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현대미술엔 대박·쪽박 공존 

미술시장 이야기 

김순응 중앙대 예술대학원 강사
미술시장에도 주식처럼 블루칩과 벤처 주식이 있다. 인상주의와 근대미술 작품을 블루칩으로 비유한다면 현대미술품은 벤처 주식이 될 것이다. 대박을 노린다면 현대미술품에서 투자 대상을 찾아보는 게 좋다는 얘기다. 물론 투자한 작품이 휴지조각 취급을 받는 위험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전문가들이 그 투자비법을 들려주려 한국을 찾았다. 지난 1월 26일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의 (21×25cm 3·호)이 5억2,000만원(수수료 별도)에 낙찰되면서 국내 현대미술품 최고 경매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번 기록은 지난해 12월 고려청자매병의 고미술품 기록 경신에 이은 미술시장의 빅뉴스였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일반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현장 경험에 비춰볼 때 미술시장에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가격기록 경신이다. 새로운 기록이 나오면서 시장이 활기를 찾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록들이 우리 미술시장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술품을 구입하기에 올해가 적기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관광부가 ‘미술은행’을 추진하고 있고, 기업들이 산 미술품을비업무용자산에서 빼주는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이 미술시장 활성화에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미술은행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것이다. 25억원 정도로 출발해서 그 규모는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법인세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기업들이 사는 미술품이 비업무용자산 취급을 면하게 된다. 기업의 미술품 구입에 걸림돌이 제거되기 때문에 기업의 왕성한 미술품 구입이 기대된다. 미술시장에 악재는 없고 호재만 있는 것 같다. 갈 곳 없이 떠도는 시중부동자금이 미술시장으로 유턴하기를 기대해 본다. 미술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때마침 소더비의 전문가들이 1월 20일 서울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이들의 강연은 애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미술시장에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단서를 제공했다. 특히 아시아 미술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점검해 본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들의 강연을 요약 정리해본다.

박수근,1962년작인상주의·근대미술은‘블루칩’소더비의 블레이크 고(Blake Koh) 부사장은 인상주의와 근대미술 작품을 주식시장의 블루칩에 비유했다. 위험이 덜하고 수익성이 좋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모네겦4㈍틘즯피카소겭?등 작가들이 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크게 봐서 그렇다는 얘기다. 작은 흐름을 보면 부침이 엇갈린다. 그는 지난 수년간 피카소의 말기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25년간의 작품은 초기 작품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에 매매됐지만 최근엔 현대 작품 수집가들이 피카소의 말년작에 주목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5월 피카소의 누드화(146×114cm)가 1,100만 달러에 낙찰됐다. 대부분 흰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00만 달러 선에 평가됐었다. 그는 또 최근 들어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로 헨리 무어와 입체주의 조각가 립시츠를 들었다. 이들의 작품은 최근 3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막스 베크만과 에곤 실레는 파리 예술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20세기 초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미술이 최근 관심을 끌면서 떠오른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베크만의 대표적인 작품인 의 경우 80년대 초반의 30만 달러 수준에서 80년대 후반에는 150만 달러, 지난 2001년에는 2,250만 달러로 치솟았다. 에곤 실레의 드로잉과 수채화도 저평가돼 있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50만~80만 달러였던 작품이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는 350만 달러에 낙찰됐다. 그는 오르막을 향하는 작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90년에 20만 달러이던 베르나르 뷔페의 정물화가 지금은 4만 달러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미술시장 흐름을 소개하면서 페르낭 레제의 도자기를 사두라고 한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피카소의 진품 도자기를 뒤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회화든 조각이든 특정 예술매체로 유명한 작가의 다른 매체 작품을 사두라고 권했다. 헨리 무어·자코메티의 드로잉, 알렉산더 칼더의 회화, 오딜롱 르동의 파스텔화 등을 꼽았다. 그리고 입체파 화가 루이 마르쿠시나 장 메칭거의 작품을 사라고 했다. 구하기 어려운 피카소나 브라크의 걸작 입체주의 작품의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더비의 매튜 캐리 윌리엄스(Matthew Carey-Williams) 부사장은 현대미술이 주식으로 치면 벤처쯤 된다고 설명했다. 위험이 큰 대신 잘만 고르면 대박을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선 특히 현대미술 경매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덧붙였다. 현대미술의 스타는 역시 재스퍼 존스다. 지난해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라는 드로잉이 1,10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 작품의 직전 거래 가격인 88만 달러(88년 뉴욕 소더비)에 비하면 15년 만에 무려 12배 이상으로 올랐다. 그보다 더한 수익률을 보인 예가 색면 추상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다. 87년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92만 달러에 팔린 작품 가 지난해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00만 달러에 팔렸다. 18배로 오른 것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 가운데 어떻게 이런 작가들을 골라내느냐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작가의 작품은 수익은커녕 환금성마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분히 상투적인 충고를 내놓았다. 미술품 투자, 특히 현대미술 투자는 최소 10년 이상 길게 봐야 하고 자기만의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공한 컬렉터를 보면 투자목적으로만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미술을 좋아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소더비의 존 탠콕(John Tancock) 부사장은 서구인들이 아시아 미술을 서양미술의 아류로 치부했다고 전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서양미술을 배워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극히 드물게 주목받는 작가들은 서양에 정착해서 현대 서구의 표현방식에 아시아적 감수성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일본인으로 미국에 정착한 노구치 이사무가 그렇고 베이징(北京) 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자오 우키가 그렇다. 생존 당시 노구치는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은 세계적 작가가 됐다. 자오는 대만·홍콩에서 인기가 높다. 가장 비싼 현대 아시아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박수근은 독특한 경우다. 국내에서 미술수업을 한 박수근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던 작가로 국제적인 명성은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 급부상하는 아시아 작가들고 부사장은 세계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연해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였다고 말했다. 일본 작가들이 앞섰고 중국 작가들이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스기모토 히로시·요시모토 나라·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먼저 이름을 얻었고 80년대 초에야 문호를 개방한 중국 작가들이 뒤를 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젊은 작가들인 왕광이·장샤오강등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문제는 이들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작가들은 세계적인 중국 붐에 편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라카미 같은 작가는 패션과 대중문화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작가들은 세계적인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비전을 개발하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우환 같은 작가인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작가들이 더 지속력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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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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