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Home>월간중앙>투데이 포커스

인류 공통의 경험을 소환하는 책, [영토분쟁]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 독도·러시아·팔레스타인 등 대결과 공존의 현장 탐사
■ 이익과 이념이 땅을 놓고 충돌하는 세계사의 요약본


▎[피를 부르는 영토분쟁] 강성주 지음 / 아웃룩 / 2만5000원
지구는 크고 작은 야만이 지배하는 전쟁터다. 미시적으로는 미개한 동물들의 피 말리는 생물학적인 생존투쟁이 24시간 벌어지는 정글이고, 거시적으로 문명한 국가들의 무자비한 지정학적 영토분쟁이 수천 년에 걸쳐 피를 불러온 행성이다.

미국 노스텍사스대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109건의 영토분쟁이 현재진행형이다. 1648년부터 1987년까지 300년 이상 지구 위에서 발생한 전쟁 177건 중 85%에 달하는 149건이 영토문제에서 발생한 전쟁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 책은 이익과 이념이 땅을 놓고 충돌하는 세계사의 요약본이다. 우선 분량(549쪽)부터가 방대하다. 자료를 모으고, 익히고, 정리해서 글로 정련하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만큼이나 고단했을 법하다. 이 책은 ▷러시아 제국 주변 ▷유럽 ▷팔레스타인 ▷독도 ▷아시아 ▷아프리카·남미·극지방 등 총 6부로 구성돼있다. 영토 주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분쟁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일 간의 독도 논쟁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독도의 경우 ‘충분히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일본 외무성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한국 학계의 성과를 꼼꼼하게 담았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영토분쟁 당사자들도 각자의 명분과 논리에 한 치의 양보도 없기에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이 거론하는 분쟁사는 공간과 시간을 달리하지만, 인류의 공통적인 경험에 접목되기에 리얼리티를 얻는다. 강자와 약자,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관계에는 무참한 힘의 논리가 작동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지정학적 불가피성도 개입함을 알 수 있다. 불가피성이라는 건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는 내재적 동력과 동의어다. 그 동력이 분출되는 강도와 빈도, 방향은 주권 국가들의 상황 통제력과 협상력에 좌우된다는 걸 이 책은 암시한다.

세상에 영토 분쟁 없는 국가는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모두가 전쟁과 같은 물리적 충돌을 겪는 건 아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적대를 공존으로 전환하는 경험과 지혜는 우리 땅에 얽힌 영토분쟁을 다루는 데도 참고가 된다.

저자는 1952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78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에서 일하고 베이징 특파원, 보도제작국장, 논설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관훈클럽 회원인 그는 1991년 걸프전 취재로 관훈언론상, 한국기자대상을 수상했다. 퇴사 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몸담기도 했고, 경북대와 위덕대에서 한국현대사, 매스컴과 사회에 대해 강의도 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1990년 걸프 전쟁, 소련 해체 후 캅카스 분쟁, 유고연방 해체와 코소보 인종 청소 과정 등을 취재하고 목격한 경험이 이 책의 모티브가 됐다. 관훈클럽정신영기금의 지원과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후원 펀드에 힘입어 이 책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쟁이 일어난 곳에는 원래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영토의 주인이 국가나 민족을 이뤄 살기에 역사와 문화도 존재한다. 저자는 그 땅에서 일어난 일들을 약사(略史)로 축약해 보여준다. 평생 그래왔듯이 독자들의 눈높이 맞춰 글을 썼기에 복잡한 내용인데도 역진(逆進)할 필요가 없다. 기술되는 사건을 오른쪽으로 쭉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스토리가 그려진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각주에 있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본문 내용의 출처라든가 어원 해설이 빼곡하다. 예컨대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하나님과 씨름하다’ ‘하나님의 군사’로 해석된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지정학의 백과사전이자 세상을 보는 창(窓)인 셈이다. 저자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언론계에 몸담기 전 1년 남짓 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국제뉴스를 볼 겨를도 없이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