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레소토라는 작은 왕국이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산악지형에 위치한 레소토는 한국인에게 비자를 면제해주는 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나라다. 수도 마세루에서는 이 나라 유일의 9홀짜리 골프코스도 즐길 수 있다.한국이 이렇게 푹푹 찌는데 아프리카 땅은 지글지글 끓겠지’하고 모시 적삼에 합죽선을 들고온 어느 한국인 선교사가 얼어 죽을 뻔했다는 얘기는 지금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통하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아프리카의 관문 요하네스버그의 겨울(한국의 여름)은 아침이면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살얼음이 언다.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레소토 왕국(Kingdom of Lesotho)엔 얼음이 꽝꽝 얼고 산 위는 허리춤까지 눈이 쌓인다. 레소토 왕국? 세상에 그런 나라도 있었던가. 레소토는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있는 어엿한 소토(sotho)족의 독립국가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스럽다는 줄루족의 수많은 침공도 거뜬히 물리쳤고, 남아프리카 연방의 끈질긴 합병 요구도 단호히 거부하면서 왕국의 맥을 면면히 이어왔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쪽으로 450km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지형이 판이해지며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겹겹이 주름진 산이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곳에 남한 면적의 3분의 1이 채 안 되고, 인구 180만 명의 작은 왕국 레소토가 위치해 있다. 지도에서 보면 남한 면적의 14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남아공화국에 흡사 마당에 차돌 하나가 박혀 있는 형상이다. 레소토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 땅이 사방으로 둘러싼 거의 유일한 나라이리라. 레소토는 여러 면에서 남아공과 구별된다. 남아공은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 평원이지만, 레소토는 해발 2,000m가 넘는 산악국가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거나 서구문명이 어설프게 들어와 범죄가 급증하고, 가뭄겫箚?기아로 허덕여온 반면 이 작은 왕국은 풍요롭고 평화롭기만 하다. 레소토는 한국 사람이 비자를 면제받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국가여서 더욱 반갑다. 국경을 통과하면 바로 수도 마세루에 도착한다. 말이 수도지 우리로 치면 인구 5만 명쯤 되는 산골의 소읍이다. 별로 높지 않은 건물들이 포장도로변에 늘어서 있다. 차들도 다니고 있지만 도시의 치열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에 방한모를 쓰고 모포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당나귀가 자동차 사이로 따가닥 따가닥하며 오가는 모습이 너무나 여유롭다. 마세루에서 양품점을 하는 마키 온타쿠(41)라는 여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옷과 신발, 액세서리 그리고 화장품으로 꽉 찬 그의 양품점은 품질과 신용을 기반으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의 둘째 아들도 창고에서 신발 한 상자를 둘러메고 점포로 옮기는 등 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다. 둘째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왠지 낯익다. 훤칠한 키에 싱글벙글 웃는 잘 생긴 고등학교 1학년, 곱슬머리와 약간 검은 얼굴빛을 빼면 그대로 우리 한국인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복운 리’. 그러고 보니 양품점 이름도 ‘리(Lee)’이고, 복운이가 들고 온 신발 상자에는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원산지 표시가 선명하다. 복운이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신망 높은 사업가로 살다 얼마 전에 죽은 이성범 씨다. 충남 홍성에서 형제 많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이씨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을 떠났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약간의 돈을 모은 뒤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같은 신학생인 여인을 만나 결혼해 아들딸 셋을 낳았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1978년 공영토건의 목공으로 리비아로 날아간 뒤 그곳 일을 마치자 고국행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대륙 남부로 날아온다. 남아공과 레소토를 오가며 건축 일을 하던 그는 레소토의 상공장관 집수리를 하며 마키를 처음 만났다. 당시 마키는 상공부 소속으로 지방에 다니며 부녀자들에게 스웨터 짜는 기술 교육을 하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전문대를 졸업한 인텔리 처녀였다. 첫 만남 이후 마키를 잊어버렸던 그는 83년 초 큰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몇 년 전 만났던 마키를 다시 찾았다. 마키의 정성스런 병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마키의 고향인 레소토 마세루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씨는 한평생 천직이라 여겼던 목수 일을 던져버리고 야채 좌판을 벌이다 얼마 뒤에는 장인의 점포에 잡화점을 차렸다. 그는 기존 레소토 상인들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식으로 주먹구구식 장사를 해온 데서 벗어나 상품마다 가격표를 달아 ‘정찰제’를 시작했다. 그러자 손님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는 큰 돈을 벌었고 든든한 아들도 둘이나 뒀다. 대로변 300여 평의 땅에 건물을 지은 그는 슈퍼마켓은 세를 주고 양품점은 억척같은 부인에게 맡겼다. 자신은 한국타이어 대리점을 경영하며 검은 돌비석 공장도 운영했다. 여기 만족하지 않고 자동차 정비공장과 무역회사도 설립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건물에 세든 중국인과 다투다 총격으로 피살돼 아깝게 생을 마감했다. 이 나라의 본모습을 보려면 마세루를 벗어나야 한다. 시골길 간선도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지선은 비포장이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같은 웅장한 협곡이 있는가 하면 장마철 설악동의 급류 같은 계곡물이 있다. 눈 덮인 3,000m가 넘는 고봉도 즐비하다. 레소토의 시골은 옛날 우리네 농촌을 빼다 박았다. 순한 가축과 웃는 얼굴이 정겨운 사람들, 그리고 노랗게 부서지는 햇살과 추수한 곡식들…. 레소토는 어린 시절 고향처럼 수수하고 정겹다. 마세루에 이 나라 유일의 골프코스가 있다. 마세루 골프클럽(MASERU GOLF CLUB)이다. 비록 9홀이지만 온갖 장애물, 울창한 숲이 있고, 페어웨이도 그만하면 괜찮다. 월요일은 캐디들의 라운딩 날이라 그들과 어울려 티오프를 하기도 한다. 문제라면 그린이다. 1번 홀 파4, 드라이버도 근사하게 보내놓고 9번을 잡고 깃발을 향해 가볍게 띄웠는데 그린에 떨어진 볼이 노란 먼지를 일으킨다. 채로 곱게 친 황토를 그린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폐유를 뿌렸다. 그래서 그린은 황토가 거무스름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폐유는 미세한 황토 분말의 응집력을 높이고 바닥을 부드럽게 만든다. 폐유로 다진 황토 그린은 제법 굴곡도 있어 그런대로 퍼팅 기분을 낼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린의 빠르기(스팀 미터)가 벤트그래스로 만들어진 일반 골프코스보다 턱없이 느리다는 것. 우리나라 벤트그래스 그린의 평균 스팀 미터가 10이라면 여기는 6쯤 되지 않을까 싶다. 거의 두 곱절 세게 쳐야 원하는 거리로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스핀이 걸리지 않은 아마추어 아이언 샷도 그린에 떨어지면 프로 샷처럼 굴러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버린다는 것이 장점이다. “세상에 이런 골프코스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재미있는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MASERU GOLF CLUB 주소 : Ministry of Tourism, Sports and CultureP. O. Box 52 Maseru 100, Lesotho전화 : 09-266-313034팩스 : 09-266-31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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