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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tech industry - OLED 디스플레이에 상상의 나래 펴다 

 

글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사장은 카멜레온처럼 옷 색깔에 맞춰 변하는 넥타이와 웨어러블 디스플레이가 4년내 실용화된다고 말한다.

▎미하엘 그룬트 사장이 서울 삼성동 한국 머크 본사에서 액정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소재를 들고있다.



10월 초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휘는(flexible)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된 갤럭시 노트3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기존 유리기판 대신 플라스틱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채택했다. 플라스틱은 유리보다 탄성이 높아 잘 깨지지 않고 구부러지는 특성이 있다. LG전자도 연 말 휘는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이다. 앞으로 휴대폰 분야에서는 이런 플렉서블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한 원천기술은 독일의 화학회사인 머크에서 나왔다.

머크는 역사가 345년인 장수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112억 유로(약 18조원)로 거대 기업이 아닌 중견 강소기업이다. 완제품은 거의 없고 전자재료 같은 소재가 중심이다. 특히 디스플레이와 관련해 머크가 없으면 아예 제품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원천 특허물질을 갖고 있다.

미하엘 그룬트(45) 한국머크 사장을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플렉서블 기술은 초기 단계라 자유자재로 휜다는 의미보다는 곡면에 가깝다”며 “기술 발전 추세를 보면 책받침처럼 약간 휘어지는 단계를 거쳐 2,3년 내 두루마리 형태로 말거나 종이처럼 접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머크는 넥타이처럼 말 수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빗물에도 안전하고 세탁까지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방수성과 내구성 시험을 하는 단계다.

미하엘 사장은 독일 도르트문트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받고 1997년 머크 그룹에 입사했다. 지난 7월 한국에 부임하기 전까지 머크 본사 기능성 원료사업부에서 어드밴스드 테크놀러지 개발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한국은 머크의 성장을 견인하는 전략 국가”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머크의 5대 글로벌 고객”이라고 소개했다.


▎한국머크연구소 연구원들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와 액정혼합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머크의 성장 속도가 놀랍다.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는 한국 대기업과 함께 성장한다는데.

머크는 의약과 화학·전자재료 사업이 주축이다. 의약은 인구 규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이 대표적으로 의약 분야의 전략 국가로 떠오른 게 그런 이유다. 화학·전자재료는 삼성전자 같은 기술집약형 대기업에 소재 물질을 공급하는 것이다. 전자기(電磁氣) 성질을 갖는 특수 안료 같은 소량생산 물질이 많다. OLED에 들어가는 핵심 전자재료는 2ℓ 우유병 크기가 수억원한다. 이런 첨단 화학물질을 개발하려면 미래를 내다보고 신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전자회사 같은 고객보다 미래 시장 제품의 트렌드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는 연구개발 단계부터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전자재료 뿐 아니라 머크의 또 다른 사업인 자동차 도료 분야에서 비즈니스 기회가 많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자동차 사업에 머크의 첨단제품은 꼭 필요하다. 한국 대기업과 한 배를 탄 셈이다.

창업 이래 345년간 머크 일가가 줄곧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지배구조인데.

1668년 머크 일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근의 작은 마을 밤슈타트에 약국을 개업한 게 사업의 시초다. 창업 이래 13대까지 이어진 머크 일가는 가족위원회(Family Board)를 구성해 경영을 감독하는 이사회 멤버로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이들은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같은 주요 의사결정에 권한을 행사한다.

자손들이 머크의 사업 일부를 떼어내 분사할 수도 없고 가족이 보유한 주식도 함부로 매각할 수 없다. 그래서 300년 넘게 가족 경영이 유지될 수 있다. 자손은 일찍부터 세계 각국에 있는 머크 사업장을 견학하고 인턴 활동을 통해 사업을 이해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머크 일가의 검소함과 도덕성이다. 머크 일가는 전용 비행기나 고급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회사가 번 돈을 회사에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

현재 머크 경영자로 직접 근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가족 일부만 감독이사회 멤버로 참여할 뿐 대부분 직업은 선생님·변호사·농부·엔지니어·의사·주부 등으로 평범하다. 주식 배당금도 많은 부분을 회사에 내놨다. 머크가 2007년 수천억을 투자해 스위스의 생명과학 기업 세로노를 인수했을 때다. 인수 자금 대부분이 머크 일가에서 나왔다. 이들은 이런 거대한 투자 결정을 머크가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그만큼 회사를 신뢰하고 재투자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존경 받는다.

창업 일가라도 머크에 입사하려면 먼저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경영 능력이 없는 자손이 경영을 맡으면 회사가 망가질 수 있다는 오랜 전통에서 나온 결론으로 보인다. 가족위원회 대표 중 한 명은 일가의 자녀교육 프로그램 등에 시간을 쏟기도 한다.

오너 지배구조는 전문경영인이나 재무적 투자자와 비교해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강점이라고 한다.

머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회사를 지원할 확실한 오너 일가가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눈 앞의 이익보다 회사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머크 일가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로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제약의 경우 신약 개발에 최소 10년이 걸린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머크 일가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시장이 급변하는 화학소재의 경우 시장의 요구에 따른 발 빠른 대응도 가능하다.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는 전자재료와 바이오 사업에 머크 일가는 2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했다. 대규모의 인수합병도 머크 일가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2010년 미국 생명과학 회사 밀리포아를 인수해 바이오 분야와 제약 장비 및 서비스 사업에 진출했다. 인수대금 대부분을 머크 일가가 투자했다. 신규 사업을 해도 머크가 잘 할 수 있고 잘 해왔던 화학 관련 분야만 집중한다. 금융이나 건설 같은 비관련 사업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사회가 열리면 머크 일가는 지난 340여 년 동안의 성공담을 들려준다.

머크 만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있는가.

회사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모든 사업 분야에서 1등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익은 회사에 남겨 두고 어려울 때 쓰거나 재투자하는 가치 중심의 기업 문화다. 장기적인 사고와 위험요소와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머크에는 대표적인 6가지 가치가 있다.

첫째가 용기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내 모든 회사 건물이 폭격을 당해 무너졌다. 놀라운 것은 다음날 직원들이 출근해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용기와 함께 존경·책임·투명성·온전함·성취가 머크의 중요한 가치다. 이런 것을 벽에 걸어 두거나 하지 않는다. 직원들 마음 속에 녹아 있다. 또 변화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 새로운 사업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위험요소를 안고 가는 것과 피하는 균형이 중요하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머크연구소. 2002년 개장한 액정 생산 및 연구개발센터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이 디스플레이 사업을 주도했다. 지금은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는데.

한 나라에 하나 정도의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가 있는게 일반적이다. 한국은 삼성과 LG라는 2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했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일본은 독일과 비슷하다. 예를 들면 TV의 경우 디스플레이 구석까지 선명하게 해야 한다는 식의 아주 세부적인 정확성에 치중하다 보니 대규모 투자나 신기술 상용화에 한국보다 스피드가 떨어졌다.

한국은 정확한 공정 수율(yield)이 나오지 않아도 일단 가동을 해 보고 이후 이를 수정해가며 기술 학습을 한다. 실행을 통한 재빠른 학습이 한국의 특징이라고 할까. 독일이나 일본은 연구를 통한 학습에 중점을 둔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이 기술 흡수 능력이 떨어졌던 1990년대만 해도 독일·일본이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 당분간 한국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다.

몸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하는 웨어러블(wearable)의 개발 추세는.

일반 전자제품은 대부분 실리콘 기반의 부품을 사용한다. 트랜지스터 같은 게 대표적이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인쇄 방식의 공정을 사용해 플렉서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몸에 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도 여기서 출발한다. 머크의 핵심 기술은 웨어러블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주 미세한 분자 수준의 재료다. 실리콘 관련 개발 역사만 40년이 넘는다. 2000년 이후에는 OLED 같은 유기 전자기술로 전환했다.

현재 웨어러블 제품 개발에 가장 큰 장애는 방수다. 말아서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넥타이가 실용화된다면 카멜레온처럼 옷 색깔에 맞게 넥타이 색을 바꿀 수 있다. 이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위장복에도 응용할 수 있다. 머크는 자체 기술 개발이 부족한 분야는 인수합병을 통해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한 회사가 모든 분야를 다 이해하고 잘할 수는 없다.

약물 투입시기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피부 생체이식형 디스플레이도 연구 단계다. 이식이 아니라 패치 스타일의 부착이 가능한 광학적 디스플레이는 당장 적용할 수 있다. 장기 약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생체이식형 디스플레이 상용화 연구가 한창이다.

머크는 현재 내시경 수술에 사용할 수 있는 홀로그램 LCD 기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의 신체기관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수술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홀로그램을 이용하면 내시경으로 신체 내부를 관찰할 때 보이는 곳뿐만아니라 주변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머크는 기술 기업으로 유명한데 신기술 개발 추세는.

머크 연구소에서는 직물에 유기 태양전지를 접목, 낮시간 동안 태양광 에너지를 충전해 심야에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텐트 형태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빌딩·아파트에 장착하는 유리에 머크가 개발한 안료를 배합하고 유기 태양전지를 접목하면 원하는 대로 유리창의 채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실용화 단계다. 빛이나 외부의 시선을 가리는 커튼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밤에는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어둡게 조절할 수 있다(그는 인터뷰 도중 개발 중인 시제품을 직접 시연해 보여줬다).

올해 한국에서 매출 80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이 가운데 의약 비중은 15% 정도인데 매출 1조원 달성 방안은.

의약은 한국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같은 여러 외부요인이 있어 쉽지 않다. 화학은 다양한 응용 제품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화학과 의약 사업의 균형이다. 아시아에는 강력한 디스플레이 업체가 많아 우리는 화학 쪽에 집중한다. 의약의 경우 인구 수나 연구 기반 등이 중요하다. 내가 머크에 입사했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의약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지금은 반대로 전자재료 같은 화학 사업에 투자가 많이 이뤄진다. 화학 사업이 성공하려면 고객사와 근접한 곳에서 연구개발(R&D)에 집중해야 한다.

화가에게 공급할 물감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화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화가가 어떻게,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는 알고 있어야 원하는 물감을 공급할 수 있다. 따라서 현지에 R&D 조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에 140억원을 투자해 2010년 경기도 평택시에 첨단 기술센터를 준공했다. 2011년에는 독일 본사 이외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OLED 응용개발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고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한국 기업들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라는 두 가지가 매력적이다. 독일은 ‘왜 우리가 이런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원칙에 강하다. 한국은 ‘안 될 이유는 없다’는 하면 된다는 게 인상적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삼성전자 같은 첨단 기술기업을 낳을 원동력이다.

한 번 설정한 목표에 사회의 모든 부문이 집중해 후발 주자에서 재빨리 선도주자로 변신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바이오 분야도 기대된다. 하지만 후발로 기술을 따라가는 형태에서 벗어나 선도주자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은 더 어렵다.

머크(MERCK) 1668년 설립됐다. 신약 개발 및 액정디스플레이,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생명과학, 기능성 화장품이나 자동차에 사용하는 안료사업이 주력 분야다. 특히 진주처럼 반짝이는 효과를 내는 펄(pear) 안료가 유명하다. 의약 분야는 불임과 성장 촉진제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이다. 액정·편광판 같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분야에서 세계 1위다. 특허건수만 2만6000개에 달한다. 66개국에서 4만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

머크는 의약품과 디스플레이 재료 매출액이 6대4 비중이지만 첨단 전자제품 비중이 늘고 있다. 아시아 시장 매출액이 급증해 전체 매출의 3분의 1이 아시아에서 나온다. 최근에는 의료기기와 바이오 테크놀로지 부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는 1989년 진출했다. 종업원은 43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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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호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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