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의 변천사는 곧 한국적 자본주의 발달사다. 광복 이후 산업의 발달과 시대·사회상의 변화가 반영됐다. 그 결과 만석꾼으로 통했던 토지자본가에서 상업자본가, 그리고 산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구한말 농경사회에선 ‘부자’하면 천석꾼·만석꾼 떠올렸다. 말 그대로 천석·만석 등 한 해 쌀 수확량에 따라붙은 이 명칭은 농토가 많은 부자를 의미했다. 만석꾼으론 12대 400년 동안 부를 유지했다는 경주 최부잣집이 유명한데, 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지 않는다는 가훈에 따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소작료를 낮춰 주는 방법으로 독점을 스스로 차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이 땅에 근대적 의미의 산업의 태동하기 이전에는 정미소나 양조장을 운영하거나 운수업을 하면 부자로 통했다. 또 인삼 등 지역 특산물을 거래하는 상인이 큰돈을 만지면서 화신이나 개성상회 등 상업자본이 형성된다. 상업자본은 자연스럽게 섬유나 신발겱컸?등 산업화 초기 단계의 경공업을 일으키는 산업자본으로 연결됐다. 이렇듯 한국의 부자 변천사는 산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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