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골프장 18번 홀. 그린 주변에 모인 수천 명의 골프팬 사이에 한국인 부부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잠시 후 정적을 깨고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로소 한국인 부부의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천재 골프소녀’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의 부모인 위병욱(49)씨와 서현경(43)씨였다.불안한 한 타 차 선두를 달리던 미셸 위는 마지막 홀 그린 옆 벙 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홀 50㎝에 붙이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미셸 위는 가볍게 버디를 성공시키며 ‘핑크공주’ 폴라 크리머(미국)의 추격을 두 타 차로 따돌리며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네 살 때 골프클럽을 잡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천재 골프소녀’가 오랜 어둠의 터널을 뚫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같은 조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경쟁을 펼쳤던 크리스티 커(미국)는 미셸 위를 안아주며 우승을 축하했다. 함께 미국을 대표해 솔하임컵(미국-유럽 간 골프 대항전)에 출전했던 브리티니 린시콤, 모건 프레셀(이상 미국) 등도 맥주 세례를 퍼부었다.항상 곁에서 남들의 우승 축하 세리머니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던 미셸 위가 당당히 맥주 세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맥주는 그동안 고생했던 마음의 상처도 한꺼번에 씻어내렸다. 딸의 마음고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슴아파했던 어머니는 딸을 안아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하와이대 교수의 외동딸로 어쩌면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던 딸. 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딸에게 ‘힘든 프로골퍼의 길을 왜 가게 했나’라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아버지도 그린 위를 깡총깡총 뛰면서 좋아하는 딸의 모습에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위병욱씨는 “엄청나게 기쁘다.그동안 고비도 많았고 많이 힘들었다. 주변의 기대가 워낙 높았던 만큼 마음고생도 심했다. 딸이 우승한 뒤 굉장히 행복해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우승하고 나니 자부심이 생긴다”며 환하게 웃었다. 미셸 위 시대 열리다 미셸 위의 우승은 본인과 가족들보다도 골프계가 더 기뻐했다.그동안 미국인 스타 탄생에 목말라 했던 미국 언론들도 ‘미셸 위의 시대를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Wie Era)’라는 기사를 통해 미셸 위의 우승을 크게 보도했다. LPGA투어도 미셸 위의 우승으로 한껏 고무됐다. 올 시즌 세계 경기 악화로 7개 대회가 취소되고 커미셔너가 사임하는 등 진통을 겪었던 LPGA투어에 미셸 위의 우승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PGA투어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등장으로 황금기를 맞이한 것처럼 미셸 위의 우승은 새로운 도약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신감을 찾은 미셸 위가 더 많은 우승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미셸 위의 우승이 늘어날수록 LPGA투어 전체도 함께 인기를 얻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미셸 위는 2005년 프로 데뷔와 함께 소니와 나이키로부터 연간 총 1000만 달러를 받았다. 미셸 위의 계약기간은 올해로 끝난다. 하지만 이번 우승으로 미셸 위는 더 많은 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우즈는 프로로 데뷔할 때 나이키로부터 수천만 달러를 받았다. 당시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높았지만 지금은 성공한 마케팅으로 꼽히고 있다.미셸 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스포츠 비즈니스 데일리지는 “미셸 위가 이번 우승으로 앞으로 더 많은 우승을 할 것이다. 미셸 위는 머지않아 스폰서로부터 5000만 달러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다 미셸 위는 183㎝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가 일품이다.
미셸 위는 2007년 손목 부상으로 자신의 장기인 장타력을 잃으며 상실감에 빠졌었다. 장타자들은 상대적으로 정교함과 쇼트게임 능력이 떨어진다.만일 이 둘을 모두 잘한다면 우승은 떼어 논 당상이다. 미셸 위는 가장 힘들었던 때를 2007년으로 꼽는다. 성적보다도 손목 부상으로 갑자기 장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위병욱씨는 “손목 부상으로 거리가 줄어들면서 엄청 힘들어 했다. 원래 장타자였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고전했다. 스윙 코치는 나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 했다. 이제야 예전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미셸 위는 LPGA투어 평균 드라이브 거리 269야드로 5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평균 드라이브 거리 281.7야드로 출전 선수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특히 16번 홀(파4)에선 티샷을 300야드나 날려보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커보다는 평균 20야드, 3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했던 신지애(미래에셋겿知?244야드)보다는 무려 37야드나 더 멀리 공을 날려보냈다. 조금씩 진화하다 골프에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다’는 말이 있다.
▎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미셜 위가 우승컵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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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셸 위는 ‘쇼만 보여주는 반쪽짜리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하지만 이번 우승으로 미셸 위는 이러한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미셸 위가 데뷔 첫승을 거두자 많은 사람은 “미셸 위의 경기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미셸 위의 진화 뒤에는 ‘D-D’라인이 있었다.스윙코치로 유명한 데이비드 레드베터와 퍼팅코치인 데이브 스톡턴이 바로 우승의 일등공신들이다. 레드베터는 닉 팔도를 비롯해 그레그 노먼, 어니 엘스, 박세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스윙코치를 맡은 바 있어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어려서부터 미셸 위를 지도해 왔던 레드베터는 미셸 위가 부진에 빠졌을 때도 무한 신뢰를 보냈다. 미셸 위 역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레드베터 코치를 믿고 따랐다.힘에 의존하던 파워스윙도 리듬을 타는 간결한 스윙으로 변화시켰다. 스톡턴은 장타력에 비해 쇼트게임이 약했던 미셸 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입된 인물이다. 1970년과 1976년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스톡턴은 퍼팅의 대가로 선수 시절부터 명성이 높았다.미셸 위는 솔하임컵 출전에 앞서 스톡턴에게 특별 레슨을 받았고 3승1무로 미국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꾸준한 트레이닝도 미셸 위를 강하게 만들었다. 위병욱씨는 “여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근육을 키우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몸이 더 날렵해진 느낌이다.이제는 내가 봐도 운동선수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셸 위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미셸 위는 이번 대회 12번 홀(파4)에서 무리한 레이업을 시도하다가 나무를 맞고 볼이 뒤로 튀었다. 본인도 크게 후회할 정도로 미숙한 처리였다. 어차피 투 온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좁은 나무 사이로 레이업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보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옆으로 레이업하는 게 옳았다. 다행히 볼이 나무에 맞고 페어웨이로 갔으니 망정이지 만일 나무를 맞고 OB구역으로 향하거나 더 안 좋은 상황이 연출됐다면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미셸 위는 올 시즌 두 차례 준우승에 머물렀다.그중 하나인 LPGA투어 개막전인 SBS오픈 마지막 날 11번 홀(파4)에서 안전하게 티샷한다고 3번 우드를 선택했다가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면서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운도 실력이다’는 말이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코스 매니지먼트에도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미셸 위(왼쪽)와 또래이자 라이벌인 신지애는 올 한 해 LPGA투어를 평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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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위가 우승의 물꼬를 텄지만 주변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부담감이 커질 수도 있다. 막판 중압감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멘털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야 한다. 미셸 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드라이브 샷에 정교함을 장착해야 한다.장타를 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방향 미스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거리와 방향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아무리 멀리 쳐도 숲 속이나 OB구역 밖으로 날아가는 볼은 소용이 없다. 미셸 위의 LPGA투어 페어웨이 안착률은 58.1%로 전체 142위다.‘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는 평균 드라이브 거리 265.8야드로 장타자 그룹에 속하면서도 페어웨이 안착률은 71.4%로 정교함을 자랑한다. 미셸 위는 올 시즌 개막전에 신지애와 많이 비교됐다. 전문가들 중에는 장타와 미국 코스에 익숙한 미셸 위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도 많았다.하지만 결과는 신지애의 승리로 끝났다. 신지애는 신인왕은 물론 한국인 처음으로 상금왕까지 거머쥐었다. 신지애는 휴대전화에 골프 명언들을 모아 놓고 힘들 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그는 샘 스니드가 한 말을 가장 좋아한다. “연습은 근육의 지능을 만든다.” 미셸 위도 명심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