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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감각 잃고 吳 정벌 강행 승산없는 전쟁 일으켜 ‘낭패’ 

[삼국지경영학(22) - 유비의 마지막 고집과 파국의 시작] 

최우석 煎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관우의 죽음은 촉한은 물론 오나라와 위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관우가 10여 년간 통치하던 형주 땅은 천하의 배꼽과 같은 요지로서 삼국 세력의 균형축(均衡軸)이었는데 그 땅이 송두리째 오나라에 넘어갔으니 국제 질서에도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가장 타격을 받은 사람은 역시 촉한의 유비였다. 국가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관우가 우호관계에 있던 오나라의 기습을 받아 형주도 빼앗기고 부자가 같이 참수 당했다는 것이 더 통한이었다.관우가 오나라에 잡히기 직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촉나라 장군 유봉(劉封)과 맹달(孟達)에게 구원군을 요청했으나 깨끗이 거절당했다. 유봉은 유비의 양자로서 관우의 조카뻘이었다. 둘 다 관할지가 안정되지 않아 군대를 다른 데로 뺄 수 없다는 명분이었지만 평소 뻣뻣했던 관우의 태도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구원군을 요청하러 갔던 특사는 할 수 없이 성도(成都)까지 갔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유비는 스스로 관우를 구하러 가겠다고 출동 준비를 시킨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관우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고 유비는 혼절하고 만다.



관우는 유비가 형제처럼 아끼고 신뢰하는 창업 공신이다. 또 유비가 젊은 시절 군대를 일으킨 이래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의형제며 당시 촉한의 제2인자였다. 웬만한 일은 공명이 알아서 처리했지만 관우만은 특별대우했다. 유비는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 한다. 제갈공명 이하 신하들도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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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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