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스토리 | 심층분석] 인플레에 ‘R의 공포’까지, 한국 경제 버틸 체력 있나 

실물과 금융 동반 침체… 금리 올렸지만 물가도 환율도 안 잡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한은, 사상 처음 0.5%p 금리 올려 환율 방어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
자산시장과 수출 모두 약세… 부채 부담 탓에 재정정책 펴는 것도 제약


▎2022년 7월 13일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빅스텝을 밟았다.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도 시사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 위기는 블랙 스완과 회색 코뿔소의 형태 중 하나로 나타난다. 검은 백조를 뜻하는 블랙 스완은 예기치 않은 돌발 악재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2001년 9·11 테러,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해당한다. 일시적 충격파가 엄청나지만 그만큼 회복도 빠른 편이었다. 반면 회색 코뿔소는 그 거대한 몸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예상할 수 있는 리스크를 지칭한다. 저 멀리 있는 코뿔소가 언제 내 눈앞으로 달려올 줄 모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위험에 둔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닥쳐온다면, 알고도 막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블랙 스완에 해당한다면, 그 여파로 뒤늦게 찾아온 ‘I(인플레이션, 물가 상승)의 공포’와 ‘R(리세션, 경기 침체)의 공포’는 회색 코뿔소다. 2022년 7월 13일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단행했다. 이로써 한은은 3연속(4·5·7월) 금리 인상 버튼을 눌렀다. 이는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6.0% 올랐다는 통계청 발표(7월 5일)가 나온 순간 예정된 코스였다.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 사이에서 한은은 ‘물가부터 잡겠다’는 포지셔닝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빅스텝을 통해 강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물가 상승이 민심 이반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며 8일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민생 안정에 사활을 걸겠다”며 8000억원 규모의 재정 지출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돈을 풀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 13일 밤 미국 6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9.1% 상승이라는 충격적 수치가 나왔다. 물가가 언제 정점을 찍고 내려올지 알 수 없다는 시그널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도 금리 인상 가속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기에 ‘한·미 금리 역전’이라는 생경한 길로 들어서게 됐다.

2022년 7월 한국 경제는 실물과 금융의 동반 침체라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윤 정부는 물가 안정에 필사적이지만, 공공요금 인상조차 못 막는 실정이다. 7월 전기료와 가스요금마저 올랐다. 6월 29일 한은이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향후 1년의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2021년 10월 이 숫자가 2.4%였던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급속도로 물가가 치솟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도래했지만 정작 코스피와 코스닥, 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일례로 6월 코스닥과 코스피 하락률은 각각 전 세계 1, 2위를 기록했다. 경제가 거의 부도 상태인 아르헨티나 증시보다도 더 많이 떨어졌다.

14년 만의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긴축을 말하면서 돈 풀기 정책을 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흔히 한국 경제를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주력 포트폴리오인 반도체, 철강, 자동차, 2차 전지 등의 업종은 글로벌 경제를 선반영하는 경향이 짙다. 2022년 글로벌 주요국 증시를 살펴보면, 한국·대만·독일 등 수출 위주 국가가 더 타격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 공급 국가인 한국과 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31년 만에 무역수지가 적자(5월 10억 유로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동·서독 통일 직후인 1991년 이후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한국도 2022년 4~6월에 걸쳐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6~9월 이후 14년 만이다. 특히 심각한 지점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상대로 5~6월 2달 연속 적자가 났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중국 상대로 1994년 이후 28년 연속 무역흑자를 기록해왔다. ‘중국의 도시봉쇄’라는 일시적 악재 탓이라는 해석이지만, 뒤집어보면 봉쇄가 해제되고 정상화되기까지 중국 수출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징조를 드리운다.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이며 공격적 금리 인상을 불사할수록 경착륙(경기 침체 현실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비등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Fed는 7일 공개한 연방공개 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통화정책 강화가 당분간 경제 성장의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2%로 낮추는 것이 최대 고용 달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Fed는 ‘경기 침체 두려움보다 물가를 낮추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커밍아웃한 셈이다.

Fed가 후퇴 없는 금리 인상을 공언하면서 한국도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6월 96.4였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아진 것은 2021년 2월(97.2)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그만큼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주머니를 닫고 있다는 뜻이다.

꺾일 줄 모르는 强달러의 기세


▎부산항 부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 한국은 금융과 수출 모두 약세를 맞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2년 여름 경제 위기의 본질은 윤석열 정부가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심리에 있다. 이는 곧 ▷경제성장률 ▷물가 안정 ▷무역수지 흑자 반전 ▷가계부채·국가채무 건전성 확보를 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윤 정부 경제팀의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5월 11일 취임사에서 “물가 안정 등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며 “민간·시장·기업 중심으로 우리 경제 역동성을 되살려 저성장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흘렀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는 여전히 피크 아웃을 알 수 없다. 7월 4일 회동한 추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현재는 복합 경제위기 상황”이라며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금리를 올릴수록 물가와 환율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부채 부담은 늘어난다. 문제는 윤 정부 경제팀이 이런 선택을 했음에도 환율이 천장을 뚫어버린 데 있다. 한은이 빅스텝을 결행하고 불과 이틀 뒤인 15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20원을 돌파했다. 7월 5일 한은은 “6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이는 1달 전보다 93억3000만 달러 감소한 액수다. 감소 폭은 세계 금융위기 때였던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감소) 이후 최대였다. 한은의 외환보유는 4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환율 방어를 위해 나름 실탄을 투입하고 있지만,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러가 비싸질수록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가며 주가 하락이 가속화하는 패턴이 나온다. 코스피 2300선이 깨지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7월 11일 취임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면 공매도뿐만 아니라 증시안정 기금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윤 정부가 주식 폭락을 방치하고 있다”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금리 인상에 불패처럼 여겨졌던 부동산 시장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7월 14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7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초구를 제외하면 전부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일수록 하락 폭은 더 크다.

집값은 오르지 않는데 금리는 치솟자, 최대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 영끌족의 가계부채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은의 ‘2022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부채는 1859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4% 늘어난 것이다. 물론 가계부채에는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80% 안팎이 변동금리인지라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는 점이 문제다. 한은이 13일 기준금리를 0.5%p 추가 인상하면서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1조6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2022년 1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집계됐다. 가계부채가 GDP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기업부채도 1609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4.8%나 늘어난 수치다. 이렇게 기업부채 증가 폭이 큰 요인으로는 코로나19 금융지원조치 연장 등 금융기관의 기업대출 취급 확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꼽힌다.

이런 와중에 윤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정책들을 보면, 경제 체력 강화와 지지율 사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갸우뚱하게 한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 긴축인데 정작 내놓은 정책은 지원금 풀기, 빚 탕감이다. 7월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에서 윤 대통령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파른 이자 부담 등이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명분 아래 125조원 규모로 자영업자·청년 등의 빚 상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심지어 빚내서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한 청년층의 이자를 탕감해줄 방침이다. 대출 원금이나 이자를 줄여주면, 그 부담은 사실상 은행으로 전가된다. 이는 곧 은행에 투자한 주주나 더 높은 예·적금 금리를 바라는 일반 국민에게 손해를 안기는 셈이 된다.

메시지와 정책 따로 노는 尹 정부

윤 정부는 7월 7일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3년 예산을 편성할 때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통상 수준보다 낮게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근 5년간 공무원 임금 인상률 평균은 1.9%였는데 이보다 낮게 하거나 동결하겠다는 것이다. “물가는 다 오르는데 보여주기식으로 공무원 월급만 잡아두려 한다”는 반발을 듣기 어렵지 않다. 심지어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6월 28일 대기업에 임금 인상 자제까지 요청했다. 임금 인상이 불러오는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정부가 민간 기업의 연봉 책정까지 간여하려 든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 정부는 최저임금 역시 7월 12일 진통 끝에 5.1%(시간당 9160원) 올렸다.

정부의 곳간 상태는 역대 최약체 수준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9.7%에 달한다. 기재부 예상에 따르면 2022년 국가채무는 1068조8000억으로 전망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금융이 어려웠지 수출은 잘됐던 2008년보다 지금 경제 상황이 더 어렵다”며 “정부가 수출이 잘되게 할 순 없겠지만, 소비의 불씨마저 꺼뜨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