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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20) 임진강 넘어 DMZ 휴전선 전방 산야에서 

 

휴전선 DMZ 사과밭과 SNS의 만남

어느 날 휴대폰에 고려직업전문학교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무료교육을 한다는 문자 한 방이 날아들었다. 평소 SNS, 이커머스 쪽으로는 문외한인지라 앞으로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수로 배워야 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만사 제쳐 놓고 접수를 했다. 그렇게 인연이 돼 꿈에 그리던 DMZ 휴전선 전방을 방문하게 됐다. SNS와 DMZ의 만남, 왠지 모르게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그곳도 대한민국 하늘 아래 우리와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이자 첨단기술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승의 세상이었다. 자연적으로도 DMZ 휴전선 전방은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동식물들의 지상낙원이었다. 남북한의 대치로 인해 DMZ 비무장지대 천혜의 자연이 보존 가능했고, 세월이 이곳을 아름다운 평화의 공원으로 만들었다.

휴전선 전방을 방문하는 날, 우리 일행은 임진강을 넘어 DMZ 검문소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채 5분도 안 돼 통일촌 마을에 도착했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 극한의 가난 속 삼시 세끼 밥 먹기 어려운 시절에도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저 6·25전쟁의 상흔만 남은 살벌함과 적막함이 고여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식량 파동으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자 곡식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해 식량 자급자족에 기여할 수 있도록 1973년 통일촌 마을을 조성했고, 민통선 내 파주 곡창지대가 식량 수급의 역할을 맡게 됐다. 파주지역에는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마을이 새로 조성됐다. 원래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었는데 휴전 협정 때 마을 중앙으로 휴전선이 설정돼 북쪽은 북한의 기정동 마을로, 남쪽은 남한의 대성동 마을로 나누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펄럭이는 태극기와 인공기, 슬픔에 잠긴 도라산을 보니, DMZ 휴전선 전방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너져가던 천년왕국, 통일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신흥 세력 고려의 왕건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배고픈 백성들을 더는 전쟁의 사지에 몰아넣을 수 없어 나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바쳤다. 이후 당시 수도 개성 남쪽의 어느 산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신라의 수도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지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의 애환과 눈물을 기려 ‘신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도라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경순왕을 두고 나약한 임금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그 역시 인간으로서 백성과 평화를 사랑한 휴머니스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 1000년 후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평화와 인내의 상징인 도라산이 DMZ 휴전선 전방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운명의 장난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일촌 마을의 작은 산과 구릉지, 산천초목들은 참으로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정해진 도로와 논밭 이외에는 지뢰밭이라고 하니 오싹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대자연의 원시림을 뚫고 꼬꼬 닭 농장을 방문했다. 3천여 평의 농장에 5000마리가 넘는 닭들이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닭 모이를 먹으려고 오후 4시까지는 까마귀가 닭들과 동거하고, 4시 이후 어둠이 질 때까지는 까치가 닭들과 동거한다고 했다. 깜깜한 밤이 되면 인근의 매, 오소리, 살쾡이, 족제비들이 닭을 사냥하는데, 그 숫자가 1년에 1000~2000마리로 꼭 자기가 먹을 양만 잡아먹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닭들의 천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다 소용없었단다. 울타리를 보수하는 등의 방어 비용이나 그놈들이 닭을 먹어 치우는 비용이 거의 유사하게 든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그들과 동거를 선택했다고 한다. 포식자도 처음 인간이 비집고 들어와 시설을 설치했을 때는 우리 인간들처럼 욕심이 많아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잡아 죽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알맞게 배부를 만큼만 잡아먹기에 야생동물과 공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 일정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새롭게 쓰게 만든, 김신조 일당이 넘어왔다는 역사의 현장, 1·21 침투로 철책선을 방문했다. 김신조를 포함한 무장간첩 31명은 1968년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국회를 폭파하기 위해 칠흑 같은 밤에 휴전선을 넘었다. 미군들이 밤 11시~새벽 1시까지는 경계근무를 느슨하게 선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들을 조롱하면서 철조망을 뚫고 남하를 시작했다. 이들은 휴전선을 넘어 인근 야산에 숨어 있다가 새벽 5시경 임진강을 도하했는데, 가져온 고무신을 북쪽으로 찍는 등 치밀하게 남하했다고 한다. 그들은 파평산을 넘어 파주 법원읍 야산에서 나무 하러 가던우씨 형제와 조우하는데, 이때 나무꾼의 지혜가 돋보이는 역사의 명장면이자 영화 한 편이 연출된다. 복장, 말씨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북한군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군인 아저씨, 훈련받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인사하며 무장공비들을 안정시켰고, 간첩들도 그 말에 감복했는지 순간적으로 판단 착오를 일으켜 ‘우리는 남조선을 해방하려고 왔다. 해방되면 너희 형제들에게 높은 자리를 줄 테니 절대 신고하지 말고 이 자리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꼼짝 말고 있으라’며 러시아제 시계까지 줘가며 나무꾼 형제를 회유하고 목숨을 살려뒀다고 한다. 형제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포승줄을 풀고 인근 경찰서로 바로 달려가 신고를 했지만, 처음에는 파출소장이 어이없다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어 상부에 보고했고 그렇게 대간첩작전이 펼쳐졌다. 그들은 특수훈련을 받은 특공대들로, 군이 예상한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작전 경계선을 넘어 청와대 앞 자하문 터널까지 무혈입성했다. 결국 검문하던 군경과 실랑이를 하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남파된 31명 중 29명이 사살된다. 대장 김신조는 대한민국에 전향해 목사가 됐지만, 끝끝내 전향을 거부하고 북한으로 귀환한 1명은 영웅 칭호를 받고 호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때 남파된 29명을 사살하기 위해 발사된 총알은 약 52만2000발로 1명을 사살하는데 약 1만8000발이 발사됐고, 간첩 1인을 제압하는데 그 당시 돈으로 약 3억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이 크나큰 사건을 계기로 군인들의 복무 기간이 6개월 늘어나 36개월이 됐고,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교련 교육, 예비군 및 해군 특수전전단(UDT) 창설, 3사관학교 설립 등 많은 부분에서 국민의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또한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인천의 실미도에서 특수북파요원을훈련했는데,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화해 무드가 조성되자 이들 북파요원의 존재가치가 없어져 버리기도 했다. 요원들은 그 실망감에 부대를 탈출하고 버스를 탈취, 노량진까지 진격해 군과 대치하다 자폭한 사건도 발생했다.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들으니 참으로 감회가 남달랐다.


다음으로 통제가 풀려 자유롭게 민간인이 왕래할 수 있는, 연천 장남면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구려 요충지 ‘호로고루성’을 찾았다. 호로고루성은 한반도 중심지에 있고 임진강을 배후로 둔 천혜의 요새 지형이어서 신라와 고구려, 백제인들이 임진강 유역의 기름진 땅을 빼앗기 위해 일진일퇴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방어진지라고 한다. 깊은 땅속에서는 여전히 그 당시에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과 부속물이 잠들어 있을 테지만, 1500년이 흐른 지금의 옛 토성은 맑은 하늘과 한 몸이 돼 너무나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강 물결 넘어 아스라이 펼쳐진 갈대밭의 아름다운 전경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우리는 다시 DMZ 휴전선 전방으로 들어와 채소 본연의 맛을 살린 자연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무공해 된장과 고추장이 무르익어 가는 농장을 감상한 후 드디어 오늘 일정의 목적지이자 이커머스 동영상 교육장인 사과밭에 도착했다. 기름지고 비옥한 게르마늄 성분을 함유한 토양에 풍부한 수량과 일조량, 큰 일교차와 농부의 정성이 더해져 맺힌 사과는 풍성하고도 꿀 같은 맛이었다.

DMZ 휴전선 바로 아래 땅에서 농업·안보·문화·관광·교육·체험을 상품화해 SNS와 이커머스를 통해 전 세계에 판로를 개척하는 사업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키 크고 잘생긴 문성수 디엠지협동조합 이사장님의 22년 내공이 담긴 현지 안내와 설명도 참으로 편안하고 깔끔했다.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 메타버스라는 신세계 경험, 살아있는 교육과 관광 등등 한마디로 오늘 일정은 잘 익은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로또복권에 당첨된 대박이었다.


임진강에 서서 남북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노니는 새들을 바라봤다. 우리 인간은 새보다 못한 참 어리석은 바보가 아닐까? 그래도 평화는 지킬 힘이 있을 때라야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지금의 너의 고통이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너는 그만큼 한 계단 업그레이드된 사람이 될 것이다”고 했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자기 운명을 사랑(Amor Fati)’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처음이라 동영상 교육은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세계인들이 꼭 와보고 싶어한다는 DMZ 휴전선 전방에서 보낸 하루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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