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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끄는 포스코의 ‘기업시민’論 

“기업시민은 사회와 기업 동반성장의 길라잡이”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최정우 회장 취임 후 ‘기업시민헌장’ 채택하고 그룹 차원 혁신 시도
지역·협력사·중소기업 상생 프로그램 가시적 성과 올려 국내외 주목


▎2019년 7월 25일 포스코 포항 본사에서 열린 시민헌장 선포식에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포스코는 최 회장 취임 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걸음 나아간 ‘기업시민’ 개념을 경영에 도입했다. / 사진:포스코
기업 경영의 화두로 자리 잡은 ESG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지향하는 목표는 사람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구현하는 데 있다. 사업 다각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환경친화적 신소재 기업으로 변신 중인 포스코그룹이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사람’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한 정한호씨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지난해 3월 27일 저녁 무렵,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인근 바닷가에서 어업을 하는 부모님 일을 돕던 정씨는 큰 굉음에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선착장 쪽에서 차량 한 대가 방파제에 부딪힌 뒤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온 데다 밀물 때여서 바닷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정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업에 쓰던 망치를 들고 차가 추락한 바다로 뛰어들었다. 망치로 유리창을 몇 차례 내려친 끝에 차에 갇혀 있던 운전자를 꺼내 뭍으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정씨의 선행이 알려지자 포스코청암재단은 그를 ‘포스코 히어로즈’로 선정했다. 위기의 순간에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인 의인을 찾아 우리 사회의 히어로로 선정하는 제도다. 히어로즈로 선정되면 포스코그룹에서 채용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정씨도 의인 우대 전형을 통해 올해 1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포스코 히어로즈는 2019년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71명을 히어로즈로 선정해 당사자와 자녀에게 학자금과 자기계발지원금을 전달했다. 또 필요한 이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해 안정적 삶의 기반도 마련했다. 올해 초 정씨와 함께 취업한 히어로즈 중에는 바다에 휩쓸린 어린이를 구조해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구한 임주현 의인과 불이 난 건물에 뛰어들어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업어 구출하는 등 일가족 4명을 구한 이수형 의인 등이 각각 포스코 계열사에 특별 채용됐다.

기업시민 선언에 국내 기업들도 동참


▎지난 8월 ‘포스코 히어로즈’로 선정된 시민들이 상패와 장학금을 받았다. 포스코는 기업시민 실천의 일환으로 사회 의인을 찾아 격려하고 취업 기회를 알선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 사진:포스코
포스코가 사람 중심의 사회적 공헌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건 2019년 7월 ‘기업시민’ 개념을 경영이념에 도입한 뒤부터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ESG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가 선언한 기업시민헌장은 크게 세 가지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강건한 산업 생태계 조성 ▷사회문제 해결과 더 나은 사회 구현 ▷신뢰와 창의의 조직문화 형성이다. 기업시민론을 근간으로 포스코는 지난해 ‘With POSCO’ 5대 브랜드(Green·Together·Challenge·Life·Community)를 도입했다.

포스코의 기업시민론은 비슷한 시기 세계적으로 급부상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2019년 애플, 아마존, 블랙록 등 미국의 글로벌 기업 CEO 181명이 참여하는 경영인 협의체(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BRT)가 공동선언을 내놨다. 기업의 존재 목적을 기존의 주주 가치 증대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두겠다는 요지였다. BRT 선언은 기업이 주주 이익과 단기 성과에 집착한 결과로 초래된 글로벌 경제 위기와 기후변화 등 사회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였다. 2020년에 열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 WEF)에는 기업이 이해관계자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개념이 부각됐다.

국내에서도 포스코의 기업시민과 일맥상통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지난 5월 24일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인 70여 명이 모여 ‘신(新)기업가정신’을 선언하고 실천 협의체인 ERT(대한상공회의소 소속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출범했다. 이들이 발표한 기업선언문에는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혁신과 성장으로 일자리, 경제적 가치창출 ▷신뢰와 존중, 윤리 ▷보람을 느끼는 기업문화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의 5대 실천 명제를 담았다.

기업시민 이념을 경영에 도입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기업시민실천가이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보유한 역량과 자원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 회장의 기업시민 철학은 말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한 이후에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장기 휴가제’를 도입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철강기업 특성상 휴가 내기가 어려웠던 터라 신선한 시도로 여겨졌다.

해상 운송비가 급등해 해운 물류대란이 극에 달했던 2021년에는 어려움에 내몰린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포스코의 철강재 수출 선박에 수출품을 같이 싣도록 하는 중소기업 수출 물류 지원에 나섰다. 지원 덕분에 2021년 한 해 동안 26개 중소기업이 23개국에 24만t 수출 화물을 제때 납품할 수 있었다.

포항의 새 명물로 자리 잡은 스페이스워크도 포스코가 지역 상생의 일환으로 건설한 작품이다. 2019년 독일의 부부 공공미술 작가 하이케무터& 울리히겐츠에게 의뢰해 지었다.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스페이스워크는 2021년 11월 일반에 공개돼 1년간 100만 명이 찾는 등 포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7월에는 세계 철강회사 가운데 최초로 5억 달러의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포스코가 발행한 11억 유로의 ‘그린본드’ 교환사채에는 45%나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린본드는 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고효율 에너지 등 환경보존과 친환경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특수목적 채권이다. 그린본드 유치 자금은 아르헨티나 염수 리튬 상용화 공장 구축과 호주 배터리 니켈 생산회사 지분 확보 등 전기차 시장용 이차전지소재 사업에 투자된다.

동반성장 프로그램으로 강소기업 육성 성과


▎포항의 명물로 자리 잡은 스페이스워크는 포스코가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건설했다. 2021년 11월 일반에 문을 연 지 1년 만에 1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 사진:포스코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동반성장활동도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기존에 운영하던 고객지원제도를 확대해 고객사 지원 종합 프로그램인 ‘점프(JUMP)’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다. 포스코가 가진 전문 역량을 활용해 고객사들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 도움을 주는 제도다. 기술지원, 전문지식 공유, 인프라 공유, 해외네트워크 지원, 브랜드 쉐어링 등 5개 분야에서 고객사는 자신에게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포스코의 상생 프로그램은 실제로 중소기업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점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설기계 부가장치 제조기업인 대동이엔지는 저소음 저진동 암반 파쇄 장비(진동 리퍼)를 개발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해 기술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 같은 어려움을 알게 된 포스코건설은 국내 아파트 건설현장에 대동이엔지의 진동 리퍼를 적용해 현장 소음이 획기적으로 감소한 효과를 실증했다. 이런 납품 경력을 바탕으로 대동이엔지가 만든 장비는 다른 건설사의 현장에 적용됐을 뿐만 아니라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럽, 일본, 호주, 인도 등의 광산 현장에 도입됐고, 볼보(VOLVO) 등 해외 건설기계 메이커에 OEM 공급되는 성과를 거뒀다.

제철 설비 부품 공급사인 대동중공업은 포스코의 동반성장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뒤 약 8년 만에 수출액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포스코는 대동중공업과 함께 강판주편의 품질과 형상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핵심장치를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포스코와 협업으로 기술을 확보한 대동중공업은 이후 글로벌 철강엔지니어링 업체에 설비를 공급하는 등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김철헌 대동중공업 대표는 “포스코의 지원으로 회사의 기술 경쟁력이 강화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기업시민 선포 후 임직원 사회공헌활동 늘어

이 밖에 포스코와 협력사의 복리후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호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최 회장 취임 후 협력사들과 체결한 ‘위드 포스코 동반성장 실천 협약’에 따라 포스코 직원들에게만 개방했던 휴양시설 이용 대상을 협력사로 확대하고,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협약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 협력사의 임금 수준은 동종 업계 평균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협력사 직원 자녀들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학자금을 전액 받을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해 4889명의 자녀 7040명이 학자금을 전액 지원받았다. 2020년 포스코가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국내 최초로 설립한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의 원아 47%가 협력사 직원 자녀일 정도로 이용률이 높다.

포스코의 기업시민 실천 활동상은 숫자로 계량화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포스코가 기업시민 웹사이트에 공개한 인포그래픽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청년 취·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3279명이 참여해 1504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다. 2021년 말 포스코 임직원의 1% 나눔재단 기부 참여율은 2017년 54%에서 4년 만에 98.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포스코 임직원의 봉사활동은 29만6000여 시간에 이른다. 1인당 평균 16시간이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포스코는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ESG 경영 평가에서 환경(E) A등급, 사회(S) A+등급, 지배구조(G) A+등급을 받으며 통합 A등급을 획득했다.

기업시민 개념은 앞으로 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조상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사회적경제협동과정) 교수는 “과거에 시혜적 차원에서 비용 개념으로 인식됐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현재는 사회와 기업의 가치를 동반성장시키는 투자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ESG 경영의 뿌리가 되는 ‘기업시민성’은 기업의 사회책임을 경영방식 전반에 적용하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중요한 경영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년간(2000~2019년) 포스코의 기업시민 선포 전후 시기별 주요 활동을 분석한 신현상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시민은 기업의 역량과 자원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임팩트를 창출하는 ‘능동적 문제해결자’”라고 정의하고, “기업시민 선포 후 고객·공급사와 협업 등 창의적 솔루션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진 일상을 백신·치료제 기업들과 사회공동체의 노력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하듯이 기업시민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백신과 치료제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며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포스코가 동반자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12호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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