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전용 ‘세븐럭 카지노(Seven Luck Casino)’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주)는 1월 매출 대박을 터뜨렸다. 서울(2곳)과 부산(1곳)의 세븐럭 카지노에서 거의 10만에 가까운 외국인을 끌어 들여 4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6년 1월 개장 이래 월별 최고 실적이다. 실적과의 싸움에 골몰하는 CEO의 귀엔 솔깃하게 들린다. 대체 어떤 회사인지, 요즘 같은 불황에 잘나가는 비결은 뭔지 궁금할 법도 하다. 이 회사는 카지노 영업을 하는 공기업이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지갑이 두툼해진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권 고객들이 대거 몰렸다. 그렇다고 천수답(天水畓) 기업은 아니다. 권오남 그랜드코리아레저(Grand Korea Leisure·GKL) 사장은 “실적의 30~40%는 환율 덕을 봤지만 나머지는 그동안 펼쳐온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권 사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이래 기존 VIP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 신규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다. 올해는 아예 ‘마케팅의 해’로 삼아 자신이 해외 시장 개척에 앞장설 참이다.
이미 1월 홍콩, 마카오, 상하이(上海)를 돌며 고객 유치 활동을 폈다. “지금은 일본인들이 세븐럭 카지노의 최대 고객이지만 그 중심축이 서서히 중화권으로 옮아가게 된다. 현지 코트라 및 한국관광공사와 공동으로 홍보 및 관광객 유치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중국 내 한국 공관에도 주요 고객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렇다고 일본을 등한시 하는 건 아니다.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후쿠오카(福岡), 히로시마(廣島)에 이어 조만간 샌다이(仙臺)에도 사무소를 연다. 3월 말에는 하와이를 거쳐 뉴욕, 워싱턴 등 미국 본토까지 손을 뻗는다. 현지의 한국 교포들이 타깃이다. 해외 영주권을 가진 교포들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출입이 가능하다.
1월 입장객은 일본(56.3%), 중국(11.8%)에 이어 교포(10.1%)가 세 번째로 많다. “비즈니스를 위해 한국을 찾는 교포들이 잠깐 짬을 내 도심에서 즐기기에 세븐럭 카지노만한 게 없다. 이왕 돈을 쓸 거면 미국보다는 조국이 낫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겠다”고 권 사장은 말했다. 권 사장의 직장 생활은 마케팅의 연속이다.
1975년 산업자원부 공무원을 시작으로 20여 년을 코트라 해외무역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거의 30년을 해외 시장을 누비며 한국 제품을 팔았다. 나중엔 킨텍스 부사장과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의 경력에는 ‘최초’란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80년대 중반 핀란드 헬싱키 코트라 무역관장 시절엔 ‘철의 장막’을 뚫었다.
주 핀란드 소련대사관 통상대표부를 설득해 국제로봇전시회가 열린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한국 기업들과 함께 발을 내디뎠다. 한-소 정부 간 공식 교섭 채널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관용여권으로 소련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공무원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국제로봇전시회 행사가 보름간 열렸다.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납치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호텔 밖으론 한걸음도 떼지 않았을 정도로 조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97년 코트라 워싱턴무역관장 때는 미 연방정부 조달 시장을 처음 개척했다. 먼저 미 국방성을 찾아 한국 제품 구매 의사를 확인하고 적합한 국내 대기업을 이어주는 식으로 일을 했다.
서울시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가 2007년 2월 의료관광 양해각서(MOU)를 교환할 때도 권 사장이 가교 역할을 했다. 당시 서울시 산하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대표로 있던 그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의사로 일하던 차남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의료 관광을 시정에 도입했다.
GKL 사장에 선임됐을 때 일부 지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하필 카지노’냐는 표정이었다. “나 자신도 처음엔 카지노에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요즘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와서 보니 카지노는 고객을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산업이다. 상품을 해외에 내다파는 일과 돈을 번다는 점에서 뭐가 다르냐. 더구나 마케팅 방법은 양쪽이 절묘하게 빼다 박았다.” 자신의 주특기인 마케팅 역량을 구현하기에 좋은 기업이란 말이다.
그래도 카지노 하면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자녀가 세븐럭 직원이라는 사실을 내켜 하지 않는 부모도 있었다. “카지노에 부정적인 여론을 돌려놓지 않고서는 카지노 산업에 아무런 미래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 하면 카지노의 순기능을 국민에게 알릴까? 오래지 않아 출구가 보였다.
요즘 같은 달러 가뭄에는 카지노 업계가 외화벌이의 첨병 구실을 톡톡히 하게 마련이다. 권 사장은 때를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홍보팀을 재정비해 월별·분기별 실적을 언론을 통해 적극 알리고 사회공헌 활동도 부각시켰다.
“카지노는 감춰진 게 아니라 환하게 열려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세븐럭 서울 강남점을 TV 드라마 <에덴의 동쪽> 촬영장으로 제공했다. 또 정책 담당자들과 언론인을 카지노에 초청해 영업장과 환전 시설, 중앙 통제 시설을 공개했다. 카지노 업계에서 이런 시도는 이례적이다. “모든 카지노 시설은 정부가 정하는 규칙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된다. 영업장의 모든 행위는 카메라로 녹화되고, 전산 입력된다. 폭력이 난무하고, 비리가 판치는 카지노를 보려면 TV를 켜라고 권하고 싶다.”
카지노가 양지에서 제자리를 잡으려면 견실한 외화벌이 산업으로 위상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이는 CEO의 몫이기도 하다. 그는 다소 복잡하면서도 야심 찬 방법론을 제시했다. “무역과 관광은 별개가 아니다. 무역(Trade)과 관광(Travel)이 융합(Convergence)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의료, 비즈니스, 스포츠, 게임 같은 테마 관광은 서로 연계돼 있고, 고객이 겹친다. 서로 협력하면 상생하게 된다.”
권 사장은 이런 구상을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대표이사 시절부터 가다듬었다고 한다. ‘T&T 전략’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시장 개척단, 관광 유치단이라 해서 해외로 나가는 홍보 활동은 기껏해야 수출 혹은 관광이라는 하나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친다. 하지만 외국인을 비즈니스로 국내에 끌어들이면 이들이 자연스럽게 카지노 나아가 관광·의료·레저 산업의 소비자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는 홍보(아웃바운드 홍보)보다는 안으로 유인하는 홍보(인바운드 홍보)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0년대 초반 소박하기 그지없던 홍콩전자박람회도 초기 몇 년간 외국 업체와 바이어들에게 항공 요금, 체류비 등을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전시 행사로 우뚝 섰다. 그즈음 서울에서 열린 전자전시전은 투자가 받쳐주지 않아 규모나 명성이 제자리걸음만 했다.”
권 사장은 세븐럭 차원에서 나름의 무역과 관광의 융합을 꾀한다. 예컨대 세븐럭 VIP 고객 중에는 광산이나 백화점을 가진 몽골 사업가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한국 기업과의 상거래 확대를 희망한다. 카지노 측은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 철강업체, 생필품 제조업체들과 접촉해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고객의 요구에 답하려 노력했다.
“앞으로 카지노 고객이 게임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게끔 조직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그는 다짐한다. GKL은 업계 선두 기업으로서 카지노 산업의 미래도 설계해야 한다. 권 사장은 조만간 아시아에서 카지노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과거 카지노를 애써 외면해왔던 국가들이 카지노 육성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카지노가 국제사회와 경쟁하려면 추세에 걸맞은 규모와 영업 방식, 내국인 출입 허용 문제 등 쟁점 현안을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세븐럭과 한국 카지노 산업 한국에서 카지노업은 사행산업으로 분류되면서도 합법화돼 있다. 1961년 ‘복표발행현상 기타 사행행위단속법’이 제정되면서 외화 획득 통로로 카지노 설립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69년 이 법이 개정되면서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이 금지됐다. 지금은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강원랜드에만 내국인의 출입이 허용된다. 현재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장은 모두 16곳. 서울(3곳), 부산(2곳), 인천·강원·경북(각 1곳), 제주(8곳) 등지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60년대 2곳, 70년대 3곳, 80년대 2곳, 90년대 6곳이 영업허가를 받았다. 이때까지도 제주를 제외하고는 지역별 독점체제로 운영됐다. 정부는 2005년 외국 방문객이 집중되는 서울·부산 지역을 경쟁체제로 전환키로 하고 한국관광공사에 세 개의 카지노를 허가했다. 한국관광공사는 그 해 9월 자회사 GKL을 설립했고, 2006년 상반기에 세븐럭 카지노 서울 강남점, 밀레니엄 서울 힐튼점, 부산 롯데점을 잇달아 열었다. GKL은 개장 이듬해 매출액 비중에서 (주)파라다이스를 제치고 업계 1위(45.7%)에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카지노 업계 전체 매출액의 48.1%를 차지하는 등 입지를 굳혔다. GKL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업체 중 유일한 공기업이다. 외국인들이 신뢰감을 가질 만하다. 게다가 외국인 접근성이 뛰어난 서울(강남점, 강북 밀레니엄 힐튼점)과 부산(롯데점)의 요지에 카지노를 열었다. 안정적인 브랜드 파워와 입지 조건에 힘입어 업계 지존의 자리에 올라섰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업계는 지난해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일본, 중국, 대만 등 외국 고객 증가로 모두 7555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2007년보다 21% 늘었다. 세계 최대 매출을 꿈꾸던 마카오가 최근 매출 감소세로 돌아섰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영업장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GKL과 같은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체들은 환율을 지렛대 삼아 선전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카지노를 건설하거나, 설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본인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고객의 절반을 차지한다. 일본에서 카지노 합법화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게임 자본의 유출을 차단함으로써 연간 최소 2200억 엔의 경제 파급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만 입법원은 1월 카지노합법화 법안을 논란 끝에 통과시켰다. 싱가포르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에 개발업체가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2009년 말 완공 목표로 카지노 건설에 들어가 있다. 아시아권에서 추진되는 신규 카지노는 대규모 복합 리조트형을 추구한다. 호텔, 쇼핑, 컨벤션센터, 놀이 시설, 공연장 등을 아우르는 가족 단위 휴양 시설을 말한다. 또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을 제한적이나마 허용한다. 국내 카지노 업계는 한국도 복합 리조트형 카지노로 전환하자면 내국인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