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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21) 서울의 최고 명산 관악산에서 

 

송년 산행과 두 아들 이야기

관악산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국기봉이 11개나 있고, 정상에는 우주선처럼 보이는 대형 방송국 송신탑과 기상레이더가 있어 신비롭고 이국적이다. 지방에서 상경했거나 서울에서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나침반처럼 남쪽을 향하는 관악산의 신비로운 우주 기지를 본다면 ‘목적지에 다 왔구나!’ 하고 어머니의 품 안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친구 모임인 ‘참산악회’도 송년회 즈음 관례처럼 관악산을 오른다. 산행이 끝난 뒤에는 단골식당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금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작년까지 나는 관악산 정상 연주대(632m)를 다람쥐 같이 뛰어 인증샷을 찍고, 다른 친구들은 연주대 아래 두 번째 헬기장까지만 밟고 되돌아가 뒤풀이를 함께 했는데, 올해는 내가 사당역에서 연주대 정상을 2시간 10분 만에 올랐고, 친구들은 힘들다며 두 번째도 아닌 첫 번째 헬기장에서 유턴해 뒤풀이 식당에서 막걸리를 즐겼다.


관악산은 접근성이 좋아 수도권에 사는 등산인이라면 1년에 한두 번은 가게 된다. 보통사람들의 체력에 딱 맞는 높이의 산으로 나름 장엄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 정상에 오르면 인천 계양산, 강화도 마니산, 북한산, 남산, 남한산성, 한강, 과천 등 서울 시가지가 거진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해마다 700만 명 정도가 오르는 산이라 그런지 사방팔방 오밀조밀 등산로도 많다. 그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서일까? 등산로 바닥의 낙엽들은 허다한 등산객들의 발에 밟혀서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잘 닦아진 정상길을 오르면서 내 머릿속에는 어제 만난 분의 고통스러운 가족사가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남쪽 바다 부잣집 무남독녀로, 아버지가 선주여서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자랐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뿌리 깊은 남존여비 전통이 강해서 어머니는 아들을 못 낳는다고 시어머니는 물론 가족들에게 구박을 받았고, 마침내 성화에 못 이긴 아버지는 첩까지 얻었지만 끝내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20살 무렵, 잘 알지 못하고 일면식만 있는 8살 연상의 남자와 반강제적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친아버지가 “저 사람은 무식하고 의지가 약해 너를 엄청 고생시킬 놈이니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반대했지만, 그 남자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떼와서 공부도 이렇게 잘했고 아이큐도 125여서 후손도 똑똑할 것이고, 지금부터 성실히 노력하며 자기만 사랑하며 살겠다는 설득과 꾐에 넘어가 그만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아버지 말처럼 그 좋은 머리를 노름과 술담배에 빠져서 거진 반백수로 평생을 살았고, 최근 6개월 동안은 그냥 방에 드러누워 술만 먹고있다고 한다. 다행히 자식들은 아버지의 좋은 머리를, 자신의 예쁜 외모를 닮아 ‘남편 복은 없지만 자식 복은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모든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러 학원을 보냈고, 속칭 치맛바람으로 반장, 학생회장도 시키고 숙제도 자신이 대신해 주는 등 거의 모든 것을 다해주는 응석받이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했다. 그게 사랑이고 자식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솔직히 말해 잃어버린 그의 인생을 보상받고,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했다. 그렇게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곧장 공부도 잘하고 부모의 말을 잘 듣는 모범생으로 자라 기대감에 부풀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자 스스로 자립의 기회를 잃은 자식들은 마마보이가 돼 아무리 머리가 좋더라도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높은 수준의 고등수업에 금방 흥미를 잃었고, 인내심이 부족해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불량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이제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있다고 한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실패로 거의 모든 재산이 허무하게 날아갔고, 평생을 밤낮으로 험한 일을 마다치 않고 아등바등 온몸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어느덧 자식의 나이가 30살이 넘었는데도, 어렵게 설득해 들어간 회사에서 3개월을 못 버티고 “엄마! 나 힘들어”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 또 안쓰럽고 불쌍해 “그래, 그래”하며 그 응석받이를 받아주곤 했단다. 이젠 평생 놀고먹자는 심산인지 아들은 취업하고 싶은 의지도 전혀 없고,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 그만하라”고 되레 큰소리친다고 한다. 부전자전,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아버지와 아들이 거의 매일 치고받는 싸움박질이 일과라고 한다. 자식놈은 “이 모든 것은 아버지를 닮아 보고 배운 것”이라며 자기 아버지를 탓하고 악담한단다. ‘세상에! 아비를 몰라보는 이런 아들이 있구나!’ 마음이 너무나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그분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다가 얼머전 고진감래라고, 6년 만에 경찰시험에 합격한 내 아들을 생각하며 진정 올바른 자식 교육법이 무엇일까 하는 상념에 빠졌다. 나는 자식은 독립된 또 다른 하나의 소우주라고 여기고 스스로 노력해 자립하기를 바라며 별 간섭 없이 방목형으로 키웠다. 그렇게 아들은 평범하게 자라서 또래들처럼 대학을 진학하고 DMZ 비무장지대에서 수색대원으로 군대를 전역했다. 막 제대한 아들은 어느 날 경찰시험 기출문제를 풀어보더니 “에계계, 되게 쉽네”라더니 휴학을 했다. 1년 만에 꼭 합격하겠다고 호언장담 호기를 부리며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쉽던가! 대한민국의 공무원 시험이 만만한 콩떡, 찰떡이 아니었다. 2년의 군 공백에다 어느덧 고시가 되어버린 시험에 3년 연속 합격선 근처도 못 가보고 낙방을 거듭하자 아들은 점차 나약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져 삶의 의욕마저 잃어 갔다. 자신의 예상 점수를 너무나 잘 아는 아들은 시험 날짜가 가까이 오면 부모에게 미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안절부절 못하면서 딴청을 부리고 공부를 더 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시험공부를 완전히 포기했는지 화학 냄새가 지독히 나는 작은 케미컬 공장 생산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생전 처음 냉혹한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자기 몸으로 직접 돈을 벌어본 것이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군을 제대하고 금방 돈 벌어 우리 집을 금방 부자로 만들겠다며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 현장직원, 식당 종업원, 세차원, 벽돌공장 직원, 포장마차 운영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현실을 깨닫고 철이 들어 시 복학을 결심했던 그 2년간의 사회경험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시락 2개를 싸서 아침 7시에 도서관으로 가서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귀갓길에는 아련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벅차오르는 감동과 가슴 시린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나는 아들의 모습에서 내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아! 그 인내와 시련의 시간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러니 지금의 힘든 시간이 어쩌면 아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시간, 보약 같은 시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빡세게’ 6개월 현장을 경험한 아들은 다시 마음을 잡고 복학하더니 계속해서 시험공부를 이어갔다. 아들은 대학 공부와 병행하면서 나름대로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뒤로도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지고 자신 없어 하는 아들을 보면서 솔직히 나와 아내는 포기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시험을 포기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정말 아까운 세월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불안과 걱정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나와 아들, 가족 모두가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 동안 묵묵히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고 입에 바른 칭찬과 영혼 없는 격려를 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운명이 바뀌었다. 그렇게 아들의 발목을 잡던 영어와 역사 과목이 기준점 이상만 되면 되는 검정시험으로 대체되고, 경찰에게 필요한 법 위주로 시험과목이 2022년부터 바뀌었다. 4년간의 대학생활이 헛되지 않았는지 올해 상반기 시험에서 필기시험에서 1점 차로 떨어지고 자신감을 되찾은 아들은 어느 때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마침내 합격했다. 결코, 아들이 못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좀 더 잘한 것인데, 아들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의심한 내가 미안했고 바보 같았다. 어느 노스님의 말씀처럼 때가 되면 될 것은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았다. 다만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더 많이 온다는 말은 진리 같다.


겨우 말단 순경에 합격한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6년 만에, 그것도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길을 가게 된 젊은이가 대견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며칠 전 아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세상사가 대충 어설프게 하면 뭔가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듣고 아들의 합격보다도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깨닫고 경험한 것 같아 대견스러웠다.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 올라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대자연과 인공미의 극치로 휘황찬란한 수도 서울을 바라봤다. 왜 내 친구들은 정상을 오르지 않고, 나만 정상에 힘들게 올라왔을까? 어느 중년 여사님의 아들과 내 아들의 차이는 뭘까? 그것은 지게로 우주를 짊어지고 가신 나의 아버지와 머리로 우주를 이고 사신 어머니, 두 분의 좀 더 인내하고 참아내는 유전자 덕분이 아니었을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들은 올라보지도 않고 산만 높다 하더라“는 시조가 떠올랐다. 우리가 말하는 세속적인 작은 성공의 갈림길은 결국 인내심과 성실함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은 과보호가 아니라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일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못 느끼고 살지만 우주의 음양오행은 1분 1초를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듯이 운명도 환경의 변화, 깨달음, 경험 등에 의해 바뀌는 법이다. 지금은 고통 중에 있는 그 중년 아주머님의 아드님도 어느 계기를 맞아 좋은 머리와 멋진 외모로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우리 아들도 ‘합격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발전에 정진하면 좋겠다.

자식교육과 아들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관악산을 다 내려왔다. 정상을 다녀온 기분에 뒤풀이 집으로 달려가 멋진 친구들과 축하주를 함께 했다. 역시 산행하며 땀 흘린 후 마시는 막걸리 맛이 최고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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