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쟁이 넝쿨과 장미.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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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연인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연인들은일회용에 익숙하고빗방울이 불어나고 습지가 확장되고 양서류가 번식하는계절, 우리는 종이컵 속 얼음을 흔들며 길을 걸었지그때 우리 앞에 펼쳐지던, 벽면을 타고 오르는초록방울뱀의 위장술을 너는 보았니?그날 너와 나 최대 토템은 구름, 구름은 장미를 던져주고새로운 심장을 던져주었지꼬깃꼬깃 접어둔 기억의 낱장들이 날개를 펴고 몰려오는 거리기억의 습격을 받으며 혼자 걷는, 너무 환한 오후 3시어제의 방울뱀들이 요령을 흔들며 담벼락을 오르네투명한 얼룩 한 점이 목젖 아래 망설이고노을이 깔리는 방식으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방식으로머물던 너는, 새의 방식으로 빈 하늘을 두고 갔지어떤 풍경은 붉은 목구멍을 열어 기어이 네 이름을 부른다
※ 조정인 -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 [장미의 내용], 동시집 [웨하스를 먹는 시간], [새가 되고 싶은 양파] 등이 있음. 지리산문학상, 문학동네동시문학대상,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