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식히는 비가 내리던 저녁, 에게해를 가르는 하얀 유람선을 타고 그리스 섬마을로 여행을 하는 그림에 젖고 싶었다. 얼마 전 와인 회사의 신상품으로 들어온 프랑스 페리에 주에(Perrier Jouet)의 ‘쿠베 벨르 에포크 96(Cuvee Belle Epoque)’을 꺼냈다. 이것은 세계 3대 프리스티지 쿠베 샴페인 중 하나로 연한 베이지의 아네모네 꽃그림을 붙여 놓은 병 모양부터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아르누보 유리공예가 에밀 갈르(Emile Galle ·1846~1904)가 말년인 1902년에 디자인한 ‘작품’이다.
얼음 반 물 반 채운 크리스털 통에 ‘아네모네 꽃병’을 식혀 놓고, 안경 렌즈로 이름난 일본 회사 호야의 크리스털 샴페인 잔을 꺼냈다. 이브닝 드레스의 옷자락처럼 하늘거리는 디자인의 잔이었다. 조심스럽게 세 번에 나누어 잔을 채웠다. 우아한 디자인의 병과 잔, 시선을 유혹하는 샴페인의 눈부신 금빛, 그리고 춤을 추듯 수줍게 피어 오르는 기포는 지중해의 환상을 피어나게 하는 데 더없이 매력적인 궁합이었다. 레몬 ·파인애플 ·꿀 ·바니랄 향이 은은히 기품을 뽐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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