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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멘붕' 이태원 참사, 화 더 키운 행정력 공백 

 

최소라 월간중앙 인턴기자
■ 인원 통제 안 되며 ‘골든 타임’ 놓쳐… 안전 요원 배치 미비
■ 외신 "행정당국, 인파 몰리는 지역 실시간 모니터링 책임"


▎해밀턴호텔 옆 내리막길에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인파가 가득 차있다. 연합뉴스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로 154명이 사망하고 147명(31일 오전 06시 기준)이 다치는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304명 사망·실종) 이후 다시 터진 참사다.

명확한 참사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사고 당시 현장에서 누군가가 고의로 밀어 사고가 발생했다는 목격담이 퍼지고 있다. 참사를 피한 생존자나 주변 목격자들 사이에서는 “밀어! 밀어!”라거나 “우리 쪽이 더 힘 세. 밀어” 등의 고함과 함께 순식간에 대열이 내리막길로 무너졌다는 증언과 동영상이 다수 나오고 있다.

해당 골목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생존자 A씨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뒤에서 ‘밀어, 밀어’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클럽의) 노랫소리도 크고 앞쪽에 있는 많은 분은 ‘뒤로, 뒤로’를 못 들었던 것 같다”며 “바로 옆 사람들과는 대화가 됐지만 한 사람만 건너뛰어도 대화가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비명이 들렸는데 사람들이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줄 알고 더 밀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경찰은 해밀턴호텔 뒤편 골목길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 영상을 다수 확보해 분석 중이다.

사고 당일 이태원 일대에는 경찰 추산 10만 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는 핼로윈 축제 기간에 예년과 대비해 30%가량 많은 수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소방 인력이 제때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탓에 사상자들의 골든 타임을 놓쳐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주변 상가에서 크게 튼 음악 소리와 각종 코스튬 플레이를 한 인파에 묻혀 긴급한 상황이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조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워 의료진이 직접 장비를 모두 챙겨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대로변 보도에는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바닥에 뉘어져 긴급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었음에도 현장에 있던 다른 시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안전 관리 미흡으로 예고된 참사


▎압사 사고 뒤 경찰은 명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 중에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용산구 등 관할 지자체의 미흡한 준비 탓에 예고된 참사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고 요인으로는 축제의 명확한 주최자가 없어 현장 관리가 부실했던 점이 꼽힌다. 행정안전부 ‘지역축제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순간 최대 1000명 이상의 인원 참가가 예상되는 축제를 개최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에 미리 안전요원 배치 등의 내용을 담은 안전 관리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핼러윈 축제의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날짜와 장소에 모인 탓에 지자체에서 별도 관리 지침을 정하지 않았다.

도로에서 교통을 관리하는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현장관리 요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강모(25) 씨는 “경찰 분장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 진짜 경찰을 분간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인도에서 인파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안전 요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이태원동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으며, 배치된 인원도 현장 인파 통제보다는 마약이나 불법 촬영 단속 등에 집중했다. 사고가 발생한 후 서울경찰청은 소속 경찰 475명을 파견하고 과학수사 요원 100명을 추가 투입하는 등 경찰력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광화문과 용산 일대에서 벌어진 소요와 시위에 경찰력이 분산됐던 것도 또 다른 사고 발생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 보수·진보·노동단체 등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결과 긴급브리핑에서 “어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서 경찰인력 상당수가 광화문 등에 배치돼 분산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은 “예년(코로나19 유행 이전)과 비교했을 때 사고 당일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 통상과 달리 소방이나 경찰 인력을 배치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국민적 참사로 '멘붕'에 빠진 민심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외신은 행정당국이 사전에 인파 규모 모니터링을 실시하지 않는 등 충분한 예방 대책을 취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미국 CNN에 출연한 재난관리 전문가는 “인파가 많이 몰리는 지역은 당국이 인파의 흐름을 파악해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군중 규모를 모니터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산케이신문도 “당국이 통행규제 등을 충분히 하지 못한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며 “사고 전날에도 인파에 밀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 목격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왔지만 행정당국의 통행규제 강화 등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 최소라 월간중앙 인턴기자 ssly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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