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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 투자의 허상 

여의도 리포트 

김광기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
2005년 주식시장의 발걸음이 가볍다. 연초 900선을 넘어선 종합주가지수는 파죽지세로 1000 문턱까지 도달했다. 지수 1000시대의 신지평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투자자들은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 종합지수가 1000 고지를 넘고 나서는 여지없이 다시 미끄러졌던 경험 때문이다. 이제껏 지수가 1000을 넘었던 적은 세 번 있었다. 종합지수는 1989년 4월 사상 처음으로 1000을 넘어 1077.77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흘 만에 세자릿수로 되밀렸다. 이후 지수는 94년에는 1138, 2000년에도 1059까지 상승했지만 결국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떨어졌다. 지수는 벌써 15년 넘게 500~1000의 터널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지수가 1000 근처에 도달하면 일단 주식을 처분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을 법도 하다. 그러면 지수가 1000을 넘었을 때 주식을 팔았던 투자자들의 선택은 과연 옳을까. 종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대형 우량주를 갖고 있던 투자자들은 분명 큰 잘못을 저질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월 16일 현재 종합지수는 971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주가지수가 1000을 넘었던 2000년 1월 4일(1059)보다 8.3%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삼성전자의 주가는 30만5,500원에서 52만원으로 70%나 올랐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계속 보유한 투자자가 느끼는 체감 지수는 1700선에 가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다. SK텔레콤·현대자동차·포스코·국민은행·신한금융 같은 대부분 대형 우량주들이 5년 사이 50~200% 상승했다. 만약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처럼 우량주 30~40개로만 주가지수를 만들어 쓴다면 지금 증시 분위기는 어떨까. 대우증권은 국내 대표 우량주 20개로 KLCI(대우증권 대표기업지수)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쓰고 있다. 이 지수는 2000년 1월 4일 1000으로 출발했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KLCI보다 5%가량 높았다. 지금은 어떤가. KLCI는 2월 16일 현재 1487이다. 5년 사이 50%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 지수로는 1000을 넘느냐, 마느냐는 이미 오래전 얘기다. 오히려 2000을 언제 넘을지가 관심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종합주가지수가 100으로 첫 출발한 80년 1월 우량주 수십 종목만으로 지수를 산출했다면 지금은 4000~5000을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한국 증시가 쓰고 있는 종합주가지수란 것이 증시의 모든 상장 종목을 묶어 지수화했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투자자들이 거래하지 않는 주식들도 상장주식 수만큼 종합 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들이 우량주 수십 개만 뽑아 지수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증시의 큰 흐름을 더욱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증시를 상징하는 다우존스30 지수는 인텔과 제너럴 일렉트릭(GE) 같은 대형 우량주 30개의 주가평균으로 산출된다. 나머지 1,000개가 넘는 종목은 지수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다우30 지수만으로 시황을 파악하고 투자 판단을 내리는 데 불편이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한국 증시에선 언제부턴가 “종합주가지수를 외면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투자 격언이 생겼을 정도다. 너무나 많은 투자자가 종합지수를 시황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가 낭패를 본 탓이다. 그러는 동안 외국인 투자가들만 대박을 터트려왔다. 경제 지표들이 다 그렇듯이 분석 대상인 경제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경제주체들의 판단을 흐린다면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종합주가지수의 생산자인 증권거래소는 그동안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제대로 된 지수를 다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좋은 머리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꾸 낮은 점수를 줘 공부할 의욕을 꺾어서야 되겠는가. 지난달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선물시장이 합해 새로 출범한 통합 증권거래소는 올해 상반기 중 우량 종목 50 지수를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아무쪼록 국내 증시에도 제대로 된 지수가 나와 시장이 쑥쑥 커 나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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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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