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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새로운 탐색 담은 [한국 문화의 풍경]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 인류 보편의 체험과 맞닿은 한국 전통 문화 6題
■ 한복, 한옥, 비빔밥, 진경산수화, 책거리, 한글


▎[한국 문화의 풍경] 김경은·차경희·이태호·한문희·정재환 지음 / 종이와 나무 / 1만8000원
일본의 실업가이자 문필가인 히라카와 카츠미는 대담집인 [침묵하는 지성]에서 문학이 세계성을 획득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리 로컬한 이야기를 써도 그것이 인류사적으로 보편적인 체험과 접합되어 있으면 문화적인 배경이 달라도, 그리고 시대가 달라도 독자의 심금에 닿을 수가 있다.”

특정 지역과 시기에 특화된 문화일지라도 인류 공통 경험에 착근한다면 전 세계 독자들에게 리얼리티를 안겨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도서출판 ‘종이와 나무’는 이런 관점에서 최근 ‘한국 문화의 고유한 개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아이템 여섯 가지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바로 [한국 문화의 풍경(2022년 10월 / 김경은, 차경희, 이태호, 한문희, 정재환 공저)]이 그것이다. 이 책은 세계인의 취향과 감각에 부합하는 여섯 가지 한국의 문화 아이템으로 한복, 한옥, 비빔밥, 진경산수화, 책거리, 한글을 꼽았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나라 조선에서 신분적 위계질서는 중후기로 오면서 더 고착, 강화됐다. 하지만 초기나 고려시대는 여성의 발언권도 남성에 못지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유교적 원리주의가 지배하기 이전 시간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면을 찾아보는 것도 책 읽기의 즐거움의 하나다.

한옥의 구조가 대표적이다. 전통 가옥의 구조를 보면 안주인이 거주하는 안채가 한옥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 가장이 머무는 사랑채보다 높다. 이념(유교)은 쉽게 변해도 문화는 쉽게 변하지 못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 변화 속도감의 차이를 한옥의 구조에서 느낄 수 있다. 가내(家內) 권력과 가내 구조는 이처럼 언밸런스한 상태로 현대인에게 전승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오랜 ‘최애’ 메뉴의 하나인 비빔밥의 태동과 진화를 살펴보는 과정도 재밌다. 특히 비빔밥에 철학을 담는 모습은 음식에 새로운 맛을 더해준다. 예컨대 비빔밥은 식물성 재료가 주를 이룬다. 이들이 만물의 운행과 변화를 압축하는 모델인 음양오행(陰陽五行)에 투영돼 재해석된다. 푸른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다섯 가지의 색상의 조화를 이룬다고도 하고,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포함했다고 한다. 비빔밥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행을 생각하며 먹는 것’이라는 저자의 팁은 그윽하다.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북악산, 인왕산이 국민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시절이다. 이 일대의 풍경을 담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는 국토가 국민에게 안기는 시린 사무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조선 말기 진경산수화에서 벗어나는 시대적 화풍은 남종문민화로 회귀하면서 조선의 몰락과 오버랩된다는 저자의 분석 또한 음미할 대목으로 와 닿는다.

누군가 ‘인간은 반드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책과 만난다’라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책과 서가를 화폭에 담은 그림을 ‘책거리(冊巨里)’ 부른다는 걸 아는가. 18~19세기 조선에서 꽃핀 독특한 예술 영역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코너도 이 책에 마련돼 있다.

기록은 문명, 문화의 핵심 구성 요소의 하나다. 조선 세종 대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당대의 말과 생각을 어떤 문자로 기록했을까.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 이후 민족의 문자인 한글은 어떻게 생존해왔을까? 이 책은 가장 치열한 논쟁과 가혹한 탄압을 이겨낸 한글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미덕도 함께 제공한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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