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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단장이 말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6)] 국제 대회 참사에도 K리그· KBO 경기 흥행하는 비결 

“이제 팬들은 대표팀과 프로팀을 구분해 응원한다” 

축구협회의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홍역에도 정작 K리그 관중세 꺾이지 않아
야구도 올림픽, WBC·프리미어12 특수 누렸지만 이젠 국제 경쟁력과 무관하게 흥행


▎2024년 7월 10일 홍명보 감독의 울산 고별전에서 팬들은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는 발언을 번복한 홍 감독과 축구협회를 향해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장이 텅텅 비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 사진: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는 근무태만 논란과 AFC 아시안컵 성적 부진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올해 2월 경질했다. 이후 임시 감독을 두 차례나 선임하는 진통 끝에 7월 7일 홍명보 울산HD 감독 내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과 축구인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5개월을 기다려가며 명망 높은 외국인 감독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국내 프로팀 감독 선임이었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을 실망시킨 대목 중 하나는 정규리그 기간 중 현직 프로팀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차출한 것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 내정을 발표한 시점에 울산은 K리그1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4위(8월 8일 시점)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울산 축구팬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을 시작으로 축구인들의 비난과 폭로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 이임생 축구협회 총괄기술이사가 경찰에 입건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축구협회의 전반적인 운영 실태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울산 구단은 홍명보 감독이 갑작스레 떠나면서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최종 협상 단계에서 FC서울 구단과의 트레이드를 철회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래저래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의 후폭풍은 거셌다. 울산구단은 7월 28일, 홍명보 감독의 후임으로 김판곤 전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팬들의 원망이 진정될지는 알 수 없다.

프로팀과 대표팀 두 마리 토끼 다 잡긴 어려워


▎김승연(왼쪽) 한화 회장은 2009년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김인식 감독을 위해 환영식을 열어줬다. 하지만 한화가 부진하자 김 감독의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축구협회가 프로팀 감독, 코치를 대표팀에 차출한 사례는 2007년부터 시작해 이번 홍명보 감독이 18번째다. 축구협회의 이런 조치는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2항 ‘협회는 제1항의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에 근거를 뒀다. 이러한 강제 규정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3조(대표팀 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4항 ‘KBO는 승인을 얻은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해당 구단에 즉시 통보하고 해당 구단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프로축구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다만 프로야구의 경우, KBO가 소속 구단과 협의 없이 프로팀 감독을 일방적으로 차출한 사례가 없다. 그리고 프로농구(KBL), 프로배구(KOVO)에는 이러한 규정 자체가 없다.

야구 역시 대표팀 감독 선임은 야구팬과 야구계 모두의 관심사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3위를 달성했고,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감독 선임에 관심이 모아졌다. KBO는 하일성 당시 사무총장이 2007년 3월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서울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장시간 독대했다. 필자는 당시 김 감독과 동행 중이었는데 하 총장이 커피숍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 하 총장과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KBO는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을 제의했고 김 감독이 수락했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같은 해 한국시리즈에서 김경문 감독의 두산은 김성근 감독의 SK에 져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국민과 함께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는 소름 돋는 명언을 남기며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해 김인식 감독은 소속팀(한화 이글스)의 성적 부진(최하위)으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김 감독은 프로팀 지휘봉을 잡지 못했다.

이와 같이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소속팀(프로팀)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프로팀과 대표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어느 종목이든 국제 대회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국내 리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국제 대회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이렇듯 국민의 관심이 높다 보니 국제 대회 성적이 국내 리그 흥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국제 대회 성적이 국내 리그 흥행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공식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공식이 들어맞았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 역시 같은 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이 흥행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1995년 사상 최초로 500만 관중(540만6374명)과 평균 관중 1만 명 시대(1만727명)를 열었다. 그러나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부터 5년간 200만 명 대의 총 관중 수와 4000~5000명대의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암흑기였다. 그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으로 야구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해 2019년까지 평균 관중 1만 명 대를 유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관중 입장이 제한된 2020년, 2021년이 지나가고 2022년 600만 관중, 2023년 800만 관중을 회복했다.

1000만 관중 노리는 KBO, 200만 돌파한 K리그


▎폭우가 내려도 관중석이 가득 차 있을 정도로 K리그 인기는 고공행진이다. 특히 2030 여성 팬들이 크게 늘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들어서는 국제 대회 성적과 국내 리그 흥행이 비례한다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2023년 WBC에서 야구 대표팀은 예선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은 데다 일부 선수들의 음주 논란이 터졌다. 여론의 질타가 심했고 KBO리그 흥행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2018년 이후 5년 만에 800만 관중을 회복한 것이다. 과거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대회가 열리면 프로야구 흥행의 악재로 인식됐으나 올해만 해도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KBO리그는 1000만 관중 가도에 거침이 없었다.

올해 프로축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리그 개막 전에 치러진 2023 AFC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부진한 성적으로 파리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당시 축구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그러나 K리그의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의외였다. 7월 21일 K리그1 24라운드, K리그2 23라운드 종료 기준으로 누적 관중 수 200만 명을 돌파했는데 2013시즌 승강제 도입 후 역대 최단 경기인 282경기 만이었다. 이제 국내 프로 리그가 더 이상 국제 대회 성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생력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 리그의 가치는 국제 대회의 중요성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출전한 첫 사례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었다. 박찬호(LA다저스), 서재응(뉴욕 메츠), 진갑용(OB), 김동주(OB), 심재학(LG), 박재홍(현대), 이병규(LG) 등 12명의 프로 선수들이 참가했다. 이후부터 국제 대회가 프로야구 경기일정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WBC는 3월에 열리기 때문에 경기일정의 변화가 거의 없지만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은 시즌 중간에 열리기도 해 리그가 중단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여기에 KBO리그의 포스트시즌이 끝난 후에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프리미어12가 열리는 해면 KBO리그 경기일정이 일찍 시작되고 일찍 마무리된다. 특히 작년과 올해같이 APBC와 WSBC 프리미어12가 2년 연속 열리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7~8월에 열리는 경우는 KBO리그 경기일정이 무척 빡빡하게 돌아간다. 올해는 올림픽에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리그가 중단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144경기가 많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제 대회로 인한 국내 리그 중단은 최소화해야

최근 몇 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가 새로 생겼다. 2006년 WBC, 2015년 WBSC 프리미어12 대회, 2017년 APBC가 차례로 시작됐다. KBO리그의 경기 수가 많다는 현장의 볼멘소리는 국제 대회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제 대회 출전을 거론하기에는 여론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에둘러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 리그도 국제 대회 못지않게 가치를 높게 인정해야 한다. 물론 야구의 국제 대회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고 국제 대회 성적도 중요하다. WBC와 올림픽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의 연이은 부진은 한국 야구에 적잖은 고민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해도 국제 대회 출전이 국내 리그의 정상적인 운영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메이저리그(MLB)나 일본 프로야구(NPB)는 국제 대회 때문에 리그를 중단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출전하는 국제 대회는 3월에 열리는 WBC가 유일하다. KBO리그의 경우 2023년 항저우 대회부터 아시안 게임이 열려도 리그 중단을 하지 않는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이 7, 8월에 열리면 매번 리그 중단을 한 KBO로서는 획기적인 결정이었다. 리그가 한창 진행되다가 3주 정도 중단되면 열기가 확 식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국제 대회 성적이라도 좋으면 국내 리그가 붐업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성적이 나쁘면 국내 리그는 악재 속에서 힘겹게 잔여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축구 월드컵처럼 전 세계 최고 선수들이 출전하는 WBC야 베스트 멤버로 출전해야겠지만 APBC나 WSBC 프리미어12는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팀 소속 선수들로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KBO리그 경기일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 축구협회의 대표팀 감독 선임 파동을 교훈삼아 2017년부터 시작한 대표팀 전임감독제는 계속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아 대표팀 성적이 좋아도 소속팀 성적이 부진해 감독이 불이익을 겪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포장될 수는 있어도 감독 개인에게는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야구, 프로축구 모두 국제 대회 성적이 부진해도 국내 리그의 경쟁력이 생기고 있는 지금, 국제 대회 못지않게 국내 리그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협회(리그 사무국) 차원에서 새로운 시각의 대표팀 운영 방향을 도출해낼 시점이다.

※ 류선규 -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이자 SSG 랜더스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26년간 프로야구단(LG 트윈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프런트로 근무하며 홍보·마케팅·운영·육성·전략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경험했다. 단장으로서 우승 1회(2022년 SSG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를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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