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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서울 아파트값 21주 연속 상승… 표류하는 尹 정부 부동산 정책 

“부동산 PF 부실 막으려다 정권 넘겨줄 판”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고금리 시기 유동성 공급이 초래한 서울 집값 급등, ‘둔촌주공 구하기’가 시그널
예상보다 더 오르자 정부 돌변, 8·8공급대책과 토지거래허가제 확대는 약효 미약


▎반포 한강공원에서 바라본 아크로리버파크 (오른쪽)와 원베일리(왼쪽) 단지. 공급 부족과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맞물리며 평당 1억 시대를 넘어 1억5000만원을 돌파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집값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 아파트는 5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렇게 집값이 올랐는데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일시적 반등이라며 축소·왜곡하기에 급급하다.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 우려와 이에 따른 수요 및 가격 상승,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는 맹탕 공급 대책 발표,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 저하에 따른 추가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핵심은 시장 안정의 확실한 신호를 줄 수 있는 획기적인 공급 대책과 투기 수요를 잡을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뜻밖에도 이 발언의 주인공은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다. 시점은 2024년 8월 1일이다. 당시 서울 아파트는 7월 넷째 주 0.3% 상승해 2018년 9월 이후 5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찍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의하면, 이후에도 8월 둘째 주까지 21주 연속 상승을 기록 중이다. 부동산을 둘러싸고 불과 2년여 만에 여야의 공수가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비슷한 시기, 보수 진영 내에서도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생의 기초는 물가 안정, 집값 안정”이라며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문재인 정권보다 윤석열 정권이 더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유 전 의원은 “윤 정권은 2022년부터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하락하던 집값을 정부가 일부러 떠받치는 바보 같은 정책을 펴왔다”면서 “고금리 속에서도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 등 저금리 정책대출을 매년 수십조원씩 퍼부어 하락하는 집값을 인위적으로 부양했다”고 저격했다.

이 밖에 7월로 예정됐던 스트레스DSR 규제를 별 이유 없이 두 달 연기했다. 종부세 폐지 움직임도 있었다. 유 전 의원은 이를 두고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다는 시그널만 시장에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수정권이 비교적 잘해왔던 공급 확대에도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고금리에도 쏟아지는 신(新)고가


▎2022년 겨울 좌초 위기 때 나온 ‘둔촌주공 살리기’는 윤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릴 생각이 없다고 시장이 해석하게 만들었다. / 사진:연합뉴스
2024년 6월 29일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에서 국민평형(34평) 50억 아파트가 최초로 탄생했다. 그보다 대략 3주 전인 6월 7일에는 바로 옆 아파트인 래미안 원베일리 국평이 49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 바로 길 건너 아래에 위치한 래미안 퍼스티지는 준공 16년차 아파트임에도 7월 24일 43억원(35평)을 찍었다. 이 밖에 서초구 잠원동의 아크로리버뷰도 40억원을 돌파했다. 이 지역 대단지 혹은 초신축인 반포자이, 메이플자이, 래미안 원펜타스의 40억원 돌파도 시간문제다. 향후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 래미안 트리니원, 신반포 2차와 4차 재건축 등이 들어서면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 한남동 나인원, 성수동 아크로포레스트, 청담동 에테르노 같은 고급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저세상 가격’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최상급지인 반포가 치고 올라가자 다른 지역으로 상승 열기가 퍼져나가는 것은 부동산의 전형적 패턴이다. 토지거래허가제에 묶여 있음에도 송파구 잠실, 강남구 청담동과 대치동 등에서도 대단지 혹은 준신축 위주로 신(新)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 문재인 정부 때 불장 수준의 가격을 회복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용산구 동부이촌동과 성동구 옥수동 등 한강변, 동마포 지역과 종로구 경희궁자이, 광진구 광장동 등 강북 요지에 입지를 둔 아파트로 파장이 퍼지는 추세다. 강남 3구는 아니지만, 강동구와 동작구 흑석동 신축 등도 뛰고 있다. 이제 이 지역 브랜드 준신축 아파트들은 국평 기준 20억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이 기대되는 여의도와 목동, 한남동, 성수동 일대도 발동이 걸리고 있다. 일례로 여의도의 하이엔드 초신축 주상복합 브라이튼은 지난 7월, 30평대 국평이 38억원에 거래됐다. 현재까지 수치만 놓고 보면 소위 ‘한강 벨트’ 지역이 상승을 견인하고, 나머지는 대개 소외되는 양극화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집값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은 금리와 공급,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윤 정부 집권 후 한국과 글로벌은 이례적인 고금리 시대를 체험했다. 극단적 상승론자들 중에선 “금리가 올라가면 경제가 그만큼 활황이라는 뜻이니 부동산에 오히려 호재”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미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은 어김없이 작동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25%까지 내렸다. 당시 코로나19 사태에 맞서기 위해 단번에 2020년 1월 1.75%로 유지하던 기준금리를 3월 한 달에만 두 차례 전격 인하한 것이다. 인하 폭도 0.5%p, 1.0%p로 굉장히 과격했다. 이후 2022년 3월 금리를 0.25%p 올리기 전까지 초저금리 상황이 이어졌다. 이 기간 물가와 자산 가격 상승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이 심화했다.

“금리 인상 타이밍을 실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매파로 돌변한 파월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22년 한 해에만 무려 6차례(총 4.25%p 인상)나 금리를 올렸고, 2023년 7월 기준금리는 5.50%까지 달했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앰뷸런스에 실려 간다’는 말처럼 한국은행도 3.50%까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우리 경제 기초체력을 넘어서는 울며 겨자먹기식 금리 인상이었다.

유 전 의원이 지칭한 “집값이 자연스럽게 하락”하던 그 시기였다. 하지만 ‘둔촌주공 재건축’이라는 거대 이슈 앞에서 윤 정부는 ‘선택’에 내몰리게 된다. 현재 올림픽파크포레온이라는 명칭으로 완공돼 오는 11월 입주를 앞둔 강동구 둔촌주공은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1만2032가구) 사업으로 꼽혔다. 문제는 공사 기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와 인건비 급등으로 부담금이 증가했고, 분양가가 올라갈수록 미분양 위험도 커졌다.

부양책을 부양책으로 부르지 못한다?


▎2024년 8월 박상우(왼쪽부터) 국토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했지만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 사진:연합뉴스
바로 이 기로에서 윤 정부의 1·3대책이 등장한다. 훗날 많은 이들이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라고 부른 완화책이 이 타이밍에 맞춰 쏟아졌다. △분양권 전매제한 1년으로 축소 △분양가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폐지 △전용면적 84㎡(30평대) 청약 당첨자를 위한 12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중도금 대출 허용 △주택 소유자의 무순위 청약 신청 허용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둔촌주공은 완판에 성공했고, 현 시점에서 프리미엄만 10억원 이상 붙는 희대의 ‘로또’로 부러움을 사게 됐다.

이후에도 윤 정부는 2023년 특례보금자리론이라는 명목으로 1년 동안 44조원을 풀었다. 그다음에는 2024년 27조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대출이 이어졌다. 게다가 기준금리 자체는 고금리였지만, 가산금리를 조절해서 사실상의 금리 인하 효과를 유도했다. 그 결과 2024년 상반기에만 주택담보대출은 25조5000억원 증가했다. 이미 매매가가 오르기 한참 전부터 꿈틀거린 전세가 역시 65주 연속으로 오르는 중이다. 전세가가 올라 집값을 밀어올리는 현상은 부동산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게다가 올여름부터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후 2+2년이 마감되는 시점이 도래한다. 전세가가 새로 리셋되면, 상승 폭은 더 가팔라질 터다.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유동성을 퍼부으면 집값이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윤 정부 내부에서는 올 상반기 집값이 완연한 오름세로 접어들었음에도 “서울 집값은 조금 더 올라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7월 17일까지도 “지역적,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등락”이라며 “추세적 상승으로의 전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가 열린 것은 2023년 9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방증이다. 실제 8월 8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그렇다면 윤 정부는 왜 이렇게 ‘부양책이지만 부양책이라 부를 수 없는’ 정책을 펼쳤어야 했을까. 다수의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을 위한 고육지계라고 바라본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 핵심지 아파트 사업이 무너져 제1금융권에서 부실 PF가 발생하는 사태는 어떻게든 차단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윤 정부가 선택한 방편은 서울 아파트값, 특히 신축의 가격 상승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건설·공사비 급등으로 민간의 공급이 위축돼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몇 년 전 10억원이면 분양받을 수 있었던 아파트가 이제 15억원으로 오르더라도 인근 아파트가 20억원 이상을 호가한다면, 15억 분양가가 싸게 보이는 ‘마법’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의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 트렌드도 이에 기인한다. 과거보다 재건축이 훨씬 더 어려워졌고, 설령 지어진다고 해도 청약 당첨 확률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기 때문이다. 불편의 진리로 통했던 “부동산은 입지”에 맞서 “신축이 곧 입지”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8·8공급대책에도 시장은 심드렁

부랴부랴 나온 8·8대책은 공급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문 정부 시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고백처럼 “아파트는 빵이 아닌”지라 하루아침에 찍어낼 수 없다.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재개발 속도전, 1기 신도시 정비,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등을 내놨지만 반응은 미지근하다. 문 정부 시절부터 익히 봐 왔던 데자뷔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장이 촉각을 세우는 것은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여부다. 문제는 이 역시 지극히 단기적 미봉책이고,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제를 했어도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들은 아랑곳 없이 신고가를 찍고 있다. 청담·삼성·대치·잠실·여의도·목동 등은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8·8대책은 안 내느니만 못한 정책으로 시장은 받아들인다”고 평했다. 빌라 정책만 봐도 이미 전세 사기 여파로, 아파트에 비해 열등재로 각인된 빌라를 통한 획기적인 공급 전환은 난망하다는 시각이다.

8·8대책이 나오기 직전, 윤석열 대통령은 “투기수요 억제”를 주문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승장은 상급지 갈아타기에서 비롯된 전형적 실수요장에 가깝다. 지방 다주택자들마저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서울 핵심지로의 ‘에셋 파킹’을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빚어지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집값 급등을 막아내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은 끝장”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으로 정권을 잡은 윤 정부도 같은 위기에 직면한 꼴이다. 게다가 그동안의 집값 떠받치기의 대가로 향후 정책의 어려움은 훨씬 더 커진 상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민주당이 다수당인 구조에서) 부동산 정상화 방안의 입법화도 쉽지 않고, 정권 초기 원희룡 국토부장관 때부터의 공급책 부재도 아쉽다”고 말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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