 이전 권력의 ‘자율적 공간’을 어느 수준까지 허락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권력의 속성에서 보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이 노무현 정권에 대항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전 권력이 아무리 지역 기반이나 일정 수준의 견고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존하는 권력에 대항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정치적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고, 또 박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도 상당히 견고한 편이지만, 권력의 속성에서 볼 때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일반 대중은 자신의 과거 정치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자신의 정치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 지나면 환경 달라질 수도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 수감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됐던 촛불 시위에 한 번이라도 참가했던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 수준이 과도했다고는 생각할 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당했다고 판단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환경은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상당수 국민이 박 전 대통령의 억울함에 대해 공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구라는 지역에 한정해서는 일정 부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차원의 영향력 행사는 현재로서는 무리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보수의 심장인 대구 지역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에 대한 욕구가 다른 지역보다는 높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민심도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변할 수 있어, 박 전 대통령은 일정 부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점은 시간이 지나면 환경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과거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그때 국민적 여론은 바뀌기 시작할 터인데, 상황이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분명 되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 역시 그때의 권력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재 이상의 적극적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향력을 발휘하려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정치적 위상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시작인지는 몰라도 정치적 입지 확대는 서서히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분명한 것은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명예 회복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돌아가고 쉬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명예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과 이를 위한 영향력 확대 시도가 있을 것이다.

-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yulsh@mju.ac.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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