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길에 잠시 만난 이들 가운데는 스위스의 수학자, 네덜란드의 전직 경찰, 벨기에의 레즈비언, 실직한 프랑스의 항공사 임원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 걷다 보니 모두 발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7월 어느 더운 날 오전, 나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목적지인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길동무들과 내가 서기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지 순례 전통의 최근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2~1400년)가 묘사한 순례자들과 사뭇 다른 부류였다. 참회하기 위해 혹은 헌신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기독교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1960년대에 이런 말이 유행한 바 있다. “유대인의 호밀빵을 즐기기 위해 꼭 유대인이 될 필요는 없다.” 호밀빵 광고 문구였다. 마찬가지로 카미노(Camino)를 따라 순례하기 위해 굳이 가톨릭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카미노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St. Jean Pied-de-Port)에서 피레네 산맥을 따라 스페인 서북부 끝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770km 길이다. 필요한 것은 가슴에 품은 한두 개의 화두와 도보로 여행하며 명상을 즐기는 마음뿐이다. 중세에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카미노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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