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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소프트 파워 강자로 우뚝 서다 

삼성전자의 성공 DNA ④ 디지털 시대 꽃피운 소프트 파워 

이필재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신경영을 주도한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는 등 소프트 파워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디자인 세계의 변방이었던 삼성전자가 어떻게 디자인 강국이 됐을까?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즈’에서 디자인이 가장 뛰어난 글로벌 기업으로 등극했다. 출품 업체 중 가장 많은 44개의 상을 휩쓸어 애플·소니·BMW를 제쳤다. 최근 3년 간 수상 실적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소프트 파워의 두 축은 디자인과 브랜드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경쟁력이 이토록 급성장한 건 이건희 회장이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다. 정국현 전 삼성전자 디자인전략팀장의 회고. 1988년 이 회장이 일본 S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카세트 생산 실무회의를 이 회사 디자이너가 주재했다. 삼성의 디자이너는 말단 중 말단으로 상품기획 부서의 허드렛일이나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삼성 디자이너는 제품 개발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참여해 의견 개진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이 사람 저 사람 간섭하다 보면 디자이너가 처음 머릿속에 그렸던 아이디어는 해체되기 일쑤였다. 이 회장은 그때 S사의 역대 사장 중 셋이 자사 디자이너와 결혼한 사실도 알게 됐다. S사 디자이너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5년 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그는 이렇게 질책했다.

“소니는 멀리서 봐도 소니고, 파나소닉 역시 멀리서 봐도 파나소닉인데 왜 삼성 제품은 브랜드를 보고 확인해야 알 수 있나요? 앞으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해지고 우리도 개성화로 가야 합니다. 성능과 질 등 생산 기술은 이제 다 비슷해질 거예요. 이제 제품의 개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1995년 삼성 계열사 직원이 경쟁사 제품을 촬영하다 발각되는 사건이 터졌다. 그는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고를 디자인 경영을 가속하는 데 활용했다. 비서실장에게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 전무급 이상은 무조건 디자인을 공부시키라”고 지시했다. 이듬해인 1996년엔 신년사에서 아예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야말로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올해를 그룹 전 제품에 대한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갑시다.”

그 이듬해 펴낸 『이건희 에세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외에서 천재급 디자이너를 확보해야 한다. 또 디자이너들에게 세계 최고급품을 얼마든지 사서 쓸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경영자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명품(名品)이 나온다.”


▎영국 런던에 있는 삼성전자의 ‘삼성디자인연구소’. 자유로운 분위기로 한쪽에 당구대가 자리잡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의 디자이너는 130명으로 마쓰시타(450명)의 3분의 1에 못 미쳤다. ‘디자인의 변방’으로서 선진국 제품의 디자인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시절이었다. 현재 삼성전자의 디자인 인력은 1150명에 이른다. 16년 만에 8.8배로 늘었다. 이 중 150명이 세계 7개국에 있는 디자인 연구소에 근무한다. 7곳의 연구소 중 핵심 거점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런던이다.

나머지 1000명의 국내 디자인 인력은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동거한다. 이들은 사옥 입주 때 가장 먼저 입성했다. 일부는 전체적인 전략을 담당하는 디자인경영센터에, 나머지는 각 사업부의 디자인 개발 조직에 속해 있다. 디자인경영센터 소속의 임원만 10명이 넘는다.




디자인 인력 16년 만에 9배로

1000명의 디자인 인력이 함께 일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장동훈 삼성전자 부사장(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인전략 팀장)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울리다 보면 서로 영감을 주고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모범 경영 사례(best practice)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자부심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반대로 수천 명의 개발팀에 디자이너 몇몇이 섞여 있으면 기를 못 펴요. 단적으로 디자인팀이 과거 수원공장 개발팀 소속이었을 때 우리도 획일적으로 점퍼를 입었습니다. 지금 서초 사옥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찢어진 청바지도 입고 귀를 뚫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쪽으로 옮길 당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디자인팀을 본사에 들이는 문제로 논란이 일자 디자인팀 출입문을 따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윗선에서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니는 것 보면 충격을 받지 않겠느냐는 거죠. 결국 자유로운 복장을 용인하기로 했습니다만.”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인 융복합 조직이다. 전공은 30가지쯤 된다. 미대 출신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경영학·사회학·인류학 전공자도 있다. 교육공학과·간호학과·피아노과·작곡과 출신도 있다. 피아노과 출신은 사운드디자인팀에서 찰랑찰랑하는 물소리 같은 효과음을 만들어 낸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예술대 대학원에서 멀티미디어학 석사학위를 받은 장 부사장은 삼성전자에 몸담기 전 이화여대 교수로 있었다.

2005년 봄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이탈리아 밀라노로 불러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었다. 삼성에서는 그가 이때 한 말을 제2의 디자인 혁명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삼성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에요. 제품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0.6초입니다.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경쟁 기업과의 전쟁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어요. 월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려면 디자인과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해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어서야 합니다.”

이 회의 후 삼성은 디자인경영센터 안에 ‘선행 디자인 그룹’을 만들었다.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건지 고민하라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디자인 분야에서 실행하는 조직이다. 삼성전자는 소프트 경쟁력의 요인으로 선행적·지속적 연구,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조직 문화, 우수한 인재 세 가지를 꼽는다. 이런 여건을 갖추려면 CEO가 디자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를 해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조건을 충족했기에 지금의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장동훈 부사장은 “CEO는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 없이는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삼성전자 내부에 있다”고 덧붙였다.

와인 잔을 형상화한 보르도 TV를 개발할 당시의 일이다. 디자인경영센터가 최초 구상한 두께가 80㎜였는데 개발팀이 110㎜짜리 시제품을 만들었다. 금형에서 막 나온 시제품을 최지성 사장(현 미래전략실장)이 쇠 자로 내리쳤다. 그는 개발 담당 중역들에게 다그쳤다.

“이 제품은 슬림해야 태가 납니다. 어째서 기술이 디자인을 따라잡지 못해요? 처음 디자인한 컨셉트대로 다시 만들어요.” 자존심이 상한 개발팀은 한 달 후 마침내 79㎜의 시제품을 완성했다. 보르도 TV는 2006년 삼성의 TV 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 올린 견인차였다.

삼성전자는 디자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디자인 자체에 대한 투자 외에 관련 협력업체, 장비 등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기도 한다. 장 부사장은 “라인 하나에 디자인 파트 전체 예산보다 큰 돈이 투자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디자인을 추구한다. 저가 제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만드는 건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장 부사장은 “이런 정책이 삼성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는 올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396억1000만 달러로 평가했다. 세계 8위로 10위인 도요타보다 2단계 높다. 삼성은 물건을 잘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사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이 회장의 오너 리더십이 발휘됐다.

1996년 이 회장은 “C+ 수준의 브랜드 이미지를 2000년까지 A-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21세기는 브랜드가 경쟁의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 경쟁의 시대”라는 말도 했다. 인터브랜드 측은 “삼성이 단기간에 브랜드 가치를 급성장시킨 것은 최고경영층이 일찍이 브랜드에 눈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 세계 8위로 뛰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삼성은 단계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제값 받기→ 비싼 값 받기→ 감성적 유대감 강화가 그것이다. 신경영 전인 1단계 시절 삼성 제품은 소니·파나소닉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에 팔렸다.

제값 받기는 당시 삼성의 화두였다. 해외법인 현지 직원들과 소통하느라 이 말의 머리글자를 따 영어로 JKPK로 표현하기도 했다. 각 단계별 브랜드 목표는 가격에 합당한 제품 가치(value for money)→ 다수의 프리미엄 제품→ 사랑받는 브랜드였다. 한편 기업의 모든 활동이 마케팅에 중요하다는 방법론(홀리스틱 마케팅)을 구사했다.

박찬수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삼성이 품질을 강조하는 질 경영으로 브랜드 경영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한다. 브랜드와 품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장동훈 부사장은 “소비자가 무형의 브랜드 가치를 직접 느끼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이 무형의 가치를 소비자 가치로 바꿔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디자인된 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가치를 느끼게 마련이죠.”

삼성전자는 막강 소프트 파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한때 절대 강자였던 코닥·노키아·소니는 후발 주자들에 왕좌를 내주고 말았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승자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에 자사가 평면TV로의 이행을 늦추면 시장도 그에 따라 속도를 줄일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패권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고 평면TV에 몰입한 기업들에 넘어갔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이 새로운 흐름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퍼스트 무버에 다가선 삼성전자도 자칫 안일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장 부사장은 “우리가 새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누군가 그 일을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우리가 앞서 내놓은 주력 제품을 잠식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출시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하게 돼 있어요. 이 치열한 경쟁에서 한순간에 당하지 않으려면 남에게 먹히기 전 스스로를 부정하고 우리 기존 제품을 먹이로 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201311호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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